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31094034-0321suzannevegaSuzanne Vega – Songs In Red And Gray – A&M, 2001

 

 

삶을 투영시킨 포크 록의 얼굴

포크 (록)의 ‘한 가지’ 얼굴은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개인 내면의 고백을 담아내는 형식이라는 것이다(물론 굳이 이분해서 말하면 포크의 또 한 가지 성분은 사회의식적 현실참여성이다. 포크는 이처럼 두 가지 대립적 얼굴이 공존한다). 이 때문에 포크에 개인의 삶이 솔직담백하게 투영된다고 믿게 된다(반드시 개인의 ‘실제’ 경험만이 아니라, ‘상상’의 산물까지도 포크에 담길 수 있다는 것 역시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흔히 그런 믿음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지금 여기서 소개하는 가수도 역시 이런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다.

공전의 히트곡 “Luka” 식으로 소개하자면 “그녀의 이름은 수잔 베가(Suzanne Vega).”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과 더불어 1980년대 여성 포크 록 ‘스타’로 꼽히는 그녀.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아동 학대에 대한 “Luka”, 읊조림만이 지속되는 “Tom’s Dinner”가 수록된 앨범 [Solitude Standing]은, 그래미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그녀의 대표 앨범이 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음악은 그렇게 큰 매력이 없는 듯도 하다. 그만그만한 음역 안에서 고요하고 속삭이듯 나직한 목소리는 큰 변화 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가사를 의식하지 않고 얼핏 들으면 “Luka”가 그냥 발랄한 성장 보고서 같은 인상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가사와, 이를 실어보내는 기타 위주의 명징한 사운드는 포크의 미덕을 한껏 발산한다.

수잔 베가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 [Songs In Red And Gray]는 5년만의 작품이다. 오랜 기간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그녀의 아픈 생활과 관계된다. 네 번째 앨범 [99.9 F°](1992)의 프로듀서 미첼 프룸(Mitchell Froom)과 사랑에 빠져 동거에 들어가 딸 루비를 낳았고 이듬해 결혼을 했는데, 그와는 다섯 번째 앨범 [Nine Objects Of Desire](1999)까지 작업했다. 프로듀서이자 남편으로서 미첼 프룸은 그녀의 음악에도 영향을 미쳐, 다른 색채를 첨부했다. 엘비스 코스텔로, 로스 로보스부터, 아메리칸 뮤직 클럽, 치보 마토, 셰릴 크로우, 론 섹쓰미스 등의 음악에 관여한 미첼 프룸은 수잔 베가의 지난 두 앨범에서, 다양한 댄스 리듬을 도입해 일렉트로닉 감각을 살짝 입힌, 때문에 그녀에게는 다소 실험적인 색깔로 염색하는데 일조했다(당연히 변화의 스펙트럼은 포크적 색채를 벗어나는 수준은 아니다).

이제 결별한 (개인 일상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프룸 대신, 이번 앨범은 신쓰 팝 시대에 ‘잘 나가는’ 프로듀서 중 하나였으며 티나 터너, 던컨 쉐이크 등의 음악을 프로듀싱했던 루퍼트 하인(Rupert Hine)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루퍼트 하인은 그녀 앞에 클로즈업시킨 보컬 마이크와 사려 깊게 조절된 기타를 배치했다. 덕분에 이번 앨범은 그녀의 초기 석 장의 앨범으로 회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첫 곡 “Penitent”와 두 번째 곡 “(I’ll Never Be) Your Maggie May”만 들어봐도 이런 느낌은 확연히 전달된다. 전반적으로 기타 톤이 강화되었지만 “Penitent”처럼 스트링과 키보드에 의한 무드 체인지가 일어나기도 하며, “Machine Ballerina”, “It Makes Me Wonder”처럼 밝은 톤의 키보드가 다채롭게 스펙트럼을 형성하기도 한다. “Solitare”의 경우에는 전작(4-5집)의 잔향인 듯 퍼커시브한 음향이 공명한다.

그 세팅 앞에서 수잔 베가는 남편과의 이별과 그 여파가 딸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노래한다. “Widow’s Walk”는 제목 그대로 실패한 결혼을 직접적으로 호명한다. “Songs In Red And Gray”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 딸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로 한 비난은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어 / 그 애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 당신과 나 사이에 일어난 일을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하지만 직설적 화법으로 ‘까발리지’ 않는다. “회색 백납(白 ) 꽃병이 진한 붉은 장미로 채워졌지” “붉은 잎은 회색 돌로 변했어” 같은 비유적 어법은 여전하다. 상황은 메타포를 사용함으로써 묘사된다. “그러나 난 알았어 배가 바위에 부딪혔을 때 그것이 배어있다는 걸 / 우린 지탱할 수 없었어 운명이 휘어잡을 수 없을 때(“Widow’s Walk”)”, “아빤 알기 어려운 수수께끼 / 엄만 머리 가득한 벌 / 넌 작은 연, 흔들리는 미풍에 날아가 버리는(“Soap And Water”)”이라는 비유적 가사들을 보라.

그녀의 아픔과 슬픔이 서려있는 수잔 베가의 신작은 특히 그녀의 초기 앨범들을 사랑했던 이들에게 반가울 것 같다. 보다 정교하고 교묘한 메타포를 가진 가사나 무언가 새롭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바라는 이에게 ‘재미’는 없겠지만. 20011029 | 최지선 [email protected]

7/10

* 이 글은 영화주간지 [film 2.0]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수록곡
1. Penitent
2. Widow’s Walk
3. (I’ll Never Be) Your Maggie May
4. It Makes Me Wonder
5. Soap And Water
6. Songs In Red And Gray
7. Last Year’s Troubles
8. Priscilla
9. If I Were A Weapon
10. Harbor Song
11. Machine Ballerina
12. Solitaire
13. St. Claire

관련 사이트
Suzanne Vega 공식 사이트
http://www.veg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