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다가 그친 토요일 오후, 만개하기 시작한 벚꽃이 흐드러지기도 전 비와 바람에 흩날리다 어느새 사위어 버린 날, 아름답기로 유명한 어느 캠퍼스를 걷다 보니 꼭대기인 듯 싶은 곳에 이상하게 생긴 건물이 서 있었다. 한 2년 전에 세워졌다는 이 ‘전당’은 구색과 돈, 양자를 잡으려 작심한 대학 당국의 치졸한 야욕이 서린 듯, 4000석이나 되는 큰 공연장일지언정 모든 것이 조화롭지 않아 보이는 건물이었다.

20020422063038-20020207041521-yang이번 양희은 콘서트는 2002년 2월 의정부를 시작으로 한 전국(이전에는 울산이었고, 다음은 부산) 순회 라이브 콘서트 중 하나였다. 의정부에서는 뜻밖에도 매진이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 지난 1월 12일(방송 20일) 마산 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 한 방송사의 ‘게릴라 콘서트’ 때문이 아니었을까. 10대 아이돌 그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게 대성황이었다는데, 그 날 공식 집계된 관객수 7182명에, 안전사고를 우려해 입장시키지 않은 2천여 명까지 포함해서 1만여 명이 양희은을 보러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것은 어쩌면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의 영향도 제법 크지 않았을까. 물론 이런 현상에 대해 ‘중년 문화의 붐’이라는 진단을 내린다면 확대해석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이번 서울 공연은 그 효과가 약발이 다한 탓인지, 구질구질한 날씨 탓인지, 마케팅 탓인지, 아니면 사실은 이 땅에 전무하다시피 한 중장년 문화 탓인지 공연장에서 만난 관계자는 관객이 1/3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며 혀를 끌끌차댔다. 공연 시작 전, 1층에는 생각보다는 많은 인원이 들어차긴 했지만(일요일 공연은 토요일의 2/3도 안되었다고 한다) 기대에 못 미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공연은 7시 10분 경부터 시작해 8시 50분 경에 끝났고 양희은은 앵콜송 “불행아”까지 모두 17곡을 불렀다. 반주는 드럼이나 베이스가 없는 대신, 신서사이저와 피아노, 클라리넷, 어코디언과 기타 위주로 ‘어쿠스틱’하게 진행되었다. 특별한 게스트는 없었고 때로는 국악 세션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전반적으로 깔끔한 어레인지먼트와 연주를 보여주었다. 연주자 중에는 이번에 신보를 낸, 예전에는 노찾사로 호명되는 민중가요계 인사로 기억되는(지금은 한상원의 아내라는 말이 소개하는데 더 적절할?) 신지아가 신서사이저를 담당했다. 물론 전반적으로 그리 큰 ‘재미’가 있는 공연은 아니었다.

“봉우리(1984)”와 “숲(1987)”으로 시작한 양희은은 날씨 이야기와 30주년 기념 공연과 음반 이야기를 꺼냈고, 30주년 기념([양희은 30]의 발매) 공연인 만큼 곡이 발표된 해를 일일이 소개하면서 시작했다. (포크) 공연이 그러하듯 때로 관객과 소통하며 공유하려했는데 “한 사람”(1975)에서는 가사를 말해주며 원곡에서 양희경이 맡았던 파트를 함께 부를 것을 부탁하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서는 본인이 직접 기타를 메고 중년이 ‘정보에 닫혀 있는 세대’라고 운을 떼면서 그가 비유한 노래방처럼 양쪽 스크린에 띄워진 가사를 합창하게 하게 했다. 그들의 ‘편의를 위해’ 음반 몇 장을 가져왔다고 말하면서.

이후 처량 마인드로 가기로 작정을 했다는 듯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1991)와 “하얀 목련”(1983)을 이어 부르다가, 갑자기 “아침이슬”로 버거웠다고 토로하면서 “작은 연못”으로 넘어가 버렸는데, 더 이상 그에 대한 스토리는 없었다. 대신 공연이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 그의 ‘정치적’ 메시지를 설파했다. 일명 ‘우리 것이란 좋은 것이여’ ‘우리의 포크를 찾아서’. 이런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언제나 고민스럽기 그지 없다. 그런 음악적 시도에 대한 좋고 싫음/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그 복잡 미묘한 차원 중 어떤 차원의 뉘앙스인가 판단하는 데 대한 난감함 때문이었다. 김소연 소리꾼을 대동해 “자연친화적인 이들이 좋아했을” 거라는 1971년 데뷔곡들 중 하나인 “세노야”와, 젊은 국악인 8명과 함께 가야금, 장고, 대금 등 전통악기를 동원한, 기념 음반에 수록된 “보리피리”, 그리고 자신의 무대에서는 처음이라며 “밤배놀이”를 불렀다. “이런 노래가 진정한 우리 포크”이기에 “타박네” “찔레꽃” 같은 노래가 많이 나오는 게 바람이라면서.

다음으로 새 노래 두 곡을 부르겠다며 최근에 발매한 30주년 기념 음반의 곡 “그대가 있음에” “사랑-당신을 위한 기도”를 선택했고, 노래 후 음악 감독이자 기타를 연주한 김의철을 비롯한 연주자들을 소개했다. 이 기념 음반은, 말 그대로 ’30주년 기념 음반’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딸랑 기념 음반이라고 내놓았나 싶을 정도다. 말을 바꿔하면 이 땅의 ‘아줌마와 언니 누나들을 위한 기념 음반’이랄까. 때문에 이 음반은 포크의 생존자 양희은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가늠케하는 바로미터 같다. 사실 이런 식으로 그녀의 음악사를 정리하길 바라지 않았다. 지난해 4월부터 8월 방송에서 그녀가 알게 된 말기암 투병자 희재 엄마 추희숙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편지로부터 이 시대 대한민국의 엄마들의 초상화를 복제한 그. 물론 왜 모를까. 중년이란 이름은 한국에서 그렇게 매혹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먹고살기 위한 노동에 시달린다는 걸, 혹 여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중년이 즐길 문화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고, 결국 지난한 삶 끝에 찾아오는 것이란 죽음과 병뿐이라는 걸. 특히나 아직까지도 자식과 남편 뒷바라지에 소진한 많은 여성들이 불명예스럽게도 품위 없고 몰상식한 ‘아줌마’라는 꼬리표(때로는 자신들이 원인 제공자가 되기도 하지만)를 안고 산다는 것 역시.

그런데 왜 이리 그의 자리가 씁쓸하게 느껴지는 걸까, 생각할 무렵 공연은 마지막(아니나 다를까!) 곡 “아침이슬”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 ‘청년문화의 기수’로서 ‘불행한 시절’ 청량제였던 양희은은 그렇게 ‘아줌마 부대’ 앞에 서 있는가 보다. 김민기가 과거 이미지나 음악과는 조금은 먼 새로운(정규 앨범을 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영토에 보금자리를 튼 덕에, 대중음악사의 하나의 역사적 전설이나 신화적 인물로만 남은 반면, 양희은은 반복되는 과거의 레파토리에 대부분 안주하면서도 어쨌거나 몇 년에 한번씩은 앨범을 발표하고 콘서트를 연 ‘포크의 생존자’인 셈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통해 아줌마들을 위무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나름대로 그것이 양희은 자신을 지켜온 것인지는 몰라도 세상과 싸우려고는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바로 중년이라고? 아니, 언제 그녀가 전사였냐고? “아침이슬” 시대를 제외하면(어쩌면 그때조차) 그녀는 듣기 편한 혹은 개인 내면적인 포크 음악에 몸담아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가 언제나 고단한 사람들의 위로자였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아차 하는 순간 마지막으로 치달은 “아침이슬”의 후주는 “애국가” 선율이었다. 역시 ‘공익광고 주제가’였단 말이지. 게다가 앵콜송 “불행아”처럼 그녀의 노래는 왠지 너무도 발랄하게 느껴졌다.

어쨌거나 그녀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단행한 미개척지나, ‘과거의 영광’이 되풀이되는 지루한 ‘천년 왕국’도 아닌 그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하다. ‘세상을 어렵게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을 할 것이라고 천명하면서.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했던 그는 다른 길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아니, 그런 아줌마 부대의 응원을 바탕으로 한 ‘영광스런 왕국’ 속에 살고 있는 걸까). 그러나 세상과 적극적으로 ‘싸움’을 걸기를 희망하는 이나, 무언가 (특히 음악적으로) 새로운 것(에서 오는 긴장의 자기장)을 갈구하는 팬에게는 다소 갈증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바람의 대상이 어디 양희은 뿐이랴. 아니, 너무 욕심이 큰 것일까. 20010414 | 최지선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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