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15104859-0322reviewnolNol’ – Pesnya O Bezotvetnoi Lyubvi Rodine(Song About Unreturned Love to Fatherland) – Fili, 1991

 

 

행려 밴드의 투박한 조국 사랑가

아코디언을 앞세운 록 밴드가 있을까. ‘0(zero)’ 혹은 ‘꽝’이라는 뜻의 단어를 밴드 이름으로 삼은 놀(Nol’)이라는 밴드가 그들이다. 아코디언과 기타를 번갈아 가면서 연주하는 표도르 치스쨔코프(Fyodor Chistsyakov)가 리드하는 놀이 러시아(및 동유럽)의 ‘에쓰닉’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밴드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조국에 대한 돌아오지 않는 사랑에 대한 노래’라는 앨범 타이틀도 이런 특징을 부각시켜 준다.

1986년 뻬쩨르부르그(구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데뷔했고 1987년부터 전국 무대에 진출한 경력을 보면 이들은 적어도 러시안 록의 ‘2세대’ 쯤에 속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1세대 음악인들보다도 ‘유구한’ 스타일이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비유하자면 지난 번 소개한 아비아(Avia)가 ‘러시아의 황신혜 밴드’라면, 놀은 ‘러시아의 어어부 프로젝트’쯤 될 것이다. 혹은 영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Leningrad Cowboys Go America)](1989)에 나오는 핀란드 밴드를 연상해도 될 것이다.

이런 비유는 이들의 음악이 그냥 웃기는 음악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치스쨔코프의 목소리는 술 먹고 휘청거리는 러시아 남자의 목소리를 전범으로 삼은 듯하다. 가사 역시 무의미한 말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세 박자로 시작해서 네 박자로 바뀌더니 “이게 러시아 로큰롤이야”라고 외치는 첫 트랙 “Etot Russkii Rock-N-Rol(이게 러시아 로큰롤)”이 대표적이다. 가사는 매우 짧고, 단순한 후렴구의 반복이 많은 반면 ‘의미’는 별로 담겨 있지 않다. 폴카 리듬 위에서 “치커리와 함께 살았지, 새끼 치커리, 어른 치커리”라고 주절거리는 “Tsikorii(치커리)”, 탱고 비슷한 리듬 위에서 “기분 좋게 집으로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네… 빰빠라 빰빰”하는 “Idu, Kuryu(나는 걸어가네, 담배를 피네)”도 비슷하다. “진짜 인디언은 홀로 남아 노래한다”(“Pesnya O Nastoyashem Indeitse(진정한 인디언에 대한 노래)”)는 노래는 에미르 꾸스뜨리챠(Emir Kustricia)의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수록되어도 좋을 곡이다.

미리 말한 셈이지만 음악 스타일이나 사운드는 아코디언이 주도하고, “Tsikorii(치커리)”의 간주부에서는 아코디언의 ‘속주’까지 등장한다. 록 밴드라기보다는 ‘러시아 민속악단’ 같은 느낌을 준다. 록 음악의 흔적이라고는 록 음악다운 드러밍이 등장하는 “Vperyod Bolty(상향나선)”, 슬라이드 기타가 등장하는 “Chelovek i Koshka(인간과 고양이)”, 워킹 베이스가 등장하는 “Doktor Khaider(하이드 박사)”에서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런 곡들도 국제 음반시장에서는 이른바 에쓰노 펑크(ethno-punk)라고 불리는 ‘오디티 장르(oddity genre)’에나 속할 것이다.

마치 써커스 공연장에서 행려 밴드가 연주하는 듯한 이런 음악이 로큰롤이라고? 그건 러시아인의 과대망상일 뿐이라고 일축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렇지만 “Chelovek i Koshka(인간과 고양이)”에서 “어려웠던 시절에도 그(러시아)를 위해 우리는 함께 했지”라는 읊조림에 이어 “그것이 우리들의 세월이었지…. 우리는 함께였지”라는 코러스가 나올 때는 무언가 갑자기 서글픔이 밀려올 때도 있다. 인생의 쓴맛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그저 구릴 뿐이겠지만. 20011115 | 신현준 [email protected]

8/10

* 박일경 [email protected]의 도움으로 씀.

수록곡
1. Etot Russkii Rock-N-Roll(This Is Russian Rock-N-Roll)
2. Ekhali Po Ulitse Tramvai(Let’s Ride Electric Car)
3. Ulitsa Lenina(Lenin Street)
4. Tsikorii(Chicory)
5. Idu, Kuryu(I Walk, Smoke)
6. Pesnya O Nastoyashem Indeitse(Song About Real Indian)
7. Ty-Tormoz(You-Brake)
8. Pesnya O Bezotvetnoi Lyubvi Rodine(Song About Unreturned Love To Fatherland)
9. Chelovek I Koshka(Man And Cat)
10. Doktor Khaider(Doctor Hyde)
11. Vperyod Bolty(Spiral Ahead)

관련 글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6): 1990년대의 카오스… 그리고 록 커뮤니티의 와해 – vol.3/no.22 [20011116]

관련 사이트
Nol’ 사이트(러시아어)
http://www.uic.nsu.ru/~vd/nol
http://www.nol.spb.ru/links/linksf.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