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01050220-0403velvet_loadedVelvet Underground – Loaded – Warner, 1970

 

 

평범한, 그러나 솔직한 마지막 유혹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소설 [알렙(El Aleph)]을 펼쳐보면 [햄릿]의 2막 2장에 나오는 “천만에, 나는 호두껍질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 있으면서도 나 자신을 무한하기 그지없는 어떤 공간의 주인으로 여길 수 있네”라는 인용구로 시작하는데, 히브리어의 첫 번째 알파벳인 동시에 숫자 ‘1’을 지칭하며 세계의 모든 것이 수렴된다는 알렙(Aleph)은, 그것이 어디에 존재하든 정신의 공간을 무한하게 확장시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개별적인 ‘나’부터 수렴되어 사라지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회피를 위한 변명일 것이다.

그러므로 도처에 존재하는 그 새로움이란 것들은 때로는 경외감을 지니게 해주는데, 이러한 점으로 문학에서 돌출된 ‘알렙’은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와 여러 가지 유사한 점들을 지니고 있는 바, ‘호두껍질’과 같은 클럽에서 소음의 공간을 무한히 확장했다던가 후대의 뮤지션들을 자신의 세계로 수렴시켰다는 것들이 그것이다. 아울러 뫼비우스 띠처럼 절대적인 통로를 구축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시간으로부터의 여행, 사물의 통시적인 주의력으로 인하여 시공간의 유영을 음악에 부여하게 되는데, 이점이 곧 그들과 동참하기를 꺼리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했을 터. 그 때문일지 거의 완성된 네 번째 앨범을 앞에 두고 MGM 스튜디오에서 쫓겨나기도 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Loaded]는 이전과는 다른 평범한 외양으로 단순함을 가장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극적 오르가즘은 배제되어 있지만, 조울증의 그늘이 비친 들쭉날쭉함은 그들의 스완 송(swan song)을 보다 퇴폐적으로 만들면서 마침내 수렴(收斂)의 마수를 뻗기 시작했다.

물론 이 앨범의 수록곡은 한편으로는 극히 평범한 울림처럼 들린다. 섹스와 마약에 관한 노래는 피하고 대신 많은 히트곡을 수록하길 바라는(“loaded with hits”) 음반사의 부탁을 그대로 앨범 타이틀로 정하면서, 앨범이 발매되기 전 루 리드(Lou Reed)는 탈퇴하고 모린 터커(Maureen Tucker)는 출산 준비로 잠시 떠난 와중에 덕 율(Doug Yule)의 동생 빌리 율(Billy Yule)이 드럼을 대신하는 등의 우여곡절이 거세된 야심으로 남게 될 수도 있으므로.

그렇지만 이것이 오히려 밴드의 부담감을 벗겨놓게 되면서 방만하게 그려놓은 추상화처럼 관심의 초점을 한곳에 모이게 만든다. 마지막 곡을 제외하면 모든 곡은 4분을 오르락내리락 거릴 뿐이며 “Oh! Sweet Nuthin'” 또한 음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슬로 템포의 반복과 겹침으로 7분 여의 시간을 채울 뿐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지난 앨범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음의 몽유적 방황, 예를 들어 1집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의 “Venus In Furs”, “Heroin”, “The Black Angel’s Death Song”이나 2집 [White Light/White Heat]의 “Sister Ray”, 3집 [The Velvet Underground]의 “The Murder Mystery” 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Rock & Roll” 이나 “Cool It Down”, “Head Held High” 등은 모서리에 범퍼를 장착한 듯 뭉툭한 퉁김을 흘려대면서 어깨를 들썩이게 하며 “New Age”나 “I Found A Reason” 등은 3류 스탠드바에서나 울릴 듯한 궁상스러움을 천연덕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이채로운 것은 ‘성의 없어 보이는’ 루 리드의 보컬이 큰 자리를 차지하는데, “Train Round The Bend”에서는 연주가 분리되어(이런 경우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왼쪽은 리듬 기타, 오른쪽에서는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에 그 창법이 샤우팅이라 하겠지만 연신 비음으로 “Oh!”, “yeh~” 등의 감탄사를 남발하는가 하면 박자나 음정 따위는 무시해버리는 듯하다. 그래서 루 리드의 목소리를 오버 더빙하여 양편으로 분리시킨 “Cool It Down”의 비아냥거림이나 “Oh! Sweet Nuthin'”의 덕 율의 처량한 떨림이 당혹스럽지 않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이 앨범에서 루 리드의 목소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뻔뻔스러운 거친 소음과 부끄러운 듯한 수줍은 음성이다. 이는 곧 혼동과 정제의 이율배반이라서 음악의 번잡스러움과 연결된다. 이를 통하여 자유롭게 감정을 절제하면서 농염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안 역사적 맥락의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곡의 러닝 타임을 망각하게 해주어 긴 곡은 짧게, 짧은 곡은 길게 느껴지는 역설감이 표출된다. 이를테면 카네기홀에서 진지하게 연주되든, 게이바에서 흥청대는 음악으로 쓰여지든, 음감회에서 인상쓰며 집중해서 듣는 음악이 되던, 뿌연 조명아래 클럽에서 울려 퍼지든 어느 곳에서나 어울리는 유용성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방점을 찍는 [Loaded]는 절대적인 4원소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입구가 되는 솔직한 전도자가 된다. 이는 전위적인 음률이 속화(俗化)되었기 때문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으나 그 세계로 잠입하기 위한 ‘허점’을 인정한다면, 그들의 어느 앨범보다도 시대를 초월하면서 동시에 초심(初心)을 지니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20020130 | 신주희 [email protected]

9/10

수록곡
1. Who Loves The Sun
2. Sweet Jane
3. Rock & Roll
4. Cool It Down
5. New Age
6. Head Held High
7. Lonesome Cowboy Bill
8. I Found A Reason
9. Train Round The Bend
10. Oh! Sweet Nut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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