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1년 8월 23일 오후 7시 30분 – 01시 30분
장소: 동대문 운동장 축구장
출연진: Toxic Smile, Vision Of Disorder, Machine Head, Sepultura, Slayer(헤드라이너)

메탈 페스트 2001 섬머 어택(Metal Fest 2001 Summer Attack). 8월 23일 목요일 오후 다섯 시 동대문 운동장. 2001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어 줄 메탈 밴드들의 한마당이 될 이번 무대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진다. 1부(17:30-19:30)에는 톡식 스마일(Toxic Smile), 디아블로, 크래쉬의 공연이, 2부(20:00-24:00)에는 비전 오브 디스오더(Vision Of Disorder), 머신 헤드(Machine Head), 세풀투라(Sepultura), 그리고 슬레이어(Slayer)의 불 뿜는 공연이 펼쳐질 것이다.

위의 내용은 내가 동대문 운동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갖고있던 ‘메탈 페스트 2001’ 공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몇 달 전 이 공연이 있을 거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한편으론 가고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공연 날이 임박해올 때까지 명확한 태도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공연에 가고 싶었던 이유. 무엇보다 이 공연엔 1990년대에 상당히 좋아하던 몇 되지 않는 메탈 밴드 중 하나인 슬레이어가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선다. 꼭 가야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 슬레이어를 빼놓고 내게 흥미를 일으키는 밴드가 별로 없었다. 이것은 순전히 ‘취향’의 문제다. 개인적인 취향대로라면, 만약 이것이 슬레이어 만의 단독 공연이었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갔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혹은 그렇지 못한) 상황으로 인해 망설여졌다. 그날 그날 기분으로 인한 망설임. 취향으로 인한 망설임. 혹은 금전 상황으로 인한 망설임.

하지만 여러 곡절 끝에 마침내 메탈 페스트에 가게 되었다. 동대문 운동장을 향할 때 ‘그 곳을 뒤흔들 광란의 함성에 대한 기대, 반면 쉴새 없이 고막을 후벼팔 파괴적인 음량에 대한 두려움(확실히 그것은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으로 인해, 가슴이 살짝 저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저려오는 가슴으로 동대문 운동장에 도착했을 무언가 분위기가 석연치 않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예정된 공연 시작 시간이 다소 지나 공연장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은 예기치 못한 ‘미완성’의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물론 아직 공연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그런 상황에서의 ‘미완성’이란 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 단지 그런 상황의 미완성이라는 건 ‘완성’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한, 즉 뜨거운 기대감과 에너지로 충만해지고 아찔해지는 등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날 ‘메탈 페스트 2001’ 공연 전 형성된 ‘미완성’의 분위기란, 비유하자면 채 지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폐허가 될 듯 멈추어버린 한 건물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서 저걸 어떻게 해야하나 두런거리는 그런 삭막한 풍경을 뜻하는 것이다. 너무도 색다른 풍경이었다. 위풍당당한 밴드들의 웅대한 출현을 한시라도 빨리 갈망하는 청중들의 달뜬 한숨도, 당장이라도 폭발하고도 남을 거대하고도 불온한 대기의 향취도 맡을 수 없었다.

동대문 운동장이 공연을 감당해 내기엔 지나치게 넓은 곳이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여기저기 듬성듬성 흩어져 있었다. 일부는 스탠딩석에 다가갈 생각도 없는지 운동장 뒤편에 무기력하게 웅크리고 있고, 일부는 기운도 목적도 없는 걸음을 몇 발짝 옮기곤 할 뿐이었다. 한마디로 ‘메탈 페스트 2001’ 공연은 청중 동원 면에선 실패하고 만 것이다. 장소가 올림픽 공원 테니스 경기장이었다면 적당했을 정도의 숫자의 청중이 광대한 동대문 운동장을 성근 잡초처럼 듬성듬성 채울 뿐이었으니. 실망스러울 정도로 부족한 청중들로 인해, 잠시동안 여기가 잠실 메인 스타디움이 아닐까, 착각이 들기도 했다.

실망스러운 게 빈약한 청중 수 뿐이라면 그나마 괜찮으련만, 여섯 시가 넘고 일곱 시가 넘어가도, 공연은 시작할 줄 모르고 있었다. 무대 세팅 및 리허설의 끝간 데 없는 지연 때문이었다. 때문에 공연의 설레임보다는, 지루함과 막막함의 정서가 그 넓은 운동장 전체를 당장 집어삼킬 듯했다. 무슨 문제가 얽혀들었는지, 무대에 서기로 한 크래쉬와 디아블로는 공연 거부를 선언했다.

결국 예정시간보다 두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톡식 스마일의 등장으로 ‘마침내’ 공연의 막이 올랐다. 하지만 기다림에 지치고 더위와 황량한 분위기에 지친 청중들은 공연이 시작된 데 대한 반가움보다는, 두 시간의 하릴없는 기다림을 견뎌냈다는 대견함이 더욱 가득한 듯 보였다. 하지만, 기다림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30분에서 1시간 남짓 공연을 펼친 밴드들이 교체될 때마다, 또다시 무대 세팅을 위해 30여분 간 공백의 시간이 엄습했고 모여있던 청중들은 그럴 때마다 뿔뿔이 흩어졌다. 간식거리를 오물거리거나, 무기력하게 플로어에 누워 별도 없는 밤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주최 측에서 틀어준 지난 번 판테라(Pantera) 한국 공연 녹화영상을 마치 실제 공연인 듯 착각하려 애쓰며 쳐다보거나 하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드문 드문 공연도 계속 되었다. 성실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테크니컬 록을 무대에서 빈틈없이 구현해내기엔 좀더 숙련과 경험이 필요한 톡식 스마일, 뉴욕 출신임을 틈날 때마다 자랑스레 내세우며 강력한 하드 코어를 내뿜던 비전 오브 디스오더, 광폭한 연주와 미칠 듯한 스테이지 매너로 보는 이의 넋을 나가게 했던 머신 헤드, 쓰래시 메탈과 브라질 토속 리듬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엉켜들며 모르는 새 몸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세풀투라, 그리고 자정 넘어 스테이지를 시작해 스물 네 개의 마셜 앰프에서 일제히 뿜어내는 음향의 대폭풍으로 서있던 청중들을 단숨에 날려버릴 듯 했던,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던 슬레이어.

결국 밤 한시 반이 되어서야 모든 공연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밤이 깊어가기 때문인지 아니면 너댓 시간을 울려댔던 음향의 회오리 덕분에 귀가 먹먹해진 탓인지, 심야 좌석을 타기 위해 이십 여분을 걷는 동안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가벼운 스침 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메탈이라는 이름의,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광포한 소리의 향연 뒤에 당혹스럽게 찾아드는 적막함. 이것은 언제나 시작되려나 허무한 심정으로 기다리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공연을 즐기느라 허둥댔던 몇 시간 전의 상황과 기묘한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었다.

애써 품어온 불만과 격정을 한 순간에 쏟아내려 발버둥치는 태도와, 그러한 ‘산화’를 맛보기 위해 오만가지 잡생각을 하며 치러내야 하는 기다림이 불가항력으로 함께 자리했던 공연. 이것이 ‘메탈 페스트 2001’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지. 그 공연이 정말 특별했다면 그런 의미에서다. 20010915 | 오공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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