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418012158-JungandPark_3“인기 가수 정태춘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자조일까, 냉소일까, 초월일까? 객석 사이로는 살짝 웃음이 퍼져간다. 방송국의 연말 가요제에서 신인가수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 멋쩍은 기억을 얘기하곤, “제 히트곡 부르겠습니다”라며 “촛불”을 부른다. 이번에는 객석의 웃음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무대와 객석 사이, 정태춘 박은옥과 청중 사이에 뻣뻣한 긴장감이 조금 사라지고 어느새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 자조도 냉소도 초월도 아니다. 여유다.

[20주년 골든 앨범] 발매 기념으로 “봄바람 꽃노래”라는 이름의 콘서트를 벌였다. 작년에 오랜 공백 끝에 “얘기 노래 마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소극장 공연을 재개하고선 이내 공연을 다시 열었다(자료를 찾아보니 작년의 소극장 공연은 13년만이었다고 한다). 보조 의자까지 합쳐도 200명 남짓한 작은 극장. 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부부 관객들이 극장을 가득 채웠다. 화창한 식목일 오후, 이날은 저녁 공연이 아니라 오후 3시 공연으로 이루어졌다. 드럼이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무대는 작아서 정태춘 박은옥과 다섯 명의 세션이 들어서니 가득찬다.

이번 공연은 특별한 주제나 얘깃거리 없이 지금까지 20년 동안 불렀던 자기 노래들을 편안하게 부르겠단다. “실향가”를 시작으로 주로 초기의 서정적인 노래들이 이어진다. “시인의 마을”, “떠나가는 배”를 부르고는 “이렇게 비장해도 되는 겁니까”라며 청중의 웃음을 유도한다. 초기의 정태춘 노래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젊은 날의 고민이 담겨있다. 그는 자기 노래들이 일기와도 같다고 말한다. 자기 고민을 풀어낸 서사로 빚어낸 빼어난 노랫말. 그리고 웅얼웅얼 거리는 듯한 노랫말에 생명을 불어넣는 선율. 이런 점들이 그의 노래와 다른 가요(‘포크 가요’, ‘민중가요’도 포함해서)를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공연 포스터를 보니, “정태춘의 캐릭터에 덧칠되어 있는 차갑고 강직한 이미지를 잠시나마 털어 내고, 지난 20년을 함께 한 대중들에게 봄바람처럼 포근하게 헌정하는 소박한 꽃다발 같은 공연”이 될 것이라고 한다. ‘덧칠되어 있는’이란 표현이 껄끄럽다. 그렇지만 거리에서 부르고 다녔고 나중에 [아, 대한민국…]에 수록된 “일어나라 열사여”, “우리들의 죽음”처럼 ‘찌라시’ 같은 노래들을 여기서 부르는 건 좀 이상하겠지. 그렇지만 이런 노래들만이 ‘강직한’ 건 아니다. 정태춘의 노래 세계를 크게 세 덩어리로 나누곤 한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초기의 도피적인 서정의 세계든, 1990년을 전후한 ‘아름다운 열정’의 세계든, 그 이후 ‘환멸의 90년대’를 보내면서 다시 돌아본 세계든 간에, 주변인으로서 맞닥뜨린 거북한 세상에 대한 발언이라는 점에서는 다 일관되고 다 강직한 정태춘의 노래들이다. 다만 ‘좀더 강직한’ 노래들이 이 자리에선 부재할 뿐이다.

막간 휴식 시간에 준비된 막걸리 한잔과 떡 한 조각(이날은 정태춘의 생일이었다)의 여유, 휴식 시간이 지나고 흘러나오는 “건너간다”와 “수진리의 강”의 사색, “LA 스케치”와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뭉클한 감동, “인사동”과 “나 살던 고향”의 신랄한 풍자가 그 부재를 채운다. 그 부재가 혹 어색하지 않을까 불안했던 마음은 공연이 끝날 때쯤에는 조금 가신다. ‘환멸의 90년대’의 기억을 억지로 외면하고 접어놓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싸움’에 나서는 모습이 좋아보였기 때문이리라. 20020415 | 이볼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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