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혼란

빅또르 쪼이가 사망한 지 정확히 1년 뒤인 1991년 8월 모스끄바에 발생한 쿠데타가 무위로 끝나면서 몇 달 뒤 소비에트 연방은 최종적으로 붕괴했다. 소비에트 연방에 포함되어 있던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나라들은 차례차례 독립했고 러시아와 몇 나라만이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했다. ‘국제정치’에 관한 복잡한 이야기는 생략하자. 어쨌든 초강대국 하나가 몰락하면서 냉전이 종언되었다. 그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다. 1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라는 나라는 ‘후진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른바 ‘약대국’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반체제였던 록 음악과 록 반문화 커뮤니티는 어떻게 되었는가. 불행히도 이들은 새로운 체제 하에서도 여전히 반체제였다. 로저 워터스(Roger Waters)가 “The Tide Is Turning”을, 스콜피온스(Scorpions)가 “Wind Of Change”를 노래했지만, ‘전환되고 있는 조류’도 ‘변화의 바람’도 구 소련의 록 음악인들에게는 차갑고 매서울 뿐이었다. 이는 다름 아니라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옐친이 단행한 ‘급진적 개혁’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서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anarchic capitalism)’이라고 말하는 체제를 낳았다. 경제이론적으로 설명하면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란 생산관계와 분배관계의 예측불가능성, 산업의 독점, 독재적인 생산 및 분배 패턴이 결합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단점만을 골라서 결합한 것이고, 그래서 ‘맥도날드’와 ‘굴락'(스탈린 시기의 악명 높은 수용소군도)을 합성한 ‘맥굴락(McGula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가장 큰 변화는 1991년 일련의 법률이 통과되어 개인 비즈니스가 허용되면서 소비에트 체제에서 ‘국유 재산’이었던 생산수단들이 ‘사유 재산’이 되었다는 점이다. 문제는 새로운 주인이 구 공산당의 엘리트들이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정확히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러시아인들의 ‘여론’이다. 공산당에 비밀기금이 있었다는 점, 공산당 엘리트들이 새로운 재산을 형성하는 데 유리한 지위에 있었다는 점이 많은 이들의 심증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기록적 인플레이션과 루블화의 평가절하였다.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현상인데, 결국 여기서 한몫 잡은 사람들이 새로운 부유층이 되었다. 외국과 무역을 해서 달러 등 경화(硬貨)를 만져서 거대한 환차익을 누리는 사람도 가세했다. 종합해 보건대 새로운 시장경제는 투명한 질서와는 거리가 멀고 이른바 그림자 경제(shadow economy)를 만연시켰고 그 주인들은 ‘마피아’라고 불렸다.

이런 골치 아픈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음악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소비에트 체제 하에서 수많은 산하 조직을 거느리면서 음반산업을 독점해왔던 멜로지야가 최종적으로 파산한 것이다. 그 대신 수도인 모스끄바를 중심으로 소수의 프로덕션이 탄생하면서 새로운 과점(oligopoly)을 형성했고, 이들의 뒤에는 ‘음악 마피아’가 있었다. 음악 마피아는 음악산업과 관련된 재원과 시설을 통제하는 존재가 되었고, 록 음악인들은 이들이 ‘구 공산당원’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들의 지원 없이는 앨범의 제작도 정식 공연장에서의 공연도 곤란했다. 록 음악인들은 국가가 지원했던 문화산업이나 마피아가 지배하는 문화산업이나 똑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0011116010817-0322series01alsu2이런 음악 마피아가 록 음악에 관심을 가질 리 만무했다. 결국 1993-4년경 탄생한 러시아의 새로운 대중음악은 ‘비주얼’하고 ‘표준화되고 호환적인(interchangeable)’ 랩·댄스 음악이었다. 최근에는 [유러비전 송 컨테스트 2000]에서 2위를 차지한 알수(Alsu) 같은 스타도 탄생했다. 1983년생인 알수는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의 러시아 버전이자 안나 꾸르니꼬바(Anna Kurnikova)의 대중음악 버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록 뮤지션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Alsu – Zimny Son(remix)

록 커뮤니티 혹은 록 뚜소브까의 와해

소비에트 체제 하에서 프로듀서는 음악에 대해 ‘충고’해주는 존재 이상이 아니었고, ‘흥행’과는 무관했다. 그렇지만 시장경제 하에서는 흥행에 실패하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고, 이는 록 커뮤니티에서 ‘동지적 관계’를 유지했던 프로듀서와 뮤지션 사이의 갈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뮤지션들은 프로듀서들이 ‘예전과는 달리 돈을 밝힌다’면서 실망했고, 프로듀서들은 ‘상업적 흥행과 무관하게 돈을 달라고 하는’ 뮤지션들에게 불만을 갖게 되었다.

록 뮤지션의 태도는 좋게 말하면 ‘동지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기생적’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그들 역시도 사회주의 체제의 ‘복지 시스템’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들은 알게 모르게 시장경제가 되어 서양식 음악산업 시스템이 구비되면 ‘조금 일하고 많은 돈을 벌 것’이라는 환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정반대의 현실, 즉 ‘일은 많이 하고 돈은 조금 버는’ 삭막한 현실을 맞이했다.

게다가 1980년대 록 뚜소브까를 만들어낸 인물들이 서서히 나이 들어갔고, 새롭게 등장한 신세대 록 뮤지션들은 1980년대의 이야기를 단지 ‘전설’로 여길 뿐이었다. 알리사의 꼰스딴찐 낀체프나 뗄레비조르의 미하일 보르즈이낀 같은 ‘2세대 뮤지션’들까지만 해도 록 음악이 반체제(dissident)의 코드이자 대안적 커뮤니티의 상징이라는 생각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1990년대에 20대를 맞이한 ‘3세대 뮤지션’의 경우 이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이들에게 록 음악은 러시아에서의 가망 없는 삶을 벗어나는 수단 이상이 아니었다. 경제는 작살이 나더라도 문화적 표현이 자유로워지고 정보가 범람하면서,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러시안 록은 너무 신비적이고 ‘암호화된(cryptic)’ 것으로 간주되었다.

‘자본주의 러시아’의 환경에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의 록 뮤지션들은 영어 가사로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1960년대 ‘소비에트 록’에서 나타난 현상의 재판이었다. 그동안 러시아의 록 베테랑들이 영미 록 음악과 러시아의 시가(詩歌)를 결합시킨 성과는 완전히 단절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러시아에서 슈퍼스타가 되느니 미국의 조그만 클럽에서 연주하는 편이 낫다”는 한 젊은 뮤지션 지망생의 말은 1990년대 중반의 정서를 대변해준다. 그에게 보리스 그레벤쉬꼬프는 “늙은 광대”일 뿐이었고, 빅또르 쪼이는 “목소리만 있지 사운드는 들은 게 없는” 것일 뿐이었다. 1990년대 러시아의 청년 세대는 ‘러시아의 모든 전통’을 부정했다. 러시안 록의 전통이라고 해서 예외이겠는가.

불행히도 “역사는 반복되지만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끝난다”라는 헤겔-마르크스의 언급은 이번에도 사실이었다. 1960년대에 비틀스(The Beatles)와 밥 딜런(Bob Dylan)의 곡을 커버(혹은 카피)했던 것이 외부 세계와 고립된 환경에서 서양 사회와 록 음악에 대한 동경의 산물이었다면, 1990년대에 너바나(Nirvana), 블러(Blur)와 유사한 스타일의 ‘창작곡’을 연주하는 것은 국내의 가망 없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준비였다. 전자가 비극인 이유는 구세대 록 뮤지션들이 오랫동안 소비에트 당국과 힘겨운 싸움을 전개한 것도 모자라서 아직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가 희극인 이유는 아직껏 영어로 노래부르는 러시안 밴드가 국제적 돌파(breakthrough)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1960년대의 ‘동경’이든 1990년대의 ‘준비’든 막연하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에서 ‘록의 시대’는 지나가 버린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록 뮤지션들을 한데 묶어주었던 대안적 가치나 규범이 사라져 버렸다. 뮤지션과 제작자의 관계, 뮤지션 내의 세대간 관계는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소원해 졌다. 1970-80년대 록 커뮤니티의 대안적 가치나 규범이 그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소비에트 체제가 몰락함과 동시에 사라졌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마치 1960년대 서양의 록 커뮤니티가 1970년대 이후 자신들이 반란을 감행했던 시스템에 슬그머니 편입된 것과 비슷한 아이러니다. 서양의 시스템이 록 음악의 대안적 에너지를 통합하면서 관리한다면, 러시아(및 동유럽)의 시스템은 대안적 에너지를 배제하고 방치한다.

20011116010817-0322series02ivanushki다소 단정적으로 말한다면 1990년대 러시아에서는 클래식 록이든 모던 록이든, 메인스트림 록이든 얼터너티브 록이든 ‘자국의’ 록 음악은 모두 망해 버렸다. 그 빈자리를 메꾼 것은 새로운 ‘러시안 팝’이었다. 어떤 음악일지는 다음 곡을 들어보면서 느껴 보자.

Ivanushki International – I Tol’ko Dozhd’ Stuchit

그래서 다음 인터뷰를 읽는 것은 상이한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왠지 ‘동병상련’을 느끼게 해준다. 자기 스스로 ‘2세대 뮤지션’이라고 말하는 뗄레비조르의 미하일 보르즈이낀의 발언이다. 조금 길지만 1993년 경 러시아 대중음악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발언이라서 인용해 본다.

‘2세대’ 록 뮤지션의 좌절

이전에 생활비는 매우 낮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돈만 있으면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은 서양에 근접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비는 서양보다 높기 때문에 더욱 나쁘다. 우리의 봉급수준은 훨씬 낮다. 따라서 우리는 먹을 것마저 충분치 않다. 기본 식료품 말이다. 그렇지만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1세대 뮤지션을 좋아하는 이유 말이다. 최초의 뮤지션들이 아니라 1984-5년 이후의 뮤지션 세대들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언가 말할 것을 가지고 로큰롤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당연히 아무도 돈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그건 더욱 나빴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은 그걸 해 가지고는 돈 한 푼 벌 수 없다고 말했고, 감옥에 들어가서 인생을 종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힘겨움(zakalka, hardening)이 있었다. 내게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일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단지 그럭저럭 행동하고, 술 마시지 않고, 물건을 조금만 사면서 생존해 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 세대의 뮤지션들과 음악과의 관계는 나와는 상이하다. 많은 그룹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밖에 있다. 그들이 어디서 돈을 벌 수 있는가? 서방에서다. 서양을 향한 지향(orientation)은 지금 발전 중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그들은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 대다수의 경우 매우 서투르기 때문에 별 흥미는 없다. 이 모든 것은 일종의 원초적인 퇴보(degradation)다. 자기가 알지도 보지도 못하면서 자기들을 좋아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는 바람 말이다. 그들은 서방의 청중을 기쁘게 한다고 느끼는 노래들을 작곡한다. 18살 먹은 애가 브로큰 잉글리쉬로 노래부른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들이 어떻게 연주하는지도 모르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그들을 이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서방에서만 이해하는 음악을 연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젯밤 열린 청년 페스티벌에서 대부분의 그룹들은 영어로 노래불렀다. 거의 전 세대가 그렇다. 이는 그들이 어떻게 퇴화되는가를 보여준다. 이건 단지 대중 병리(mass illness) 현상일 뿐이다.

나는 이런 현상이 바로 돈 숭배(Kult Deneg)와 서방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대량 정보 말이다. 지금 그들은 MTV를 본다. 그리고 여기 저기 원숭이들이 생기고 있다. 얼마나 우스운가.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음악 한 덩어리를 가지고 오는데, 이게 또 다른 유형의 창작이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말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세상의 사물이나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하지 않고 그 대신 하나의 이미지가 필요할 뿐이다. 그건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자기기만일 뿐만 아니라 청중을 기만하는 시도이다. 이게 수용되는 이유는 중간 수준의 무대 뮤지션들, 팝 뮤지션들의 일정한 포맷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포맷된 음악(formatted music), 일정한 프레임워크 속의 음악을 제작하는 일에 전문화하고 있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우리는 우리 민중을 위해 음악을 만든다”라고. 그렇지만 민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보다 단순해서 멜로디가 금방 인식되는 음악이다. 그들은 이런 음악의 제작의 전문가들이다. 전체적 제작 기구가 이런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모스끄바에는 서로 잘 알고 지내는 50명 정도의 작곡가 집단이 존재한다. 그들은 노래를 만들고, 모든 것은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편곡은 거의 똑같고 모든 게 그런 식이다. 민중 자신도 그런 음악에 익숙하다. 이건 세뇌다. 민중은 이제 더 이상 다른 무언가를 들을 수 없다. 머리 속에 강력한 포위공격이 발생하고, 그건 매우 냉소적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작하는 것이 개똥인 것을 알고 있다… 프로듀서와 작곡가들은 이게 개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대중이 개똥을 먹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좋다. 이런 효과는 단지 어디에나 있다. 나는 무언가를 가지고 와서 창조적 방법의 교환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MC 해머(MC Hammer)의 노래 한 조각과 그의 동작과 복장을 가지고 온 게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그걸 보았는가? 그들은 종종 텔레비전에 나온다. 러시안 랩이다. 이게 전형적인 예이다. 현재 러시아에서 인기있는 것은 서방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그들이 랩 음악을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종류의 음악이 있다. 산적 음악, 감옥 음악, 노동자 음악 등. ‘범죄 가요(blatnaya pesnya)도 있다. 어떻게 단지 랩 음악을 가져와서 그것을 러시아의 토양으로 수송할 수 있는가? 랩이란 미국의 범죄 음악이다.

나는 랩 음악을 오랫동안 들을 수가 없다. 뮤지션으로서 나는 그런 음악에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사회적 현상으로 본다면 그건 다른 문제다. 그렇지만 러시아 사람이 그걸 이용한다면 그건 우스운 것이다. 그는 여기 러시아에 살고 있기 때문이고, 러시아는 완전히 상이한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듬의 샘플 등 일정한 스타일적 차용은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리듬 구조를 가져올 수도 있고, 그게 잘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베낀다. 베낀 걸 가지고 대중문화에 도입하고, 그걸 인기 있게 만들고, 그리고 서서히 인기를 얻게 된다. 이런 음악은 텔레비전 스크린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여기 보면 MC 해머의 영향을 받은 애들이 있고, 저길 보면 프린스의 영향을 받은 애들이 있다. 랩 그룹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단지 비디오 클립을 보고 원숭이처럼 행동하는데 정말 웃기는 일이다. 이는 우리에게 전혀 적합하지 않은 일이다. 그건 러시아 사람인 나의 귀를 아프게 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계속한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사회 출신, 어떤 의미에서 다른 계급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이들 젊은애들은 잘 사는 집의 애들이고, 이들의 부모는 외국을 드나들면서 멋진 것들을 사다 주고 음악도 가져다 준다. 이런 애들은 브롱스의 가난한 흑인이 아니다. 그들은 완전히 다르다. 거기에 모순이 있다. 젊은 뮤지션들이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노래부르려고 한다면, 미국의 노동계급 지역에 관한 음악을 러시아어로 노래부르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신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은 그런 식으로 옷을 입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런 식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그건 너무 우습다. 그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을 뇌 속에서 씻어내는 것의 일종일 뿐이다.

랩은 우리의 범죄음악이 아니다. 우리의 범죄음악은 보다 어둡고 음울하다. 범죄 음악의 가사에는 러시아어를 동반하는 진정으로 원초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랩은 러시아어에는 분명히 잘 얹혀지지 않는다. 미국의 흑인 마이너리티의 철학이 여기에 도입될 때는 특히 더 잘 되지 않는다. 그게 잘 접목될 방법은 없다. 그건 나에게는 우습다. 내 말은 여기 애들이 러시아어로 번역된 미국식 표현을 사용해서 말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음악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건 별도의 과정이다. 지금 러시아 전체가 미국이 되려고 한다. 러시아의 문화적 뿌리들(roots)이 미국과 온전히 상이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도 못하고서. (Thomas Cushman(1995), [Notes from Underground: Rock Music Counterculture in Russia], pp. 294-297)

서방에 대한 실망

지난 번에, 러시아의 록 뮤지션들의 서방 진출이 대체로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언급한 바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실패’마저도 소수의 혜택받은 뮤지션들의 경우였다. 나머지 그리 유명하지 못한 뮤지션들을 포함하여 록 커뮤니티의 성원들은 그토록 갈구하던 서방의 록 음악으로부터 더욱 소외되었다. 이제는 그들이 우상처럼 섬겼던 록 음악인들의 공연이 ‘자유롭게’ 추진되었지만 비싼 티켓값 때문에 공연도 제대로 관람할 수 없었다. 1981년에 빅또르 쪼이는 “가보고 싶은 곳은 많지만 돈이 없어”라고 노래했다. 10년이 지난 뒤 서방 록 스타들의 공연장도 ‘돈이 없어서 가보지 못하는 곳’에 속하게 되었다.

개방이 이루어지면서 러시아 록 커뮤니티에서는 ‘부유한 서방의 록 음악인들이 러시아 록의 발전을 위해 음반 제작이나 공연 인프라에 투자해 주지는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서방의 ‘동지들’이 러시아를 찾아왔을 때 오프닝 밴드로조차 서기 힘들었고, 이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기는 더욱 힘들었다. 이유는 다름 아니라 서방 록 스타들의 공연 대부분이 서방의 거대 콘서트 조직과 러시아의 마피아와 연계하여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서방 록 스타들은 어쨌든 마피아와 공모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거기에 ‘로컬 영웅’이었던 보리스 그레벤쉬꼬프(Boris Grebenshikov)와 유리 셰브추끄(Yuri Shevchuk)가 서방의 음악산업에 ‘당한’ 일이 알려지면서 러시아의 록 뮤지션들은 서방의 록 뮤지션들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때로 극도의 적대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서양에서 제작된 음반을 구입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인플레이션이 안정된 1990년 후반 시점에서 러시아의 평범한 근로자의 월급은 1,200루블(약 6만원)이었다. 이런 임금 수준으로는 서양에서 제작된 정품 음반을 구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이전의 상황은 매우 불안정했으므로, 간단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소득 수준에 대한 음반가격의 비율이 ‘한국보다 훨씬 비싼 수준’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 결과는 불법 복제 음반의 성행이었다. 특히 1990년대 초처럼 가격이 수시로 변동하고 유통이 혼란에 처한 상태에서 국내 음반을 제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그 결과 신생 음반 제작사(프로덕션)들은 이미 발표된 음반의 ‘불법 복제’에 의존했는데, 서방의 음반들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 핵심 인물은 1980년대부터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프로듀싱을 도맡았던 안드레이 뜨로삘로(Andrei Tropillo)였다. 그가 설립한 안뜨로프(Antrop) 레이블은 저작권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백 종의 음반을 제작하고 배급했다. 노래 제목과 작곡자가 러시아로 번역되고 표지 디자인이 경미하게 바뀐 ‘러시아제 LP’는 국제적으로 악명 높다. 한 예로 러시아에서만 발매된 스페셜 앨범을 발매했던 폴 매카트니는 몇 일도 지나지 않아 부틀렉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경악하면서 “다시는 러시아를 찾지 않겠다”고 말했다.

러시아 록 커뮤니티 출신들이 ‘음악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공유 자산’이라는 ‘사회주의적’ 생각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는 점도 묘하다. “가난한 러시아의 음악 팬이 폴 매카트니 같은 거대 부호에게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느냐”라는 것이 당시 러시아 록 커뮤니티의 일반적 정서였다. “당신들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당신들 음악을 훔치겠다”는 것도 또 하나의 정서였다. 심지어 안드레이 뜨로삘로의 불법 복제에 대해서도 “저작권을 준수하지 않은 것은 나쁜 일이지만 어쨌든 러시아에서 음반이 발매된다는 것은 좋은 것 아닌가”라는 식의 ‘똘레랑스’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저작권 제도의 부실은 ‘제살 깎기’ 같은 것이었다. 이는 뮤지션이 음반 판매를 통해서는 거의 수입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결과 뮤지션들은 공연 투어나 레코딩 세션처럼 ‘몸으로 때우는’ 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일정 수준에 오른 뮤지션들에게나 가능한 이야기였고, 많은 수의 뮤지션들은 음악을 집어치우고 생계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자기가 좋아서 한 일에 대한 업보라고 넘겨버리기에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너무 커 보이는 이야기다. 너무 멜로 드라마 같은 이야기지만.

한편 서방 세계에서 러시아의 록 음악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쇠퇴했다. 1986-7년 사이에 절정을 이루었던 러시아와 동유럽의 록 음악에 대한 관심은 1989년 동유럽의 사회주의 정권이 도미노식으로 몰락하면서 급격히 시들었다. 서방의 러시아 록에 대한 주목은 ‘악마 같은 소비에트 국가의 존재’와 직결된 것이었다. ‘철의 장막 밑에서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록의 전사’라는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소멸한 셈이다. 정말 그랬다면 이런 시각이야말로 속물적이고 피상적인 것이다. 문화의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그것도 냉전식 정치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시각이 한때의 그 ‘난리’의 전부였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음악적 측면에서도 서방인들의 러시안 록에 대한 관심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서방의 청중대부분에게 러시안 록은 서방의 록 음악의 어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러시아어 가사는 해독할 수가 없었다. 결국 러시안 록 음악인들은 ‘국제적 록’ 시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가사’로 인해, 그리고 ‘월드 뮤직’ 시장에서는 ‘이국적 성격의 부족’으로 인해 미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러시아의 뮤지션들은 록 음악의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로컬 록’의 정체성을 찾아나서야 할 숙제를 가지게 된 셈이다. 이런 시도는 실제로 일어났다.

러시아의 뿌리로

1991년 [Russkiie Albom(Russian Album)]이라는 타이틀의 음반이 두 종 나왔다. 하나는 보리스 그레벤쉬꼬프가 서방 시장에서 ‘물 먹은’ 뒤 밴드 라인업을 재정비한 아끄바리움의 음반이었고, 다른 하나는 브라보(Bravo)로부터 독립한 잔나 아구자로바(Zhanna Aguzarova)의 음반이었다. 음악 스타일은 상이했어도 아끄바리움도 브라보도 국제적 트랜드에 민감했던 인물이었다. 이들의 ‘러시아적 전환(russian turn)’은 1990년대라는 낯선 시간에서 러시안 록의 ‘전설’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예이다.

20011116010817-0322series03nol2사진설명:러시아의 ‘행려 밴드’ 놀(Nol’)
이들 뿐만 아니라 적잖은 러시아의 록 베테랑들은 러시아의 음악적 전통을 록 음악의 어법과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전개하고 있다. 이는 1980년대에도 존재했던 것이지만 이전까지의 시도가 자연발생적인 것이었다면, 이때 이후의 시도는 보다 목적의식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코디언이나 발랄라이카 같은 민속악기를 사용하여 러시아 민속음악의 풍부한 유산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많은 밴드들에게 공통적이다. 예를 들어 놀(Nol’) 같은 밴드는 기타 없이 드럼, 베이스, 아코디언으로 구성된 밴드들이다. 이는 서방의 록 음악 사운드 위에 얹혀진 ‘러시아 시’ 이외의 다른 것을 보여줘야 진지하게 취급받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는 징후다.

이는 소비에트 체제 시절 반체제(dissident)였던 시인-바르드의 음악이 본격적으로 해금되었다는 사실과도 어느 정도 연관되는 현상이다. 블라지미르 비소쯔끼(Vladimir Vysotsky), 불라뜨 오꾸자바(Bulat Okudzhava), 알렉산드르 갈리치(Aleksandr Galich) 같은 록 커뮤니티와 직접 관계를 맺지 않은 바르드들 뿐만 아니라 록 커뮤니티와 직간접적 관계를 맺었던 알렉산드르 바슐라체프(Aleksandr Bashlachev), 양까 지야길레바(Yanka Dyagileva)의 음악들이 음반으로 속속 발매되면서 소수의 애호가들에 머물렀던 바르드들의 음악도 서서히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중에서 스베들로프스끄(현 에까쩨린부르그) 출신의 알렉산드르 바슐라체프와 노보시비르스끄(Novosibirsk) 출신의 양까 지야길레바는 빅또르 쪼이와 더불어 ‘요절’했다는 이유로 컬트의 대상이 되어 있다(바슐라체프는 1988년, 지야길레바는 1991년 각각 자살했다).

Bulat Okudzhava – Tri Sestri(Three Sisters)

양까 지야길레바(Yanka Dyagileva)
그 과정에서 자긍심을 넘어서 슬라브인 특유의 과대망상이 나오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헤비 메탈 밴드 고르키 파크를 수출했던 스타스 나민(Stas Namin) 같은 이는 “록 음악이 컨트리나 블루스가 아니라 러시아의 속요인 차스뚜쉬까(chastushka)에서 나왔다”라고 말했고, 또 한 명의 뮤지션은 “앞으로 러시아어가 록 음악의 주요한 언어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걸 두고 ‘악밖에 남지 않은 허장성세’라고 생각할 것인가, 국내외의 관심이 줄어든 상황에서 애처로운 자구책으로 생각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록 음악에 국민적 정서(national melos)를 담아내려는 노력만큼은 가상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국민적 자긍심(national pride)은 때로 ‘러시아 민족주의’와 연관되어 다소 위험한 양상도 보이고 있다. 사브리나 라메트는 “1991년 이후 러시아 헤비 메탈 씬의 일부는 우익 정치와 외국인 혐오증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러시아의 2천만명의 젊은 성인들 중 1/5은 강경노선의 민족주의자의 불관용적 견해에 점차 매혹되고 있으며, 그 수는 증가하고 있다”는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의 기사를 인용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엑소시스트(Exorcist)와 데쓰 보미트(Death Vomit)라는 러시아 헤비 메탈 그룹을 언급하고 있다. 1993년 경 모스끄바를 방문한 미국인도 헤비 메탈 음반 숍에 아돌프 히틀러와 사담 후세인의 포스터를 붙인 광경을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헤비 메탈에 대한 주류 미디어의 ‘공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현상이고, 헤비 메탈 밴드 전부가 우파 민족주의에 가담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히틀러와 후세인을 내세우는 것이 헤비 메탈 특유의 ‘속임수(gimmick)’인지 진정한 의도인지도 불분명하다. 그렇지만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라는 하나의 증거는 있다. 한 예로 1980년대부터 활동했던 헤비 메탈 밴드 DK 출신의 세르게이 자리꼬프(Sergei Zharikov) 같은 인물은 국민급진당(National Radical Party)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정당은 공공연히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고 있으며, 자리꼬프는 KKK단 출신인 미국 루이지애너의 정치인 데이비드 듀크(David Duke)를 경애한다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킨바 있다.

Zemfira – Shkalyat Datuiki

이런 현상을 피상적으로 관찰하고 ‘헤비 메탈 = 우파 민족주의’라는 공식을 내세우는 것은 경솔한 일일 것이다. ‘펑크 밴드’라고 해도 폴란드의 경우는 우파 정치에 가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다. 이런 현상들은 러시아와 동유럽의 카오스 상황에서 청년 세대의 절망감의 하나의 단면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록의 베테랑들, 이른바 파수꾼 세대가 아니라 젊은 세대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의 젊은 뮤지션들은 과연 미하일 보르즈이낀이 말한 것처럼 ‘서방의 트렌드의 원숭이’, ‘신생 프로덕션(기획사)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는가.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그리고 1999년 이런 음악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20011115 | 신현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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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러시안 록 서치 사이트
http://www.slavweb.com/eng/Russia/music/rock-e.html
러시아 바르드 및 록 음악에 관한 정보
http://russia-in-us.com/Music
러시안 록 데이터베이스 (바이오그래피, 리뷰, 음원)
http://txt.zvuki.ru
러시안 록 mp3 다운로드 사이트
http://www.omen.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