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주말을 맞이했다는 가뿐한 마음을 안고 교보문고로 향했습니다. 별다른 스케줄이 없는 한 주말에는 대개 교보를 방문하는데요, 책 구경 음반 구경을 하며 ‘문화의 공기’를 들이마시고자 하기 때문입니다(물론 ‘구매’를 목적으로 방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뭐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제 소박한 라이프 스타일 중 일부입니다. 와인(보졸레 누보?)이니 스키니 요즘 풍미하는 (약간은 호사스런) 취미보다야 보잘 것 없어 보이겠지만 말이지요.

교보문고 내 음반 매장 핫 트랙스(Hot Tracks)에 들렀습니다. 이미 양손에는 이것저것 고른 책과 잡지들이 담긴 봉투가 들려있었고(위에서 언급한 ‘호사스런’ 취미나 이런 취미나 들어가는 비용은 결국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음반 매장은 그저 아이쇼핑 또는 정보 수집(!)의 차원에서 별 계획 없이 간 것이었습니다.

매장에는 다소 놀라운 광경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새로 나온 주력 상품을 진열해 놓은 코너를 장악한 아티스트는, 그러리라 예상했던 이들(예를 들면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마이클 잭슨 등)이 아니었고, 뜻밖에도 1970년대(그러니까 30년이 다 되어가죠?)를 풍미했던 아바(ABBA)와 비지스(Bee Gees)였습니다. 이들이 갑자기 재결합하여 새 앨범이라도 내놓았는가? 물론 비지스는 얼마 전 정규 앨범을 내놓은 바 있지만, 아바는 해산한지 20년이 다 되도록 감감 무소식이지요. 이번에 엄청난 마케팅 세례를 받으며 매장을 달구고 있는 CD도 아바와 비지스의 지난 히트곡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이었습니다. 즉 아바의 경우는 [The Definite Collection]이라는 제목의, 비지스는 [Their Greatest Hits – The Record]라는 타이틀의 더블 CD랍니다.

20011201020752-0323abba(현재 나름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비지스에겐 미안하지만) 도대체 어느 때 비지스와 아바인데, 21세기로 완연히 들어선 지금까지도 이렇게 난리란 말인가? 저는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물론 비틀스나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잊을 만하면 새로운 포장술로 부활하여 소비자들의 지갑을 넘보는 ‘상습범’들이 없지는 않지요. 아바의 경우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Gold]라는 컴필레이션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아바에 대한 붐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마치 그 동안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마치 이런 컴필레이션은 난생 처음 등장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말입니다. [The Definite Collection]의 재킷 사진조차 이들이 활동할 때 나온 편집 음반인 [Greatest Hits, Vol.2]에서 그대로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20011201020752-0323beegees비지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그들은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는 ‘현역’이지만, 이미 여러 종의 컴필레이션이 매장에 쫙 깔려있거든요. [Their Greatest Hits – The Record]의 수록곡들도 이들의 최근 앨범인 [This Is Where I Came In]에서 뽑은 몇 곡을 빼놓고는 과거 편집 음반들과 대동소이하더군요(하긴, 지난 해 [1] 앨범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놓은 비틀스의 경우는 훨씬 더 노골적이긴 하지요).

그래서 웬만한 새 CD라면 군침부터 삼키는 저로서도, 휘황찬란한 판촉에도 불구하고 외면할 수밖에 없었지요. 결정적으로 저는 이들의 박스 세트(아바는 [Thank You For The Music], 비지스는 [Tales From The Brothers Gibb])를 갖고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바나 비지스 같은 ‘좋았던 옛 것’의 전폭적인 부활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슈퍼 스타였고, 이들이 만들어낸 주옥같은 팝송들이 오늘날까지도 생명력과 매력을 잃지 않고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호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부활의 가장 큰 이유겠지요. 하지만 이런 기본 전제를 바탕으로, 낡은 것을 새로워 보이게 광택을 내어 최신 기획 상품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음반 회사의 상업 전략과, 연말연시를 맞아 가족 친지에게 줄 선물이 마땅치 않아 고민 중인 소비자들의 욕구(앞서 말했듯, 시대와 세대를 가뿐히 뛰어넘는 아바와 비지스의 소구력은 당연히 일급 상품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지요)가 상호 화학작용을 이루어 현실화 된 게 보다 정확한 이유가 아닐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우려가 드는 것은, 21세기가 되어서도 30년 전의 아바와 비지스가 여전히 신상품으로 각광을 받는 이러한 현상이, 다른 게 아니라 더 이상 새롭고 혁신적인 요소가 등장하지 못하고 한계에 다다른 채 기존의 클리셰 만을 뱅글뱅글 답습할 뿐인, 별볼일 없는 오늘날 대중음악계의 현실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 싶기 때문입니다. 20011126 | 오공훈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