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를 처음 알게 된 때는 1982년 경.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통해서였다. 발매된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서야 접하게 되었지만, 이들의 음악은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었던 놀라운 사운드였다. 음악을 제대로 듣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핑크 플로이드가 연출해내는 장대하고도 심오한 사운드 메이킹은 어린 마음에도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발매된 라이선스에는 “Us And Them”과 “Brain Damage”가 금지곡 판정을 받아 삭제된 상황이었다. 이들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불완전’하게 시작되었다.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감동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핑크 플로이드의 다른 음반을 찾기 시작했다. 1982년 당시 라이선스된 핑크 플로이드의 작품들은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포함하여 모두 네 장. [Atom Heart Mother], [Relics], [Meddle] 등이었다. 하지만 이 음반들은 LP로만 발매되어 있어서, 집에 카세트 라디오 밖에 없었던 내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20020101010709-0401essay_pinkfloyd11982년 후반, [월간 팝송] 편집장을 그만둔 전영혁 씨가 출판 사업에 뛰어들어 내놓은 ‘영 월드’라는 시리즈가 있었다. 퀸(Queen)이나 저팬(Japan), 듀란 듀란(Duran Duran) 등 당시 인기 있던 뮤지션들의 바이오그래피와 디스코그래피, 그리고 화려한 사진들로 구성된 호화 브로마이드였는데, 이 시리즈에 핑크 플로이드(그 책의 표기법으로는 핑크 ‘훌’로이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핑크 플로이드라는 거대한 존재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되는 초석을 마련했다.

핑크 플로이드를 좀 더 알고자 하는 나의 의지는 맹렬히 불타 올랐다. 1983년 초, 동네 음반점에서 ‘빽판’을 녹음한 [The Wall] 카세트 테이프를(스매트 테이프 120분 짜리에 담았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도무지 국내엔 발매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음반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택한 편법이었다. ([The Wall]은 1980년대 내내 발매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The Dark Side Of The Moon]과는 판이한 사운드에 허를 찔린 듯한 충격을 느꼈지만, 이러한 충격은 핑크 플로이드에 대해 ‘완전히’ 알고야 말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승화되기에 이르렀다.

핑크 플로이드 디스코그래피의 완벽 소유가 그 당시 내 인생의 중요 목표 중 하나였다. 이를 위하여 우선 1983년 여름, 부모님을 졸라대어 인켈 콤포넌트 오디오(당연히 턴테이블이 기본 사양으로 되어있는)를 장만하였다. ‘전축’을 마련하자마자 구입한 LP가 바로 [Atom Heart Mother]였다. 이 음반 또한 [The Dark Side Of The Moon]이나 [The Wall]과는 또 달랐다. 이들 세 음반의 공통점이라곤 사물이 내는 소리를 정교하게 담은 효과음뿐이었다. 머리 속이 뒤죽박죽 되고, 도무지 정리가 안되어 정신적 공황이라고 부를 만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도대체 핑크 플로이드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혼돈은 다른 의미로는 이들로부터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이 깊고 깊게 중독되었다는 걸 암시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같은 해,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만 핑크 플로이드의 레코드가 나온 게 아니었다. 난데없이 지구 레코드사에서도 이들의 음반이 나왔던 것이다. 음반 타이틀은 [Wish You Were Here]. 어찌된 일인지 몰라 ‘영 월드’를 뒤적여 해답을 찾았다. [The Dark Side Of The Moon] 이후 핑크 플로이드는 컬럼비아(Columbia)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어 북미 지역 음반 발매권을 허용했던 것이다(영국 등 유럽 지역 발매는 예전처럼 EMI 산하 하비스트(Harvest) 레이블이 계속 맡았다). 궁금증을 해결한 뒤, 초판으로 구입한 [Wish You Were Here]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카트리지를 얹었다. [The Dark Side Of The Moon]과 엇비슷하면서도 훨씬 ‘인간적’인 그 사운드에 무어라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생애 최초로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희열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러한 환희는 이제와 돌이켜 보면, ‘운명’의 날카로운 손길이 아니었나 싶다. 나를 거의 폐인의 경지로 이끄는 ‘매니아’의 구렁텅이로 안내한, 달콤해 보이나 치명적인 아픔이 자리한 그 손길.

20020101010709-0401essay_pinkfloyd2이후 3년 간,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은 내 인생의 온전한 의미요 목표로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깨어있을 때나 잠들었을 때나 핑크 플로이드만 생각하며 살았다. 로저 워터스(Roger Waters)의 사진을 보노라면 심장이 마구 요동쳤고,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의 기타 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꾸만 눈에 이슬이 맺히려 했다. 1983년 추석 연휴가 끝나고, 친척 어른들이 집어준 용돈으로 광화문 수입 음반점에서 [The Dark Side Of The Moon] 오리지널 LP를 샀다(같이 구입한 원판은 비틀즈(The Beatles)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 ‘원판’이었다. 1984년 설날. 세뱃돈을 가져가 역시 같은 음반점에서 [The Wall]을 입수했다(함께 산 LP는 러쉬(Rush)의 [Moving Pictures]였다. 주인 아저씨가 자꾸만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을 권유했지만, 돈도 부족하고 해서 그냥 나왔던 속 쓰린 기억도 있다).

하지만 핑크 플로이드 음악에 대한 기억 언저리에는 항상 명절 같은 기쁨과 풍요의 기운만 어려있던 것은 아니었다. 1984년 1학기 중간 고사. 음악 듣느라 대충 공부해 간 탓으로 시험을 잡쳐버리고 말았고, 특히 수학, 물상, 생물 과목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40점 대를 맞았다. 참담한 마음을 안고 동네 음반점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떨리는 손길을 애써 다잡으며 LP 진열대의 알파벳 ‘P’난을 더듬어 보았다. 집에 없는 핑크 플로이드의 LP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애진작에 발매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소 괴상한 아트워크에 선뜻 마음을 열어 주기가 힘들었던 음반, [Relics]였다. 허탈해질 대로 허탈한 나의 심정은 그 동안 꺼려왔던 [Relics] 앨범을 향해 돈을 꺼내들게 만들었던 것이다(함께 구입한 음반은 데렉 앤 더 도미노스(Derek And The Dominos)의 [Layla]였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나의 학과 성적과 품행은 급전직하, 이른바 ‘문제아’의 나날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고 껄렁한 급우들과 범법 행위를 추구하던 그런 양아치 노릇에 몸을 맡겼다는 뜻은 아니었다. 세상 모든 것과의 인연의 고리를 끊으려 하고, 교과서와 참고서 보기를 벌레 보듯 하였으며, 오로지 관심의 촉수를 음악과 영화에만 집중시키는, 일종의 ‘자폐아’가 되어갔다. 어떻게 하면 뮤지션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영화 감독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내 인생의 절대적인 지향점이었다. 이러한 폐쇄적인 삶 곁에는 언제나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런 와중에 [Ummagumma]와 [Final Cut] 원판이 내 리스트에 추가되었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핑크 플로이드가 절대 군주 노릇을 하는 견고한 왕국이 완성되어 거기에서 문지기나 집사 노릇을 하며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몸과 마음을 불살라 버리리라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1986년 가을, 즉 [Animals] 중고 LP를 구하던 무렵, 갑자기 나는 음악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불현듯 떠오른 자각 앞에 어쩔 줄 모르게 되고 말았다. 애초 가진 재능으론 뮤지션이 되기는 틀려먹었고, 제작자나 엔지니어는 공학 쪽에는 영 적성이 없었던 탓에 가능성이 없었고, 그렇다면 DJ나 팝 칼럼니스트가 되어야 할텐데 이 길 또한 과연 어떻게 들어설 수 있을 것인지 정말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 더구나 거의 5년 간 꺼지지 않는 열정을 쏟아 부었던 핑크 플로이드에게, 가슴 한 편에서 서서히 ‘권태’의 심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핑크 플로이드에게만 열중할 수가 없었던 것이, 다른 기가 막힌 밴드들이 주위에 스멀스멀 등장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메탈리카(Metallica)가 전율의 스래쉬 리프로 머리를 날리게 하였고, 유투(U2)가 암울한 사춘기의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보듬어 주었다. 들국화와 김현식의 포효는 그 시절, 거기에 살아 숨쉬던 젊은이들의 격정, 바로 그것이었다.

1987년 가을 [A Momentary Lapse Of Reason]을 끝으로, 나는 길다면 길었던 핑크 플로이드와의 애정 행각을 일단락 짓게 된다. 가슴 설레는 만남으로 시작하여 꿈결 같은 나날을 보냈지만, 어느새 사랑은 차디찬 물처럼 식어버리고 서로의 싸늘한 시선만이 남게 되었다는, 그러한 애정의 공식을 나와 핑크 플로이드는 그대로 밟아 나갔던 것이다. 그 당시 나의 목표는 다른 곳에 설정되어 있었다. 즉 문학을 향해 타오르는 열망을 억누를 길 없었다. 훌륭한 문학가로 입신양명 해 보려는 (다소 막연하지만) 처절한 몸부림이 내 모든 것이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먼지 쌓여 가는 음반들은 서글픈 눈빛과 옅게 머금은 미소를, 외면한 채 뒤돌아 웅크리고 있는 나를 향해 가녀리게 보낼 뿐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가 왔다. 어쩌다 보니 영 안될 줄만 알았던 대학생이 되었다. 여전히 책을 붙잡고 있는 경우가 잦았고, 음악은 그저 허전한 귓구멍을 찰나적으로 채워보려는 여흥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CD의 시대가 찾아들었고,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재즈의 달뜬 열기가 컴컴한 카페와 바를 물들였다. 그 와중에 [The Dark Side Of The Moon]과 [Wish You Were Here]를 CD로 업그레이드하고,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CD도 구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지 가벼운 호기심의 즉흥적인 발산이었을 뿐이었다. 이미 헤어진지 오래되었지만 이따금씩 무의미한 안부를 서로 주고받는, 옛 연인과의 짧은 대화와도 같다고 비유할 수 있을까.

그렇게 10년이 또 훌쩍 뛰어 넘어가 버렸다. 나는 몹시도 무기력한 몰골로 살아 남아있었다. 혈기와 무모함만이 가진 것 전부였던 10대를 지나, 청춘이라는 강렬한 무기로 온 몸을 무장하고 있었으나 막상 그것을 미처 써먹을 사이도 없이 시간의 광적인 속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20대를 지나, 이젠 ‘사회’라는 거대하고도 정교하나 잔혹함으로 치장하고 있는 구조물 속에서, 자신이 과연 어떤 쓸모로 이용당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나는 그저 헛발질만을 거듭하는 자그마한 볼트가 되어 있었다. “나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딴에는 온 힘을 모아 외쳐보곤 하지만, 사회라는 벽, 더 나아가 인생이라는 명칭이 붙은 그 벽에, 나의 외침은 맥없이 조각조각 나, 차갑지도 않은 서릿발처럼 발아래 부스스 쌓인다. 나는 분명히 그 외침 소리가 벽에 닿아 파열하며 ‘메아리’를 남기기는 했다고 느꼈지만, 그것은 단지 마음 속의 열망이 머리 안에서 뒤엉킨 나머지 환청으로 귓가를 간지럽혔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건 아마도 두뇌에 입은 상처 때문인지도 모르겠지.

20020101010709-echos하루하루를 숨만 쉬어가며 살아있다는 데 그저 고마움을 느끼며, 마치 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유일하게 확인 받을 수 있는 곳인 양 시내에 위치한 대형 음반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요란한 음악 소리(최신 가요와 클래식이 뒤엉켜 있다)와 소비의 환희에 넘치는 고객들의 즐거운 재잘거림이 내 신경을 서서히 마비시켜 버린다. 하지만 기분은 편안하다. 몽롱한 상태에서 진열대에 놓인, 정갈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CD 하나를 만지작거려 본다. EMI가 2001/2002년 연말연시를 맞아 야심찬 기획의 일환으로 자신 있게 선보이는, 핑크 플로이드의 두 장 짜리 베스트 음반 [Echoes-The Best Of Pink Floyd]이었다. 내가 너를 처음 느꼈을 때는 솟아오르는 눈물을 억누를 길 없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났지만 마음속엔 아무런 울림을 거두어 낼 수가 없구나. 하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여전히 서글픈 눈빛과 옅게 머금은 희미한 미소를,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듯 창백한 내 얼굴을 향해 보내고 있었다. 마치 광기의 먼지로 뒤틀리고 납작해진, 자그마하고 빛 바랜 다이아몬드처럼. 20011225 | 오공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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