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04011122-0323book_hiphopconnection[힙합 커넥션: 비트, 라임 그리고 문화]

지은이: 양재영
펴낸 곳: 한나래
펴낸 날: 2001년 11월

[힙합 커넥션: 비트, 라임 그리고 문화]는 [weiv]의 ‘us line’ 코너를 맡아 미국 힙합의 생생한 동향을 전해주었던 저자의 기존의 글과 새로 쓴 몇 개의 글을 묶은 책이다. 이미 발표된 글이 중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관통하는 뚜렷한 주제 의식 때문에 책으로 묶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저자는 미국에서 흑인음악과 흑인문화를 공부하는 인류학 연구자답게, 미국 사회의 맥락 내에서 흑인문화와 흑인음악의 위치는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를 밝히고자 하며 그 가운데서 ‘힙합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종종 흑인음악을 들을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때로는 너무나 놀라운 가창력, 때로는 넘쳐흐르는 성적 에너지… 그래서 서울 거리에서 지나치는 흑인 여자를 보면 소울 가수처럼 마력적으로 노래부르는 모습을 상상하고, 덩치 큰 흑인을 보면 ‘섹스 머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또 건들거리면서 지나가는 흑인에게 말을 걸면 갱스터 랩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갖게 되기도 한다. 무식하게 얘기하면 이런 ‘착각’은 모두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았거나 흑인음악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진짜 흑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쿨’한 태도”를 뜻하는 ‘네그리튜드’는 주류 미디어와 대중문화 상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주입된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디어와 문화산업은 이와 같은 기제를 통해 마이너리티를 끊임없이 미국 주류 사회로 편입시켜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의 전제이다. 갱스터, 영웅화된 흑인 청년 등 미국 내의 마이너리티(이 경우에는 게토의 흑인)의 생생한 삶과는 별로(혹은 전혀) 관계없이 과장되고 뒤틀린 문화적 산물만을 인정함으로써, ‘다문화주의’라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미국 사회의 불평등한 삶의 구조를 지속시켜주는 기제로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지속시켜주는 이런 환영으로부터, 미국 내에 사는 흑인 청년들에서부터 미국 바깥에 사는 제3세계 나라 젊은이들까지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에서 힙합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누가 진짜 힙합인가, 누가 더 흑인 같은가 따위가 중심이 된다. 저자가 보기에는 이런 태도는 ‘네그리튜드’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변방의 힙합 수용의 전형적인 모습일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힙합은 (게토의) 흑인(청년)의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백인 주류 사회와 아프로-아메리칸 청년들이 경합을 벌이는 하나의 문화적 장”이다. 따라서 재전유, 갈등과 투쟁, 타협과 일탈, 경합 등의 단어가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게 된다. 저자는 이와 같은 힙합의 ‘문화적 형성’ 과정에서 테크놀로지와 하이브리디티에 특히 관심을 가지며 우연성, 다양성, 자발성을 강조한다.

다른 한편 저자는 지독한 힙합 팬답게 힙합에 대한 해박한 음악적, 배경적 지식을 바탕으로 ‘미국 힙합 견문기’를 늘어놓는다. ‘변방’ 한국에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신속 정확함과 폭넓음을 무기로 삼아 풀어놓는 저자의 힙합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흥미로운 점은 힙합 연구자로서의 저자의 아카데믹한 관심과 힙합 팬으로서의 저자의 관심이 만나는 지점이다. 저자는 테크놀로지의 관점에서 1980년대의 힙합을 일별한 후(1부), 베이 에리어 힙합, 턴테이블리즘, 뉴욕 언더그라운드 힙합 등 힙합의 현재적 경향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대체로 ‘언더그라운드’ 영역에 속하는 힙합 조류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저자가 이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 힙합에서 네그리튜드, 테크놀로지, 하이브리디티의 문제를 재전유하여 새로운 힙합이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단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D.I.T.C. 패거리는 갱스터 멘탈리티의 재전유를 통해 주류 시장과 경합을 벌이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서 명확한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하며, 일련의 디제이들은 컷앤믹스나 컷앤페이스트 등의 테크놀로지를 직접적으로 활용하여 테크놀로지와 구술성의 창조적 결합이라는 힙합의 본령으로 향하고 있으며, 탈리브 크웰리(Talib Kweli), 모스 데프(Mos Def), 블랙컬리셔스(Blackalicious), 자이언 아이(Zion I) 등 ‘인텔리전트 힙합’은 아프로-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범아프리카주의의 정체성을 설파한다. 다시 말해 이런 조류는 힙합의 재전유, 갈등과 투쟁, 타협과 일탈, 경합이 일어나는 문화상품이자 문화적 장이다.

(최신 힙합 조류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낯선 힙합 뮤지션 이름이 너무 많이 나와서 당황스럽다는 점, 책 내에서(그리고 같은 글 내에서도) 내용이 자주 반복이 된다는 점, 디자인과 서체가 편안한 독서로 이끌지 못한다는 점 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즘과 팬덤이 행복하게 만나는 이 책은 새로운 문화로서의 힙합에 관심을 갖는 독자나 최신 힙합 경향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와 정리를 열망해온 독자 모두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20011203 | 이볼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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