Detroit Rock City

20020514121137-0410neogarage12001년 초 어느날, [NME]에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 스티비 칙(Stevie Chick)은 미국에 사는 한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디트로이트에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라는 밴드가 있는데 꼭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가이디드 바이 보이시즈(Guided By Voices)의 음악을 섞어놓은 것 같다는 그 친구의 말은 그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이 두 밴드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룹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곧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음반들을 입수해서 들었고 그들의 사운드에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감격에 겨운 그는 가는 곳마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칭찬에 열을 올렸고, 2001년을 뜨겁게 달군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열풍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인기가 높아져 갈수록 영국의 언론이 디트로이트를 찾는 빈도도 더욱 빈번해졌다. 애당초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에 대한 취재를 위해 이 곳을 방문한 영국의 기자들은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있던 디트로이트 씬을 발견하면서 또 한번의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에 못지 않은 멋진 밴드들이 즐비하게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의 언론가에서는 ‘디트로이트는 새로운 시애틀이 될 것’이라는 흥분에 찬 전망이 서서히 번져가기 시작했다. 디트로이트 씬에 대한 이러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기 위해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잭 화이트(Jack White)는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료 밴드들을 끌어모아 [Sympathetic Sounds Of Detroit]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출반했다. 디트로이트 지역의 맹주들이 대거 참여한 이 앨범은 이 곳의 음악을 외부인들에게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고 디트로이트 코브라스(The Detroit Cobras)나 본 본디스(The Von Bondies) 같은 몇몇 밴드들에게는 작은 명성을 안겨다주기도 했다.

North By Northwest

20020514121137-0410neogarage2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성공은 우연하지만 전혀 무관하지는 않은 또 하나의 사건을 유발했다. 그것은 바로 스웨덴 출신의 네오 거라지 록 그룹 하이브스(The Hives)의 등장이었다. 자신의 레이블 크리에이션을 브리티쉬 인디 뮤직의 신화로 발돋움시킨 알란 맥기(Alan McGee)는 인터넷에 기반한 21세기형 멀티미디어 제국 건설의 야심을 품고 크리에이션을 떠나 2000년에 새로운 레이블 팝톤스를 설립했다. 그러나 당초의 부푼 기대와 달리 팝톤스는 실질적인 이윤창출을 전혀 하지 못했고 인터넷에 기반한 문화사업도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재정조달과 지속적인 직원의 감소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2001년 여름에 업무차 들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귀를 의심케 할만큼 강렬하고 새로운 음악을 듣게 되었다. 그 음악의 주인공이 하이브스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서둘러 이들과 계약을 체결했고 2001년 가을에 싱글 “Supply And Demand”와 컴필레이션 앨범 [Your New Favourite Band]를 발표할 수 있었다.

당시는 화이트 스트라이프스가 영국 음악계에 거라지 록의 일대 선풍을 불러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타이밍도 이보다 더 절묘할 수 없었다. 결국 하이브스는 알란 맥기의 든든한 후원과 화이트 스트라이프스가 개척한 시장의 이점을 누리며 국제무대에 당당히 입성할 수 있었다. 국제적으로는 처음 얼굴을 알린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런던의 명소 아스토리아 극장에서 공연을 가졌고 이들의 공연 입장권이 암시장에서 열 배까지 치솟아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이브스의 성공은 그 때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스칸디나비아 록 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촉발했다. 이에 따라 북구 록의 전설로 통하는 헬라콥터스(The Hellacopters), 핀란드의 네오 거라지 록 밴드 플레이밍 사이드번즈(The Flaming Sideburns), 그리고 스웨덴의 거라지 펑크 밴드 인터내셔널 노이즈 컨스퍼라시(The International Noise Conspiracy) 등의 그룹이 국제무대에 속속 등장할 수 있었다.

Today Your Love, Tomorrow The World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와 하이브스의 이러한 활약으로 인해 현재 네오 거라지 록은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스칸디나비아 제국으로 그 중심이 크게 양분되는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이 음악의 종가인 미국은 사실 디트로이트 이외의 지역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거라지 록의 전통을 보유하고 있다. 사이키델릭 록과 헤비메탈에 영향받은 웨스트코스트의 뷔(Vue), 블랙 레벨 모터사이클 클럽(Black Rebel Motorcycle Club)과 벨레이즈(The BellRays), 뉴욕의 아트 거라지 록 전통을 계승한 예예예스(Yeah Yeah Yeahs)와 프렌치 킥스(The French Kicks), 그리고 블루스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남부의 이모털 리 카운티 킬러스(The Immortal Lee County Killers) 등 미국의 네오 거라지 록은 지역에 따라 커다란 음악적 다양성을 보여줌으로써 이 음악에 대한 흥미를 더욱 증대시킨다.

20020514121137-0410neogarage3화이트 스트라이프스와 하이브스가 2001년에 불을 붙인 거라지 록의 열기는 해를 넘긴 2002년에는 더욱 증폭된 기세로 몰아칠 전망이다. 2002년 3월에 있었던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음악 회의(South By Southwest Music Conference)는 이러한 전망의 유력한 근거를 제공한다. 해마다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개최되는 이 행사는 전세계 음악산업 관계자들의 연례회의로서 대중음악의 미래를 전망하고 유망 신인을 발굴하기 위한 신인 위주의 음악 페스티벌을 병행하고 있다. 음악산업 관계자들을 위한 일종의 박람회 성격을 띤 이 행사에서 단연 올해의 주역으로 떠오른 밴드는 예예예스였고 이들을 필두로 한 네오 거라지 록 밴드들이 이번 페스티벌의 대세를 형성했다는 소식이다. 음악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상황을 지켜 보면서 과거 펑크와 그런지가 프로그레시브 록과 헤어 메탈에 대해 각각 수행했던 역할을 네오 거라지 록이 뉴 메탈에 대해 수행할 것이라는 다소 성급한 예측까지도 나돌고 있을 정도다.

Garage Land

그렇다면 네오 거라지 록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이 지금 왜 이런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가? 네오 거라지 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1960년대에 등장한 ‘원조’ 거라지 록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부상하고 있는 네오 거라지 록은 음악적인 면에서 1960년대의 거라지 록과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네오 거라지 록의 ‘네오’라는 수식어는 음악적 발전을 표상한다기보다는 단순한 시대적 구분을 표시하는 것으로 보는게 타당할 듯하다. 네오 거라지 록은 ‘거라지 록 리바이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거라지 록을 리바이벌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닌 만큼 거라지 록 리바이벌보다는 네오 거라지 록이라는 말이 구분을 명확히 하는데 좀더 편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거라지 록은 한마디로 영원한 B급 언더그라운드 음악이다. 지금까지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 존재를 이어오기는 했지만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등장 이전까지 거라지 록은 변변한 스타 하나 배출하지 못한 ‘불쌍한’ 음악이었다. 비록 MC5와 스투지스(The Stooges) 그리고 (시각에 따라서)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같은 전설적인 밴드들이 거라지 록의 토양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이들 역시 활동 당시에는 하찮은 로컬 밴드에 불과할 뿐이었다. 거라지 록 밴드들이 이처럼 성공과 인연이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 대다수가 성공을 위한 아무런 능력도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음악은 거창한 예술 행위도 아니었고 스타덤에 오르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젊음의 열정과 에너지를 분출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었다. 또한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수단이기도 했다.

비록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격’으로 히트 싱글을 만들어낸 그룹들도 종종 있었지만 1960년대의 거라지 록 밴드들은 대부분 로컬 밴드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이들의 음악은 기교적 무능력과 예술적 조야함을 특징으로 하는 아마추어리즘의 극치였고, 이는 록이 예술로 격상되기 시작하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무시되어 오던 거라지 록이 재평가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은 1970년대 초에 발매된 편집음반 [Nuggets : Original Artyfacts From the First Psychedelic Era, 1965-1968]의 등장을 통해서였다. 음악평론가 레니 케이(Lenny Kaye)가 수집한 곡들로 구성된 이 음반은 록 음악이 날로 상업화되고 거대해져 가는 당시의 상황에서 신선한 충격파가 되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거라지 록에서 당대의 록 음악이 결여하고 있던 꾸미지 않은 솔직함과 순수한 열정을 발견했고, 이러한 발견은 이후 펑크 록의 발생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조차 거라지 록이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는데는 별다른 힘이 되지 못했다. 1970년대 이후에도 거라지 록을 연주하는 밴드들은 지속적으로 나타났지만 그들의 활동 범위는 어디까지나 로컬 뮤직 씬에 한정되어 있을 따름이었다.

Dead Leaves And The Dirty Ground

거라지 록이 오랜 밑바닥 생활을 청산하고 록 음악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급격히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침체일로를 거듭해온 록 음악의 실정과 무관하지 않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와 하이브스가 돌풍을 일으켰던 2001년은 영국의 음악이 근래 최저의 하한선을 그리고 있던 시점이다. 싱글차트는 5세-10세 아동들을 위한 보이 밴드/걸 밴드들의 음악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대안이라고는 고작 포스트 브릿팝의 나긋나긋한 발라드 정도 밖에 없었다. 영국 음악의 미국 차트 점유율은 1960년대 이후 최저치인 0.2%까지 떨어졌고, 영국의 음악 팬들은 수년간 지속되어 온 이런 음악환경에 진저리를 내기 시작했다. 매끈하고 계산적인 자국 음악에 식상해있던 영국의 음악 팬들에게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와 하이브스의 화끈하고 우직한 로큰롤은 더없이 반가운 청량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미 두 장씩의 앨범을 발표한 중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에서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이들은 영국 팬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세계적인 스타로 도약할 수 있었다.

미국 록 음악의 상황도 건강하지는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지 록의 쇠퇴 이후 10여년 동안 정상의 위치에 군림해 온 뉴 메탈은 그런지 록에서 단지 겉모습만을 물려받은 상업주의 음악에 다름 아니었다. 림프 비즈킷(Limp Bizkit)의 프레드 더스트(Fred Durst)가 소속사 인터스코프의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음악의 상업주의적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음악이 이처럼 부동의 정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 자체가 훌륭해서였다기보다는 변변한 도전세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등장한 가장 중요한 사조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 록도 뉴 메탈과 승부를 벌이기에는 지나치게 점잖고 고상한 음악이었다. 이러한 무풍지대 속에서 뉴 메탈은 메인스트림 라디오와 WWF의 엄청난 지원을 받아가며 강세에 강세를 거듭해왔고 지금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뉴 메탈의 마초적 성향과 공허한 소음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아직 영국에서처럼 떠들썩한 화제를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네오 거라지 록은 근래 등장한 록의 사조 중 뉴 메탈의 오랜 지배를 끝낼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음악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네오 거라지 록이 모든 면에서 뉴 메탈의 철저한 안티테제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두껍고 미끈하게 프로듀스된 뉴 메탈의 사운드가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상시킨다면 간결하고 조야한 네오 거라지 록의 사운드는 저예산 독립영화에 비유할 수 있다. 뉴 메탈의 사회적 배경이 안락한 교외의 주택가인 반면 네오 거라지 록의 고향은 떠들썩한 도심부의 다운타운이다. 뉴 메탈이 철저히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세계인데 비해 네오 거라지 록에서는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돋보인다. 네오 거라지 록이 과연 펑크나 그런지처럼 록 음악의 판도를 뒤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개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음악의 등장이 2002년의 록 음악을 더욱 흥미진진한 것으로 만들 것이라는 점만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20020510 | 이기웅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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