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318011350-04062120imagePat Metheny Group – First Circle – ECM, 1984

 

 

귀에 너무 잘 들어오는 음반

오랜만에 [First Circle]을 들어본다. 이 음반을 처음 구입한 게 1987년 쯤이니까, 약 15년 만에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그 때 [First Circle]을 들었을 땐, 정말 좋았다. 재즈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던 때였기에 (다 알겠지만 재즈는 그렇게 친해지기 쉬운 음악은 아니다), [First Circle]이 전개하는 편안한 ‘재즈’ 음악은 어딘지 모르게 듣는 이를 안심시켜주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안도감’은 이제 와 생각해보니 ‘망각’을 동반하는 것이었음을 누가 알았겠는가. 처음 들었을 때 너무너무 좋았던 이 음반은, 그 후로 몇 번인가 더 들은 후 영원히 기억의 물류 창고 속에 밀봉 상태로 보관되어 버리고 말았다. 다시 햇빛을 볼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중에 어쩌다 사람들과 술 마시다 “팻 메스니의 그 음반, 정말 좋았지요?” “그 음반? [Offramp]요?” “아뇨 아뇨, [First Circle] 말이예요” “아 그 음반! 좋았죠. 그런데 난 [Rejoicing]이 더 좋던데…” 이런 식의 대화에서나 가끔씩 등장하는 처지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말이다.

그러다가 [First Circle] 음반의 리뷰를 (자청해서) 맡게 되어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게 된다. 역시나 ‘편안하기 짝이 없는 음반이로구나’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만 사운드에 대한 분석이랄까 음반이 갖는 의의랄까, 음반 리뷰를 쓸 때 요구되는 그런 통상적인 포인트를 잡아낼 의욕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팻 메스니가 ‘재즈’ 뮤지션 중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오는 9월 있을 예정인 나흘 간에 걸친 팻 메스니 그룹 공연 예매가, 이미 완전 매진으로 상황 완료되었다는 소식도 떠올랐다. 천하의 RATM도, 스매슁 펌킨스도, 오지 오스본도 서울의 한산한 공연장에서 섭섭함과 분노를 삼키며 억지로 신명 나는 척 해야 했던 국내 록 공연의 실태를 비추어보면, 너무나도 대조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팻 메스니가 누리는 부동의 인기를 살펴보자면, 그 ‘편안함’으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닐까? 그는 ‘재즈’ 뮤지션이기는 하지만, 듣는 이를 질리게 할 정도로 과도한 스윙감과 즉흥 연주를 남발하지 않는다. 1990년대 중반 의아할 정도로 광풍이 몰아 닥쳤던 국내 재즈 붐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나서도 팻 메스니 만은 변함없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여기서 결정적으로 기인하는 것이겠지. 적당히 품격도 있고, 때로는 신나기도 하고. 듣는 이의 허영심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충족시켜 주는 그런 연주자인 것이다.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현재 팻 매스니의 팬들(로 자처하는 이들)은 그의 ECM 시절보다는 게펜(Geffen) 시절 음반들을 더욱 좋아하는 듯 싶다. 물론 이는 팻 메스니의 전체 경력을 놓고 봤을 때, 이제는 ECM 때보다 게펜 시절의 디스코그래피가 더욱 많아져 가고 있고, 상대적으로 ECM 전속 시절이 상당히 오래 전이었고 기간도 짧아보이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팻 메스니의 사운드는 ECM 시절과 게펜 시절이 각각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이 두 시절을 가르는 중대한 차이는, 뭐니 뭐니 해도 ‘실험정신’이 있느냐 없느냐다.

팻 메스니가 ECM에서 내놓은 음반들은, 딱 한 장만 제외하고는 실험과 패기로 충만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실험 정신은 대다수의 뮤지션들과는 달리, 그다지 난해하다고는 볼 수 없다는데서 독창성을 갖추고 있다. 분명히, ‘이해하기 쉬운 실험’이란 대단히 희귀한 재능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장기를 발휘함으로써 팻 메스니는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고, 그래미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는데 따른 마모 탓인가, 아니면 나이에 비해 너무 일찍 빛을 발한데 따른 대가였을까? [First Circle]을 내놓으면서, 팻 메스니의 절대 명제였던 “이해하기 쉬운 실험”에서 “실험”이란 단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룹에서 보컬과 타악기를 맡던 나나 바스콘셀로스(Nana Vasconcelos) 대신 페드로 아즈나(Pedro Aznar)가 새로 들어오던 시점이었다. 수수께끼 같은 아우라를 발산하던 나나 바스콘셀로스에 비해, 너무나도 달콤하고 감미로운 스캣 보컬을 들려주는 페드로 아즈나는 팻 메스니 그룹이 지향하려는 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실례였다. [First Circle] 음반에서 “The First Circle”과 “Más Allá (Beyond)”를 들어보면, 페드로의 존재가 이 음반에서 얼마나 잘 들어맞고 필요한 존재인지 깨닫는데 별로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예전의 팻 메스니를 사랑했던 이들이라면, 이 음반을 들으며 어떤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찹쌀떡에 단팥이 들어가지 않았음을 알고 품게되는 어이없는 감정과도 비슷한 것이리라. 물론 어찌 되었든 먹을 수는 있고 또 맛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겠지만, ‘핵심’이 다 빠져나간 듯한 당혹감. “Yolanda You Learn”과 “End Of The Game”, 그리고 “Praise” 등을 듣다 보면, 이러한 분노는 온 몸을 포박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곡 자체는 기가 막히게 감미로운 “If I Could”도, 이것이 “Are You Going With Me?”를 연주하던 바로 그 사람의 솜씨라는 생각이 미치면, “변절”이라는 극단적인 단어까지 떠오르게 된다.

그렇지만 마음을 바꿔 좀더 냉정한 시선을 향한다면, 사실 나는 ‘팻 메스니’ 그 자체보다는 ‘ECM’이라는 레이블에서 나온 음반을 더욱 사랑했던 게 아닐까라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엄청나게 좋아하는 키스 재릿(Keith Jarrett)의 경우도, 갖고 있는 음반을 보니 전부 ECM에서 발매된 것들 뿐이다. 애틀랜틱(Atlantic) 레이블에서 나온 게 딱 한 장, 임펄스!(Impulse!)에서 나온 건 아예 없다. ECM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경우 대부분 임펄스!에서 나온 음반들만 소장하고 있고, 내가 갖고 있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음반은 온통 컬럼비아(Columbia) 발매반 뿐이다.

어쩌면 나는 적어도 재즈에 있어서는, 뮤지션들 그 자체보다는 그들이 소속된 레이블에 더 많은 주목을 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정이 무리 없이 잘 들어맞는 경우가 바로 팻 메스니다. 그가 [First Circle]을 끝으로 소속사를 게펜으로 옮겼을 때, 더 이상 내 마음 속에선 팻 메스니의 존재는 예전만큼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난해하여 어안이 벙벙할 지경인(하지만 지금 와서 오넷 콜맨(Ornette Coleman)이나 존 콜트레인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다소 시시하다는 느낌도 드는) [Song X] (1986)를 제외하고는, 팻 매스니의 게펜 시절 음반은 단 한 장도 없다. 팻 메스니도 사실 그렇게 느꼈는지 모른다. ECM 음반 하면 전통적으로 떠오르게 마련인 ‘투명한 실험성’의 정신에 맞춰 잘 지내오던 그였건만, 어느날부터 밑도 끝도 없이 창출해내야 할 실험이 정말로 지겨워졌을지도 모른다. [First Circle]은 이젠 활동의 터전을 옮길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고민의 흔적이 은근히 퍼져있는 음반이다.

이와 같이 [First Circle]을 둘러싼 여러 상황과 상념들만을 놓고 볼 때, 이 음반은 분명 흥미로운 구석이 많을 것이지만, 다시 한번 너무나 귀에 쏙 들어오는 수록곡들을 듣고 있노라니, 그만 온 몸에서 기운이 쫙 빠져나간다. 이러한 상황은 꼭 외골수 기질로 충만한 나의 탓일 뿐일까? 20020318 | 오공훈 [email protected]

6/10

수록곡
1. Forward March
2. Yolanda, You Learn
3. The First Circle
4. If I Could
5. Tell It All
6. End Of The Game
7. Más Allá (Beyond)
8. Pra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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