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329015209-040705resRES – How I Do – MCA, 2001

 

 

살짝 묻혀버려 아쉬운 신인 여가수의 록/R&B

소위 ‘뉴 소울 제너레이션(new soul generation)’의 열풍이 당대의 모든 R&B/소울 여성 뮤지션들에게 특혜를 제공한 건 아니다. 앨리샤 키스(Alicia Keys), 인디아 아리(India.Arie) 등에 대한 지나친 환대가 소울 디바를 꿈꾸는 수많은 젊은 흑인 여성들에게 무임승차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긴 했지만, 한편으로 시장의 공식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소수의 뮤지션들은 이 야단법석의 뒤켠으로 물러나야 했다. 특히 레디시(Ledisi)나 리스(RES) 같은 능력 있는 젊은 여성들이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초반에 쉽게 탈락한 건 무척이나 아쉽다.

쟈(Gza), 탈리브 크웰리(Talib Kweli) 등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며 혜성같이 등장했던 필라델피아 출신 리스의 정규 데뷔앨범 [How I Do]는 얼핏 지금의 흑인 음악 시장 규칙에서 많이 벗어난 듯하다. 우선 리스는 또래의 젊은 흑인 여성 뮤지션들과 달리 ‘R&B 발라드’로 청자들의 관심을 모을 생각이 추호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에리카 바두(Erykah Badu)나 질 스캇(Jill Scott) 같은 여장부들이 추구해온 소울 본연의 태도를 흠모하는 것 같지도 않다. 간혹 켈리스(Kelis)와 같은 힙합에 경도된 소울의 향이 묻어나기는 하지만, 이 또한 대도시 게토의 거리 냄새를 노골적으로 내뿜는 건 아니다.

사실 바이브레이션이 거세된 직선적이면서도 촉촉한 리스의 목소리는 당대 R&B 발라드의 작법이나 힙합의 무거운 비트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감정에 도취하기보다 그루브를 타면서 리듬을 따라 날아다니는 그녀의 목소리는 빠르고 날렵한 비트 중심의 사운드에 더욱 어울린다. 이 앨범의 프로듀서인 마틴 독 매키니(Martin “Doc” MaKinney)는 자신이 거쳤던 일렉트로니카 듀오 에스테로(Esthero) 시절에 했던 것처럼, 빠르고 불규칙적인 다양한 비트 위에 리스의 목소리와 농도 짙은 신쓰 사운드, 우울한 현악, 탄력 있는 일렉트릭 피아노와 록 기타를 적절하게 배치한다. 물론 이 앨범에서 힙합, 레게, 훵크, R&B의 요소가 묻어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이들은 모두 록과 드럼앤베이스 혹은 트립합이라는 큰 틀 속에 배치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해체된다.

최상의 트랙은 앨범의 포문을 여는 “Golden Boy”다. 두터운 베이스와 몰아치는 드럼 비트, 귀에 감기는 멜로디가 리스의 건조한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며 은근한 그루브를 전달한다. 물론 이 곡을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의 트랙들이 흠잡을 데 없다. 가령 관능적인 록 소울 넘버 “They-Say Vision”, 기타 중심의 모던 록 “Say It Anyway”(히든 트랙), 큐어(The Cure)의 “Other Voices”를 샘플링한 훵크 스타일 “Let Love”는 백인 록과 소울 감성을 분해하고 재조합하는 다양한 작법들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업비트와 구슬픈 멜로디가 역설적 조화를 이루는 “If There Ain’t Nothing”, 달콤한 레게 리듬의 “700 Mile Situation”,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의 조화가 돋보이는 “Tsunami”는 스미스 앤 마이티(Smith & Mighty) 스타일의 트립합에 가깝다. 물론 엇박의 강력한 비트와 리스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맞대결을 벌이는 “Hustler”도 놓칠 수 없는데, 아마 힙하퍼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인 듯하다.

아쉬운 건,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사운드 실험에도 불구하고, 산티 화이트(Santi White)가 담당한 이 앨범의 가사들이 대부분 기존 R&B/소울의 구태의연한 사랑 타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와 소비주의의 허상을 비판하며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해 간접적인 의문을 던지는 “Golden Boys”같은 곡과 리스의 건조하고 도도한 목소리가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애정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관계’의 방식들에 대해 보다 진중한 문제제기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How I Do]의 음악적 미덕은 록과 트립합의 큰 틀 속에 소울, 레게, 힙합과 같은 흑인 음악의 요소들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되, 그 실험이 지나치게 복합적이거나 난해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트랙들은 흑인 음악의 다양한 요소들이 적절히 가미된 근사한 ‘어번 팝(urban pop)’들이다. 이 앨범이 단지 현재의 주류 R&B/소울 음악 코드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MCA가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일찌감치 포기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뉴 소울 제너레이션이 메이저 음반 산업의 재단과 미디어에 의한 과대포장의 단계를 넘어 진정한 흑인 음악 르네상스를 주도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러기에 리스와 같은 뮤지션들이 장차 R&B/소울의 음악적 영토 확장에 일임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가 서둘러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20020322 | 양재영 [email protected]

9/10

수록곡
1. Golden Boys
2. They-Say Vision
3. 700 Mile Situation
4. Ice King
5. Sittin’ Back
6. How I Do
7. If There Ain’t Nothing
8. The Hustler
9. I’ve Known The Garden
10. Let Love
11. Tsunami
12. Say It Anyway (hidden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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