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15110826-0320punkbigblackBig Black – Songs About Fucking – Touch And Go, 1987

 

 

(테크노 + 인더스트리얼) X 펑크

오늘날, 스티브 앨비니(Steve Albini)는 픽시즈(The Pixies), 브리더스(The Breeders), 어지 오버킬(Urge Overkill), P.J. 하비 (P.J. Harvey),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바나(Nirvana)의 [In Utero](1994)를 제작한 얼터너티브 록 전문 유명 프로듀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프로듀서 활동을 하기 전, 그는 엄청나게 뛰어난 기타리스트였으며 시카고(포스트 록(post-rock)의 고향)를 중심으로 한 빅 블랙(Big Black)이라는 밴드를 이끌며 훌륭한 앨범들을 내놓았던 화려한 과거가 있다.

특히 디스토션이 잔뜩 걸린 채 인간의 감정이라곤 전혀 개입되지 않은 건조하기 짝이 없는, 요란하나 가벼운 톤의 그의 기타는, 밥 물드(Bob Mould)의 기타 사운드와 더불어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음향적 토대를 마련했다. 너바나의 [In Utero]를 들어보면, 발매 당시엔 정말 기상천외하다고 여겼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기타 플레이가 사실은 스티브 앨비니에 대한 철저한 존경의 표시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소닉 유스(Sonic Youth)의 킴 고든(Kim Gordon)은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스티브 앨비니의 기타에 채찍질 당하기를 원하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커트 코베인도 빅 블랙의 사운드를 워낙 좋아해, 그를 프로듀서로 초빙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채찍질은 사실, 섹슈얼한 은유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는 지도 모르겠다. 빅 블랙의 마지막 앨범이자 가장 유명한 앨범인 [Songs About Fucking](1987)은 빅 블랙이 지향하는 음향의 카오스적 소용돌이가 외설적인 노랫말과 어우러져, 고도의 상승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앨범 타이틀과 일본 만화 풍의 재킷으로부터 확실하게 알 수 있듯, 앨범의 내용은 말 그대로 “섹스에 관한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기계적인 리듬 섹션과(드럼의 경우, 머신을 사용하고 있다) 날카롭게 쏘아댈 뿐인 무미건조한 기타 때문에 이들의 사운드는 일견 ‘뜨거움’을 상기시키는 남녀간의 섹스와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차가움이 어딘지 모르게 관능적인 에로티시즘을 만들어내고 있다. 좀더 깊게 생각해보면, 빅 블랙에게 있어서 섹스란 사실은 여태껏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감정의 교류(사랑이라는 이름의)가 배제된 채, 철저히 순간의 쾌락만을 염원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것은 사이버 펑크(cyber punk) 시대의 가상 섹스(virtual sex)를 예견하는 듯하다.

이는 수록곡 중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The Model”을 커버한 노래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The Man Machine](1978)에 수록된 오리지널이 차갑고 우아하지만 낭만적인 분위기를 다분히 풍기는데 비해, 빅 블랙의 커버에서는 원곡의 우아함은 사라지고 더욱 거칠어진 차가움과 냉정함만이 앙상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빅 블랙의 연주가 훨씬 ‘섹시’한 게 사실이다.

1970년대나 1980년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Songs About Fucking]은 그다지 ‘펑크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음반이다. 물론 노래들은 비교적 짧은 편이며, “L Dora”나 “Colombian Nektie”, “Fish Fry” 등에는 펑크의 에토스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더욱 격렬하지만 뜨거움은 결여된, 즉 인간적인 감정이라곤 도통 없는 기계성은, 기존의 펑크 정신과는 한참 괴리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비록 앨범 재킷에 명시되어있듯 디지털이 배제된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했다고는 하지만, 빅 블랙의 음악이 인간미가 의도적으로 제거된 ‘테크노’ 내지는 ‘인더스트리얼’처럼 들리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빅 블랙의 [Songs About Fucking]은 1980년대의 하드코어 펑크와 1990년대 거대한 폭풍을 일으킬 얼터너티브 록 사이에 위치하여, 본질적인 정신은 같지만 사운드 구성 방식에 있어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는 이들 두 장르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Songs About Fucking]의 중요성을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특히 혼돈으로 뒤엉킨 기타와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개인의 지겨운 독백이 난무하는 슬랙커(slacker) 스타일의 노랫말은, 1990년대 수많은 후예들을 양산했다는 점에서 몹시 주목할 만 하다. [Songs About Fucking]은 얼터너티브 장르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으로부터의 기적이 아니라, 나름대로 뚜렷한 성장 과정을 착실하게 거쳤음을 알게 해주는 증거 자료라 할 수 있겠다. 20011009 | 오공훈 [email protected]

8/10

* 여담 : 이 앨범의 초판은 8천장이 발매되었으며, 빅 블랙의 앨범 중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가 이 앨범을 아주 좋아했다고.

수록곡
1. The Power Of Independent Trucking
2. The Model
3. Bad Penny
4. L Dora
5. Precious Thing
6. Colombian Necktie
7. Kitty Empire
8. Ergot
9. Kasimir S. Pulaski Day
10. Fish Fry
11. Pavement Saw
12. Tiny, King Of The Jews
13. Bombastic Intro
14. He’s A Wh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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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Southern Recods의 Big Black 페이지
http://www.southern.com/Southern/band/BIGBL/index.html
Big Black Sourcebook
http://http.tamu.edu:8000/~cwb2900/www/BBContent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