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01032517-0403book_kurt[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

지은이: 이안 팰퍼린·맥스 윌레스
옮긴이: 이수영
펴낸 곳: 미다스북스
펴낸 날: 2002년 1월

[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에 실린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유서에는 “나는 당신들을, 당신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속일 수 없다. 당신들에게든 나에게든 그건 공정하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나쁜 죄악은 내가 100퍼센트 즐거운 것처럼 꾸미고 가장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책 날개는 그를 “기존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거부하고 일생을 끝없는 방황 속에서 살다가 요절한 천재 록 음악 가수이자, 전설적 음악 그룹인 너바나의 리더”라고 소개한다. 물론 그가 한 세대를 대변할 만큼 진지하고 재능 있는 록 뮤지션이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과, 그를 어떤 방식으로든 들뜬 상태로 포장하여 세상에 내보이려는 수법 속에 동참시키는 일은 따로 노는 일이다. 그는 더 이상 그 ‘따로 놀기’에 동참할 수 없다고 말하고 죽었다.

그 간극이 그를 스스로 이 세상에서 지우도록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그 간극을 생산하고 그것을 통해 그를 신비화하고 결국은 이윤을 창출한다. 죽은 커트 코베인은 그렇게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물론 이제는 그 ‘착취’가 많이 누그러들었다. 커트 코베인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 지도 벌써 8년이 지난 것이다.

돌아보면, 얼터너티브 록의 상징이었던 너바나(Nirvana)는 동시에 얼터너티브의 ‘상업화’라는 이율배반의 현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언제나 정점에 있는 사람들에겐 그런 식의 모순이 뒤따른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다. 그 떠들썩했던 모순의 진정성,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것 자체가 이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 전기는 커트 코베인과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얻은 풍부한 증언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 커트의 어린 시절, 음악 수련기, 그리고 성공적인 록 밴드로 부상하기까지의 일들이 담담하고 솔직하게 적혀있다. 커트 코베인의 헤로인 남용에 관한 일화들이 상당히 대담하게 소개되고 있으며 그의 부인이었던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와의 애증관계도 소상하게 추적되어 있다.

지은이들은 여러 관점의 증언들을 잘 배치시킴으로써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연주의’ 속에 미국 저널리즘 특유의 흥미본위의 시각이 숨겨져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주인공 커트 코베인을 희생양으로 설정하고 반대편에 커트니 러브를 악녀로 놓아 그 애증관계 속에서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려고 애쓴다. 책의 후반부는 커트 코베인의 사인에 관한 의문을 다루는데 거의 모두 할애되고 있다. 지은이들은 자살이냐, 타살이냐의 의문부호 속에 은근히 커트니 러브를 끼워 넣는다. 물론 책을 다 읽어도 확인되는 점은 없다.

아쉬운 점은, 얼터너티브 록의 1990년대 의미망 속에서 너바나, 혹은 커트 코베인을 바라보는 일이 누락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과잉 행동 장애’에서 사춘기의 펑크 록 추종자로, 다시 얼터너티브 록의 선봉장으로 살다가 끝내 자살한 그의 행적을 담담하게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이란 나라에서 그가 느꼈던 절망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과잉과 남용의 사슬 속에서 생존해야만 하는 백인 노동계급의 절망이 한 편으로는 무차별의 폭력과 근거 없는 우월주의로 귀결된다면, 다른 한 편으로는 커트 코베인 같은 자기 파괴로 나아갈 수 있다. 순진한 영혼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식은 그렇게 절규하다가 안으로 터지는 일일 것이다. 이른바 미국의 ‘X세대’가 그를 지지했던 건, 그의 선택이 막다른 것이었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 아닐까. 능란하게 구사된 다큐멘터리식 글쓰기의 행간에서 커트 코베인의 그러한 막다른 절망이 내비쳐지는데, 실은 그 간극이 역설적으로 그를 살아있게 하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그를 추모하게 한다. 그래서 여전히,  그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4월 5일이 되면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 같은 것이 한국에서도 열리는 것이리라. 20020125 | 성기완 [email protected]

* 2002. 01. 26. [한겨레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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