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301025334-khs김현식 – The Sickbed Live – 도레미 레코드, 2002

 

 

누가 음악을 망가뜨리는가

1990년 11월 1일에 세상을 떠난 김현식이 병실에서 개인적으로 녹음했던 노래들이 10여년 만에 ‘극적으로’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된다는 소식은 오랫동안 그를 좋아해 온 팬들에게는 분명 반가운 얘기였을 것이다. 2002년 2월에 발매된 [The Sickbed Live] 앨범은 그가 죽기 전 병실에서 통기타만으로 연주하고 노래한, 한 간호사의 생일선물용으로 그가 직접 테이프에 녹음한 소리를 음원으로 한 라이브 앨범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앨범을 구입하면서 병색이 짙어갈수록 역설적으로 더 호소력을 획득하는 그의 목소리를 기억해 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벗들과 함께 밤늦도록 학생회실이나 자취방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불렀던 “가리워진 길”이나 “넋두리”등이 떠올랐지만.

앨범의 시작은 “눈 내리던 겨울 밤”이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다시 누군가(아마도 김현식)의 신음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이 곡은 통기타 아르페지오에 김현식의 거친 목소리로 진행되는데, 아무리 몇 번의 필터링을 거쳤다 해도 병실 안과 밖의 잡다한 소리들이 함께 녹음되어 있는 테이프의 상태를 깨끗하게 처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현장음이 10여년 만에 빛을 보게된 이 앨범의 의미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그런 소리들을 듣다가 눈시울이 붉어지거나 문득 담배를 피우고 싶어진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 만큼 그의 목소리와 통기타 반주가 드라마틱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옛 기억이 떠오르는 가운데 그의 목소리가 전하는 차분하면서도 격한 감정은 두 번째 곡”Yesterday”에서 슬그머니 사라진다. 잡음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한 제작사의 배려 덕분인지 앨범 내내 김현식의 목소리와 (희미하지만 분명한) 통기타 반주 사이에는 디지털로 녹음된 사운드가 끼여든다. 모두 17곡의 수록곡 중에서 이렇게 편집된 노래는 열 한 곡이다. 다시 말해, ‘그때 그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트랙은 단지 여섯 곡뿐이라는 말이다. 그 중 “눈 내리던 겨울 밤”, “추억만들기”, “떠나가 버렸네”와 “가리워진 길” 등은 편집된 곡과 원곡이 함께 수록되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곡이 편집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이 편집된 방법과 관점이다.

홍보문구에는 실제 연주자들이 직접 음원을 입혔다고 나와있지만 사용된 대부분의 음원은 태진 미디어, 웅진 미디어 및 한때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아리랑 쓰리’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노래방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미디음이다(“사랑 사랑 사랑”에서 이 사운드는 절정에 이른다). 이것은 물론 통기타 반주에 잡음도 가득한 원음이 워낙에 밋밋하고 ‘재미’가 없어서 조금 편곡을 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비싼)돈을 주고 앨범을 구입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현대적’으로 편집한 것이라 받아들일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쏟아내듯 (절박하게) 고음을 처리하는 김현식의 갈라진 목소리 위로 띵띵거리는 미디음을 듣는 일은 솔직히 견디기 힘들다. 견디기 힘든 것은 소리뿐만 아니라 김현식(의 노래들)을 바라보는 (제작사의) 관점이기도 하고, 그 소리를 소비하고 있는 나 자신이기도 하다. 이제 생각해보면 ‘앨범 기획자가 김현식의 오랜 팬이었다’라는 신문기사나 ‘극적으로 담은 소리’라는 홍보 문구, ‘그는 떠났으나 그의 노래는 남아있습니다’라는 구태의연한 광고문구도 사실은 이미 수 차례 보아왔던 사악한 주술 같은 것이 아니었던가. 물론 한 두 번 속느냐, 라고 자위할 수도 있지만 (누구처럼) 왠지 비참한 심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죽은 자가 남긴 음악들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그 점 때문에 [김현식 – The Sickbed Live]는 괜찮은 사후(死後) 라이브 앨범도, 그렇다고 간직하고 있을 만한 베스트 앨범도 아닌 애매하고 이상한 위치에 자리한 음반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결과를 열악한 녹음환경이나 전문가의 부족의 탓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한국에서 의미 있는 기획을 망치는 자들이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 같다. 물론 이것은 한국에서 실제로 음악(산업)을 만드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바뀔 수 있다. 20020226 | 차우진 [email protected]

2/10

수록곡
1. 눈 내리던 겨울 밤
2. Yesterday
3. 추억만들기
4. 떠나가 버렸네
5. 가리워진 길
6. 그대 내품에
7. 밤의 고독 속에서
8. 재회
9. 슬퍼하지 말아요
10.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
11. 추억만들기
12. 떠나가 버렸네
13. 눈 내리던 겨울 밤
14. 넋두리
15. 사랑 사랑 사랑
16. 당신의 모습
17. Take Me Home Country Ro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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