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31093452-0401sydbarrettSyd Barrett – The Madcap Laughs – EMI, 1970

 

 

게으르고 지겨운, 중독성 강한 싸이키델릭

“1946년 영국 캠브릿지에서 태어난 시드 배릿(Syd Barrett, 본명: Roger Keith Barrett)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창단 멤버로 유명하다. 그는 핑크 플로이드의 데뷔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에 참여했고 이들의 초기 싱글 “Arnold Layne”, “See Emily Play”, “Apples And Oranges”를 비롯한 초창기 대부분의 곡들을 송 라이팅했던 그룹의 실질적 리더였다(당시의 핑크 플로이드는 시드 배릿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바뀌어도 무관할 정도였다고 혹자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두 장의 데뷔 싱글과 앨범 [Piper at the Gates of Dawn]의 커다란 성공은 그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으며 이전부터 자신의 음악적 영감의 많은 부분을 기댔던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중독증세와 이에 따른 기행들은 그로 하여금 정상적인 밴드 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에 멤버들은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를 맞아들여 시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했으나 그는 얼마 후 완전히 밴드를 떠나게 된다. 이후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듯했던 그는 1970년 갑작스럽게 [The Madcap Laughs]와 [Barrett]라는 두 장의 솔로 앨범으로 영국 대중음악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데이빗 길모어와 로저 워터스(Roger Waters), 그리고 소프트 머신(Soft Machine)의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만든 그 앨범들은 그러나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는 이후 은둔 생활에 빠지게 되어 대중음악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된다.”

위의 이야기는 핑크 플로이드를 만든 ‘정신적 지주’이자 ‘불운한 천재’로서의 시드 배릿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이고, 그의 솔로 데뷔작 [The Madcap Laughs]는 파멸에 다다른 불운한 천재 혹은 과대 평가된 몽상가의 잊혀진 졸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의 정보를 배제한 상태에서 듣는 [The Madcap Laughs]는 그렇게 혹평할 만한 음반인가? 핑크 플로이드 시절의 재기발랄한 실험들이나 넘치는 위트 등과 비교했을 때에 이 음반이 다소 맥이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맥빠짐’ 자체가 이 음반의 매력일 수도 있다. 단지 1970년대 초반의 한 싸이키델릭 포크 아티스트의 음반으로 본다면 이 음반은 묘한 중독성을 지닌 독특한 음반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Terrapin”은 누군가의 말대로 곡의 실제 길이보다 3배 정도는 더 지루하게 들리는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시드의 맥 빠지는 보컬만으로 이루어진 이 오래는 종종 거의 동일한 음정이나 음표들을 반복한다. 어떻게 보면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나 루 리드(Lou Reed)와 연결 지을 수 있을 듯한, 일종의 미니멀리즘이라 보아도 무관하게 느껴지는 작곡이지만 조금 다르다고 할 만한 부분은 반복 자체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정한 비트에 의한 진행이 아니라 틀에 구애받지 않고 읊어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무의미한 위트를 남발하는 “Love You”나 “If It Isn’t You”, 일종의 자화상과 같은 성격의 곡 “Dark Globe”(가사뿐만 아니라 창법에서도) 등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강하게 드러난다.

사실상 이 앨범 대부분의 수록곡들은 이처럼 어쿠스틱 기타를 위주로 한 포크 넘버들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다소 변칙적인 포크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핑크 플로이드 시절 작곡의 특징 역시 친숙한 팝적 멜로디 속에 변형되고 낯선 코드진행을 끼워 넣어 환각적인 감정을 강화했던 것을 비교해 보면 그의 솔로시절 역시도 비슷한 맥락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만 한가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라면 핑크 플로이드에서의 그가 생기 넘치고 공격적인, 에너지가 충만한 음악을 했다면 이 앨범에서는 완전히 기운을 잃은 사람이 억지로 고래고래 악을 쓰는 듯한 느낌의 음악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Octopus”, “Dark Globe”).

앨범에서 가장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곡들은 “No Good Trying”, “No Man’s Land”와 같이 다른 멤버들의 참여가 눈에 띄는 곡들이다. 이 앨범의 세션명단 중에서 눈에 띄는 인물들이 바로 마이크 레틀렛지(Mike Ratledge), 로버트 와이엇(Robert Wyatt) 등 소프트 머신의 멤버들인데, 사실 이들의 참여는 같은 런던 언더그라운드 출신으로서 일종의 ‘우정 출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이들이 프리 재즈에 바탕을 둔 즉흥 연주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서 정교하고 치밀한 구성을 지향하고 있다면 시드는 그 정반대에 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음반에서 마이크 레틀렛지 등의 연주는 그냥 무의미한 백 밴드 연주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위의 두 곡은 시드의 몽환적 보컬과 상당히 잘 결합했던 독특한 싸이키델릭 포크 송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당대에 이 음반에 대한 평가는 비평적, 상업적인 측면 모두 대실패를 맛보았다. 실제로 이 음반의 탄생이 EMI측의 졸속 기획(핑크 플로이드 이름 팔아먹기를 위한 억지기획으로 보는 시각. 소프트 머신 멤버들의 참여 역시도 이와 비슷하게 볼 수 있다)으로 이루어진 측면은 있다. 게다가 이미 히피즘이 몰락한 1970년대에 이런 음반이 등장한 것은 오히려 구태의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듯 스스로 히피즘의 몰락을 보여주는 것 역시도 독특한 음악적 체험이 되고, 오히려 이러한 이들의 음악이 1960년대 싸이키델릭 음악보다 후대에 더 강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줄리언 코프(Julian Cope)같은 이가 대표적으로 시드의 영향력을 공공연히 밝히는 인물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이러한 비운의 아티스트들을 ‘전설’로 만든 측면도 없지는 않겠으나, 당대적 혹평 혹은 후대의 과대평가를 모두 걷어놓고 보더라도 이 음반이 나름대로 중독성이 강한, 독특한 싸이키델릭 포크 록 음반중의 하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다. 20011228 | 김성균 [email protected]

8/10

* 여담 : [Mojo]에 실린 핑크 플로이드 특집 기사에 유명 아티스트들이 좋아하는 그들의 핑크 플로이드 음반들이 소개된 적이 있다. 그 중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을 꼽은 이는 다름 아닌 이기 팝(Iggy Pop)이었다(그러고 보면 히피즘의 ‘몰락 이후’의 음악이라는 점에서 묘한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같은 이는 [The Wall]을 꼽았다. 역시 그다운 선택이다.

수록곡
1. Terrapin
2. No Good Trying
3. Love You
4. No Man’s Land
5. Dark Globe
6. Here I Go
7. Octopus
8. Golden Hair
9. Long Gone
10. She Took a Long Cold Look at Me
11. Feel
12. If It’s in You
13. Lat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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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Syd Barrett 공식 사이트
http://www.sydbarret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