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에서 포크가 차지하는 위치는 각별하다. 1970년대 포크의 전성시대는 한국 음악사상 가장 좋았던 시기로 기억되고 있고 우리 음악의 많지 않은 고전 중 대부분은 포크 계열의 음악이 차지하고 있다. 비록 예전에 비해 위력이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한국 포크 음악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끊이지 않고 가요계의 만만치 않은 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포크에 대해 이처럼 애착을 갖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왜 지구상의 어떤 나라보다도 한국에서 포크가 이처럼 사랑받고 있는 것일까? 그것의 고운 멜로디와 아름다운 노랫말이 한국인의 정서에 특별히 잘 맞는 것일까?

한국에서 포크가 지니는 의미를 단순히 음악 스타일의 문제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고운 멜로디와 아름다운 노랫말은 비단 포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포크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해방 이후 한국인들이 유일하게 경험한 음악적 혁명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1977년에 영국인들이 경험한 펑크혁명과도 같은 것이다. 실제로 이 두 혁명은 많은 점에서 유사성을 지닌다. 펑크가 1977년 이전과 이후의 음악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것처럼 한국의 포크 역시 그 이전과 이후의 음악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놓았다. 펑크가 DIY 미학에 기반하여 현실의 에너지를 음악에 불어넣었던 것과 같이 한국 포크도 (비록 명시적이지는 않았지만) DIY 미학에 입각해서 형성되었다 – 누구나 통기타 하나만 있으면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섹스 피스톨즈로부터 시작된 영국의 펑크가 클래쉬와 버즈 콕스에서 언더톤스와 와이어에 이르는 수많은 거장들을 하루 아침에 배출했던 것처럼 트윈 폴리오와 한대수에서 비롯된 한국의 포크는 김민기와 양희은에서 김정호와 이장희에 이르는 무수한 명인들을 짧은 시간에 쏟아냈다. 이러한 포크의 경험은 한국인의 음악 취향을 영원히 변화시켜 놓았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포크는 한국 음악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음악성’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인식되어 왔다.

일년 남짓한 기간으로 끝나 버린 영국의 펑크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포크가 전성기를 누린 것은 기껏해야 4-5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이 우리 음악계에 미친 막대한 영향은 그것을 단순한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 치부해버리기 어렵게 만든다. 정치적 탄압으로 은퇴의 길을 걸었던 김민기와 처참한 상업적 실패로 낙마한 양병집을 시작으로 해서 한국 포크의 명장들은 1975년의 대마초 사건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싹쓸이되었다. 그럼에도 포크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한국 음악의 자존심을 계속해서 지켜왔다.

음악으로서의 포크는 거센 탄압 속에서 대학가로 숨어들어 그 생존을 유지했다. 대부분의 포크 음반들이 금지의 사슬에 묶여 대중과의 접촉이 차단된 상황에서 포크 음악은 대학가 구전가요의 형태로 그 명맥을 유지했고 나아가 1980년대 들어 본격화된 민중가요의 풍성한 자양분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동물원(김광석)과 안치환, 신형원과 노찾사 등의 신진세력을 등장시켰고 이를 통해 포크 음악은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음악으로 다시 한번 부활할 수 있었다. 또한 이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포크에 접근했던 시인과 촌장 그리고 록으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포크 지향으로 방향을 전환한 김창완 등도 이에 가세함에 따라 1980년대 한국 포크는 쇠퇴하지 않은 위력을 또 한번 과시했다.

다른 한편으로 1970년대를 살아남은 포크 뮤지션들은 포크를 넘어선 다양한 방면에서 음악활동을 지속함으로써 한국 음악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데 혁혁한 공헌을 세웠다. 양병집은 컬트 그룹 동서남북을 발굴했고 이장희가 결성한 한국 최고의 스튜디오 그룹 동방의 빛은 김현식을 배출했다. 조동진은 그의 동생 조동익의 절대적 후원자가 되었고 촉망받던 싱어 송라이터 이주원의 그룹 따로 또 같이는 강인원과 전인권을 세상에 알렸다. 이 외에도 포크에서 블루스로 음악적 방향을 바꿨던 이정선, 엄인호 , 한영애 그리고 팝 발라드의 제왕으로 군림한 이광조 등 이정선 사단의 거장들도 1980년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처럼 한국의 포크는 단순히 과거에만 제약되지 않는 폭넓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해 왔으며 한국음악의 질적 비약에 직간접적인 연관을 형성해 왔다.

한국 포크의 특별한 점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한국 음악으로서는 드물게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확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중현에서 시작된 한국의 록은 오랜 연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외국의 트렌드에 좌우되며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고 서태지의 등장을 통해 혁명으로까지 번질 수 있었던 댄스뮤직은 손쉽게 상업주의의 포로가 되어 답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포크는 이미 오래 전에 한국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내려 자생성을 확보했고 독자적인 논리에 따라 발전을 진행시켜 왔다. 물론 포크도 다른 음악과 마찬가지로 애초에는 외국의 음악을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트윈 폴리오는 나나 무스꾸리 류의 유로 팝을 번안해서 불렀고 양병집은 밥 딜런과 우디 거스리의 레퍼토리를 주로 다뤘다. 심지어 싱어 송라이터였던 한대수 마저 정서적으로는 미국의 포크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엘비스를 흉내내던 영국의 젊은이들이 곧바로 자신들의 음악세계를 정립한 것처럼 한국의 젊은이들도 무작정 남의 것을 흉내만 내지는 않았다.

‘포크’라는 말은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음악장르로서 ‘아메리칸 모던 포크’를 의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자 그대로 ‘민속음악’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한국 포크 뮤지션들로 하여금 한국 ‘민속음악’의 세계를 탐구하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미국의 포크와는 다른 한국의 포크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양병집과 서유석은 잊혀진 민요를 채보해서 불렀고 김민기와 김정호는 전통적인 정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한국의 포크가 지닌 보편적 정서를 관통하는 보다 중요한 음악적 소재는 ‘동요’였다. 흔히 간과되고 있지만 한국 포크 특유의 순수하고 맑은 정서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성적 무게는 바로 우리의 동요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양희은의 “백구”나 이연실의 “찔레꽃”과 같은 단편적인 사례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김민기와 조동진에서 하덕규와 신형원에 이르는 한국 포크의 일반적 정서를 형성하는데 기본 틀로 작용했다. 한국의 동요에는 깊은 슬픔이 잠재되어 있다. “반달”의 동경과 “오빠 생각”의 그리움 그리고 “고향의 봄”의 상실감 등은 모두 그 맞은 편에 존재하는 현실의 고통을 반영하고 있다. 이 노래들은 오늘날의 “다함께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같은 동요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감성의 깊이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등교육과 놀이(고무줄 놀이, 공기놀이) 등의 과정을 통해 전국민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동요는 한국 포크가 토착성을 획득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정서적 자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혁명은 한 나라의 음악적 지형도를 순식간에 바꿔놓는다. 영국은 현재까지 세 번의 혁명을 경험했다. 첫 번째는 1960년대 초의 로큰롤 혁명이었고 두 번째는 1970년대의 펑크 혁명이었으며 세 번째는 1980년대의 하우스 혁명이었다. 이 세 혁명은 이 나라의 음악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대중의 태도와 수용성에 이르는 총체적인 변화를 야기했다. 20세기초의 딕시랜드와 재즈의 혁명을 제외한다면 미국이 경험한 혁명은 1950년대 로큰롤 혁명과 1980년대 힙합 혁명 둘로 요약될 수 있다. 이 두 음악을 제외한다면 미국 음악의 발전은 완만한 진화나 간헐적인 분출을 통해 이루어졌을 뿐 근본적인 혁신의 양상을 띠지는 못해 왔다(펑크와 하우스가 미국인들의 발명품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음악에서 주변적 지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은 그것이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악에 있어서 혁명이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앞으로 어떤 음악이 한국 음악계에 혁명을 야기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적어도 그 혁명이 발생하기 전까지 한국 음악에서 포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20020401 | 이기웅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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