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이후 퍼프 대디(Puff Daddy 혹은 P. Diddy)와 그의 추종자들이 주류 힙합 시장에서 힘을 잃어가면서 “모든 힙합은 뉴욕으로 통한다”는 말도 이젠 구닥다리가 된 듯하다. 마스터 피(Master P), 팀발랜드(Timbaland),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 아웃캐스트(Outkast)로 이어지는 남부의 소위 ‘더티 사우쓰(Dirty South) 랩’이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이미 주류 힙합의 패러다임을 장악한 지 오래고, 한편으로 중서부의 에미넴(Eminem)이나 넬리(Nelly) 같은 개성 넘치는 래퍼들까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지금 주류 랩 게임에서 살아남은 뉴욕의 래퍼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각기 뉴욕을 대표하던 런 디엠씨(Run-D.M.C.)나 우탱 클랜(Wu-Tang Clan)은 새 천년이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고,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던 나스(Nas) 또한 지금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단지 랩 게임의 변화하는 사운드스케이프에 명민하게 대처해온 제이 지(Jay-Z)나 자존심 강한 맙 딥(Mobb Deep) 정도가 그저 체면을 살릴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힙합은 뉴욕이다”라고 외치는 이들도 여전한데, 아마도 뉴욕 언더그라운드 씬의 지속적인 유지와 성장 과정을 지금껏 지켜봤다면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라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뉴욕 힙합의 젖줄이 되어 왔던 브롱스, 할렘, 브루클린으로 이어지는 뉴욕 언더그라운드 커넥션은 어느 한 순간도 고삐를 늦춘 적이 없다.

사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의 소위 올드스쿨 힙합은 그 자체로 뉴욕 언더그라운드 힙합이었다(당시엔 힙합이 단지 뉴욕 게토의 마이너리티 집단들을 위한 언더그라운드 음악이자 문화일 뿐이었음을 상기한다면 놀랄 일도 아니지만). 물론 할렘과 브롱스의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그랜드마스터 플래쉬 앤 퓨리어스 화이브(Grandmaster Flash & Furious Five)나 슈거힐 갱(Sugarhill Gang) 같은 스타들이 배출되면서 힙합 문화와 음악은 미 전역의 대도시 게토를 자신의 영역으로 확보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하긴 했지만, 1980년대 중반 런 디엠씨의 대성공 이후에야 비로소 뉴욕을 넘어 전국을 커버하는 문화적 표현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주류 음악 시장을 장악해온 무수한 뉴욕 출신의 소위 메인스트림, 혹은 오버그라운드 힙합 뮤지션들의 리스트는 일단 여기서 생략하기로 하자. 중요한 것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 이들 뉴욕 출신의 수많은 힙합 뮤지션들의 스타 등극이 결코 뉴욕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소멸 혹은 약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뉴욕 언더그라운드 씬의 지속적인 유지와 질적인 성장이 없었다면, 우탱 클랜이나 나스 같은 슈퍼스타들의 배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주류 시장의 슈퍼스타가 되진 못 했더라도, 상업적인 기준과는 무관하게 음악적으로 인정받는 상당수의 뛰어난 뮤지션들이 뉴욕 언더그라운드에서 꾸준하게 배출되어 왔다. 물론 이 중에는 여전히 뉴욕의 클럽을 전전하며 언더그라운드에 천착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의 간극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즐기며 자신들만의 음악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더불어 뉴욕을 넘어서는 팬들을 거느리고 평자들의 호평을 끌어내는 뮤지션들도 의외로 많다. 특히 이러한 뮤지션들이 패거리(collective) 형태로 묶여서 함께 활동을 할 경우, 힙합 씬 내외에서 이들 패거리가 차지하는 영향력과 누리는 지위는 주류 시장의 슈퍼스타에 못지 않다. 가령 주류 시장의 스타들이 앨범을 낼 경우, 이러한 인디, 혹은 언더그라운드 성향을 지닌 패거리들의 음반 제작 참여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성공을 위한 보증수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1980년대 중후반, 올드스쿨에서 뉴스쿨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던 시기의 대표적인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집단으로는, 말리 말(Marley Marl)과 그의 레이블인 콜드 칠링(Cold Chillin’)에서 활동했던 뮤지션들을 꼽을 수 있다. 비록 ‘컬리지 랩’으로 스타덤에 오르는 네이티브 텅(Native Tongue) 패거리(드 라 소울(De La Soul),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old Quest), 정글 브라더스(Jungle Brothers) 등)와 같은 후발주자들의 전국적, 국제적 지명도를 당시에 확보하진 못 했지만, 콜드 칠링 산하의 엠씨 샨(MC Shan), 빅 대디 케인(Big Daddy Kane), 비즈 마키(Biz Markie), 쿨 지 랩(Kool G Rap), 마스터 에이스(Master Ace), 록산느 샨테(Roxanne Shante), 키드 카프리(Kid Capri)는 제각기 출중한 래퍼로 이름을 날렸다. 올드스쿨 최고의 프로듀서 중 하나로 꼽혔던 말리 말은 특히 샘플링 기술의 진보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는데, 지금이야 랩과 샘플링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방법들이 고도로 세련화되어 있지만, 사실 그가 그의 사촌인 엠씨 샨의 싱글 “The Bridge”(1986)를 프로듀스하여 세상에 내놓을 때만 해도 그의 사운드 프로듀싱은 일종의 혁신에 가까웠다. 이 시기 콜드 칠링을 통해 발매된 주옥같은 앨범들 중에서, 특히 빅 대디 케인의 [Long Live The Kane](1988), 엠씨 샨의 [Down By Law](1987), 마스터 에이스의 [Take A Look Around](1990)는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반들이며, 장황하고 코믹한 래퍼 비즈 마키는 턴테이블리스트들의 비트 저글링 혁명에 단초가 된 롭 스위프트(Rob Swift)(혹은 엑세큐셔너스(X-ecutioners))의 “The Biz Routine”에 결정적 힌트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D.I.T.C. 패거리

1990년대 초중반에 뉴욕 언더그라운드가 배출한 최고의 패거리는 네이티브 텅(Native Tongue)과 D.I.T.C. 패거리였다. 앞서 언급한 콜드 칠링의 뮤지션들이 레이블을 중심으로 다소 느슨하게 결합되었다는 점에서 정확히 패거리 개념으로 묶이기엔 애매한 집단인 반면, 후자들은 나름의 공유된 음악적 인식과 사회적 정체성으로 똘똘 뭉친 진정한 패거리라고 할 수 있다. 네이티브 텅 패거리의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정글 브라더스, 드 라 소울 등이 다소의 지적인 오만함과 재기 발랄함에 올드스쿨적 요소(이는 이 패거리의 창시자인 아프리카 밤바타 Afrika Bambaataa의 영향이 크다), 재즈에 대한 집요한 사운드적 집착을 절묘하게 결합한 음악으로 대중적 스타의 자리에 오른 반면, D.I.T.C.는 음악적으로나 태도 면에서 갱스타적 멘탈리티로 무장한, 언더그라운드적인 성향이 보다 강한 패거리였다.

D.I.T.C.란, 일반적으로 다이아몬드 디(Diamond D), 로드 피네쓰(Lord Finesse), 팻 조(Fat Joe), 오씨(O.C.), 쇼비즈 앤 에이지(Showbiz & A.G.), 벅와일드(Buckwild), 그리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빅 엘(Big L)까지 8명의 래퍼/프로듀서/디제이와 그들의 추종자들로 구성된 패거리를 일컫는다. 이들은 각자 개성 넘치는 작곡, 래핑, 사운드 프로듀싱 능력을 겸비한 탁월한 뮤지션들인데, 다이아몬드 디, 로드 피네쓰, 벅와일드가 주류와 인디 씬을 오가는 실력파 프로듀서로서 주로 인지되는 반면, 오씨, 팻 조, 빅 엘은 뉴욕 언더그라운드가 배출한 최고의 엠씨들로 꼽힌다. 또한 다이아몬드 디와 로드 피네쓰처럼 1980년대 중반부터 뉴욕 언더그라운드에서 배틀 엠씨나 디제이로 활동했던 이들부터, 최초로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뉴욕의 라틴계 래퍼로 꼽히는 팻 조, 가장 늦게 패거리에 합류했던 탁월한 젊은 엠씨, 빅 엘까지 다양하고 화려한 경력들을 자랑한다.

20010816015803-01_RunawaySlave사진설명 : Showbiz & A.G.의 언더그라운드 클래식 앨범, [Runaway Slave]
D.I.T.C.가 뉴욕 힙합 씬에 확실하게 이름을 등록할 수 있었던 계기는 1992년 이들이 두 장의 언더그라운드 클래식 앨범, 다이아몬드 디의 [Stunts, Blunts And Hip Hop]과 쇼비즈 앤 에이지의 [Runaway Slaves]를 내놓으면서부터이다(다이아몬드 디의 앨범 리뷰는 ‘잃어버린 힙합 명반 찾기’ 참조). 특히 후자는 재지한 관악과 느물거리는 현악에 단순하면서도 밀도 있는 드럼 비트를 결합한 D.I.T.C. 패거리 특유의 사운드 전형을 확립한 앨범으로, 당대 최고의 뉴욕 힙합 음반 중의 하나로 꼽힌다. 쇼비즈와 다이아몬드 디는 이 앨범을 계기로 실력파 프로듀서로서 입지를 굳히게 되었고 게스트 래퍼로 참여한 팻 조와 빅 엘도 거칠지만 힘있는 랩으로 세상에 처음으로 그들의 이름을 알렸다.

이후, 패거리 성원들의 협업 속에 완성된 팻 조(다 갱스타 (Da Gangsta))의 [Represent](1993), 오씨의 [Word… Life](1994), 빅 엘의 [Lifestylez Ov Da Poor And Dangerous](1995)가 연이어 호평을 받으면서 이들은 갱스터 멘탈리티와 단단한 비트, 재즈의 아우라를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언더그라운드의 패거리임을 만방에 과시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각자의 꾸준한 앨범 발매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어느 정도 침체기를 겪어야 했던 이들 패거리는, 1999년 가장 젊고 유망했던 빅 엘의 비극적 죽음을 계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은 뒤늦게 D.I.T.C. 패거리와 그들의 이전 앨범들에 대한 세상의 재평가를 이끌어내었고, 이 와중에 이스트코스트 인디 힙합의 실력파들을 규합하며 힙합 씬의 거대 세력으로 성장하던 야심만만한 뤄커스(Rawkus) 레이블은 이들 패거리를 흡수하게 된다.

그간의 침체를 극복하고 보다 분명한 집단적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D.I.T.C.는 모든 멤버를 규합해 2000년에 [Worldwide]라는 앨범을 뤄커스에서 발매하였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 앨범은 각자의 개성 넘치는 음악적 능력들을 한꺼번에 감상하고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전의 그들의 개별적인 클래식 앨범들을 구하는 게 여러 이유로 힘들다면, 이 음반은 더할 나위 없는 ‘D.I.T.C. 샘플 앨범’이다. 특유의 거칠고 허풍 센 가사(물론 때로는 일상 속에서 날카로운 사회적 풍자가 돋보이는 팻 조의 “Da Enemy” 같은 곡도 있다)와 빈틈없는 프로듀싱의 결합이 여전한 가운데, 모든 멤버가 참여하여 세상을 떠난 빅 엘을 경배하는 “Tribute” 같은 곡을 마지막에 배치하여, 앨범의 짜임새를 더한다. 특별 게스트인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가 리믹스한 트랙, “Ebonics”(‘에보닉스(Ebonics)’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흑인식 영어’를 일컫는 단어이다)에서 빅 엘이 흑인들의 슬랭 용어를 설명하며 구사하는 뛰어난 래핑(빠르게 내뿜는 프리스타일적 딜리버리와 명료한 라임!)을 듣고 있노라면, 왜 그의 죽음이 뉴욕 힙합 씬의 치명적 손실인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단체 앨범을 계기로 D.I.T.C. 패거리들이 장차 어떤 행보를 진행해 나갈지, 그리고 뤄커스가 그들을 어떤 식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나갈지, 앞으로가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네이티브 텅의 미래적 진화, 탈리브 퀠리와 모스 데프

D.I.T.C. 패거리가 언더그라운드의 숨은 보석으로 머물러있던 1990년대 초반, 네이티브 텅 패거리는 이미 뉴욕을 넘어서는 랩 음악의 슈퍼스타들이었다. 전자가 부기 다운 프로덕션스(Boogie Down Productions)와 같은 갱스타적 스타일과 태도를 부분적으로 계승했다면, 후자는 대조적으로 올드스쿨 스타일과 ‘컬리지 랩’으로 불릴 정도의 지식인적 태도를 결합하려 노력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사실 드 라 소울,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정글 브라더스 등의 1세대 네이티브 텅 패거리 멤버들의 전성기는 그 당시였고,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노쇠의 기미가 역력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뉴욕을 중심으로 지적 풍모와 음악적 역량을 겸비한 젊은 실력파들을 지속적으로 수혈하면서 이들 패거리는 끊임없이 갱생을 해왔는데, 바로 커먼(Common), 탈리브 퀠리(Talib Kweli), 모스 데프(Mos Def), 부시 베이비스(Bush Babees) 등이 이러한 2세대를 대표하는 네이티브 텅의 간판 뮤지션들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뉴욕 토박이들인 탈리브 퀠리와 모스 데프가 이들 패거리의 미래이자 동시에 당대 뉴욕 힙합의 자존심이라는데 이견을 달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네이티브 텅 패거리는 기본적으로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를 막론한 뉴욕, 아니 미국 힙합의 전반적인 갱스타 멘탈리티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하지만 이 패거리 내에서도 1세대와 2세대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기본적으로는 힙합은 보다 예술에 가까워야 하고 동시에 일상에 대한 지적이고 사려깊은 성찰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탈리브 퀠리와 모스 데프는 선배들에 비해 보다 뚜렷한 정치적, 사회적 태도를 견지한다. 그들은 아프로-아메리칸의 빈곤과 억압에 대한 고민을 풍자적인 워드플레이 수준에서 내뱉고 화풀이하는데 머무르지 않는다. 궁극적인 아프로-아메리칸의 해방을 원하고, 나아가 이를 위해서는 전세계의 억압받는 모든 흑인들이 공통의 사회인식을 통해 연대해야 한다고 음악을 통해 설교한다.

물론 탈리브 퀠리와 모스 데프는 ‘아프리카'(물론 지금의 현존하는 처절한 삶의 아프리카를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 여러 대륙으로 흩어진 흑인들이 꿈꿔온 궁극적인 이상향이자 낙원이며, 한편으로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서 상상된 아프리카를 의미한다)로의 회귀라는 마커스 가비(Marcus Garvey)가 반세기 전에 흑인 지식인 계층에게 제시한 숙제를 자신들의 음악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화적 활동을 통해서도 충실히 실천하고자 한다. 이들이 1998년 이후 함께 운영하고 있는 브루클린의 ‘엥키루 서점(Nkiru Bookstore)’은 오직 흑인 연구와 관련된 서적들만 파는 뉴욕의 몇 안 되는 흑인 전문 서점이고, ‘엥키루 교육 문화 센터(Nkiru Center for Education & Culture)’는, 보다 적극적인 사회문화적 실천으로서의, 소위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 혹은 ‘아프리카 중심주의(Afro-Centrism)’를 위한 그들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20010816015803-03_BlackStar사진설명 : Marcus Garvey의 환생, Black Star의 동명 앨범
학자 출신의 부모를 둔 전형적인 흑인 중산층 출신인 탈리브 퀠리(아라비아어와 가나어가 합성된 그의 이름은 ‘진실과 지식의 구도자(the seeker of the truth and the knowledge)’를 의미한다)는 어릴 때부터 랩을 통해 그러한 자신의 철학을 알리기를 원했고, 결국 신시내티 출신의 탁월한 언더그라운드 프로듀서인 디제이 하이텍(DJ Hi-Tek)과 리플렉션 이터널(Reflection Eternal)을 1994년에, 그리고 뉴욕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하던 그 못지 않은 지성파 청년 모스 데프와 블랙 스타(Black Star)를 1995년에 결성하게 된다. 이후 탈리브 퀠리와 모스 데프가 뉴욕 언더그라운드에서 지금까지 성장해온 과정은 뤄커스 레이블이 힙합 씬에서 거물급 레이블로 자리잡는 과정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뤄커스 레이블의 다양한 프로젝트와 네이티브 텅 패거리 선배들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며 실력을 쌓아가던 탈리브 퀠리와 모스 데프가 주류 힙합 시장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건, 이들의 듀오 프로젝트인 블랙 스타의 앨범이 1998년에 나오면서이다. 마커스 가비가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로 향하는 흑인들을 위한 정기 선박 노선, ‘블랙 스타’를 그룹명이자 앨범명으로 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Black Star]는 메시지 면에서 마커스 가비의 어록 그 자체이다. 한편으로 이들 듀오의 지적인 어휘 구사 능력은 단단한 베이스라인과 올드스쿨의 향취, 드문드문 재즈에 뿌리를 둔 리듬 중심의 프로듀스와 멋진 조화를 이루는데, 덕분에 블랙 스타는 힙합 씬 내의 새로운 지식인적 대안으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힙합은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이어야 한다”는 그들의 이상은 이 앨범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구현된 듯하다.

개인적인 이력이나 구체화된 사회적 인식이라는 면에서 탈리브 퀠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던 모스 데프가 무서운 카리스마와 대중적 스타로서의 잠재력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이 블랙 스타의 앨범이 발매된 시점부터이다. 연예인적 끼와 자유분방함을 지닌 모스 데프는 결국 탈리브 퀠리에 앞서 솔로 데뷔 앨범인 [Black On Both Sides](1999)를 재빠르게 내놓으며 네이티브 텅 2세대의 선두주자로 부상한다. 기본적으로 [Black Star]에서 드러낸 범아프리카주의적 태도를 메시지 면에서 견지하면서, 모스 데프는 이 음반에서 보다 다양한 사운드 실험들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더욱 더 정련하고 확장하고자 한다. 지적이면서도 다소 난해한 듯한 워드플레이와 빈틈없는 리듬, 재즈에 대한 미련을 결합시키는 기본적 방법은 여전하지만, 이 앨범을 보다 빛나게 하는 건 레게, 팝, 소울, 훵크와 펑크로 이어지는 다양한 장르적 실험들이다. 이를 통해, 모스 데프는 백인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전유되어 온 흑인들의 음악적 혁신들을 의도적으로 ‘재전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다. 더욱이 그는 이들 트랙에서 랩 뿐 아니라 노래도 하고 다양한 라이브 악기들(베이스, 드럼, 키보드, 비브라폰, 콩가 등)도 직접 능란하게 연주를 하면서 ‘멀티 태스킹(multi-tasking)’ 뮤지션으로서의 면모 또한 드러낸다.

20010816015803-05_TalibKweli사진설명: 인텔리전트 힙합의 대명사, Talib Kweli
한편, 양자간의 오랜 파트너쉽을 생각한다면 섭섭할 건 없지만, 모스 데프에 한발 뒤쳐졌음을 깨달은 탈리브 퀠리는 또 다른 파트너, 디제이 하이텍과의 듀엣작업의 결과물을 이듬해에 발표하면서 순식간에 모스 데프와 다시금 동일한 위치로 올라선다. 빛나는 언어적 혹은 시적 유희와 빈틈없는 사운드의 기막힌 조합이 단연 돋보이는 리플렉션 이터널의 [Train Of Thought]가 2000년 하반기에 나온 최고의 힙합 앨범이라는 데 이견을 달수는 없을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파 힙합 뮤지션답게 탁월한 문장 구성능력을 바탕으로 일상의 미세한 고통과 고민들을 잡아내고 삶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는 그의 가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거칠고 투박하게 허풍, 섹스, 죽음, 돈에 대해서 강박증적으로 집착하는 것만이 랩 음악의 전부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탈리브 퀠리의 눈부신 재능은, 디제이 하이텍의 프로듀싱이 없었다면 제대로 표출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블랙칼리셔스(Blackalicious)가 아니면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모던한 느낌의 고전적 그루브 혹은 복고적 미래주의의 미니멀한 비트들을 별 탈없이 주조해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뿜는 탈리브 퀠리의 라임과 기타, 색서폰, 피아노 루프를 자유롭게 결합시키는 그의 능력은 결코 튀지 않으면서도 이 앨범의 사운드를 최상으로 끌어올린다.

이제 모스 데프와 탈리브 퀠리는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숨은 보물의 단계를 넘어, 새 천년 뉴욕 힙합, 아니 미국 힙합의 새로운 대안적 존재들이 되었다. 그러기에 지금 모스 데프가 집중하고 있는 하이브리드한 록-힙합 프로젝트와 탈리브 퀠리의 실험적 인텔리전트(intelligent) 힙합에 대한 힙하퍼들의 넘치는 기대는 그다지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왜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뉴욕 언더그라운드에서 성장한 D.I.T.C.와 네이티브 텅 패거리의 1990년대에서 지금에 이르는 행보를 살펴보는 것은 동시에 언더그라운드 힙합 전반에 대한 진지한 재성찰을 요구한다. 물론 여기서 ‘언더그라운드’의 브랜드네임화나 정통성 여부에 대한 얘기를 길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실 현재의 주류 랩 게임의 ‘마이크로-비트 과학’ 패러다임에 맞설 수 있는 음악적 재능은 부재한 채, 단지 언더그라운드 출신이라는 간판만으로 이들 뮤지션이 시장에서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언더그라운드라는 유령에 강박증적으로 집착하는 것만이 언더그라운드 출신 뮤지션들의 존재를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도 아니다. 결국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주류 시장 입성 과정에서 늘상 생기는 주변적인 잡음들은 일단 무시하는 게 바람직하며, 이들 뮤지션이 어떤 음악적 내용과 태도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보다 중요할 것이다.

D.I.T.C.와 네이티브 텅 패거리는 현재의 뉴욕, 혹은 미국 언더그라운드 출신 힙합 뮤지션 전반의 상반된 두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샘플과도 같다. 전자가 견고한 비트 위에 여전한 갱스타적 멘탈리티를 음악적 태도로 결부하는 다수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범아프리카주의라는 정치적, 사회적 인식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면서 갱스타 이미지가 완전히 배제된 지적이고 예술적인 힙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군의 뮤지션들을 대표한다. 흥미로운 것은, 더 넓게 바라본다면, 양자간의 차이가 현재의 아프로-아메리칸 청년 집단의 사회문화적 생존방식의 두 갈래 길에 대한 반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전자가 여전히 게토의 거리 문화에 길들여진 채 핌프적, 갱스타적 태도에 집착하는 격리된 하층 계급의 젊은 아프로-아메리칸 남성의 외양을 빼닮았다면, 후자는 아프리카 중심주의나 범아프리카주의 같은 정치적 노선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당화하는 중, 상층 계급 아프로-아메리칸 젊은 지식인들의 전형이다.

사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상당수가 D.I.T.C.의 멤버들처럼 대도시 게토의 하층계급 출신임을 상기한다면 이들이 랩 음악을 통해 갱스타적 멘탈리티와 문화(그것이 실제의 것이든 과장되고 의도적인 상상의 것이든)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층 계급 아프로-아메리칸 젊은 남성들의 이러한 문화적 표현 방식이 전체 아프로-아메리칸 사회와 문화의 일부분을 드러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류 미국 사회의 미디어나 문화산업은 이를 아프로-아메리칸 사회의 진수이자 그들의 삶 전체에 대한 묘사인 것처럼 늘상 왜곡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메인스트림의 하드코어 힙합 뮤지션들이 이러한 지배담론에 기댄 채 혹은 그러한 이미지로 무장한 채 음반 시장을 누비고 있음을 떠올린다면,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많은 뮤지션들이 기본적으로 전자와 별반 차이 없는 태도와 이미지를 자신들의 무기로 삼는 것은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닌 듯 싶다. 이는 언더그라운드든 주류든 힙합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아프로-아메리칸 청년문화의 모습은 결국 게토에 천착하는 갱스타적, 핌프적 하층 계급 청년의 외양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반면 탈리브 퀠리나 모스 데프같은 네이티브 텅 2세대 뮤지션들은 아프로-아메리칸 청년들이 그러한 게토적 삶에서 탈피하고 나아가 그 옛날의 영화롭던 대륙이자 현재와 미래의 이상향인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으로서 스스로 자존심을 회복하라고 음악을 통해 설득한다. 아니 궁극적으로는 아프로-아메리칸 흑인 뿐 아니라 미국과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모든 흑인들이 ‘아프리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규합해야 하며,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의 인종주의나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으로부터 흑인들이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권한다. 이들의 음악활동과 메시지는 아프로-아메리칸 흑인 청년들의 패배자적인 태도와 아웃사이더적인 삶에 새로운 자극과 희망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범아프리카주의 혹은 아프리카 중심주의를 주장하는 대부분의 아프로-아메리칸 지식인들이 그러하듯이, 이들은 편협하고 추상적인 ‘흑인 민족주의(Black nationalism)’의 오류를 되풀이할 위험 또한 내포한다.

여기서 상당수의 아프로-아메리칸 흑인 운동가나 지식인들이 옹호하는 흑인 민족주의나 아프리카 중심주의에 대한 깊은 논의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흑인 민족주의나 아프리카 중심주의에 바탕한 사회운동이 1960년대 이후 촉발된 미국 사회 내의 흑인들의 인권 신장과 권익 보호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론 다인종, 다문화 사회 내에서 아프리카 출신으로서 자신들의 타고난 지적, 문화적 우수성이나 신체적 차이를 노골적으로 강조함에 따라, 흑인 사회를 타자화시키거나 다른 소수민족들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종의 ‘역설적 인종주의’를 강화할 위험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담론이 아프로-아메리칸 지식인이나 중, 상층 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됨에 따라, 실제로는 전체 아프로-아메리칸 사회 내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회피하고 관념적인 이상향에 대한 주장에만 집착하는 경향 또한 존재한다. 말하자면 흑인 사회 내의 다양한 목소리와 불평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침묵하면서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목표만 설정한 채, 이들 아프로-아메리칸 지식인과 중산층이 자신들의 지위와 지적 능력에 대한 정당성 확보에만 급급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탈리브 퀠리나 모스 데프의 음악이 백인 중심의 평단과 팬들로부터 ‘힙합의 미래’라는 극찬을 받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하층 계급의 아프로-아메리칸 흑인들로부터 큰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 때문이다. 아프로-아메리칸 공동체 바깥에서 이 독특한 인텔리전트 힙합을 반기는 것이 당연하듯이, 당장의 고난스러운 삶이 더 큰 문제인 게토의 가난한 흑인들이 이런 이상주의적 뜬구름을 쫓아다닐 여유가 없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실제 이들 뮤지션의 콘서트가 대학가에서만 이뤄진다는 것은 그에 대한 단적인 예이다. (2000년 6월에, 이들과 비슷한 성향의 뮤지션인 커먼과 블랙칼리셔스의 조인트 공연이 베이 에리어에 위치한 사학의 명문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있었다.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들 중에 이 학교의 학생들을 제외한다면 과연 몇 명의 아프로-아메리칸 흑인들이 그들을 보러 이곳에 찾아 왔겠는가?)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허풍 세고 폭력적인 갱스타 멘탈리티, 혹은 지식인적 흑인 민족주의라는 양극단만을 추구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정말 그 이외의 대안은 없는가 의문을 갖게 된다. 전자의 태도가 지양되어야 함은 분명하지만, 부정성과 폭력의 문화를 제거 혹은 억제하는 방법이 오직 유심론적이고 지식인적인 편협한 흑인 민족주의라면 이 또한 적절하지 않다. 결국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나아가 전반적인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이 메인스트림과 사운드적으로 차별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동시에 지나친 지식인적 강박증에서 벗어나 마이너리티 공동체(아프로-아메리칸 공동체를 포함하여) 내의 다양한 삶과 문화를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태도와 스타일 면에서도 보다 분명한 차이를 긍정적으로 드러내는 과정과 병행되어야 하지 않는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아울러 뉴욕 언더그라운드가 1990년대 이후 배출한 최고의 실력파 뮤지션들인 D.I.T.C.나 탈리브 퀠리와 모스 데프의 앞으로의 행보 역시 이런 필자의 생각과 어긋나지 않기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20010814 | 양재영 [email protected]

관련 글
Diamond D & Psychotic Neurotics, [Stunts, Blunts And Hip Hop] 리뷰 – vol.3/no.9 [20010501]

관련 사이트
뉴욕의 대표적인 인디 힙합 레이블인 Rawkus의 공식 사이트
http://www.rawk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