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716020624-builttospill_keepitBuilt To Spill – Keep It Like A Secret – Warner Bros., 1999

 

 

성실한 기타 연주와 아름다운 선율로 빚은 서정

적어도 1990년대 이후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은 록 밴드들은 다양한 사운드 실험을 내세우는 예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것이 기타 노이즈이든, 힙합 비트와 텍스처를 도입한 것이든, 이국적인 악기 연주든, 아니면 테크노의 방법론을 사용한 것이든 말이다. 그런데 빌트 투 스필(Built To Spill)은 기타 중심의 클래식 록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높은 평가를 받는 밴드다. 이들만큼 당당하고 거침없는 사운드를 들려주는 정공법의 밴드도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이들의 가장 안정된 사운드를 담고 있는 이 앨범 [Keep It Like A Secret]에서 우리는 이제 완숙의 경지에 이른 밴드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쉽게 정리해서 이 앨범은 [Perfect From Now On]의 전반적인 사운드를 계승하면서 [There’s Nothing Wrong With Love] 시절의 정상적인(?) 노래 구조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여전히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성실한 기타 연주와 개성 있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꽉 채우는 가운데 긴장감이 앨범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 소위 말하는 대곡은 앨범의 마지막에 위치한 “Broken Chairs”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인디 시절의 팝적 감각이 앨범 곳곳에 기분 좋게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다(“Center Of The Universe”의 8분음표 리듬으로 이루어진 전주와, 업템포의 발랄한 “Sidewalk”의 선율은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들다). 그래서 여전히 긴 호흡의 기타 솔로와 더욱 탄탄해진 리듬 파트도 [Perfect From Now On]만큼 부담스럽지는 않다. 게다가 앨범 곳곳에서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슬라이드 기타 소리도 잊을 수 없다.

지난 앨범이 서사적이었다면 이 앨범은 서정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 가운데 앨범의 앞부분을 장식하는 트랙들은 싱글로 발표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매력적인 선율을 담고 있다. 그리고 기분 좋은 스윙감을 선사하는 “Bad Light”과 슬라이드 기타가 빛을 발하는 “Else”도 적절하게 배치되어 앨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특이한 곡이 있다면 “You Were Right”일텐데,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밥 딜런(Bob Dylan), 도어스(The Doors) 등 록의 거장들의 곡명을 풍자하고 있는 가사가 이채롭다(원작자들의 동의를 구하느라 앨범 발매가 상당히 늦어졌다는 얘기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곡 “Broken Chairs”는 사실 앨범에서 동떨어진 성격의 곡이라 오히려 눈길을 끈다. 닐 영(Neil Young)의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1969)를 듣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웅장한 인트로와 장대한 기타 솔로, 즉흥적인 애들립이 지속되는 8분이 넘는 트랙이다(참고로 2000년에 발매된 앨범 [Live]에서 훨씬 확장된 버전으로 수록된 이 곡을 만날 수 있다).

히트곡을 잘 만드는 밴드는 꽤 있지만, 앨범을 잘 만드는 밴드는 그리 많지는 않은 듯하다. 히트곡이야 우연히 떠오른 멋진 코드나 매력적인 선율로 태어날 수 있지만, 좋은 앨범은 뮤지션의 비전과 일관된 컨셉트(그것이 음악적이든 사상적이든)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빌트 투 스필은 훌륭한 앨범을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혹시 지난 인디 시절의 톡톡 튀는 매력과 생동감 넘치던 모습을 그리워할 사람이 없을까. 하지만 아쉬워도 할 수 없다. 이제 빌트 투 스필은 완연한 프로페셔널 밴드의 길로 접어들었으니 말이다. 20010708 | 장호연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The Plan
2. Center Of The Universe
3. Carry The Zero
4. Sidewalk
5. Bad Light
6. Time Trap
7. Else
8. You Were Right
9. Temporarily Blind
10. Broken Ch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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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ilt To Spill [There’s Nothing Wrong With Love] 리뷰 – vol.3/no.14 [20010716]
Built To Spill [Perfect From Now On] 리뷰 – vol.3/no.14 [200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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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Built To Spill 공식 사이트
http://www.builttospill.com
Built To Spill이 팬들을 위해 만든 사이트
http://www.builttospill.net
Built To Spill 팬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builttospill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