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816022534-craigdavid_bornCraig David – Born To Do It – Wildstar/Warner Bros., 2001

 

 

영국에서 찾아 낸 R&B의 미래

1996년 영국에선 거라지(좀 더 정확히는 Electronic R&B로도 불리는 U.K. Garage)라는 새로운 음악적 흐름이 클럽 씬을 중심으로 큰 반응을 얻고 있었다.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레게 베이스와 하우스, 브레이크 비트와 힙합, 팝 & 소울을 절묘하게 섞은 이 음악은 대중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흐름이었다. 그 거라지 씬의 가장 유명한 듀오가 아트풀 다저(Artful Dodger)이며, 그들과 함께 활동했던 ‘거라지 뮤지션’ 크레익 데이빗(Craig David)이 바로 지금의 그다.

‘영국 팝음악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정상을 차지한…’ 같은 호들갑에 넋을 뺏기지 않은 채 그의 음악과 만나려면, 좀 돌아가는 길이지만 그가 어떻게, 어떤 음악들을 해왔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흔히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미국 R&B와 다른 ‘그 무엇(!)’을 바로 그 곳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라지 씬에서 다듬어진 일렉트로니카 비트감과 흑인음악 그루브의 훌륭한 만남, 영국 팝 특유의 낭만과 미국 R&B의 다듬어진 세련미와의 조화, 신인에게서 발견하기 힘든 여유와 매끄러움은 우연한 ‘발견’이 아닌 당연한 음악적 ‘결과’이며, 그건 그가 만들어진 스타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다.

첫 곡이자 영국 No.1 싱글인 “Fill Me In”부터 그의 음악적 배경은 그대로 나타낸다. 잘게 쪼개지면서도 중독성 멜로디 라인을 그대로 살려내고 있는 비트에다 라틴 풍의 기타연주, 무엇보다 그 위를 미끄러지듯 넘나드는 매끈한(노련한 느낌까지 주는) 보컬은 영미권을 아울러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힙합의 느낌이 조금은 더 강하게 나타나는 “Can’t Be Messing ‘Round”나 고급스런 보이밴드의 음악처럼 들리기도 하는 “Last Night”, “Time To Party” 같은 곡이 주는 다양함도 있지만, 앨범의 핵심은 “Fill Me In”, “7 Days”, “Walking Away” 같은 곡에서 나타나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 라인과 그 위를 넘나드는 보컬이다.

그의 보컬은 어느 곳에서 들어도 거슬리지 않는 부드러움과 어느 곳에서도 귀를 잡아끄는 중독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나른하면서도 여유 있는 바이브레이션의 느낌은 미국 어번 소울(Urban Soul)의 영향이 분명하지만, 영국 팝(&소울)의 아련한 낭만과 고유의 정서를 묘하게 갖고 있다. 20대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의 곡을 2000년에 노래하면 이런 느낌일까. 거기에다 거라지 씬에서 체화된 다양한 음악적 자양분은 데뷔앨범을 낸 신인에게 과도한 기대를 갖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매끄러워지면 질수록 진부해져 가는 미국 주류 R&B의 대안은 최근 들어 곳곳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에리카 바두(Erykah Badu)나 인디아 아리(India Arie) 같이 클래식 소울과 여성 재즈 보컬의 전통에 대한 접근을 보여주는 뮤지션들이나, 디안젤로(D’Angelo), 맥스웰(Maxwell)처럼 흑인 음악의 근본에 대한 지향으로 대표되는 속칭 ‘네오 소울(neo-soul)’ 뮤지션들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와 함께 또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브리티시 R&B’이다. 크레익 데이빗의 성공 덕분에 주목받고는 있지만, 실(Seal), 가브리엘(Gabrielle), 데스리(Des’ree), 라잇하우스 패밀리(Lighthouse Family, 유지태의 ‘High’로 더 잘 알려진) 같은 뮤지션들은 최근 몇 년간 서서히 그 영역을 넓혀왔다.

에리카 바두나 디안젤로 같은 본토 R&B의 ‘대안’이 ‘보다 더 흑인 음악처럼’이라면, 브리티시 R&B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이라는 풀(pool)과 레게, 일렉트로니카, 팝, 소울 등 다양한 음악적 자양분에서 나오는 ‘더 다양하게, 더 유연하게’인 듯하다. 어쩌면 이렇게 ‘대안’은 더 뛰어난 프로듀서도, 더 완벽한 믹싱도, 호화판 게스트도 아닌 현존하는 다양한 음악적 경향들과의 ‘대화’에 있으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풀'(언더그라운드 클럽 같은)에 있지 않을까. 그것은 브리티시 R&B가 ‘미국 R&B의 대안’이라는 상징을 넘어 창조적인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며, 크레익 데이빗에게 가지게 되는 흡족함의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너무 일찍 찾아온 주체할 수 없는 성공에 자신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또 한명의 거장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10대 시절의 스티비 원더를 기억할 수 있다면 말이다. 20010811 | 박정용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Fill Me In
2. Can’t Be Messing ‘Round
3. Rendezvous
4. 7 Days
5. Follow Me
6. Last Night
7. Walking Away
8. Time To Party
9. Booty Man
10. Once In A Lifetime
11. You Know What
12. Fill Me In(Artful Dodger Remix)
13. Fill Me In(Sunship Remix)

관련사이트
Craig David 공식 사이트
http://www.craigdavid.co.uk
Atlantic 레이블의 Craig David 사이트
http://www.craigdavi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