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02094235-kwak곽윤찬 – Sunny Days – Universal, 2001

 

 

현실에 갇혀 있기 아까운 한국 재즈의 가능성

혹자는 한국에서의 ‘재즈 시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Jazz On Cinema]라는 편집앨범이 8만 여장의 대박을 기록했지만, 존 스코필드(John Scofield)의 라이선스 앨범의 판매량이 8천장에 머물렀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에서 재즈 앨범을 제작한다는 것을 ‘기적’처럼 바라보게 되는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공연이야 말할 것도 없고(공연문화야 재즈만의 문제가 아니니), 작더라도 클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채널)도 거의 없으니 말이다(혹시,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재즈 카페 간판은 뭐냐고 시비 걸지는 마시길).

‘한국 재즈사 최고의 명반’이 나왔단다. 버클리 음대 출신, 동덕여대 교수, 독실한 크리스천, Emarcy(그 유명한 Verve의 외국인 대상 레이블)와의 계약과 유니버설 재즈(Universal Jazz)의 홍보를 등에 업고 발매한 데뷔 앨범, 제프 해밀턴(Jeff Hamilton)과 존 클레이튼(John Clayton)이라는 최고의 파트너… 곽윤찬과 그의 앨범을 화려하게 수식하는 홍보 문구들이다.

문득 앨범을 듣고 나니, 선뜻 듣기조차 부담되는 이런 단어들은 사전에 알고 있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이야기 없이도 그의 데뷔 앨범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해에 몇 장 나오기 힘든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혁신적인 장르의 모색이나, 앞서가는 트렌드는 발견하기 힘들지만, 이름만 거창했지 함량미달인 수많은 재즈앨범들과 비교해 월등한 우위에 있는, 그래서 답보 상태에 있는 ‘메인스트림 재즈’의 가능성을 확인시키는 성실함과 원숙미가 돋보이는 앨범이다.

첫 곡 “Stella By Starlight”는 이 앨범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곡이다. 튀는 솔로보다는 협연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제프 해밀턴(drum)과 존 클레이튼(bass)의 조화가 돋보이는 곡이다. (웬 민족의식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꿀림 없이 치고 나가는 자신감 넘치는 곽윤찬의 유연한 피아노에 철저하게 협연해주고 있는 두 명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며 묘한 희열을 느끼게 한다. 이어지는 “Autumn Leaves”는 원곡을 빠른 템포로 변주해내면서도 기존 곡이 갖고 있던 리듬, 멜로디, 화음의 일관성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창의적인 곡 해석은 그의 연주를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이어지는 “Fish And Cake”는 그의 신앙과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따온 곡의 제목을 알고 듣지 않더라도 영적인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빌 에반스(Bill Evans) 풍의 주법이지만, 그 흐름이나 느낌은 가스펠의 영향을 받아 ‘교회식’ 프레이징을 사용하던 밀트 잭슨(Milt Jackson)의 유니크함과도 비슷하다.

기타 연주가 더해져 한층 흥겨운 스윙감을 느끼게 하는 타이틀 곡 “Sunny Days”, 리 모건(Lee Morgan)의 유명한 발라드 “Ceora”와 “I Can’t Started”의 여유를 지나고 나면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보사노바 “How Insensitive”를 만나게 된다. 원곡이 갖고 있는 보사노바 특유의 리듬을 굉장히 센서티브하게 비밥 연주로 바꿔 버린다. 그러면서도 원곡이 갖고 있는 정서와 느낌은 고스란히 살려내니(기타 덕도 크지만) 자연스런 찬사가 나오는 대목이다. 곽윤찬의 자작곡 “Blue Shrimp”(Blues Shrimp라는 뜻)의 풍요를 지나면 마지막 곡 “My Funny Valentine”에 이른다. 쳇 베이커(Chet Baker)의 한없이 우울한 버전으로 잘 알려진 이 곡이 그에게 가니 투명하고 경건한 예배(Worship)곡으로 바뀐다.

박수를 받을만한 앨범이며, 인정을 받을만한 실력이다. 하지만, 뒤끝에 남는 씁쓸함은 앞서 이야기했던 갑갑한 한국 재즈의 현실 때문이다. 여전히 국내 재즈 전문레이블의 부재 속에 이렇게 소중한 성취가 다시 맥이 끊겨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거기에 재즈 시장의 대중화라는 미명하에 1장 가격에 10장을 주는 속칭 ’10장 짜리 편집음반’의 재즈 시리즈가 속속 나오고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20010927 | 박정용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Stella By Starlight
2. Autumn Leaves
3. Fish And Cake
4. Sunny Days
5. Ceora
6. I Can’t Get Started
7. How Insensitive
8. Blue Shrimp
9. My Funny Valent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