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31103057-0401pinkfloyd_ummagummaPink Floyd – Ummagumma – EMI, 1969

 

 

새롭고 다양한 음악을 향한 분투기

프로그레시브 록이 다시 쿨(cool)해지고 있다. 펑크 혁명 이후 오랜 세월동안 록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던 프로그레시브 록은 신생 밴드들의 잇따른 등장과 E-문화의 확산이라는 서구의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다시금 무대의 정면에 복귀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프로그레시브 록의 거목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에 대한 재평가는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까지나 재평가인 한 새로운 평가는 이제까지 이들에게 내려졌던 것과는 다소 내용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 록과 실험주의 록 그리고 스페이스 록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현재의 음악적 지형 속에서 이들의 유산을 되돌아볼 때 이 앨범 [Ummagumma]는 특히 주목해야 할 작품 중의 하나다. 이 앨범은 이들의 세 번째 정규 앨범으로서 이들의 1960년대와 1970년대 음악을 가름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더블 앨범으로 발표된 이 앨범은 한 장의 라이브 음반과 한 장의 스튜디오 음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앨범으로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음반의 음악적 성격은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라이브 음반이 영국의 대표적 싸이키델릭 밴드로서의 이들의 이력을 조명하고 있다면 스튜디오 음반은 프로그레시브 록의 새로운 영역으로 진화를 시작하는 이들의 음악적 모색을 담고 있다.

1969년 버밍험과 맨체스터에서의 공연실황을 편집한 라이브 음반은 1960년대의 런던 애시드 언더그라운드 씬을 대표했던 이들의 영화(榮華)를 유감없이 재현하고 있다. 이 음반에는 데뷔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에 수록되었던 “Astronomy Domine”, 싱글로만 발표되었던 “Careful With That Axe, Eugene”, 그리고 두 번째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에 실려있던 “Set the Controls For The Heart Of The Sun”과 “A Saucerful Of Secrets” 등 모두 네 곡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의 일반적 경향에 따라 이들이 여기서 들려주는 라이브 연주는 스튜디오 버전과 판이하게 다르다. 각 곡의 연주시간은 짧게는 1분 안팎에서 길게는 그 두 배까지 연장되었고, 사운드에 있어서도 다소 빈약한 느낌의 스튜디오 버전에 비해 보다 탄탄하고 풍성한 음향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관객을 앞에 둔 라이브라는 상황은 연주자들에게 더욱 큰 집중력을 요구함으로써 연주에는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이들은 여기서 라이브가 지닌 이러한 잇점을 극대화함으로써 스튜디오 버전을 훨씬 능가하는 걸작을 만들어 냈다.

이 음반의 사운드는 [The Dark Side of the Moon] 등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들의 1970년대 사운드와는 크게 다른 면모를 나타낸다. 여기서 이들이 들려주는 몽환적이면서도 장중한 사운드는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의 밴드들인 스피리츄얼라이즈드(Spiritualized)나 모과이(Mogwai)의 사운드와 더욱 흡사한 느낌을 준다. 이는 이 음반이 이들의 초창기 리더 시드 배릿(Syd Barrett)의 스페이스 록적 성향을 짙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앨범을 만들 당시 이미 그룹을 떠난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은 1960년대 내내 이들 음악의 지배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그의 뒤를 이어 그룹의 리더가 된 로저 워터스(Roger Waters)는 시드 배릿의 자유분방하고 가벼운 유머를 냉철한 통제와 심각한 경건주의로 대체했지만 그의 환각적이고 광기 어린 음악성향의 큰 흐름은 그대로 보존했다. 이 음반은 이처럼 시드 배릿의 자취와 로저 워터스의 비전이 혼재되어 있던 1960년대 말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의 전형을 들려준다.

이 앨범의 라이브 음반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반이다. 그러나 스튜디오 음반으로 가면 사정이 좀 복잡해진다. 이 음반은 네 명의 멤버들이 각자 솔로로 작업한 것을 한데 모아놓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시드 배릿의 영향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불투명한 미래를 개척해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각자의 음악적 선택이 열려있는 만큼 개별 멤버가 음악적 결과에 도달하는 경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런 접근은 결국 핑크 플로이드의 가장 실험적인 작품으로 귀결되었고 바로 이 점으로 인해 이 음반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양분된다. 이 음반을 혹평하는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도저히 청취가 불가능한 쓰레기라는 평가를 내린다. 이것의 극단적인 난해함은 결국 청취자를 골탕 먹이기 위한 의미 없는 소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의미 없는 소음인지 아니면 의미로 충만한 작품인지는 이 음반을 차근차근 뜯어봄으로써만 밝혀질 수 있는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앨범의 진수는 바로 이 스튜디오 음반에 있다.

앨범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것은 리차드 라이트(Richard Wright)의 음악이다. “Sysyphus”로 명명된 그의 음악은 모두 네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여기서 바그너 이래로 발전되어 온 현대음악의 궤적을 조성의 변천을 중심으로 추적하고 있다. 그의 네 곡은 각각 후기 낭만주의, 인상주의, 무조주의 그리고 전자음악의 스타일을 따라 만들어졌는데 이 순서는 전통적 조성의 균열로부터 붕괴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한다. 당연히 여기에 실린 음악은 처음에서 마지막으로 갈수록 무질서하고 어려워지는데 특히 세 번째 파트가 가장 난해하다. 네 번째 파트인 전자음악은 비록 전위적이지만 분위기 자체가 고요하게 흐르기 때문에 특별히 부담을 갖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작된 피아노(prepared piano)와 즉흥적인 리듬, 그리고 온갖 소음이 난무하는 세 번째 파트는 듣기 전에 다소 각오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이어지는 로저 워터스 섹션은 그의 비판적 문명관을 표명한 미니 컨셉트 앨범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로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첫 곡 “Grantchester Meadows”는 새소리의 효과음과 함께 인간과 자연의 통일 또는 원시적 주객합일의 경지를 표현한다. 그러나 이 본원적이고 절대적인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Grantchester Meadows”가 끝나 갈 무렵 스피커에서는 파리 한 마리가 윙윙대며 날아다니는 소리가 난다. 곧 누군가가 성큼성큼 걸어와 파리채를 휘두르기 시작한다. 그는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파리를 잡는데 성공한다. 평화의 파괴 그리고 인간의 자연 지배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이어지는 곡 “Several Species Of Small Furry Animals Gathered Together In A Cave And Grooving With A Pict”(이 곡은 에머슨, 레이크 & 파머(Emerson, Lake & Palmer)의 “When The Apple Blossoms Bloom In The Windmills Of Your Mind I’ll Be Your Valentine”과 함께 제목 길이로 자웅을 겨루는 작품이다)는 완전히 소음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이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리듬에 따라 진행되는 이 곡의 소음은 기계와 산업을 상징한다. 이러한 발전이 궁극적으로 야기하는 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이다. 이 곡의 후반부에 등장해 일장 연설을 하는 사람(Pict)의 목소리는 히틀러에 대한 패러디로 해석된다.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re)의 3부작 “The Narrow Way”는 이 음반에서 가장 통상적인 팝/록 형태를 취하고 있는 작품이다. 당연히 여기에 수록된 작품 중 가장 친숙하고 듣기에 편하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어쿠스틱 기타의 경쾌한 스트로크를 중심으로 슬라이드 기타와 효과음이 날아다니듯 공간을 채우고, 같은 아이디어가 반복되는 두 번째 파트에서는 일렉트릭 기타의 강력한 리프를 중심으로 각종 기타 노이즈가 주변을 맴돈다. 세 번째 파트는 보컬 트랙으로서 그는 여기서 [Meddle] 앨범부터 본격화되는 데이빗 길모어 표 발라드의 전형을 최초로 선보인다. 비록 도전적이거나 전위적이지는 않지만 데이빗 길모어의 실험은 새로운 음악적 방향의 모색이라는 이 앨범의 취지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여기서 시도한 음악은 다른 멤버들의 것에 비해 핑크 플로이드 전성기의 음악과 가장 유사한 형태를 띤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닉 메이슨(Nick Mason)의 실험 역시 3부작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The Grand Vizier’s Garden Party”라는 제목의 이 곡은 입장(Entrance)-여흥(Entertainment)-퇴장(Exit)이라는 소제목을 각각 달고 있다. 곡의 구성방식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어서 인트로와 피날레가 각각 목관의 클래시컬 한 앙상블로 처리되고 중반부에서는 무반주 타악기 솔로가 진행된다. 이러한 그의 음악은 타악기 사운드와 복잡한 리듬을 강조했던 에드가르 바레즈(Edgard Varese)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한다. 여기서 그가 들려주는 타악기 솔로는 힘과 스피드로 몰아붙이는 통상적인 록 드럼 솔로와 달리 다양한 타악기를 특정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입체감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데 주력한다. 연주에 있어서도 그는 타악기 연주에 일반적인 박진감을 추구하기보다는 섬세한 울림을 전달하는데 더욱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런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오늘날의 록 팬들이 이 음악을 듣고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아마 30분 짜리 드럼 솔로를 듣고 열광했던 과거의 록 팬들이나 드러머 지망생들 정도만 이 음악을 환영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이 앨범에서 이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전성기 사운드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들은 [Atom Heart Mother]의 실험을 또 한번 거친 후 [Meddle]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것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점이 이 앨범을 과소평가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1970년대의 가장 성공적인 기업형 록 밴드로 도약한 이들은 이 앨범이 지닌 신선함과 열정을 결코 되살리지 못했다. 이 앨범의 라이브 음반은 이들의 흥미로운 1960년대 음악을 가장 훌륭한 연주와 사운드로 들려주고 있고, 스튜디오 음반은 이들의 가장 모험적이고 진취적인 음악적 행보를 기록하고 있다. 이 앨범에서 수행되는 실험은 [Atom Heart Mother]의 실험주의로 포장된 난센스와 달리 명확한 목적의식과 진지한 몰입 속에서 이루어지는 음악적 분투이다. 비록 익숙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나오기 힘든 것이 바로 이 앨범이 지닌 매력이다. 오늘날의 포스트 록과 실험주의 음악에 관심 있는 팬들이라면 이들의 전성기 히트작들 보다 오히려 이 앨범에서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011201 | 이기웅 [email protected]

10/10

수록곡
Disc 1
1. Astronomy Domine
2. Careful With That Axe, Eugene
3. Set The Controls For The Heart Of The Sun
4. A Saucerful Of Secrets

Disc 2
1. Sysyphus Part 1 – Richard Wright
2. Sysyphus Part 2 – Richard Wright
3. Sysyphus Part 3 – Richard Wright
4. Sysyphus Part 4 – Richard Wright
5. Grantchester Meadows – Roger Waters
6. Several Species Of Small Furry Animals Gathered Together In A Cave And Grooving With A Pict – Roger Waters
7. The Narrow Way Part 1 – David Gilmour
8. The Narrow Way Part 2 – David Gilmour
9. The Narrow Way Part 3 – David Gilmour
10. The Grand Vizier’s Garden Party Part 1 Entrance – Nick Mason
11. The Grand Vizier’s Garden Party Part 2 Entertainment – Nick Mason
12. The Grand Vizier’s Garden Party Part 3 Exit – Nick M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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