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eran Comes Alive…

지난번 시리즈 마지막을 “러시아의 젊은 뮤지션들은 과연… ‘서방의 트렌드의 원숭이’, ‘신생 프로덕션(기획사)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는가.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그리고 1999년 이런 음악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라고 마무리했다. 그리고는 젬피라(Zemfira: 본명은 Zemfira Ramazanova)의 곡을 한 개 소개했다. 1999년 젬피라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이제까지 소개했던 아끄바리움(Akvarium), 알리사(Alisa), 끼노(Kino), D.D.T. 등 러시안 록의 전설들에 대한 관심은 그저 ‘한때의 좋았던 시기의 향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20011130115524-0323series01-zemfira그림설명: 러시안 록의 밀레니엄 베이비 젬피라(Zemfira)
젬피라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자. 그런데 젬피라같은 신성의 등장이 1990년대 러시아 대중음악계의 상황이 ‘한국과 비슷한’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으며, 그 결과 록 음악이 쫄딱 망해 버렸다는 이야기와 모순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1990년대 중후반 러시아를 찾은 사람이라면 러시안 록이 ‘예전 같지는 않다’는 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심히 보면 러시안 록이 ‘한국 같지는 않다’는 징후도 있다. 무엇보다도 1980년대 ‘러시안 록의 전설’들은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문 예외를 제외하곤 ‘예비역’ 같은 한국 록의 베테랑들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아끄바리움(Akvarium), D.D.T., 알리사(Alisa), 뗄레비조르(Televizor) 등 뻬쩨르부르그 록 클럽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베테랑들은 현재 40줄을 넘어섰지만 거의 매년 ‘신보’를 발매하고 러시아 전역에서 투어를 벌이고 있다. 아끄바리움의 공연장은 넝마를 입은 도인 같은 보리스 그레벤쉬꼬프의 ‘교시’를 들으러 온 청중들의 영적 집회 같고, D.D.T.의 공연장은 턱수염을 기른 유리 셰브추끄의 사자후와 더불어 청중들이 ‘롤링(rolling)’하면서 춤을 추는 곳이 되고, 알리사의 공연장은 닥터 꼬스쨔(Dr. Kostya)의 카리스마 넘치는 캠프(camp)와 더불어 약물 분위기가 넘치는 곳이 된다. 모스끄바나 에까쩨린부르그(구 스베들로프스끄) 등도 뻬제르부르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해 보이지만 베테랑들은 계속 활동 중이다.

거기에 1990년대 중반 경부터 러시아의 음악산업이 ‘CD시대’로 접어들면서, 과거에는 비합법적으로 복제된 카세트 테이프나 무단 복제된 LP로만 들을 수 있었던 이들의 음악은 이제 디지털로 리마스터되어 CD로 속속 재발매되고 있다. 정규 앨범과 더불어 미발표 음반들(주로 비공식 라이브 음반들)이나 ‘베스트 음반’들도 속속 발매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도 이들 록 베테랑의 오래된 음반들이 대형음반매장에 다수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면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런 ‘베테랑들의 꾸준한 활동’은 무엇을 의미할까. 한편으로 음반을 발매하면 최소한 ‘기본’은 팔린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반을 계속 발매하고 투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의 반영이다. 전자가 한국 같은 ‘록 후진국’과의 차이점이라면, 후자는 영미권 등 ‘록 선진국’과의 차이점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영미권의 ‘록 공룡들(rock dinosaurs)’과 비슷하게 되었지만, 음악으로 생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일 뿐 부와 명예를 과도하게 누리는 서양의 록 스타들과 비하면 매우 가난한 편이다. 어쨌거나 1980년대 중반까지 ‘아마추어’로 불리던 록 뮤지션들의 일부나마 ‘프로페셔널’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단 행복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면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무엇보다도 러시아는 현재 중국과 더불어 불법 복제 음반의 천국으로 악명 높다. 불법 복제 음반은 소득 수준에 비해 음반 가격이 매우 높은 나라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평균 10만원 미만의 일반 근로자의 소득 수준으로 1만원에 가까운 ‘정품’을 구매하는 일은 ‘모험적’일 수밖에 없다. 저작권 제도도 아직 미비한 상태라서 뮤지션이 음반 판매를 통해 수입을 획득하기도 힘들다. 뮤지션들이 공연 투어 등 ‘몸으로 때워서’ 수입을 획득해야만 하는 이유도 이 점과 무관치 않다.

거기에 1990년대 초의 험난한 시기에 열성파(entusiasts)들이 개장한 언더그라운드의 록 클럽들은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상징적인 사건은 뻬쩨르부르그의 땀땀(Tamtam) 클럽이 1996년 문을 닫은 것이다. 아끄바리움의 원년 멤버였던 세바 가껠(Seva Gakkel)이 그룹을 탈퇴하여 1991년 개장한 땀땀 클럽은 스쁠린(Splin), 떼낄라재즈(Tequilajazzz), 펩시(Pepsee) 등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밴드들의 산실이 되었지만 결국 경영난을 이기지 못했다. 나아가 텐 클럽(Ten Club), 아트 클리닉(Art Clinic) 등 땀땀 클럽과 비슷한 시기에 개장한 클럽들도 비슷한 시기에 문을 닫았다. 새로 문을 연 클럽도 있지만 뻬쩨르부르그나 모스끄바 같은 대도시에는 허름한 록 클럽보다는 화려한 나이트클럽이나 고가의 바들이 더 많이 생기고 있다. 현재는 슈퍼그룹의 지위에 오른 D.D.T.의 유리 셰브추끄는 1997년에 클럽 활성화를 위해 클럽을 순회하는 마라톤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활성화’를 위해 시도한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의 어려움을 반증하는 듯하다. 셰브추끄 역시 “(뻬쩨르부르그에서)로큰롤은 5년 동안 클럽에서 살아 있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5년 동안이란 1991년부터 1996년 사이의 기간이고, 따라서 1996년은 다시 한번 ‘한 시대의 종언’이었다. 그 사이에 많은 록 뮤지션들은 음악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했다.

그런데 이는 러시안 록 청중의 재구성이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허름한 PA를 가진 지하실의 클럽, 조악한 음질과 아트워크를 가진 테이프(마그니즈다뜨), 어렵고 난해한 가사, 어둡고 음울한 뮤지션의 이미지 등은 러시아 신세대들에게는 ‘러시아의 과거’로 인식될 뿐이고, 따라서 1990년대 중반 경 젊은 세대들 대부분은 록 음악을 나이든 세대의 유물로 남겨두고, 자신들은 서방산(産)이든 러시아산(産)이든 팝(러시아어로 ‘빱싸(popsa)’)을 들었다. 만약 러시안 록이 ‘부활’하고자 한다면 이런 새로운 감성과의 대면이 불가피해 보인다.

1997년 이후: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

러시아의 음악산업의 실세는 ‘음악 마피아’라고 한다. “걸프렌드의 매니저인 지하 비즈니스맨(shady businessmen managing their girlfriends)”이라는 한 평론가의 표현에 의하면 이들이 어떤 인물일지 짐작할 수 있다(한국인인 우리는 너무 짐작이 잘 돼서 문제다). 이렇게 마피아가 지배하는 러시아 음악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내기는 힘들다(한국의 음악산업이 돌아가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 명 되는가?)

그렇지만 1990년대 초반의 무법천지의 시대를 거쳐 1990년대 중반 경부터는 러시아 음악산업계에도 저작권과 (출)판권에 대한 제도와 관행이 어느 정도 확립되고 있는 듯한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상징적인 예로 1990년대 중반부터는 러시아에서 발매되는 음반들에도 판권을 표시하는 ⓟ라는 기호와 저작권을 표시하는 ⓒ라는 기호가 붙게 되었다. 이는 단지 팝뿐만 아니라 록에도 ‘레이블(혹은 프로덕션)’ 제도가 탄생하고 있는 현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로즈(Moroz), 리얼(Real), 제너럴(General), 트리아리(Triarii), 엑스트라폰(Extraphone), 필리(Fili), 발레프(Valeev), 퍼즈(Fuzz), 라이즈(Rise) 등은 ‘러시안 록’에 특화한 레이블들이다. 또한 DDT 레코드나 베니티(Vanity)처럼 뮤지션 스스로 설립하여 자신의 저작권과 판권을 관리하는 레이블들도 탄생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 러시안 록의 베테랑들의 음반들이 CD로 재발매되고 있는 현상도 이런 레이블들의 탄생과 직결된다. 특히 마로즈 레코드의 경우 ‘러시안 록의 전설(Legendy Russkovo Roka)’ 등의 타이틀로 여러 베테랑 밴드들의 ‘베스트’ 형식의 음반을 속속 발매하고 있다. 블라지미르 비소쯔끼의 전집 음반을 발매하고 있는 곳도 마로즈 레코드다.

20011130115525-0323series02-kinoprovy그림설명: 빅또르 쪼이 트리뷰트 앨범 [Kinoprovy] 표지
러시아의 록 음악 전문 레이블들이 ‘과거를 우려먹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우선 눈에 띄는 현상은 신예 록 밴드들의 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리얼(Real) 레코드에서 발매하는 [Nashe Stvye], 라이즈(Rise) 레이블에서 발매하는 [Maxidrom](Rise Records), 퍼즈(Fuzz) 레코드에서 발매하는 [Fuzzbox](Fuzz) 등은 시리즈로 발매되면서 신인 밴드들의 ‘돌파(breakthrough)’를 돕고 있다. 이들 중 특히 리얼 레코드는 블록버스터 영화 [Brat(Brother)](1997)과 [Brat 2(Brother 2)]의 사운드트랙을 신진 유명밴드의 컴필레이션 형식으로 만들고, 1999년에는 빅또르 쪼이의 트리뷰트 음반 [Kinoprovy(Kino Collections)]을 발매하여 가히 ‘대박’을 기록했다.

현 시점에서 보이는 러시안 록의 ‘부활’의 양상에 대해 정확히 평가하기에는 자료와 정보가 부족하다. 어떤 점에서는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얼터너티브 록’이 주류로 부상하는 과정과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지만 속단을 내리기는 힘들다. 이는 현재의 러시안 록의 부활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인디펜던트’한 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방금 언급한 리얼 레코드의 경우 라디오 방송국 [Nashe Radio]을 거느리고 있는 등 러시아 내에서는 ‘미디어 재벌급’에 속한다. [Maxidrom]의 경우도 막시뭄 라디오(Maximum Radio)의 공연 투어 실황을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이라서 ‘방송국과의 유착관계’를 엿볼 수 있다. 궁금한 것은 이들 신흥 레이블들이 영미 등 선진국 수준의 현대적이면서도 대안적인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마피아가 음성적으로 지배하는 악성 시스템의 하위 시스템으로 포섭되고 있는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확정적으로 답변하기는 힘들다.

어쨌거나 1990년대 후반에 러시안 록에서 세대교체가 완성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 [Brat]의 사운드트랙이나 빅또르 쪼이 트리뷰트 음반에 참여한 면면을 훑어보면 현재 러시아의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국내 록 밴드’가 누구인지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Brat]의 경우 [Brat 1]은 아끄바리움과 나우찔루스 뽐삘리우스(Nautilus Pompilus) 같은 베테랑급이 주역이었지만, [Brat 2]에는 비야체슬라프 부뚜소프(Vyacheslav Butusov), 아욱찌온(Auktyon), 아가따 끄리스띠(Agata Kristi) 같은 베테랑급들의 곡도 있지만, 젬피라(Zemfira), 스쁠린(Splin), 치체리나(Chicherina), 마샤 이 메드베지(Masha I Medvedi) 등의 신예 밴드가 주된 역할을 하고 있다. 빅또르 쪼이 트리뷰트의 경우는 1950년대 초반에 태어난 보리스 그레벤쉬꼬프나 듀샤 로마노프(Dyusha Romanov: 아끄바리움의 원년 멤버)부터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젬피라(Zemfira)와 치체리나(Chicherina)에 이르기까지 ‘노장과 신예의 조화’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들 신진 록 밴드들의 음반들을 차분하게 리뷰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여건이 조성될 때까지 기회를 미루어야 할 듯하다. 간단히 몇 마디로 말해버릴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신진 밴드들은 1990년대 영미 팝 음악계에서 성공을 거둔 밴드들을 연상시키는 일이 많아서, ‘로컬 록의 독창성’ 면에서는 선배 밴드보다 오히려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이는 ‘후진국 록’의 일반적 특징일 수밖에 없고, 이를 두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렇지만 상세히 알지도 못하는 다른 나라의 음악에 대해 백화점식의 나열은 무모해 보인다. 그러기 위해 일단 빅또르 쪼이 트리뷰트 음반에서 첫 트랙을 차지한 무미 뜨롤(Mumii Troll’), 그리고 서두에 언급한 젬피라라는 존재에 집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무미 뜨롤… 그리고 젬피라

Mumiy Troll’의 일리야 라구쩬꼬(Ilya Lagutsenko)
“록 음악은 변방에서 창조적 혁신이 발생한다”는 금언은 1990년대 러시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름 아니라 ‘두만강에서 멀지 않은’ 극동 지역에 속하는 블라지보스똑(Vladivostok)에서 ‘러시아의 비틀스’가 탄생한 것이다. 이때 비틀스라는 말은 ‘소녀들이 소리지르는 기타 밴드’라는 뜻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무튼 그 당사자는 일리야 라구쩬꼬(Ilya Lagutsenko: 1968년생)라는 인물이 이끄는 무미 뜨롤(Mumiy Troll)이라는 밴드다. 이들은 1996년 정식 데뷔 음반 [Morskaya(Nautical)]를 발표한 이래 러시아 전역에서 가히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은 올해 5월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러비전 2000(Eurovision 2000)]에 러시아 대표로 참여하여,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명성을 쌓고 있다. 이때 연주한 “Lady Alpine Blue”는 유럽 각지의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Mumiy Troll’ – Lady Alpine Blue

무미 뜨롤은 ‘블라지보스똑 출신’이라는 점 외에도 몇 가지 점에서 이채롭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음악은 ‘록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팝의 감성이 강하다. 이들은 실제로는 1982년부터 존재했던 밴드인데, 틴에이저 밴드였던 이들에 대해 당시의 록 평론가들은 ‘달콤한 팝스터(sweet popster)’라고 다소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 물론 블라지보스똑의 공산당 지부에서는 “블랙 사바쓰와 섹스 피스톨스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가장 위험한 밴드”라고 불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지금도 이들의 음악은 ‘로까팝(rockapop)’이라는 신조어로 불린다.

여기에는 프론트맨인 일리야 라구쩬꼬가 해군 입대 → 교환학생으로 중국 체류 → 가족과 함께 영국 이주로 이어지는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 작용한다. 즉, 해군에 입대한 뒤로 밴드 활동은 실질적으로 중단되었고, 지금의 무미 뜨롤은 라구쩬꼬가 런던에 체류하고 있을 때 오랜 친구이자 현재의 매니저의 권유로 재결성된 밴드다. 그래서 이들의 데뷔 음반은 블라지보스똑도, 모스끄바도, 뻬쩨르부르그도 아닌 런던에서 레코딩되었다. 무미 뜨롤의 음악이 경박한 팝도 무거운 록도 아니면서도 새로운 세대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은 라구젠꼬가 러시안 팝의 비즈니스 센터인 모스끄바는 물론 러시안 언더그라운드 록의 메카인 뻬쩨르부르그와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고 활동했다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의 목소리는 ‘느끼’하고 가사는 ‘사춘기적’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어떤 평론가는 그를 미국 시카고 출신의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와 비교하기도 한다. 물론 음악 스타일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비유를 곧이곧대로 들으면 낭패스러울 것이다. 오히려 라구쩬고의 목소리는 모리씨(Morrisey)나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 등 영국 출신의 ‘유미주의자들’과 닮았다. 1990년대 록 음악의 글로벌 트렌드의 상징작용이 계급적·인종적 저항보다는 성 반란(sex revolts)에 더욱 큰 비중을 두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제는 세계체제에 통합되어 ‘글로벌 속의 로컬’이 된 러시아의 경우도 이런 트렌드로부터 예외가 아닌 듯하다. 라구쩬꼬는 ‘성난 젊은 남자(angry young man)’이라는 동서양을 막론한 록 영웅의 이미지와는 상이하게 숫기 없는 듯하면서도 섹시한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 있다.

그 점에서 일리야 라구쩬꼬가 젬피라의 데모 테이프를 발견한 것은 우연찮은 것이었지만, 라구쩬꼬의 후원 하에 그녀가 현재 러시안 록 최고의 히로인이 되어 있다는 점은 그저 우연찮은 것이 아니다. 일리야 라구쩬꼬가 젬피라를 길러낸 것은 마치 보리스 그레벤쉬꼬프가 빅또르 쪼이와 끼노를 길러낸 것과 유사한 셈이다. 1999년 데뷔하여 가히 ‘밀레니엄 베이비’라고 할만한 젬피라(1976년생)는 우파(Ufa) 출신이자 타타르(tartar)계이다. 우파는 D.D.T.의 리더 유리 셰브추끄의 고향이기도 한 곳으로 우랄 산맥 밑에 위치한 곳이다. 이른바 ‘변방 소도시 출신의 얼터너 걸(alterna girl)’인 셈이다. 그녀는 단지 ‘대중적 인기’의 차원을 넘어 ‘세대의 목소리 어쩌구’하는 매스 미디어의 호들갑에 딱 어울리는 행동으로 매스 미디어의 초점이 되어 있다.

한 외지의 표현에 의하면 젬피라는 “엘비스 프레슬리, 섹스 피스톨스, 커트니 러브가 하나로 뭉쳐진”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선정적 타이틀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녀의 음악과 행동은 ‘성적 도발’이라는 기호 아래 모아진다. 요즘은 한국의 스포츠신문이나 연예정보지 못지 않게 선정적이 된 러시아의 연예잡지에서 한때 ‘트랜스젠더’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중성적인 이미지의 그녀는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무대에 오르고, 공공연히 담배를 피우고, 앨범에 사진을 한 장도 싣지 않는 등 러시아 대중음악계의 관습을 허물어대는 일련의 파격적 행동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블라지미르 나보꼬프(Vladimir Nabokov: 1899-1977)를 자신의 우상이라고 밝힌 사실도 그녀의 신비적 이미지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Zemfira의 공연장면
젬피라의 목소리는 ‘인터내셔널 팝/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새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부드럽게 속삭일 때는 수잔 베가(Suzanne Vega)를, 열창할 때는 (포티스헤드의) 베쓰 기븐스(Beth Gibbons)를, 거칠게 토해낼 때는 아니 디 프랑코(Ani DiFranco)를 각각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를 든 영미의 록 우먼들보다 더 다채로운 창법을 소화해낼 줄 알고, 그녀의 프레이징은 억세고 투박하게 들리기 쉬운 러시아어를 마치 프랑스어처럼 우아하게 둔갑시켜 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성적 모호성을 표현한 난해하고 복잡한 시어들로 만들어진 가사를 만들어낸다. 레즈비언이라는 혐의는 지금까지도 계속 따라다니고 있으며, 특히 AIDS라는 뜻의 “Spid”의 곡에 나오는 “나는 우리가 곧 죽어버릴 것이라는 걸 알아, 랄랄라”라는 가사는 사회적 논란을 촉발시켰다. “드레스를 입은 커트 코베인(Kurt Cobain in a Dress)”라는 러시아 언론의 호칭은 그녀가 어떤 아이콘이 되어있는지를 함축적으로 설명해 준다. 요는 기성세대의 남자가 도저히 이해못하는 젬피라의 가사를, 러시아의 예민한 소녀라면 정확히 이해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점에서 1990년대 후반에 데뷔한 러시안 록 밴드에 프론트우먼이 많다는 사실도 하나의 징후로 읽힌다. 젬피라를 위시하여 치체리나(Chicherina), 마샤 이 메드베지(Masha I Medvedi), 노츠니 스나이뻬리(Nochnie Snaipery) 등은 여성 보컬을 앞세우고 있고, 이들 중에는 싱어송라이터를 겸하는 경우도 많다. 1980년대까지의 소비에트 팝(이른바 ‘에스뜨라다(estrada)’)에서 디바들이 ‘직업적 작곡가들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를 넘지 못했다면,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록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남자들의 세계’가 지배했다면 최근의 러시아 록 음악계의 현상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성 혁명(sexual revolution)을 반영함과 동시에 이를 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떤 혁명이든 위험은 있게 마련이고 알수(Alsu)의 예에서 보듯 틴 아이돌 여가수들은 무언가 ‘아무개의 노리개’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90일간의 러시안 록 (가상) 여행을 마치

무미 뜨롤과 젬피라 등이 선전하고 있어도 러시안 록의 장래가 ‘아주 밝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록 음악’이라는 실체의 의미가 이제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기타 록(guitar rock)’에만 매달리지 않는 1990년대 이후 뮤지션들의 감성이 러시아라고 해서 예외일 리는 없다. 예를 들어 록 밴드로 출발한 떼낄라재즈는 기타 밴드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프로디지니 나인 인치 네일스 같은 스타일에 접근하고 있고, 록 밴드 출신의 베테랑들이 결성한 데드슈끼(Deadshki) 같은 일렉트로닉 프로젝트 그룹은 각종 리믹스 작업과 더불어 자신들의 정규 앨범도 발표하고 있다. 랩·힙합을 차용한 팝의 경우도 이전에는 듣기 괴로운 수준의 음악밖에 없었지만 최근 나온 음악들은 그래도 기본적 수준을 충족한 프로듀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열창형 발라드는 어느 나라의 것이든 괴롭고, 러시안 팝에도 이런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White Niggaz – Nash Gorod

거기에 대중음악의 청중들이 ‘러시안 록’과 ‘서방의 록’을 가려서 듣는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아끄바리움의 디스코그래피를 보유한 남자라면 밥 딜런과 그레이트풀 데드(The Grateful Dead)의 사상을 자신의 인생관으로 삼고 있을 것이고, 젬피라를 좋아하는 소녀라면 분명히 앨러니스 모리셋(Alanis Morrisette)의 CD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뮤지션들 역시도 외국에서 레코딩을 하거나 투어를 다니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전 세대처럼 ‘서방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어렸을 때부터 잡지와 TV에서 서방세계를 본 세대라면 그게 자연스럽다.

이런 현상을 볼 때 비단 러시아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로컬’ 록이란 것이 이제 더 이상 ‘자국의 음악적 전통에 뿌리박은 록 음악’, ‘자국민의 정서를 대변한 록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음악적 지역성(musical locality)은 항상 그리고 이미 지구적 매개 하에서 부단히 형성되는 가변적 개념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맨체스터 사운드’라는 것이 ‘맨체스터의 빛나는 음악적 전통을 발굴하여 계승한 사운드’라고 못박기는 힘들다. 기호와 이미지의 순환이 문자 그대로 지구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로컬리티는 이제 더 이상 진실성, 공동체, 토착성의 의미가 아니다. 최근에 읽은 한 문헌에서 “록 음악은 죽는 것이 아니라 지리적으로 이동한다”는 금언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도 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당분간은.

1980년대까지 러시아의 록 음악은 ‘고도로 국지화된(highly localized)’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 외부 세계와 고립된 상태에서 자기 자신의 언어와 약호를 가진 록 음악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신실하게 존중받고 나아가 장엄하게 분출했다는 사실은 이미 앞에서 본 바 있다. 그리고 이제 러시아가 ‘정규적 국가(regular country)’가 된 상태에서 록 음악은 힘겨운 상황에서도 ‘지리적으로 이동하면서’ 나름대로 흥미로운 전개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글로벌 록 커뮤니티’에서 러시안 록은 아직은 국제적 영향을 미치는 면보다는 그 영향을 흡수하는 면이 더욱 강하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과 영국 오직 두 나라를 제외한다면 세계의 모든 나라가 그럴 것이다. 문제는 이런 문화적 상호교환이 ‘문화 제국주의’로 귀결되는가, 아니면 진정한 국제주의를 낳는가일 것이다. 그러기에 러시아는 문화적 교환의 역사를 오랜 시간 충분히 갖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본래 ‘슬라브권’에 해당하는 (구)체코슬로바키아와 (구)유고슬라비아의 록 음악에 대해서도 마저 훑어보려는 계획을 수정하여 다음에는 중남미 대륙으로 날아가 그곳의 록 음악에 대해 알아보고 돌아오기로 하자. 그곳은 또 하나의 록 음악의 변방이지만 ‘센터’와 오랜 동안 교류해온 것이라서 조금 다른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단, 러시아 여행으로 피곤해진 심신을 한 달 정도 추스린 다음에… 20011130 | 신현준 [email protected]

P.S.
그 동안 이 시리즈를 읽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 글을 쓸 때 너무도 많은 도움을 준 박일경님께 이 지면을 빌어 감사를 드리고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그의 앞길에 축복을 빌고 싶습니다. 이제까지의 글에서 부정확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 주시면, 뒤에 단행본으로 출간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남아메리카의 케이스와 함께 출간할 계획이므로 언제일지 기약하기는 힘들지만.

주) (구)체코슬로바키아에는 1970년대 플래스틱 피플 오브 더 유니버스( Plastic People of the Universe)라는 유명한 아방가르드 재즈-록 그룹이 활동했다. 프랑크 자파(Frank Zappa)와 루 리드(Lou Reed)가 열악한 환경 하에서 작업했다면 나올 만한 음악을 전개했던 그룹이다. 1968년의 프라하의 봄이 진압된 뒤 가장 혹독한 정권이 들어선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이들 그룹의 멤버들 역시 물리적, 정신적으로 탄압 받았다. 한편 (구)유고슬라비아에는 영화감독 에미르 꾸스뜨리챠(Emir Kutricia)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여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고란 브레고비치(Goran Bregovic)가 이끌었던 비옐로 두그메(Bijelo Dugme)라는 그룹이 ‘유고슬라비아의 비틀스’로 군림했다고 한다. 이들 외에도 1970년대 동유럽에는 수많은 ‘관제’ 아트 록 밴드들이 있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헤비 메탈과 펑크 록의 영향을 받은 밴드들이 존재했다. 불행히도 1990년대 이후에는 ‘러시아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정도밖에는 아는 것이 없지만.

관련 글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1): 빅또르 쪼이(Viktor Tsoi):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아니, 쌍뜨 뻬제르부르그의 마지막 영웅 – vol.3/no.16 [20010816]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2): 구 소비에트 사회에서 예술음악, 민속음악, 대중음악 – vol.3/no.17 [20010901]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3): 소비에트 체제의 기생충들의 역사 – vol.3/no.18 [20010916]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4): 1980년대 록 뚜소브까의 시대 – vol.3/no.20 [2001016]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5): 1980년대 말 소비에트 록의 영광과 좌절 – vol.3/no.21 [20011101]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6): 1990년대의 카오스… 그리고 록 커뮤니티의 와해 – vol.3/no.22 [20011116]
Mumiy Troll’, [Morskaya] 리뷰 – vol.3/no.23 [20011201]
Mumiy Troll’, [Tochno Rtut Aloe(Exactly Like Mercury’s Aloe] 리뷰 – vol.3/no.23 [20011201]
Splin, [25 Kadr] 리뷰 – vol.3/no.23 [20011201]
Zemfira, [Zemfira] 리뷰 – vol.3/no.23 [20011201]
Zemfira, [Prosti Menya, Moya Lyubov’] 리뷰 – vol.3/no.23 [20011201]
[Brat 2(The Brother 2)]: 21세기 초 러시아식 블록버스터의 전형 – vol.3/no.23 [20011201]

관련 사이트
러시안 록 데이터베이스 (바이오그래피, 리뷰, 음원)
http://txt.zvuki.ru
러시안 록 mp3 다운로드 사이트
http://www.omen.ru
빅또르 쪼이 트리뷰트 앨범 [Kinoprovy(Kino Collections)]의 전곡 mp3 다운로드 페이지
http://dom.xocah.org:1919/aod.php
Mumiy Troll’ 사이트들
http://www.mumiytroll.com (러시아어 공식 사이트)
http://uk.geocities.com/mumiytrolluk (영국 팬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mumiytrollbelgium (벨기에 팬 사이트)
http://www.mumiytroll.subnet.dk (덴마크 팬 사이트)
Zemfira 사이트들
http://www.zemfira-online.orc.ru
http://www.salon.com/ent/music/feature/2000/02/29/zemfira (영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