뎁(Deb) | Million Dollar Lady | 카바레사운드, 2011

우주의 비행(非行)소녀, 지구를 비행(飛行)하다

음악이 음악인이 거주하는 곳의 감성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리적으로 다른 장소들을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를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의 어떤 곳에 살고 있을 소녀가 스스로를 ‘우주소녀(Astro Girl)’로 상상하며 ‘푸른달 효과’를 노래했듯이 말이다. 심지어는 달이 여러 개이며 평행을 이루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지만 우주를 상상하는 아티스트들은 지하실이나 옥탑방에 처박혀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많은 경우 그들이 지구인들에게 제시하는 우주는 산만하게 들리고, 때로는 퀴퀴한 골방 냄새가 난다. [Parallel Moons]는 다행히 향기로웠지만, 그 기발한 상상과 풍부한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산만하다’는 인상이 있었다. 두세 번 들은 뒤 그 CD를 서가에 꽂아버리고 다시 찾지 않았다면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Million Dollar Lady]에서 인트로를 제외한 처음 세 트랙 “멋진 인생”, “소녀여 기타를 잡아라”, “마천루”를 들으면서 스윙, 록, 라운지라는 장르 혹은 리듬 이름이 차례대로 스쳐지나갈 즈음 산만함은 다양함으로 전화된다. 치밀한 프로그래밍이 세심한 기악의 배치와 어우러질 때 ‘제 음악에는 장르가 없어요’라는 식의 말은 무지가 아니라 진심이 된다.

페퍼톤스의 신재평과 이장원이 참여한 “모노레일”은 페퍼톤스와 뎁의 재결합을 바랬던 사람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선물이 될 것이고, “지하요새”는 눈뜨고 코베인의 “일렉트릭 빔”과 함께 묶어서 ‘2011년의 묵시록’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스플릿 싱글로 발매하면 좋겠다. 피아노의 우아한 타건과 첼로의 긴장된 마찰이 피아솔라스러운(piazzolla-esque) 무드를 만들어 내는 “환절기 사건”, 멜로트론(melotron)으로 소리를 수놓으면서 비틀스 같은(Beatlesque) 멜로디를 펼치는 “어디에도 없는 곳” 등 느린 템포의 곡들은 조금 아껴 두었다가 가을에 들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렇듯 앨범의 트랙들은 지구의 여러 장소를 비행하면서 풍부한 장소감을 선사한다. 그렇지만 음반의 숨겨진 보석은 이제는 다소 진부해진 어떤 시의 문어체 구절을 요즘의 구어체와 섞어 설레고 두근거리는 감정을 담은 “내 이름을 불러줘”다. 이 순간 유동적 장소감은 유연한 현장감이 된다. “소녀여 기타를 잡아라”의 명징한 메시지와 사운드도 마찬가지다. 앨범 타이틀이 들어간 트랙 “백만불짜리”나 후반부의 몇몇 곡들이 밋밋하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취향은 너무 까칠하다. | 글 신현준  [email protected]

수록곡
1. Theme
2. 멋진인생
3. 소녀여 기타를 잡아라
4. 마천루
5. 내 이름을 불러줘
6. 모노레일
7. 백만불짜리
8. 지하요새
9. 환절기사건
10. 어디에도 없는 곳
11. 그놈의 사랑타령
12. 언제나 내게 감탄의 사람
13. 랑데-브

ratings: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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