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공장 | 김성균 연출 |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문화노동자들 제작
시네마 달 배급, 2011

 

그 기타는 누구의 손에서 만들어졌나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연주하든, 한국에서 기타를 치거나 기타에 잠시라도 마음을 두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콜트(Cort)라는 브랜드 이름이 친숙하게 느껴질 게다. 그야 개중에는 처음부터 펜더니 깁슨이니 하는 값비싼 악기를 살 수 있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꼭 콜트가 아니라 데임이나 스윙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콜트로 대표되는 국산 중저가 기타 브랜드들은 기타에 막연한 꿈을 가진 중고등학생의 얇은 지갑으로도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는 가격과 괜찮은 품질로 이들을 유혹했다. 그렇게 생겨난 초보 기타리스트들 중에 누구는 삼일 만에, 삼 주 만에, 세 달 만에 때려치웠을지 모르지만 또 어떤 누구는 통장 잔고를 걱정하면서도 여태껏 기타를 놓지 않고 있을 테니, 뭐, 과장 좀 섞어 말하자면 ‘이게 다 콜트 때문이다.’

[꿈의 공장]은 (회사측 자료에 따르면) 한때 세계 기타 생산량의 30%를 차지했다는 한국 최대의 기타 제조업체, 바로 그 콜트와 콜트의 어쿠스틱 라인을 제조하는 자회사 콜텍의 이야기다. 당연히 이 어마어마한 생산량이 모두 콜트의 이름 아래 만들어질 리 만무하다. 1973년 콜트악기㈜ 설립 이후 콜트 부평공장과 콜텍 대전공장에서 ‘MADE IN KOREA’ 마크를 부착한 채 OEM 방식으로 생산되었던 기타 브랜드만 해도 다음과 같다. 펜더(Fender), 깁슨(Gibson), 아이바네즈(Ibanez), ESP, 해머(Hamer), 호너(Hohner)… 그러나 2006년 콜텍 노동조합 설립 당시 기준으로 10년간 연속 경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던 콜트/콜텍은 조합원들을 무더기로 정리해고한 것을 시작으로 각각 2007년과 2008년 ‘경영합리화’를 명목으로 무기한 휴업에 돌입했다. 그 다음부터는 물론 우리가 서울 기륭전자에서,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아산 유성기업에서, 천안 발레오공조에서,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익히 보아 왔던, 충분히 예상 가능한 스토리다.

그러니 굳이 여기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오랜 싸움에 대해 줄줄이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팩트에 대해 알고 싶다면, 키보드와 마우스만 몇 번 조작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팩트’를 찾아볼 수 있다. 콜트/콜텍 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더불어, 콜트악기㈜와 콜텍㈜의 주식이 100% 모두 박영호 회장의 소유라는 것, 그 박영호 회장이 ‘한국 400대 부자’ 리스트에 120번째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시킨 이후 국내 생산라인을 축소시키고 있었다는 것, 사측의 위장폐업이 이미 1989년부터 노동조합 탄압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 2007년에 한 조합원이 분신을 시도했고 2008년에는 두 조합원이 송전탑 위에 올라가 고공투쟁을 벌였다는 것… 아, 김성균 감독의 전작 [기타 이야기]를 보는 것도 아주 좋은 선택이리라.

우리들에게 더 많은 콜트를

[기타 이야기]의 속편 성격을 띤 [꿈의 공장]이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은 이 투쟁만이 지니는 특이점이다. 위장폐업 철회와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골자로 한 콜트/콜텍 투쟁은 타바코 쥬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스트레칭 져니, 브로콜리 너마저, 킹스턴 루디스카, 한음파, 회기동 단편선, 시와, 흐른, 소히를 비롯해 이들과 뜻을 함께하는 인디 음악가들의 연대 선언과 지지공연으로 발전했다. 노동자들은 비단 국내뿐 아니라 박영호 회장이 반드시 방문하는 유명 악기박람회(프랑크푸르트 뮤직메세, 로스앤젤레스 NAMM쇼, 요코하마 악기페어)를 직접 찾아 음악을 연주하고 서명운동을 벌였다. 또한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콜트 문제를 알리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과 원 데이 애즈 어 라이온(One Day As A Lion), 오조매틀리(Ozomatli),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의 세르지 탄키안(Serj Tankian) 등 여러 아티스트의 지지를 얻었으며, (극중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것은 2010년 1월 13일 RATM의 톰 모렐로(Tom Morello)와 MC5의 기타리스트 웨인 크레이머(Wayne Kramer)가 개최한 콜트/콜텍 규탄 콘서트로까지 이어진다. 물론 키스(Kiss)의 진 시몬스(Gene Simmons)처럼 철저히 자본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지만.

음악을 매개로 하여 세계적으로 투쟁을 확산시키는 콜트/콜텍의 투쟁방식은 분명 기존의 ‘전통적’ 투쟁과는 상이한 것이며, 기타라는 생산품이 지니는 ‘문화상품’으로서의 특성에 힘입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리반과 마리, 포이동을 비롯해 최근 몇 년 사이 벌어지고 있는 세입자 및 주거권 투쟁에서 두드러지는 인디 음악씬과의 적극적 연대에 비추어 보면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음악은 결코 스스로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그 계기를 만들어 줄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별 문제 없이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길 스캇-헤론(Gil Scott-Heron)이 외쳤듯 “혁명은 TV를 통해 방송되지 않”을지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더욱 유효하다. 콜트/콜텍에 음악가들이 연대하는 것은 ‘악기 공장’이기 때문 이전에, 근본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이기 때문이니까. 어쩌면 우리들에게 ‘더 많은 두리반’이 필요하듯이, 착취적 자본에 맞서 우리들에게는 더 많은 콜트/콜텍이 필요하지 않을까?


NO WORKERS, NO MUSIC

[꿈의 공장]은 감독의 직접적 개입 없이 노동자와 음악가, 기타 업계 관련자들의 인터뷰로만 진행되기에 전체적으로 조금 거친 감은 있지만, 주된 내러티브를 잃지 않고 꾸준하게 진행된다. 그리고 콜트/콜텍 문제에서 시작한 [꿈의 공장]은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국제적 악기산업 자체, 다국적기업에 의한 OEM이라는 제조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에 다다른다. “콜트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는 펜더 측의 발언에 대해, NAMM쇼의 콜트/콜텍 농성장에서 만난 어느 기타 브랜드의 임원은 “어떤 회사도 그 사실을 몰랐다고 말할 순 없다. 콜트로 하청이 가는 이유가 바로 그건데!”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구조로, 악기뿐 아니라 거의 모든 제조업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OEM을 통해 소비자는 ‘좋은 품질의 유명 브랜드 제품’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지만, “이 OEM 제품이 노동 착취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이 제품을 구입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쉽사리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불매운동을 벌인다 해서 동참하지 않는 사람을 덮어놓고 힐난할 수도 없다. “그래도 내가 이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일은 계속 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반문에 현실적으로 대답할 말을 마땅히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뭔가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지만, 해결책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피라미드의 정점에 선 채 그저 ‘중립적’인 체 하는 다국적기업들이 그것을 제시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분명 기타는 많은 이에게 꿈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그 꿈을 실현시켜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꿈의 공장]이라는 제목은 매우 역설적이다. [꿈의 공장]이라는 말 자체가 1991년 신설되어 아직 노조가 없었던 콜텍 대전공장을 이미 1989년 노조 설립에서 위장폐업까지 한바탕 난리를 겪은 콜트 부평공장, 소위 ‘노조에 점령당한 공장’에 비견한 박영호 회장의 레토릭이기에. 그러나 실제로 세계적 착취구조 아래에 존재하는 [꿈의 공장]에서의 노동, 그리고 자본의 횡포는 이미 달콤한 꿈이 아니라 치열한 현실이다. 그래서? 여전히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그러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바로 이 현실이다. 일본에서 열린 한 지지공연에 걸려 있던 문장은 그래서 매우 인상적이다. 확실히, “노동자 없이 음악 없고, 음악 없이 삶도 없다(NO WORKERS, NO MUSIC. NO MUSIC, NO LIFE.)” | 글 임승균 [email protected]

※ [꿈의 공장]은 9월 1일부터 서울과 부산의 독립영화 상영관을 통해 개봉된다. 15일부터는 인천과 대전, 대구, 안동에서 추가로 개봉될 예정이며, 자세한 상영 일정은 [꿈의 공장]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otherguitar/140137979926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상영은 종료되었으며,  독립영화 온라인 다운로드 서비스 인디플러그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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