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03125100-0408chungtaechoon4정태춘·박은옥 – 무진 새 노래 – 지구/한국음반, 1988/1990

 

 

깊어진 성찰 속에서의 현실에의 직면

남한 사람들에게 1988년이라는 시기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개발도상국 성공신화의 표본처럼 선전되던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표어?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의 선거포스터가 아직도 떠오른다. ‘필리핀이냐, 베트남이냐, 대만이냐?’ – 이는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정권을 잡을 경우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같은 정치적 혼란이나 공산화의 위협에 시달릴 것이고, 노태우 자신이 집권했을 때만이 ‘성공적인 개도국’의 모델인 대만 같은 경제적 부를 이룰 것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사회가 근 15년간 대만과 필리핀을 거쳐 지금 베트남 같은 사회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러나 1988년이라는 시기의 의미는 ‘쌍팔년도’라는 악몽의 기억으로 더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시기쯤 군복무를 한 사람들이 술자리에서나 자주 쓸만한 이 형용사는 어느덧 ‘구시대적’이라는 형용사로 변해버린 듯하다. 불과 14년 전이면서도 우리에게는 무척 오랜 일로 느껴지는 까닭은 그만큼 올림픽이라는 사건이 일반적인 민중들의 삶과는 관계없는 일회성 행사였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런 까닭에 정태춘 박은옥의 1988년작의 제목은 [88 새 노래]보다는 [‘무진(戊辰)’ 새 노래]가 더 잘 어울린다. 남한사회에서 1987년의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일반 민중의 집단적 항거가 조금이나마 권력의 방향타를 수정하게 했던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정태춘의 음악적 방향성도 상당부분 변화를 겪는다. 전작 [떠나가는 배] 이후 소극장 공연을 위주로 대중과 소통하면서 그는 이전부터 관심을 가져오던 전통문화의 문제에 점차 천착하기 시작하고, 방송과 거리를 둠으로서 가지게 된 일정 정도의 자율성은 당시의 방송문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또한 1987년의 정치적 상황이 기폭제가 되어 가사에 있어서 일반 민중들의 삶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결과물이 [무진 새 노래]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심의제도의 완화가 이 음반의 발매를 가능하게 했던 것과 동시에 그 심의제도는 이 음반을 ‘불구’로 만들었다. 1987년 이후에 창작한 곡들 중에서도 비교적 ‘온건하고’ ‘간접적인’ 표현을 가진 몇몇 곡들이 실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곡들은 모두 가위질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의 노래는”의 경우는 가사 일부가 수정되었고, “고향집 가세”는 미군부대에 대한 묘사가 문제가 되어 1절이 삭제되었다. 가장 황당한(우스운 쪽이 정확하다) 경우는 “얘기 2″로서, 독재자를 묘사한 “영웅이 부르는 압제의 노래”라는 가사에서 “압제의” 라는 어절만 삭제되는 해프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진 새 노래]는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가장 아낀다는 음반이다. 사실 이 음반에 현실적 문제가 그렇게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전작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성숙’에 있다. 정태춘의 초기곡들의 가사에 대한 판단은 다소 유보적일 수 있지만 분명 ‘관념어의 나열’이라는 혐의는 존재한다. 이를 다소 씁쓸하게 직시하며(“그의 노래는”) 그는 좀더 구체화된 자기고백이나 현실에의 직시로 표현방법을 변화시키고 있다(“실향가”, “고향집 가세”). 하지만 이러한 태도가 전작들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분명 그의 음악세계에 가장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은 일종의 공동체적인 의미로서의 ‘고향’ 혹은 ‘농촌’임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에서 더욱 그것이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는 음악적 형식에 있어서의 고민이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가야 가자”, 그리고 건전가요를 대신해서 실린 “우리의 소원은 통일”, “얘기 2” 등에서 그는 국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전작들, 특히 지구레코드에서 발표된 많은 다른 곡들이 토속적인 멜로디와 양악 반주의 어울리지 않는 결합의 양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는 미흡하지만 일정 정도의 진일보한 형태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좀더 적극적으로 옹호하자면, 국악의 박제화된 도입에 비해서 그의 민요적인 노래들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더 전통적이고 민중적인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박은옥이 직접 작곡한 “우리가 추억이라 말하는”을 비롯하여 박은옥이 부른 곡들도 이전보다 더욱 성숙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우리는”([떠나가는 배]에 수록)의 관념어의 나열은 “바람”, “봉숭아”([북한강에서]에 수록)를 통해 다소 소박한 인민주의적 양태로 변화되어 왔고 “한밤중의 한 시간”에서 좀더 진지한 자기 성찰에 도달한 듯하다.

이 음반에서 가장 예외적이라는 곡이라 할 수 있는 “얘기 2″는 그가 적극적으로 남한 사회의 다양한 삶의 모순에 대한 표현을 서사적으로 시도한 사례이다. “생각도 없이” 자라던 어린 시절의 “배고픈 겨울밤”에서 “이리로 저리로 목적지 없이” 떠돌다가, “주변의 모든 것에 눈을 뜨며” “진실을 알고자 헤매던” 시절로. “예배당 가득히 넘치는 찬미와 정거장 마다엔 떠나는 사람들”, “영웅이 부르는 (압제의) 노래와 젖은 논 벼 베는 농부의 발자국” 같은 묘사는 당대의 민중시인들의 몇몇 뛰어난 절창들에 버금갈 정도로 날카로운 통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의 ‘객관적(정확히 말하면 전지적) 시점’의 통찰은 조금 거슬리는 느낌이 없지 않다. 이는 오히려 2002년이라는 시점의 탓일까? 그의 가사들에서 나타나는 지극히 설명적이고 때로는 교시적인 표현들(이후에 발표된 [아, 대한민국…]은 다양한 성과와 의의가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측면이 표면화된 음반이다)은 “얘기 2″에서 두드러지는 듯하다. 게다가 다소 지사적이고, 당시에도 동의하고 싶지 않았던 몇몇 가사들(“환인의 나라와 비류의 역사”, “당당한 조국의 새로운 미래”, 혹은 “버섯구름의 노래”에서의 “가슴엔 우국충정”)의 경우에는 다소 짜증스러움마저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쓴이는 정태춘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든 그에게는 ‘애국’이라는 단어를 민중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더 중요했고, 그 진심에 시비를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시점에 이러한 애국심이 엉뚱한 곳으로 변질되는 지점은 양희은과 같은 경우가 아니던가? 20020415 | 김성균 [email protected]

8/10

사족 : “얘기 2″에서의 이러한 어이없는 ‘빈 공간’을 일종의 형식으로 차용한 경우도 있다. [Rewind] 앨범에 실린 황신혜밴드의 “못생긴 얼굴”에서 그들은 “개새끼 씹새끼/나쁜 사람들”이라는 가사를 “개 / 끼 나쁜 사람들”로 바꾸어 부른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녹음을 한 후 ‘새끼 / 씹새’ 부분을 잘라버림으로서 어이없는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이도 어쩌면 한돌의 원곡을 아는 사람에게만 한정된 웃음이겠지만.

수록곡
1. 실향가
2. 이 사람은
3. 고향집 가세
4. 아가야, 가자
5. 우리의 소원은 통일
6. 우리가 추억이라 말하는
7. 한밤중의 한 시간
8. 사랑하는 이에게2
9. 그의 노래는
10. 얘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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