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16012235-0324rockoftravoltaRock Of Travolta – My Band S Better Than Yours – Juggernaut, 2001

 

 

장난꾸러기 밴드의 유쾌한 실험 음악

[My Band S Better Than Yours]라는 도발적이고 오만방자한 앨범 타이틀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앨범의 주인공이 록 오브 트래볼타(The Rock Of Travolta)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밴드이고 그 밴드가 각종 트래볼타라는 이름의 멤버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도발적 언사는 더 이상 진담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이 앨범의 타이틀은 애꿎은 다른 밴드들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로컬 뮤직 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밴드들 간의 입씨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 옥스포드 출신의 신예 록 오브 트래볼타는 이처럼 장난과 농담 그리고 아이러니를 즐기는 그룹이다. 물론 이런 류의 그룹은 그 동안 심심찮게 존재해 왔으므로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이 실험주의적 포스트록(post-rock)이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이런 종류의 음악은 통상 양 눈썹에 힘을 팍 주고 굉장히 심각한 듯 음악을 하는 밴드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록 오브 트래볼타는 옥스포드 지역에서 해마다 열리는 소규모 록 페스티벌 ‘트럭페스트(Truckfest)’에 참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평소 친구로 지내던 이 밴드의 멤버들은 공짜로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던 중 출연진의 자격으로 참가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밴드를 결성했다. 그룹 이름인 록 오브 트래볼타는 이들이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지브롤타 암벽(The Rock Of Gibraltar)과 존 트래볼타(John Travoltar)를 헷갈린 데서 비롯되었다. 멤버들은 필 트래볼타(Phill Travolta: keyboards, drums, guitar & bass), 핸섬 데이브 트래볼타(Handsome Dave Travolta: guitar & bass), 존 트래볼타(Jon Travolta: crash cymbal & cass), 로스 트래볼타(Ros Travolta: keyboards, cello & bass), 조이 트래볼타(Joey Travolta: drums, keyboards & bass)의 다섯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외에도 낫과 베이스를 담당하는 데쓰 트래볼타(Death Travolta)와 광선검과 베이스 담당의 다쓰 트래볼타(Darth Travolta)라는 두 명의 멤버가 더 있다는 소문도 있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이들은 동향인 옥스포드 출신의 거물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오프닝을 몇 번 담당하면서 명성을 쌓기 시작해서 이제 이 지역에서는 상당히 인기 있는 밴드로까지 성장했다. 비록 [NME]를 비롯한 주류 언론은 이들에 대한 무관심 내지 혹평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이들은 이에 전혀 위축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의 스테이지는 지축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운드와 두 대의 베이스가 포함된 이례적인 악기 편성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들 공연의 압권은 뭐니뭐니 해도 섀도우스(The Shadows)와 블럿하운드 갱(The Bloodhound Gang)을 연상시키는 엽기적인 집단 율동이다. 짐짓 심각한 듯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펼치는 이들의 집단 율동은 가히 보는 이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 기술된 밴드의 신상명세를 읽고 눈살을 찌푸린 독자라면 “이젠 개나 소나 다 포스트록을 하겠다고 덤비는군!”하고 탄식하겠지만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이들의 음악은 뜻 밖에도 상당히 들을 만하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가장 처음 드는 생각은 ‘이거 모과이(Mogwai) 아류 아냐?’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여기 저기서 모과이를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평가에 기분이 상한 나머지 이들은 모과이의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베낀 “Gizmo”라는 곡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다(영화 [그렘린]을 본 사람들은 이 뜻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모과이의 음악은 이런 거야.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구!’라는 암묵적인 주장이었다. 사실 꼼꼼히 따져볼 때 이들이 모과이와 닮은 것은 사운드의 질감 하나 뿐이다. 이 앨범을 여러 번 듣다 보면 애초의 선입견과 달리 모과이와 확연히 구별되는 이들만의 독특한 세계가 점차 귀에 들어오게 된다.

록 오브 트래볼타와 모과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이들이 ‘여리게-세게-여리게’라는 전형적인 모과이 공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과이의 감질나는 전희 과정을 생략한 채 곧바로 본론인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자연히 이들의 음악은 속도에 있어서도 모과이에 비해 다소 빠른 편이다. 이들 음악의 빠르기는 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소닉 유쓰(Sonic Youth)의 템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들이 모과이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는 이들의 음악이 모과이와 달리 가볍고 유쾌하다는 점이다. 이들의 장난꾸러기 기질은 지극히 단순하고 반복적인 모과이 식의 음악을 도저히 견디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상대적으로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능하며 유머와 아이러니로 가득 찬 것으로 만든다.

앨범 [My Band S Better Than Yours]에는 모두 여덟 곡이 수록되어 있지만 1분 남짓한 간주곡 세 개를 제외한다면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춘 음악은 다섯 개 정도다. 그 중 하나인 “Giant Robo”는 앨범 수록곡 중 모과이의 음악과 가장 유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특히 초기 모과이의 음악을 많이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 곡에서 1970년대에 유행하던 무그 신서사이저(정확한 발음은 ‘모그’ 신서사이저가 되겠으나 여기서는 그냥 우리에게 익숙한 대로 쓰기로 한다)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모과이와의 표면적 유사성을 살짝 비틀어 놓는다. 이 앨범에서 싱글로 커트된 곡 “I Love It When A Plan Comes Together”는 질풍 같은 베이스 인트로로 시작해서 트리오 풍의 간주가 곁들여지는 헤비한 성향의 작품이다. 그러나 이 곡은 이 앨범의 수록곡 중 비교적 내용이 빈약한 편에 속한다. 루크 스카이워커를 익살스럽게 패러디한 제목의 “Luke Warm Skywater”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 “I Am Your Father”와 함께 영화 [스타워즈]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곡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 곡은 1970년대 유럽산 B급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연상케 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헤비메탈 풍의 짤막한 간주곡 “[……]”는 “The Song That Cannot Be Named”라는 원제목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제목을 붙일 수 없는 노래이기 때문에 그냥 점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작권 문제로 인해 반드시 제목을 붙여야 하는 미국에서는 “We Can’t Call This Song What We Want To Cos Americans Have A Stupid Fucking System”이라는 제목이 붙여질 예정이다. 물론 이들의 앨범이 미국에서 발매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극히 희박하다. 이어지는 곡 “The Body Is Still There But The Mind Is Gone”은 이들의 음악 중에서는 비교적 무거운 축에 속하는 곡이다. 이 곡에서 이들이 들려주는 사운드는 마치 1970년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를 듣는 듯한 어두움과 우울함을 느끼게 한다. 영화 [제국의 역습]의 결정적인 장면 ‘내가 너의 아버지다’에서 힌트를 얻은 “I Am Your Father”는 이 앨범에서 가장 스케일이 크고 강력한 작품이다. 소닉 유쓰 스타일의 리프를 기본으로 하여 진행되다가 중반부에 들어 느닷없이 등장하는 다쓰 베이더의 테마는 이들의 넘치는 유머 감각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앨범의 백미 중 하나다.

록 오브 트래볼타는 그리 깊이 있거나 수준 높은 음악성을 자랑하는 밴드는 아니다. 이 점은 본인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음악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의 음악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들 스스로가 ’21세기의 섀도우스’ 또는 ‘미래의 팝 밴드’를 자임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음악은 스티브 앨비니(Steve Albini)와 슬린트(Slint)로부터 모과이와 노트(Nøught)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수행되어 온 음악적 실험이 어느덧 하나의 스타일로 정착해서 팝으로 재구성되기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사실 실험음악이라는 선입견을 제거한다면 이들의 음악은 매우 훌륭한 팝 음악으로 간주될 수 있다. 물론 21세기의 팝 세계가 과연 이들과 같은 밴드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이 앞으로의 팝이 나아갈 가능한 경로의 하나를 보여준다는 점만은 명확한 것으로 보인다. 20011210 | 이기웅 [email protected]

6/10

* 사족: 이들의 데뷔 앨범인 이 작품은 러닝타임 32분에 총 여덟 곡이 수록된 미니 앨범이다. 과거의 LP시대 같으면 이 정도 분량만으로도 충분히 정규 앨범으로 취급될 수 있겠지만 현재의 조건에서 이 앨범은 EP로 밖에 여겨지지 않고 실제로 그에 준해서 가격이 책정되었다. CD의 도래 이후 뮤지션들이 얼마나 강화된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입증해 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수록곡
1. Yolanda
2. Giant Robo
3. The Garnish
4. I Love It When A Plan Comes Together
5. Luke Warm Skywater
6. [……] 7. The Body Is Still There But The Mind Is Gone
8. I Am Your Father

관련 사이트
The Rock Of Travolta 공식 사이트
http://www.therockoftravolta.com
The Rock Of Travolta 팬 사이트
http://www.funac.org/therockoftravolta/therock.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