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게 많은 미친놈들’ 정도의 뜻이려나… 아무튼 텐 싸우전드 매니액스(10,000 Maniacs)는 1981년 미국 뉴욕 주(‘뉴욕 시티’가 아니다)의 제임스타운(Jamestown)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나탈리 머천트(Natalie Merchant, 1963년생)는 제임스타운 커뮤니티 컬리지라는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스티븐 구스타프슨(Steven Gustafson, 베이스)이 컬리지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초창기의 밴드는 멤버가 12명에 육박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이런 사실을 들으면 텐 싸우전드 매니액스는 (영국의)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이나 (한국의) 노래를 찾는 사람들 같은 라인업으로 출발한 것으로 짐작된다. 1982년 경, 밴드는 나탈리 머천트(보컬), 로버트 벅(Robert Buck, 기타), 존 롬바르도(John Lombardo, 기타), 스티븐 구스타프슨(베이스), 제리 아우구스티니악(Jerry Augustyniak, 드럼), 데니스 드류(Denis Drew, 키보드)의 6인조로 정비되었다.

처음에 텐 싸우전드 매니액스(이하 매니액스)는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을 비롯한 뉴 웨이브 계열의 곡들을 로컬 클럽에서 연주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정감 있는 포크 록 사운드를 떠올린다면 다소 이례적이다. 하긴, 밴드의 이름도 B급 호러 영화인 [2,000 Maniacs]로부터 착안하여 지은 것이라니 10대 후반의 아마추어 시절에는 ‘기괴한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1982년 DIY로 제작한 데뷔 EP [Human Conflict Number Five]를 발표하고 이듬해에는 정규 앨범인 [Secrets Of I Ching]을 발표했다(영어식 발음으로 ‘아이 칭’이란 ‘내가 어쩌구…’라는 뜻이 아니라 [역경(易經)](=주역)을 말한다. 사실 [역경]의 중국식 발음은 ‘이 징(Yi Jing)’에 가깝다). 후자는 영국 인디 차트에서 정상에 오르는 등 이들의 이름을 서서히 알려준 앨범이다. 특히 나탈리 머천트는 수수한 이웃집 언니 같은 용모지만 무대에서는 “이슬람교의 탁발승(dervish)같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카리스마적 모습을 연출하여 당시 대학생들(그러니까 ‘미국의 386세대’)의 사랑을 받았다. [MTV Unplugged] 커버에 실린 사진에서도 맨발로 노래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매니액스는 1985년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메이저 레이블인 일렉트라(Elektra: 워너 브라더스 산하임)와 계약하여 두 번째 정규 앨범 [Wishing Chair]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전설적 포크 록 프로듀서’ 조 보이드(Joe Boyd)가 프로듀싱하여 영미 양국의 인디 차트에서 꽤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87년 롬바르도가 밴드를 떠났지만 밴드는 그들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In My Tribe]를 발표했고, 앨범 발표 전에는 R.E.M.의 순회공연에 서포트 밴드로 참가했다(이때부터 나탈리 머천트와 마이클 스타이프 사이의 ‘염문설’이 돌기 시작한다).

[Wishing Chair]는 빌보드 차트 44위까지 오르는 등 그들의 인기를 확고하게 만들었는데, 나아가 ‘메시지’ 면에서도 아동학대 문제(“What’s The Matter Here”), 문맹 문제(“Cherry Tree”), 전쟁 문제(“Gun Shy”), 환경 문제(“Campfire Song”) 등을 폭넓게 다루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이런 무거운 주제들을 추상적 구호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취했고, 이런 ‘하드코어적이지 않은’ 방식이 큰 설득력을 얻으면서 ‘하드코어 이후의 컬리지 록’을 대표하게 되었다.

[Wishing Chair]에서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1970년대를 풍미한 영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캣 스티븐스(Cat Stevens)의 “Peace Train”의 커버곡을 실은 점이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캣 스티븐스는 인도 출신의 시인 샐먼 루시디(Salman Rushdie)에게 ‘너의 운명에 저주 있으라’, ‘마호메드의 칼에 작살날 것이다’는 식의 망언(?)을 했는데, 매니액스의 커버곡은 이에 대한 암묵적 항의의 표현이었다.

매니액스의 음악은 ‘포크 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스타일이다. 당시 ‘대학생들의 영웅’이었던 R.E.M.과 비슷하게 징글쟁글한 기타사운드와 달콤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밝고 경쾌한 사운드와 더불어 무언가 애조 띠고 비의적(esoteric)인 느낌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머천트의 목소리가 큰 역할을 한 듯하다. 머천트의 목소리(그리고 이미지)는 여성(feminity)과 모성(maternity)을 동시에 가진 특이한 것으로서 ‘존엄성(dignity)’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1980년대의 목소리로 생각된다.

그 뒤 매니액스는 [Blind Man’s Zoo](1989) 등의 음반을 계속 발표했지만 전작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시애틀 그런지 밴드들이 선도한 얼터너티브 폭발을 즈음하여 발표된 [Our Time In Eden](1992)으로 주류에서 성공에 근접하게 되었다. 특히 “These Are The Days”와 “Candy Everybody Wants”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곡으로 기억될 것이다. 1년 뒤 이 앨범 수록곡 중심으로 가진 MTV 언플러그드 공연의 라이브 앨범이 나오면서 매니액스는 주류에서의 성공을 눈앞에 두는 듯했지만, 이미 나탈리 머천트는 밴드를 탈퇴한 상태였다.

탈퇴의 이유는 ‘아직도 제임스타운에 거주하고 있는’ 밴드 멤버들의 소박한 태도에 머천트가 불만을 느꼈다는 설이 많다. 각종 인터뷰를 통해 의식 있고 진중한 발언으로 이미 얼터너티브 씬의 ‘명사’ 대열에 오른 머천트로서는 자신의 운신의 폭에 제약을 느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1989년 영국 순회공연 이후 머천트가 뇌막염에 시달리게 되면서, 밴드를 이끌고 빡빡한 연주 일정을 지키는 것에 부담을 느낀 그녀가 자유로운 솔로 활동을 선택했다는 설명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머천트는 1995년 솔로 데뷔 앨범 [Tigerlily]를 발표했다. 라디오 애창곡 “Wonder”에서 느낄 수 있듯 이 앨범에서 그녀가 표현한 정서는 고독하고 멜랑콜리하고 내향적이다. ‘노래 잘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무언가 허전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반면 머천트를 떠나 보낸 매니액스는 존 롬바르도가 결성했던 포크 록 듀오 존 앤 메리(John & Mary)의 멤버들 받아들여 [Love Among The Ruins]를 발표했지만, 반응은 미미한 것 같다. ‘1980년대’라는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를 내내 버텨왔던 밴드가 해산된 것은 아쉽다. 좋았던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떠나보낼 것은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겠지만… 2000년 로버트 벅이 간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슬픈 소식도 이런 ‘인생’에 포함될까. 어쨌든 그의 죽음은 ‘한 시대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20011119 | 신현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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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Maniacs [In My Tribe] 리뷰 – vol.3/no.23 [20011201]
10,000 Maniacs [Our Time In Eden] 리뷰 – vol.3/no.23 [20011201]
Natalie Merchant [Tigerlily] 리뷰 – vol.3/no.23 [20011201]
Natalie Merchant [Ophelia] 리뷰 – vol.3/no.23 [200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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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10,000 Maniacs 공식 사이트
http://www.maniacs.com
Natalie Merchant 공식 사이트
http://www.nataliemerchant.com
Elektra 레이블의 Natalie Merchant 사이트
http://www.natalie-merchan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