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메인스트림 힙합 시장에서 음반이 발매되는 주기를 꼼꼼히 따져보면 해마다 되풀이되는 비교적 간단한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상반기보다는 하반기에 거물급 뮤지션들의 앨범이 많이 쏟아지고, 하반기에 시장에 나온 이 앨범들의 영향은 주로 이듬해 상반기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2001년 상반기의 미국 주류 힙합 씬도 예외가 될 수 없는데, 거물급 뮤지션들의 신작발매는 띄엄띄엄 이루어지는 가운데, Outkast나 Wu-Tang Clan, Snoop Dogg, Xzibit 등의 작년 하반기에 나온 앨범들이 봄까지도 여러 면에서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20010816021214-0316special_1juvenile그 와중에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올 상반기에도 ‘Dirty South’ 혹은 ‘Southern Rap’이 여전히 주류 음반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이스트코스트와 갱스타 랩을 치고 나가면서, 주류 시장 내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Dirty South 힙합은 이제 버지니아에서 텍사스에 이르는 로컬 힙합(local hip hop)의 단계를 완전히 넘어선 듯하다. Master P의 No Limit 제국의 기세가 근래에 주춤하긴 하지만, 작년의 Mystical, C-Murder, Lil’ Bow Wow의 연이은 상업적 성공과 Outkast의 실험적 사운드에 대한 대대적 호평은 올해 Juvenile의 [Protect English]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졌으며 아울러 Cash Money 레이블이 No Limit의 공백을 메움에 따라, Dirty South 힙합은 당분간 권좌를 유지하리라 예상된다.

20010816021214-0316special_2missy한편으로 주류 시장의 간판급 남성 뮤지션들의 활동이 뜸한 사이 여성 뮤지션들의 활동이 올 상반기에 유독 돋보였는데, Ruff Ryders의 간판 Eve와 버지니아의 여걸 Missy Elliott은 각자 두 번째([Scorpion])와 세 번째([Miss E… So Addictive]) 독집을 내놓으면서,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새 천년 미국 힙합의 양대 디바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Timbaland와의 합작인 Missy Elliott의 [Miss E… So Addictive]는 현란한 미래지향적 비트 실험과 다양한 장르의 접목으로, 올해 주류 힙합 시장에서 나온 최고의 수작 앨범으로 꼽을 수 있겠다.

두 여걸의 지속적인 성공은 동시에 이 두 앨범의 메인 프로듀서인 Timbaland와 Swizz Beatz가 여전히 당대 메인스트림 최고의 힙합 프로듀서임을 입증한다. 첨단 트렌드의 음악적 지식과 능력으로 무장한 이들과 뒤를 잇는 일군의 젊은 프로듀서들은, 훵크와 소울의 아우라와 유럽에서 건너온 다양한 댄스플로어용 마이크로-싱코페이션(micro-syncopation) 비트를 접목하는 실험에 지속적으로 성공하면서, 1990년대 후반 자신들이 달성한 힙합 사운드 혁명을 올 상반기에도 굳건히 수성하였다. 이들은 마치 새 천년에도 이러한 사운드 공식으로 얼마든지 정상을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고 만방에 과시하는 듯하다.

샘플링과 마이크로폰 스킬에 집착하던 기존의 힙합 사운드를 지양하고, 중독성의 정교한 마이크로 비트, 랩과 보컬이 적당한 길이로 균형 있게 주고받는 사운드를 중시하는 신세대 프로듀서들은 따라서 이제 더 이상 랩과 R&B의 작위적 분류가 무의미하다고 힙하퍼들에게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 하반기에서 올 상반기에 걸쳐 발매된 소위 R&B 앨범들을 듣고 있노라면, 랩 앨범들과의 명확한 구분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앨범을 발매한 뮤지션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래퍼’ 혹은 ‘싱어’로서)에 따라서 인위적으로 랩 앨범과 R&B 앨범으로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작년 하반기의 Wu-Tang Clan의 부진에 이어 올해 Run-D.M.C.의 재기작 [Crown Royal]의 상업적 참패는, 지난날의 전형적 힙합 사운드 공식에 집착하는 음악들은 지금 현재 생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Dirty South와 마이크로-싱코페이션 비트 사운드가 올 상반기에도 여전히 주류 힙합 씬을 독점한 가운데, 언더그라운드 쪽에서는 상대적으로 보다 다양한 사운드 실험의 우수한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백전노장인 Pete Rock과 Aceyalone이 각기 이스트코스트와 웨스트코스트에서 분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정도인데, 본인들의 모처럼의 솔로 앨범인 [Petestrumentals]와 [Accepted Eclectic]도 무난하지만 각자의 프로젝트 [Funk Spectrum Vol.3]과 [Haiku d’Etat]의 실험적이고 지적인 사운드는 더욱 돋보인다.

20010816021214-0316special_3cannibal한편으로 신인급 중에서는 이스트코스트 언더그라운드의 전설 Company Flow의 분신인 Def Jux 레이블의 기대주이자 할렘의 간판인 Cannibal Ox의 [The Cold Vein]과, 베이 에리어 힙합 씬에서 Lauryn Hill보다 낫다고 자신 있게 내세우는 Mystic의 [Cuts For Luck & Scar For Freedom]이 단연 눈에 띄는데, 이들의 앨범은 감히 올 상반기에 나온 최고의 힙합 앨범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다. 그밖에 노장 라틴 듀오 Beatnuts([Take It Or Squeeze It), 기괴한 캐릭터의 실력파 래퍼 Mr. Dead([Metabolics, Vol.2: Dawn of the Dead])의 앨범도 주목을 받았으며, A Tribe Called Quest, Common 등의 앨범을 프로듀스하면서 최고의 프로듀서 중 하나로 평가받아온 Jay Dee의 솔로앨범 [Welcome 2 Detroit]도 상반기에 호평을 받은 앨범으로 꼽힌다.

지역적, 장르적으로 나눠 보자면, 턴테이블리즘을 키워드로 돌풍을 일으켜온 베이 에리어의 언더그라운드 씬이 상대적으로 침체를 보인 가운데 백전노장 턴테이블리스트 Eddie Def가 이끄는 Bullet Proof Space Travellers가 [Built To Last]로 겨우 체면치레를 했고, 이스트코스트에서는 간판 레이블인 Rawkus가 Smut Peddlers의 [Porn Again]과 DJ Hi-Tek의 [Hi-Teknology]가 연이어 기대치를 밑돌면서 당황해 하기도 했다. 뉴욕의 양대 기둥 Mos Def와 Talib Kweli의 후속 프로젝트들에 대한 기대치가 지금 가중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가지 앞으로 희망적인 것은 미국의 힙합, 특히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국제적인 자극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같은 영어권이면서 독자적으로 성장한 영국 힙합 씬이 배출한 실력파 뮤지션들의 미국 시장 진출은 그 개성강한 사운드로 인해 미국 힙합 씬에 경쟁과 자극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실력파 엠씨 Ty의 [Awkward]와 프로덕션 팀 Rae & Christian의 [Sleepwalking]이 연이어 미국 시장에 상륙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혹자는 힙합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Wagon Christ의 [Musipal]은 독일 출신 Burnt Friedman의 [Plays Love Songs]와 함께 앱스트랙트 힙합이 현재 어느 단계까지 진화했는지를 미국 힙합 씬에 한 수 가르쳐 주었다. 또 다른 흥미 꺼리는 Damon Albarn(Blur), Dan The Automator, Del The Funkee Homosapien 등의 Gorillaz 프로젝트인데, 비록 아직 정련되진 않았지만, 영국과 미국, 록과 힙합,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새로운 음악적, 상업적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새 천년으로 들어서면서 힙합을 둘러싼 미디어의 담론들도 새로운 단계로 올라선 듯하다. 특히 작년에 Kevin Fitzgerald의 다큐멘터리 [Freestyle]이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이를 기점으로 언더그라운드와 주류를 막론한 미국 힙합 씬의 엠씨들과 그들의 문화, 사회적 인식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이 고조된 데 이어, 올해에는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Doug Pray의 신작 [Scratch]가 썬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턴테이블리즘과 DJ 문화에 대한 뒤늦은 세상의 주목을 끌어내었다. 앞으로도 미디어와 다양한 문화상품들을 통해 MCing과 DJing을 비롯한 힙합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속, 확대되기를 기대해본다.

다양한 흐름들이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미국 힙합 씬의 올 상반기를 짧은 지면에 ‘총’결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하반기를 예측하는 것도 거의 뜬구름 잡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주류 힙합 씬은 올 하반기에도 당분간 시각적으로는 (특히 뮤직비디오를 통해) 사이파이(sci-fi)적 공간과 게토의 변증법적 재조합을 지속하면서 다양한 첨단 마이크로 비트를 힙합의 사운드에 접목하는 다양한 음악적 실험들을 확장해 나갈 것 같다. 한편으로 Redman의 [Malpractice](다소 실망스럽긴 했지만)에 이어, 올 하반기에는 거물급 뮤지션들의 앨범이 연이어 발매될 예정이다. Akinyele, Ghostface Killah, RZA, Busta Rhymes 등이 새 앨범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이어갈지 혹은 새로운 변신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물론 그 와중에 [Until The End Of Time]에 이어 2Pac과 Notorious B.I.G.가 불멸(?)의 사후 연대기로 갱스타 랩의 생명줄을 이어가고, Puff Daddy(아니 Diddy)가 새 앨범으로 오랜 공백 끝에 팝-랩을 부활시킬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한편, 언더그라운드의 실력파 Slum Village와 필라델피아의 랩 퀸 Bahamadia, 뉴욕 턴테이블리즘의 제왕 X-ecutioners의 고대해온 신작 앨범들의 발매를 시작으로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하반기에도 여전히 부지런을 떨 것이다. 특히 The Poets Of Rhythm과 Pep Love의 신보 대결은 베이 에리어를 대표하는 양대 레이블 Quannum과 Hieroglyphics의 자존심 싸움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낸다. 또한 언더그라운드의 잃어버린 명반들인 Lord Finesse의 [Funky Technician], O.C.의 [Word…Life], Main Source의 [Breaking Atoms] 등이 속속들이 재발매가 된다고 하니 이 또한 힙하퍼들에게 큰 선물이 될 듯하다. 아울러 이스트코스트 인디 힙합의 총아 Rawkus 레이블이 최근의 원기왕성한 프로젝트들을 통해 결국 주류 시장에서도 큰 일을 저지르기를 기대해본다. 물론 늘 그러했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실력파 뮤지션들이 지하에서 혜성처럼 떠올라 미국 힙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여전히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20010813 | 양재영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