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피스톨스, 씁쓸한 간증

20011015100049-0320filmfilthfuryThe Filth And The Fury: A Sex Pistols Film

감독: Julien Temple
시간: 108분
연도: 2000

“오직 위선만이 살아남는다. 나는 미래 세대들이 그저 무작정 앞으로 밀고 나가기만 바랄 뿐이다. ‘엿먹어! 그따위 것들은 이제 신물이 나. 진실은 여기에 있다!’라고 말하면서”
– [The Filth And The Fury]에서 조니 로튼

1979년 [The Great Rock And Roll Swindle]에서 섹스 피스톨스의 매니저, 맬컴 매클래런은 검은 가죽 복면을 한 내레이터 ‘임베즐러(Embezzler; 착복자)’로 등장, 자신이 인간을 오브제로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임을 거만하게 선포한다. 섹스 피스톨스 키드들을 “나의 귀여운 공예품들”이라 칭하면서. 조야하고 연극적인 난동이 가득한 의사(擬似) 다큐멘터리 [The Great Rock And Roll Swindle]은 형식뿐만 아니라 섹스 피스톨스의 실존마저도 ‘의사’로 만든 펑크 사기극이었다. 조니 로튼의 씁쓸한 회고담에 의하면 “원숭이들의 티파티”일 뿐이었던 그 영화는 매클래런의 오브제로 참여한 피스톨스 키드들에겐 하나의 상처였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1996년, 매클래런을 벗어나고 시드를 잃은 ‘늙은’ 섹스 피스톨스는 재결성 이벤트를 벌인다. 이 악명 높았던 이벤트가 그들의 충직한 친구이자 [The Great Rock And Roll Swindle]의 후발 감독이기도 한 줄리언 템플(Julien Temple)에겐 강박 어린 자성의 계기를 준 모양이다. 그는 영국 음악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전설이자 패션의 희생양으로 살아남은 펑크 키드를 위한 마지막 단상을 정성껏 준비하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The Filth And The Fury]다.

[The Great Rock And Roll Swindle]에서 골라낸 수많은 장면들과 전성기 때 온갖 매체가 포착해둔 피스톨스의 갖가지 실재들, 피스톨스 멤버의 인터뷰 패치워크들이 콜라주된 [The Filth And The Fury]는 많은 면에서 맬컴 매클래런의 통제를 벗어난 섹스 피스톨스 사관, 다시 말해, 매클래런 뒷다마까기를 넘어서는 진실을 보여준다. 센세이셔널리스트였던 매클래런의 정치학은 물론이고 펑크 담론의 포착 망에도 걸리지 않은 그 진실은, ‘합의 없는’ 거부와 조롱으로 일관해온 피스톨스 멤버들이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겹 없이’ 드러내는 고백이자 자성일 것이다. 그 진실은 가령 영국 텔레비전 역사상 최초로 “Fuck”란 말을 뱉은 1976년 빌 그런디 쇼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선다. 그 진실은 낸시 스펀겐(Nancy Spungen)이 죽고 난 며칠 후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채 떨고 있는 시드 비셔스에게 “지금 이 순간도 (펑크적으로) 즐겁냐”고 묻는 매체의 잔인하고 우매한 논리를 고발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 진실은 전략을 떠난 직언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검은 실루엣으로 스스로를 가려버린 ‘늙은’ 섹스 피스톨스 멤버들의 고백으로부터 나온다.

이 고백은 섹스 피스톨스에 대해 아직까지도(?) 신화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정사적(正史的)으로 이들의 입지를 잘 정리해 둔 사람들까지도 기대하지 않았던 비사(悲史)를 들려준다. 그래서 불편하다. 그것을 더 이상 발굴할 것이 없는 것에서 마지막으로 뽑아낸 선정적 야사라고 비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의 목적, 아니 미덕은 바로 그 비판점에서 출발한다.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욕이면 다 통한다”며 구습은 물론이고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발길질을 했던 그들의 전방위 ‘양아치’ 마인드가 제도권을 돌파하기 이전에 정치 감각상 더 위대했던 ‘수호자’ 매클래런에 의해 왜곡되고 매체에 의해 착복되었다는 사실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조의 어투로 로튼이 “그(매클래런)는 섹스 피스톨스를 위대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핵심을 가지고 (우리들을) 엿먹이고 있었다”고 말하거나, 시드 비셔스의 죽음은 매체가 섹스 피스톨스에서 마지막으로 뽑아낼 수 있었던 돈벌이라고 허탈해하며 자책의 눈물을 흘릴 때 조작될 수 없어 묵살된 위선의 반대편 출구가 들여다보일 것이다. 그것이 통렬하다면 그 파괴적 무위의 실존이 한때 품었던 순수한 득의감이 씁쓸한 간증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20011010 | 최세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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