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02031915-kds-4김두수 – 자유혼 – 리버맨/드림비트, 2002

 

 

비평의 덧없음을 깨우쳐 주는 음반

근래 들어, 비평의 무기력함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아졌다. 이런 생각은 사실 매너리즘의 다른 수사(修辭)일 수도 있고, 무능함에 대한 자각을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회피하려는 나약한 발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때로는 ‘객관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평론’이라는 방법론이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는 음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음반을 만났을 경우 음악 팬의 입장에서는 정말 반갑기 그지없지만, 이러한 기쁨을 ‘논리와 사고’라는 허울의 과정을 거쳐 언어(글)의 양식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야만 할 때, 그 괴로움과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김두수의 [자유혼](2002)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이 음반은 ‘분석’이 불가능에 가까운 음반이다. 열네 개 수록곡 각각의 음악 스타일과 특성을 이런저런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은, 심하게 말하자면 헛수고에 지나지 않다. 물론 두드러진 특성을 끄집어내 설명을 시도할 수는 있다. 김두수의 보컬은 혼이 서려 있는 듯 싶다. 그런데 보통 이런 표현을 쓴다면, 이는 대개 ‘통한’의 심정 같은, 다시 말해 격한 슬픔과 고통의 정조를 표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말로 독특한 건, ‘귀기 어린’ 김두수의 보컬에 담긴 심상이 격한 슬픔이나 고통과는 크게 연관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자신의 세계를 별로 인정해 주지 않는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에서 작업에 몰두해 온 김두수의 이력이 배어 나와서인지, 그의 목소리엔 어딘지 모르게 자연과 벗하며 살아온 초연한 심성이 절로 묻어 나온다. 하지만 결국엔 자신을 외면한 세속의 냄새를 완전히 떨쳐내진 못한 터일 것이기에, 어떤 허탈감 또한 짙게 배어 나온다. 잊으려 하나 결코 잊혀지지 않는, 그래서 나지막한 서글픔의 심정이 목가적인 분위기와 섞여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김두수의 보컬은 은둔적이다. ‘은둔’이라는 단어는 대개 자발적이든 타의에 의해서든, 어쩔 수 없는 사연으로 인해 문명의 흔적이 없는 곳으로 숨어든 상황을 지칭한다. 은둔자의 입장에서 마음의 평화를 안겨주는 이상향으로 가게 되면 좋겠지만, 사실 다다르는 곳은 ‘마음의 지옥’을 구현하는 유배지일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은둔자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탈속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무기력한 체념의 정서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김두수의 보컬엔 바로 그러한 정서가 있다. 모든 수록곡들이 그러하지만, 특히 “해당화”와 “새벽비(원작은 고든 라이트풋(Gordon Lightfoot)의 “Early Morning Rain”)”는 서글픈 체념의 심경이 정점에 달한 느낌을 선사한다.

은둔자의 정서는 연주에서도 가감 없이 묻어 나온다. 무엇보다 김두수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흔한 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들리는 기타 연주에 귀를 기울이면, 이 연주가 사실은 고난도의 공력을 필요로 하는 ‘테크니컬’한 솜씨임을 눈치챌 수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뛰어난 재능과 오랜 기간 쌓여온 연륜, 그리고 은둔 생활로 얻었으리라 추측되는 어떤 ‘선(仙)’적인 기운이 혼합되어 기타 연주 속에 스며있다. 피에르 벤수잔(Pierre Bensusan)이나 마이클 헤지스(Michael Hedges) 같은 뉴 에이지 계열 기타 달인들의 목가적인 연주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김두수의 연주 쪽이 보다 자연스럽다. “나비”나 “보헤미안”을 들어보면 이 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번지 blues”는 노래 제목 그대로 블루스 필이 섞인 연주를 음미할 수 있다(부클릿을 보면 전설적인 세션 기타리스트 김광석이 이 노래에 리드 기타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자유혼]은 분명, 우리 나라 대중음악의 현재 상황에서 보면 어떻게 이런 음반이 나올 수 있는지 의아해지는, 놀라울 정도로 독창적인 작품이다. [자유혼]은 분명 김두수라는 ‘아티스트’의 꾸밈없는 진심과 의지가 흥건하게 넘치는 ‘예술품’임에 틀림없으며, 21세기에 최초로 한국에 나타난 진정한 걸작이라 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 음반으로부터 돈벌이가 될 만한 ‘상업성’을 발견하기란 정말 어렵지만 그런 것쯤 없으면 어때, 싶은 마음이 절로 솟아난다. 우리 가요는 그동안 너무 ‘세속적’이었다. 포크라고 예외일까. 미사리 카페촌의 성황이나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복고’의 정서를 등에 업어 각광을 받고 있는 포크 노장들의 부활 또한, 이윤 추구가 본심인 장삿속의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현상이라고 감히 자신할 수 있을까. 돈 놓고 돈 먹기의 살풍경 속에서 김두수의 존재는 유난히 빛을 발한다. [자유혼]을 듣고 있노라면 오랫동안 잊었던 단어인 ‘순수’가 머리와 가슴 속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정화’의 심정마저 든다. 사심 없이 살며시 다가와 은둔과 고독을 나직이 읊조리고 떠나는 김두수의 음악은, 물고 뜯기는 세속의 삶에 찌든 우리들이 지어온 죄를 대신하여 대가 없이 치루는 고해성사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의 노래가 때묻은 우리 삶을 커다랗게 변화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마음 속에 퍼진 잔향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20020429 | 오공훈 [email protected]

10/10

수록곡
1. 들꽃
2. 기슭으로 가는 배
3. 나비
4. 해당화
5. 보헤미안
6. 새벽비
7. 19번지 blues
8. 산
9. 시간은 흐르고
10. Romantic Horizon
11. 추상(追想)
12. 저녁강
13. 방랑부(賦)
14. 들엔,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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