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한국에서 가수는 음반의 판매로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가수가 작곡가를 겸한다면 예외지만, 현재 스타로 불리는 가수들 대부분은 작곡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건 정말 예외다. 그래도 100만장 이상을 판매하는 경우는 돈을 꽤 벌겠지만 생각보다는 많이 벌지 못한다. 한 예로 H.O.T.가 해체될 때 흘러나온 이야기에 의하면 멤버들은 음반 1장 당 20원을 받았다고 한다(주의: 전부 다는 아니라고 한다). 산수를 해보자. 1년에 음반을 하나 발매하고 이 음반이 100만장 팔린다고 치자. 그래봤자 연 소득은 2,000만원이다. 멤버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월급쟁이 수준’이다. 물론 다른 부수입은 있겠지만.

그래도 H.O.T. 같이 슈퍼스타의 지위에 오른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최근 활동을 재개한 한스밴드의 경우 지난 1999년 9월 “지난해 음반사와 전속금 500만원에 전속기간 5년의 계약을 맺은 뒤 음반판매 수익금(15만장)이나 방송 출연료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해 동사무소에서 생계보조비를 받아왔다”며 전속계약의 해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내기도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사건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주제와 관련되므로 이 사건도 잠깐 들여다보자.

한스밴드의 주장대로 1년 동안 음반 판매를 통해 얻은 총수입이 단돈 500만원이라면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기획사 측의 사정은 무엇일까. 당시 음반사 측은 음반 판매량이 15만장이라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며(음반사측 주장은 9만장 정도였다), 방송 출연료에 대해서는 매니저, 코디, 메이크업 등 스태프의 행사 진행비로 활용하기로 계약서에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음반사 측은 오히려 한스밴드의 발굴과 투자 과정에서 2억 5천여 만원의 손실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한스밴드를 맞고소했다. 밴드 활동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니 음반사 측의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한스 밴드의 몫으로 돌아온 것은 계약 당시에 받은 5백만원이 전부라니 세 명이 일년간 생활해 나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한스밴드와 H.O.T.를 언급한 것은 그저 ‘하나의 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쨌든 가수는 별로 돈을 벌지 못했고, 음반사도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면 돈은 누가 벌어간 것일까. 사정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돈을 버는 사람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CD나 테이프를 찍어준 공장이나 레코딩을 해준 스튜디오는 물론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도 ‘음악으로’ 돈을 번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남는 사람은 곡(曲)의 작사와 작곡을 맡은 작곡가들이다. 그러니 음악을 해서 먹고 살려면 가수를 하지 말고 작곡가를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자작곡을 직접 노래하면 제일 좋겠지만 ‘외모’가 중요한 요즘 가요계 상황에서 그러기는 힘들어 보인다.

작곡가는 곡비로 산다

하지만 작곡가들 전부가 잘 먹고 잘 사는 건 아니다. 현재 작곡가들 세상에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히트곡 제조기’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웬만한 인기 가수나 음반 제작자보다 수입이 좋은 반면, 많은 수의 작곡가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독과점 현상’은 최근 몇 년 새 두드러져 보인다. 무언가 제도적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막연히 작곡가들의 수입이 인세 형태의 ‘저작권료’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 한국에서 저작권료는 ‘음반 판매’와는 무관했다. 작곡가들이 받는 저작권료는 이른바 ‘실연료’가 대부분이다. 실연료란 방송이나 노래방에서 음원을 사용할 때 이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저작권료를 말한다. 따라서 음반을 복제하여 판매하는 데 따른 대가 이른바 ‘복제료’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물론 작곡가가 한 푼도 못 받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문제는 돈이 지급되는 방식이다. 이제까지의 관행은 음반 판매량에 비례하여 인세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1곡당 얼마’라는 식으로 ‘정액’을 지급하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업계 용어로 ‘곡비(曲費)’라고 부른다. 곡비의 수준은 작곡가의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A급 작곡가의 경우는 한 곡 당 1,000만원을 호가한다는 말도 있고 이제 막 작곡가에 입문하는 초보의 경우는 몇십 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바뀐다는 이야기다. 저작권협회는 몇 년 전부터 ‘정액제로부터 인세제로’라는 방침을 정했지만 그 동안 일정 유예기간을 거친 뒤 지난 12월 10일부터 전면 실시되었다. 더 복잡하겠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이제 새로 발표되는 음반에는 인지가 붙게 되고 음반제작자는 음반 판매량에 비례하여 저작권 협회에 일정한 저작권료를 납부하고, 이 복제료는 저작권협회를 거쳐 작곡가에게 이를 분배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저작권료는 음반에 수록된 모든 곡에 따라 균등하게 분배하도록 되어 있다. 이전처럼 음반 제작자와 작곡가 사이에 직접 곡비가 전달되고 ‘이걸로 끝’라고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작곡가가 아닌 가수는? 가수 역시 저작권자는 아니지만 저작인접권자라고 불린다. 곡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곡을 음반에 ‘고정’시키는데 어느 정도 공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수는 작곡가만큼 크지는 않더라도 저작인접권협회로부터 소정의 로열티를 지급받게 된다.

곡비에서 인세로, 누가 이득일까

사실 이렇게 되는 게 정상적이다. 성과에 비례하여 수입이 분배되는 것만큼 합리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정액제의 곡비 지급이라는 관행은 마치 주택 전세제도처럼 ‘한국에만 존재하는’ 예외적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기 위해 몇 가지 필요한 조건이 있는데 여기서 다소 걱정되는 부분이 생긴다. 무엇보다도 인세제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음반판매량이 투명하게 발표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음반판매량이 발표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음반산업협회에서 발표하는 음반판매집계는 ‘회원사의 발표’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공정성과 투명성을 기하기에는 그리 과학적이지 않아 보인다. 작곡가들이 인세제보다 정액제를 선호했던 것도 음반판매량이 투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 따른 ‘합리적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음반 제작자나 음반사 측은? 과거에는 곡비를 선호했다.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음반의 흥행이 성공해도 작곡가에게 추가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어쩌다가 예상 밖으로 음반이 많이 팔리면 작곡가에게 ‘보너스’를 지급하여 불만을 잠재우는 것이 이제까지의 관행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제작자나 음반사들은 곡비로 고정비용, 시쳇말로 뭉칫돈이 나가는 현실을 부담스러워 했다. 가수를 좀 띄워보려면 A급 작곡가가 만든 곡이 한두 곡은 필요한데 그러려면 이미 몇천 만원의 자금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음반산업이 불황이 되면서 이런 걱정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이상의 이야기는 논리적 추론일 뿐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아까 말한대로 음반(앨범)에 실린 곡들 모두에게 동일한 저작권료(복제료)가 지급된다. A급 작곡가든, C급 작곡가든 모두 수입이 균분되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그대로 수용할 ‘A급 작곡가’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벌써부터 A급 작곡가를 모셔오기 위해 ‘편곡료’나 ‘수고비’를 웃돈으로 지급하는 편법도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건 ‘싱글 음반’의 시장이 없는 구조적 문제로 인해 파생되는 편법이지만, 당장 싱글 시장이 성립할 대책이 없다면 새로운 제도의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새로운 제도로 ‘가욋돈’을 벌 기회가 생긴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자작곡을 직접 연주하고 레코딩하는 밴드나 싱어송라이터들이다. 과거에 이들은 음반사가 지급해주어야 마땅한 ‘곡비’를 지급 받지 않았다. 그건 이들이 ‘어수룩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힘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어쨌든 이제는 저작권 단체를 경유하여 저작권료(복제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효과가 인세제를 도입한 주요 취지는 아닐 것이다. 또한 밴드나 싱어송라이터의 음반이 그리 많이 팔리지 않는 상태에서 이들에게 지급되는 저작권료는 ‘푼돈’에 그칠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예상치 못한 효과를 통해서 자작곡을 연주하는 관행이 정착되기를 바래 본다. 그 이유는 자작곡을 연주하는 음악이 음악적으로 뛰어나다는 선입견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되는 것이 날이 갈수록 고비용 구조로 치닫는 음악산업 시스템을 정상화시킬 현실적 방향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20011021 | 신현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