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의 위대한 변종들, 추이잰 콘서트

3월 2일 오후 4시. 을지로의 한 공연장 아직 불이 켜져있는 무대 위로 네 명의 중국인 뮤지션과 한 명의 마다가스카르 출신의 뮤지션이 올라섰다. 그의 이름은 추이잰(崔健). 1997년, ‘중국 인민 저항 록커’, ‘중국 최초의 국제적 록 밴드’와 같은 타이틀로 매체에 보도되면서 강산에와 함께 한 첫 내한 콘서트 이후 한국에서의 두 번째 라이브 공연이다. ‘서울 최초의 화류 공연(The First China Wave in Seoul)’ 이라는 부제 하에 이루어진 이번 공연은 윤도현 밴드와의 조인트 공연으로 이루어졌는데, 윤도현 밴드가 무대에 먼저 등장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추이잰이 먼저 올라섰다.

20020408063544-post1멤버들은 티셔츠에 진 차림으로, 편안한 옷차림들이었는데 추이잰은 검은 티셔츠 위에, 검은 바탕에 금실 수를 놓고 아랫단을 따라 흰 술을 단 중국 전통 현장(懸章, 어깨 장식띠)을 걸치고 있어서 이색적이었다. 색소포니스트 리우위엔(劉元)이 ‘수오나’를 연주하는 것으로 이 날의 공연은 시작되었다. 날라리 비슷한 금속음이 울려 퍼진다. 넓지도 않은 공연장인데 그 공명의 넓이가 하도 아득하니 멀어 가본 적도 없는 만주 벌판에서 제의의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내 주술적으로 난타하는 드럼과 느긋한 하드록 풍의 기타가 뒤따르면서 공연장의 대기는 기이한 흥분으로 가득 찼다. “훙치샤더딴(紅旗下的蛋, Balls Under The Red Flag)”이었다. 이윽고 수오나를 내려놓고 색소폰을 든 리우위엔은 비밥 재즈 풍으로 색소폰을 신명나게 불기 시작했다. 그가 원곡의 색소폰 솔로 부분에서 등장하는 “운명 교향곡” 테마 부분을 “아리랑”으로 바꿔 연주하자 관객들은 더욱 뜨겁게 환호했다. 그리고 추이잰이 입을 열었다. 걸걸하게 쉬어 각혈하듯 내뱉지만 성심에 가득 찬 그 목소리는 노래와 래핑을 오간다. 멤버들 모두가 대가들이었다. 록에서 재즈로, 포크에서 하드록으로, 전통 음악에서 하드코어로, 여하간 한 곡 안에서 온갖 스타일을 종횡무진하는 그들의 음역을 라이브의 제한된 조건이 감당해낼 수 있을까? 공연장을 들어서기 이전부터 품었던 이런 노파심은 각자의 기량을 틈새 없이 짜 맞추는 신기(神技)를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깨끗이 사라졌다.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 속에 서 있으니 처음으로 추이잰을 들었을 때의 흥분과 미혹이 발작적으로 솟아올랐다.

닳아빠진 서양 록 사운드로 일관하다가 중간쯤 슬쩍 전통 악기를 집어넣거나 가야금이 바이올린처럼 서양 화성을 수용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보편적, 국제적인 음악 원칙을 대하는 제 3세계 음악인들의 생산적인 마인드는 아니다, 국지와 국제의 접점을 마련하려는 국내의 몇몇 음악적 시도에 대해 이렇게 회의하던 나는 처음 추이잰을 듣고 그만 실어증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지금도 추이잰에 대한 만족스러운 언어는 나오지 않고 있다. 공연장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아 추이잰을 들으며 리뷰를 쓰고 있는 이 순간은 그래서 고통 반, 흥분 반이다). 하드록, 비밥 재즈, 포크, 컨트리, 펑크, 훵크(funk), 스카, 레게, 삼바 카니발, 힙합, 하드코어, 드럼앤베이스… 두 서너 곡을 듣기도 전에 주워 삼킨 (서양) 대중 음악 스타일이 수용 한계치를 훨씬 넘어 섰다. 이렇게 방약무인한 폭식자가 다 있나. 더 기가 막힌 것은 여기에 경극에서 익숙해진 온갖 중국 전통 악기들이 떡하니, 그것도 맛배기 수준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제3세계 주민의 국제화 콤플렉스가 거의 말기 암 수준이군’ 하고 생각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입에서 나온 것은 탄식이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 수 있지? 들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마당에 언어를 잃어버린 것은 당연했다. 어느 악기, 어느 사운드, 어느 프레이즈 하나 의식적이거나 강박적으로 튀지 않는 추이잰의 음악은 하나로 봉합한 이음매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기술적 탁월함을 뛰어넘은 카타르시스와 다양한 정서적 발화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경이로운 것이었다. 중국을 모태로 혼종화함으로써 탄생시킨 이 전무후무한 ‘변종’ 음악. 앨범 한 장 제대로 구하기 힘든 나라에서 이십대(1980년대 초반)가 되어서야 생전 처음 서양 록 음악을 들었다는 클래식 트럼펫 주자에게서 어떻게 이런 마인드가 생겨나나. 1997년 신문에서 톈안먼사건(天安門事件)때 학생들이 ‘중국의 “아침이슬”인 “이우쑤어요(一無所有, Nothing To My Name)”를 불렀다는 기사를 읽으며 ‘보나마나 파이어하우스(Firehouse)풍의 구닥다리 록 사운드에 ‘엎어 버려!’ 형 가사를 읊는 중국 애들이겠거니’ 심드렁하게 짐작했던 나를 회고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너무 쉽게 믿어버린 것은 내 잘못이지만 ‘중국의 체제 저항 가수’로 국한하고 ‘한국인 2세’로 오도한 매체야말로 그보다 더 심각한 잘못이었다. 이에 대한 그의 점잖은 항변들도 내 선입견을 단번에 부수진 못했으니 말이다. 안 그랬더라면 추이잰이 공중파 방송 불가 판정 등을 저항적 순도의 눈금으로 처리하며 똥폼을 잡는 여타의 센세이셔널리스트와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걸 훨씬 빨리 ‘체감’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추이잰은 공연 내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가 한 마디 하면 백스테이지에 있는 통역사가 통역을 해 주는 식으로 관객과의 의사소통을 꾀했는데 매우 진지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각 곡마다 가사의 주요 부분을 낭송하거나 그 곡에 얽힌 배경사를 설명하는 모습에서 메시지 전달을 통한 관객과의 일체감을 매우 중요시하는 세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 재미있었던 장면 하나는 추이잰이 “쩐머양(  樣) 혹은 잘 지내?”라고 자신이 중국어와 한국어로 물으면 “초우허(湊合) 혹은 그냥 그래”로 청중이 화답하게 하는 장면을 의도한 것이다(이런 대화에는 바로 ‘잘 지내’라고 할 때처럼 남에게 이목을 집중시키지도, ‘못 지내’라고 할 때처럼 무시당하지도 않는다는, 현재 중국의 문화적 배경이 있다). 덕분에 사운드 이상의 의미로 몰입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또한 수오나나 떠즈(피리)와 같은 악기 이외의 중국 전통 음악 사운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생략해 버리는 것 아닌가 하며 애가 달았는데 “훈즈(混子, Slacker)”에서 베이시스트 장링이 신서사이저에 입력한 음원 샘플을 이용, 경극에서 자주 듣는 타악, 현악 효과 등을 살리고 있었다.

중국 전통 리듬을 차용한 것이 역력한 우용후안(武勇桓, 베이베이가 애칭)의 드러밍과 함께 슬로우 템포 록으로 흐르는 “꽌롱(寬容, Forgive)”은 후반부에서 색소폰의 즉흥적 솔로로 길게 이어지는 재즈의 분위기를 짙게 풍겼다. 이때 추이잰의 노래는 만가적(輓歌的)으로 슬펐다. “꽌롱”으로 가라앉나 싶던 분위기는 “페이러(飛了, Flown)”가 뒤이으면서 다시 치솟아 올랐다. 마다가스카르 출신의 에디 라드나맘피오노나(艾迪)의 훵키한 일렉트릭 기타의 질주, 배럴 하우스(barrelhouse)풍으로 종종걸음치는 색소폰과 창창창 울려 퍼지는 중국 타악, 추이잰과 베이베이의 대조적인 트윈 래핑, 챈팅 코러스가 일품인 이 곡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 중의 하나여서 주체하기가 힘들 정도로 흥분했다.

베이베이는 툭툭 끊어지듯 투박하고 선동적인 추이잰보다 다이내믹하고 유연한 래핑을 구사해서 공연 분위기를 더욱 달구었다. 열기로 인해 검은 현장을 벗어 던진 추이잰은 중화인민공화국 이후 마오쩌뚱이 실시한 농촌 개혁 정책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눙춘빠오웨이청스(農村包圍成市, Rural Siege Of The City)”를 부르기 시작했다. 드럼앤베이스 스타일의 비트 샘플링과 함께 정글(Jungle) 풍으로 포효하는 드러밍위에서 일렉트릭 기타가 톱 연주라도 하듯 환각적으로 울려 퍼졌다. “젊은이들이여, 노인들을 포위하라”는 추이잰의 선동은 운동권 가수(?)에 대한 선입견을 작정하고 가지고 있는 나 같은 사람마저 뭉클하게 할 정도였다. 그것이 어디 단순히 똑같은 이야기를 외국인이 외국어로 말한다는 매혹적 거리감 때문만이겠는가.

“베이징꾸스(北京故事, Beijing Story)”에 이르자 HOT, 베이비복스등이 일군 한류 열풍에 상당한 반감을 품고 있다는 그의 새롭게 업데이트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댄스 음악만이 아니라 한국의 다른 우수한 음악이 중국에 진출되길 바란다. 가라오케 같은 죽은 음악이 아닌 살아있는 노래를 부르려면 TV 밖으로 나오라!” 인트로부터 힘찬 래핑으로 시작한 추이잰은 사이사이 메가폰을 들어 ‘가라오케 기계음’을 상징적으로 재현했다. 이어 메가폰에 입력한 미디음원을 약하게 틀은 후 마이크 꺾쇠에 걸어 놓으려 했으나 실패, 메가폰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별 동요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기타를 계속 연주하는 그를 보고 있다보니 가슴이 뭉근하게 아파졌다. 그 순간은 문화혁명의 오류와 톈안먼의 비사(悲事)를 살아 나와 이제는 우습게도 천민자본주의의 문화적 득세를 바라보아야 하는 중년의 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해서.

과연 바로 뒤이어 “이우쑤어요(一無所有, Nothing To My Name)”가 시작됐다. 신서사이저와 떠즈로 초월적인 발라드 무드를 만들어 내고 후반부에 이르러 수오나의 간주와 함께 블루스와 하드록을 오가는 속에서 트랜스에 빠진 관객들은 몸을 흔들고 박수를 쳤다. 추이잰을 국제적 저항 예술인으로, 국지적 반동 인물로 각인시킨 곡이지만 이런 환대야말로 그를 가장 흐뭇하게 만들지 않을까.

마지막 곡 “차오위에나이티엔(超越那日天, Get Over That Day)”을 남겨두고 추이잰은 밴드 멤버들을 하나 하나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자기 소개를 하기 위해 그는 “나는 한국인 3세가 아니다. 나는 중국의 조선족이다. 중국의 백 만 조선족의 하나인 것이다”라고 운을 뗐다. 인터뷰 때마다 강조했음에도 여전히 못 미더운 모양이다. “지금 부를 노래는 홍콩에 있는 나의 친척에 관한 노래로 1997년 홍콩 반환에 관한 노래다. (중략) 한국에게 북한이 있다면 중국에겐 홍콩이 있다. (관객들 환호) 남북 통일을 기원하며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가 압축해 덧붙인 말엔 시적인 울림마저 깃들어 있었다. “(형제여) 돌아 오라”… “정치를 초월하자”.

공연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들이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다. 정치선동문구에 지나지 않는 것을 두고 ‘시적’이라니. 오버라고 비난해도 해명할 방도가 없다. 사실이니까. 그저 추이잰이라는 컨텍스트, 유일한 전체가 되어버린 그 안에서 그의 모든 것이 미학적인 황홀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할 밖에. 그 컨텍스트의 소리고, 이미지고, 판타지고 다 발라내고 남은 뼛조각 문장 하나를 내미는 것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20020408063544-korae_english릴레이 솔로 플레잉이 시작되면서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한 명이 솔로 플레잉을 펼치기 시작하면 나머지는 부동자세로 바라보며 경청하는 모습도 그들다운 진지함이었다). 비밥 재즈로 치솟아 올랐다 꺼지는 색소폰, 레게 풍의 기타가 차례차례 솔로 플레잉을 마친 후 드럼 솔로가 시작되었다. 장링이 신서사이저로 현란한 정글 비트 샘플링을 뽑아내는 절정에서 갑자기 베이베이가 스틱을 던져 버리고 무대 앞으로 나와 래핑을 하기 시작했다. 해군형 커트 머리, 야구 유니폼을 입고 뒷주머니에 수건을 찔러 넣은 그는 40대 멤버들 중 유일한 20대답게 대견해(?) 보였다. 뒤이어 추이잰과 에디 라드나맘피오노나의 트윈기타 플레잉이 시작되었다. 응집된 프레이즈 나열에 신경 쓰지 않는 듯 한 없이 뻗어 나가는 사운드가 토터스(Tortoise)의 익스페리멘털 록을 연상케 했다. 불협화음이지만 평화로운 딜레이를 여운으로 남기며 한 시간 남짓 동안 열려 있던 신기의 세계는 그렇게 잦아들었다. 머지않아 (한국에서) 그들만의 단독 콘서트를 볼 수 있는 날도 올까? 대책 없이 간절한 물음이 생겨 버려 큰일이다. 20020403 | 최세희 [email protected]

※ 이 글은 [컬티즌]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관련 글
추이 잰: 베이징의 후레자식들의 맏형 – vol.4/no.5 [20020301]
추이 잰과의 인터뷰: “나는 다음 세대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뿐입니다” – vol.4/no.5 [20020301]
崔健(Cui Jian), [一無所有(Nothing To My Name)] 리뷰 – vol.4/no.5 [20020301]
崔健(Cui Jian), [解決(Solution)] 리뷰 – vol.4/no.5 [20020301]
崔健(Cui Jian), [紅旗下的蛋(Balls under the Red Flag)] 리뷰 – vol.4/no.5 [20020301]
崔健(Cui Jian), [無能的力量(The Power of the Powerless)] 리뷰 – vol.4/no.5 [20020301]
중국 청년들의 자화상: [북경 녀석들(北京雜種, Beijing Bastards)] 리뷰 – vol.4/no.8 [20020416]

관련 사이트
추이 잰 공식 사이트
http://www.cuijian.com
추이 잰에 관한 간명한 해설
http://www.smipp.com/cuijian.htm
중국 록의 역사에 대한 간명한 해설
http://www.sat.dundee.ac.uk/~arb/music/chinari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