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16121556-0320slayerSlayer – God Hates Us All – American Recording/Universal, 2001

 

 

쓰래시 메탈 지존의 성공적인 심기일전

베테랑들의 신작 소식이 유난히 잦은 올 가을, 쓰래시 메탈(thrash metal)의 거장 슬레이어(Slayer) 또한 새 앨범 [God Hates Us All]을 들고 우리의 귀를 다시 한번 후려치려 찾아왔다. 이 앨범은 여러모로 화제가 되고 있는데, 슬레이어가 최근 몇 년간의 음악적, 상업적 부진을 떨쳐버리려 심기일전하여 만든 앨범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심기일전’이라는 것이, 전 앨범 [Diabolus In Musica](1998)에서 과감히 시도했던 실험적 사운드를 없애고, 이들을 오늘날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했던 바로 그 사운드, 즉 숨돌릴 틈 없이 시종일관 무지막지한 스피드와 에너지로 몰아 부치는 [Reign In Blood](1986) 시절의 ‘정통’ 쓰래시 메탈 사운드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연 수록된 열 세 곡 모두가 이완의 순간 없이 철두철미 ‘하드코어(hardcore)’한 메틀의 일대 향연이다. 하지만, ‘스피드’의 면에서 [Reign In Blood]의 그것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드럼 연주에서 비롯되는 면이 큰데, 아무래도 슬레이어를 전설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그 살인적인 스피드는 데이브 롬바르도(Dave Lombardo)가 창출해 내는, 너무나 초인간적이라 일종의 귀기마저 느낄 수 있는 드럼 연주에서 대부분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스피드’ 창조의 측면에서, 현재의 드러머인 폴 보스타프(Paul Bostaph)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역부족이다. 예를 들어 새 앨범의 수록곡 “Seven Faces”나 “Payback”을 들어보면, 같은 드럼 연주라도 데이브 롬바르도가 했다면 그 속도감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생겨난다.

사실 이러한 아쉬움이 그동안 슬레이어를 주춤거리게 하지 않았던가. 톰 아라야(Tom Araya)의 울부짖는 보컬, 케리 킹(Kerry King)과 제프 한네만(Jeff Hanneman)의 멜로디가 철저히 배제된 기타와 함께, 데이브 롬바르도의 초인적인 드럼은 슬레이어 사운드의 중추 요소이자 결국은 핵심이었다. 롬바르도의 후임인 폴 보스타프도 물론 뛰어난 기량의 연주자임엔 틀림없지만, 문제는 어느 누구도 롬바르도를 대신할 수 없다는 태생적 딜레마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롬바르도의 탈퇴 이후 슬레이어에겐 음악적으로나 여러가지 면에서 슬럼프가 필연적으로 찾아들었다. 롬바르도의 부재라는 커다란 구멍을 데스 메탈([Divine Intervention](1994)), 하드코어 펑크([Undisputed Attitude](1996)), 인더스트리얼([Diabolus In Musica]) 등의 새로운 실험을 통해 메우려 했지만, 그럴수록 슬레이어에겐 정체성의 위기까지 맞게되는 악순환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서, 슬레이어는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데이브 롬바르도 없이 초심으로 복귀하는 작업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이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까지 기획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로 한 발 물러난 상황에서(그렇지만 슬레이어와 릭 루빈의 유대 관계는 여전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 부클릿에는 그의 이름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새로운 프로듀서 맷 하이드(Matt Hyde)와 함께 슬레이어는 자신들의 명예마저 걸린 최후의 카드를 내놓게 된다.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최후의 카드는 일단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일체의 곁가지 없이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사운드로 시종일관 진행되는 [God Hates Us All]은 언제 들어도 친숙한 슬레이어 특유의 요소로 충만하지만(그런 이유로 ‘새롭지는 못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겠다), 묘하게도 전혀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쓰래시 메탈 앨범이 되었다. 사실 하나도 새롭다거나 참신한 구석이 없음에도 이 앨범을 옛 것의 재탕이라고 여길 수 없다는 점이야말로, 맷 하이드의 탁월한 솜씨를 증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맷 하이드는 [God Hates Us All]의 사운드 방식을 슬레이어의 예전 앨범들과는 다르게 설정했다. 즉 전체적인 사운드를 로파이(lo-fi)에 가깝게, 그러나 한 치의 빈 틈 없이 두텁게 ‘악기를 처바른’ 방식을 구사한 것이다(이런 방식은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에 빗대어 ‘소음의 벽(Wall Of Noise)’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결과 과거 릭 루빈의 헤비하며 웅장하고 유려한 사운드 메이킹이 대부분 제거되고, 약간 탈색된 듯한 음질에 드럼 소리가 두드러지게 작아졌지만, 대신 믿기 어려울 만큼 중층적이면서도 날렵한 메탈 사운드가 탄생되었다.

결론적으로, 슬레이어는 자신들이 맞이한 음악적 위기 상황을 전성기 사운드의 회귀와 영리한 프로듀싱으로 성공적으로 돌파하였으며, 21세기에도 메탈의 ‘지존’으로서 건재함을 당당히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 슬레이어의 이러한 방법론은 너무나 효과적이어서, 과연 다음 앨범에는 어떤 히든 카드를 내놓을까, 벌써부터 기대를 하게 만들 정도다. 그리고 슬레이어의 이와 같은 전략은, 새 앨범 발표를 목전에 둔 메탈리카(Metallica)에게도 엇비슷하게 적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난데없는 예감이 머릿속을 때린다. 20011012 | 오공훈 [email protected]

7/10

* 여담 : [God Hates Us All] 앨범의 모티브는 구약 성서의 ‘욥기’에서 나왔다. 하느님은 욥을 시험에 들고자 온갖 시련을 안기지만 욥은 신앙심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그는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 슬레이어는 질병과 악행으로 가득 찬 현대 사회를 ‘시련’으로 파악, 신을 향해 원망과 분노를 퍼붓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언뜻 보면 이 앨범은 ‘반 기독교’적인 작품으로 파악될 수도 있으나, 자세히 헤아려보면 세상의 불의를 과격한 형식으로 통렬히 비판하는 ‘정의로운’ 앨범이며, 역설적인 의미로서의 ‘찬송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록곡
1. Darkness of Christ
2. Disciple
3. God Send Death
4. New Faith
5. Cast Down
6. Threshold
7. Exile
8. Seven Faces
9. Bloodline
10. Deviance
11. War Zone
12. Here Comes the Pain
13. Payback

관련 사이트
Slayer 공식 사이트
http://www.slay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