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16101228-0318akvariumradioAkvarium – Radio Afrika (Radio Africa) -Triarii, 1983/1996

 

 

러시아판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라디오 아프리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음반은 ‘영미의 기준’으로 볼 때도 ‘컨셉트 앨범’이라는 자격에 손색이 없다. 아끄바리움(Akvarium)의 팬이라면 “러시안 록의 [Pet Sounds] 혹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사심없이 음반을 들으면 이런 주장이 지나친 과장은 아님을 느끼게 된다. 이전의 앨범들에 대해 “개별 곡들은 괜찮지만 앨범 전체는 글쎄…”라고 말한 사람도 이 앨범의 ‘일관성’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출 때의 노이즈로 시작되고 트랙이 바뀔 때마다 효과음들이 삽입되어서 트랙들은 솔기없이 이어진다. 물론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트랙은 ‘관습적 록 음악’에 가까운 “Rok’n’rol Mertv”와 “Iskusstvo Biyt’ Smirniym”이다. “Rok’n’rol Mertv”에서는 안드레이 리야핀(Andrey Lyapin)의 ‘거장적’ 기타 연주가 돋보여서 ‘에어 기타’를 하기도 좋을 정도이고, “Iskusstvo Biyt’ Smirniym”에서는 세르게이 꾸리요낀(Sergei Kuryokhin)의 키보드와 알렉산드르 찌또프(Alexandr Titov)의 베이스가 돋보인다. 이 멤버들 모두 아끄바리움의 멤버이자 별도의 음악적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었는데, 이들의 역량이 시너지를 발휘한 것은 이때가 절정이었다(첫 회에서 언급했듯, 찌또프는 이때부터 아끄바리움과 끼노 모두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다). 느린 템포 위에서 화성감이 돋보이는 마지막 트랙 “Eshe Odin Upavshiy Vniz”도 이들 트랙 못지 않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트랙들에도 주목하게 된다. “Kapitan Afrika”에서 휘감아 도는 색서폰과 훵키하게 깔짝거리는 리듬 기타, “Zmeya”에서 전위적인 키보드의 시퀀싱과 뿅뿅거리는 전자음향(그리고 색서폰), “Vana Hoya”에서 파도소리와 뒤이어 나오는 선적인 만트라, “Malchik Evgraf”에서 까불거리는 피아노 반주 위에서 전개되는 유쾌한 징글, “Tibetskoe Tango”에서 훵키한 디스코 리듬과 염불 같은 보컬의 공존, “S Utra Shel Sneg”에서 레게 리듬(“하루 종일 눈이 내렸다”는 레게 노래도 있다!)과 그때 그 시절의 신서사이저 음향의 결합 등등. 이를 하나 하나 듣고 있으면 인스트루멘틀 트랙도 포함해서 ‘한 트랙도 버릴 게 없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물론 이건 서양의 록 밴드들이 이미 실험한 것들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운드 이펙트는 핑크 플로이드가, 플루트와 일렉트릭 기타의 결합은 제쓰로 툴이 먼저 한 것들이고, 재즈 풍의 색서폰과 뉴 웨이브의 기타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록의 중앙에서는 이런 잡다한 요소들을 ‘맥락없이 혼성모방하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했던 시기에, 아끄바리움은 이것들을 진지하게 조합하고 서로에게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 점에서 이 음반은 “로큰롤이 죽었다”는 서양의 담론에 대한 러시아의 응답이었다. “로큰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비장하면서도 맥빠진 절규가 아니라 “로큰롤은 죽었지만 우리는 죽지 않았다”는 현실적 응답이다. 영미권이 아닌 변방의 록 뮤지션이 “록이 죽었다”는 현실을 자각한 것이나 이에 대해 ‘음악으로’ 응답한 것은 처음이 아닐까. 20010914 | 신현준 [email protected]

10/10

수록곡
1. Muziyka Serebianniykh Spits (Music of the Silver Spokes)
2. Kapitan Afrika (Captain Africa)
3. Pesni Viycherpiyvayuschikh Liudei (Songs of Exhausting People)
4. Zmeia (Snake)
5. Vana Khoya (Vana Khoya)
6. Rok-n-rol Mertv (Rock & Roll Is Dead)
7. Radio Shao-Lin’ (Radio Shao-Lin)
8. Iskusstvo Biyt’ Smirniym (The Art of Being Humble)
9. Tibetskoe Tango (Tibetan Tango)
10. Vremia Luniy (Time of the Moon)
11. Mal’chik Evgraf (Young Evgraf)
12. Tvoei Zvezde (To Your Star)
13. S Utra Shel Sneg (It’s Snowed All Day)
14. Eshe Odin Upavshiy Vniz (Another One Falling Down)

관련 글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3): 소비에트 체제의 기생충들의 역사 – vol.3/no.18 [20010916]
Akvarium, [Akustika] 리뷰 – vol.3/no.18 [20010916]
Akvarium, [Den Serebra] 리뷰 – vol.3/no.18 [20010916]
Akvarium, [Ravnodenstvie] 리뷰 – vol.3/no.18 [20010916]

관련 사이트
러시안 록 서치 사이트
http://www.slavweb.com/eng/Russia/music/rock-e.html
Akvarium 사이트
http://www.planetaquarium.com (러시아어)
http://www.aquarium.ru (러시아어)
http://www.planetaquarium.com/eng (영어)
http://www.dharmafish.org (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