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밴드(Nueva Generacion La Banda)’와 띰바(Timba)

[마이애미 헤럴드(Miami Herald)]는 NG 라 반다(NG La Banda)를 소개하면서 “이 음악은 당신의 아버지의 꾸바 음악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에네 헤’라고 발음되는 NG라는 접두어는 ‘Nueva Generacion’의 약자다. ‘새로운 세대’라는 뜻이다. 새로운 세대의 꾸바 대중음악은 띰바(Timba)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990년대 이후 로스 반 반(Los Van Van)의 음악 역시도 띰바에 속한다. 그렇지만 반 반처럼 30년을 정상의 지위에 있었던 ‘꾸바의 롤링 스톤스’에게 새로운 왕관은 조금 어색하므로 왕관은 1988년에 결성된 NG 라 반다에게 돌아간다.

그렇기는 해도 반 반과 이라께레가 없었다면 NG 라 반다도 태어날 수 없었다. 리더인 호세 루이스 꼬르떼스(Jose Luis Cortes)는 1970년부터 1980년까지 로스 반 반에서,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이라께레에서 주요 멤버로 활동한 존재다. 그가 보다 젊은 세대의 뮤지션들과 함께 결성한 16인조 밴드가 NG 라 반다이다. 자연스럽게도 NG 라 반다의 음악은 두 밴드의 종합판이다. 로스 반 반이 꾸바 대중음악에 록, 소울. 훵크의 요소를 혼합했다면, 그리고 이라께레가 아프로꾸바 음악을 재즈와 섞어냈다면 NG 라 반다의 음악이 어떨지는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반 반의 향취(flavor)와 이라께레의 공격성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는 꼬르떼스의 바램처럼 이들은 재즈의 즉흥연주를 꾸바의 댄스 리듬과 결합시키고 양자의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20010516103231-cuba01-nglabanda그림설명: 띰바의 제왕, NG 라 반다

띰바는 이제까지의 꾸바 음악보다 정열적이고 광적이다. NG 라 반다의 대표곡들인 “Conga de los Reftranes”, “La Bruja”, “Los Sitios Entros”를 차례로 들어보자. 곡은 서서히 절정부를 향해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고조된 분위기를 만들고 이후 계속 이어나간다. 퍼커션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매우 긴밀하여 노래와 악기를 위해 ‘반주’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트들 사이로 관악기의 간주와 보컬의 노래가 스며 나오는 것 같다. 연주가 진행될수록 리듬 패턴은 더욱 복잡해지고 8마디(혹은 16마디)를 기준으로 계속 변한다. 관악기는 공격적이면서도 화려한 기교로 예정되지 않은 곳에서 밀고 들어온다. 보컬은 한 명이 선창하면 여러 명이 합창하는 몬뚜노의 형식을 따르는데 쏜이나 쏭고보다 더욱 즉흥감이 강해서 ‘샤우트 아웃 콜 앤 리스펀스(shout-out call and response)’라고 부른다. 후반부로 갈수록 노래는 고음으로 치달으면서 노래뿐만 아니라 구호를 외치거나 일상 대화 같은 자유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화답하는 합창도 반복하는 것 같으면서도 분위기에 따라 슬쩍 변한다. 통상적인 팝송 형식에 있는 절정부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듣는 이를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부분이 서너 번 등장한다.

NG La Banda – Conga de los Refranes
NG La Banda – La Bruja
NG La Banda – Los Sitios Entros

위 곡들 중에서 “Conga de los Refranes”는 ‘꽁가’, ‘La Bruja”는 ‘살사’, “Los Sitios Entros”는 ‘룸바’로 각각 분류할 수 있는 리듬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곡들은 모두 띰바다. 그때 띰바란 무슨 의미인가? 조던 레빈(Jordan Levin)이 [마이애미 헤럴드]지에 쓴 기사를 인용한다면 “띰바는 당신의 아버지의, 혹은 당신의 할아버지의 꾸바 음악이 아니고,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의 국제적 히트작인 달콤한 전통적 사운드도 아니다. 그건 현재 꾸바의 사운드, 리듬적으로 긴밀하고 가차없이 에너지 넘치는 음악이다. 이 음악은 직업적 음악인들이 댄스 플로어의 청중을 위해 연주하는 음악이며, 가사 역시 거리의 언어로부터 가져온 것이며 거리의 언어의 일부가 되고 있다”. 띰바는 현재 꾸바의 길거리 댄스 음악이다.

쏭고가 로스 반 반의 독보적인 음악이었던 반면, 띰바는 일군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NG 라 반다 뿐만 아니라 빠울리또 이 수 엘리떼(Paulito y Su Elite), 이삭 엘가도(Issac Elgado), 마놀린(Manolin), 차랑가 아바네라(Charanga Habanera), 엘 메디꼬 드 라 살사(El Medico de la Salsa) 등 아바나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음악인과 그의 밴드들이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국립예술학교를 나와서 먹고 살만한 직업적 음악인들이지만, ‘가난한 이웃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에 주목했던 인물들이다(NG 라 반다의 “La Expressiva”같은 곡은 아바나의 가난한 이웃에 대해 헌정하는 곡이다).

이런 음악이 나오게 된 배경은 미국에서 힙합이 나오게 된 배경과 비슷하다. 1980년대 말 이후 꾸바 정권이 ‘특별한 시기’라고 부르는 경제난이 도래하면서 직업적 음악인들은 생계를 위해 보다 많은 청중, 특히 젊은 청중들을 확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반이 젊은 음악인들을 영입하여 라인업을 재정비한 것도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또한 호텔의 나이트클럽에서는 ‘외화벌이’를 위해 관광객들을 위한 새로운 댄스 음악도 필요했다. 그래서 띰바는 살사보다 더 정열적이고 춤추기 좋은 음악으로 발전해 나갔다. 가사 또한 아바나의 거리의 은어가 많이 들어가고 콘돔의 사용, 마이애미의 친구 등에 대한 이야기 등 과거에는 금기시되었던 주제도 등장한다.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대중음악이 통상 그렇듯 가사의 의미는 모호해서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도 특징적이다.

띰바: 살사에 대한 대안인가, 살사의 진보적 전위인가

1990년대 띰바 밴드들은 꾸바 음악의 각종 컴필레이션 음반의 단골 손님이 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헤미스피어 레이블의 3부작 외에도 [Salsa Cubana: Gold Collection](Fine Tune, 1998), [Salsa Cubana](Universal Latino, 1997), [Cuban Salsa](Sony International, 1999), [Cuban Salsa](Absolute Best, 2000) 등이 그것이다. 특이한 것은 헤미스피어 레이블을 제외하고 다른 음반사들에서 꾸바 음악은 ‘살사’라는 범주 내에서 마케팅되고 있다는 점이다. 살사의 기원을 이루는 쏜이나 룸바야 그렇다 치더라도 쏭고나 띰바처럼 살사와 뿌리는 같더라도 여러 모로 다른 음악도 마찬가지라는 점은 미심쩍다.

헤미스피어 레이블에서 발매한 [The Story Of Cuba]의 라이너 노트는 띰바를 “라틴 아메리카에서 살사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반면 어떤 학술 문헌에서는 NG 라 반다를 로스 반 반, 이라께레와 함께 “살사 음악의 진보적 전위(progressive vanguard of salsa music)”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자의 살사는 ‘협의의 살사’이고 후자는 ‘광의의 살사’라고 해버리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지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그래서 살사’에 대한’ 대안이라고 부르든, 살사 ‘중의’ 전위라고 부르든 쏭고와 띰바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꾸바 외부에서 살사의 형성과 변천에 대해 개략적으로나마 설명하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마치 ‘얼터너티브 록’을 말하기 위해서 ‘클래식 록’과 ‘주류 록’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영어로 ‘sauce’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인 살사는 현재 주류 라틴 음악의 한 갈래로 정착해 있다. 선진국들의 메가스토어에 가보면 살사는 힙합이나 레게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수십 장의 음반이 놓여 있는 정도가 아니라 수십 개의 선반에 음반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예상했듯 살사의 기원과 내력은 혼동스럽다. 대중음악 입문서를 펼쳐 보면 살사가 “미국 내에서 살고 있는 꾸바인과 뿌에르또 리꼬인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로이 셔커, [대중음악 사전], 한나래, p. 265-266)’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음악적으로 본다면 ‘꾸바와 뿌에르토 리꼬의 음악이 아메리칸 재즈와 합성되어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도 있겠지만 문화적 기원은 복잡하다. 한마디로 살사는 이민자들(혹은 디아스포라)의 음악인 셈이다. 캐러비언들의 대중음악이 처음부터 혼합된 음악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살사는 혼합된 음악이 다시 한번 혼합된 음악이다. ‘혼합의 혼합(the mixture of mixture)’ 혹은 ‘디아스포라의 디아스포라(diaspora of diaspora)’인 셈이다.

그래서 살사에는 보통 세 가지 내력이 따라다닌다. 첫째는 살사의 기원과 본질이 꾸바에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현재의 살사는 뿌에르또 리꼬 노동계급의 삶의 표현이라는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범(凡)캐러비언(pan-carribean) 나아가 범라틴적(pan-latin) 의식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살사를 대표하는 베테랑 음악인들의 국적은 다양하다. 거기에 쿠바와 뿌에르또 리꼬 뿐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의 각종 음악들이 살사에 침투해 있고, 소울/훵크나 록의 요소를 발견하기도 어렵지 않다.

이렇게 대중화되면서 살사를 간단명료하게 정의하는 일은 ‘재즈’나 ‘록’을 정의하는 것처럼 어려워진다. 음악이 한번 유통되기 시작하면 특정 집단에 배타적으로 고착될 수 없다는 특징은 살사에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장르든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고전적 시기'(간단히 말해 전성기)가 있게 마련이다. 살사의 경우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의 10여년 간이 이에 해당된다. 무대(‘씬’)는 물론 뉴욕이다.

살사의 전개와 확산

살사의 거점은 파니아(Fania)라는 인디 레이블이었다. 파니아는 1964년 밴드 리더인 조니 파체코(Johny Pacheco)에 의해 설립되어 ‘공동체적으로’ 운영되다가 1967년부터는 헤리 마수치(Jerry Masucci)에 의해 보다 ‘기업적으로’ 경영되었다. 이전부터 꾸바계 음악인들이 ‘뮤지션들 사이의 은어’로 사용하던 살사라는 단어를 장르 이름(이자 마케팅 용어)으로 만든 장본인도 파니아의 경영진들이었다(이건 마치 훵키(funky)라는 단어가 뒤에 훵크(funk)라는 ‘장르’가 된 것과 비슷하다). 1970년대 중반 파니아는 미국과 뿌에르또 리꼬에서 판매되는 살사 음반의 약 80%를 차지할 정도로 살사 음반의 총판 같은 역할을 했다.

1970년대 파니아 레이블 중심의 살사 씬의 전개를 몇 마디로 요약하는 일은 무모한 일이다. 거칠게 요약한다면 “재즈계에서 활동한 띠또 뿌엔떼스, 라이 바레또(Ray Barreto), 에디 빨미에리(Eddie Palmieri)를 선구자로 섬기고, 조니 빠체꼬, 윌리 꼴롱(Willie Colon)의 밴드 리더가 음악적 변화를 주도하고 엑또르 라보에(Hector Lavoe)와 루벤 블라데스(Ruben Blades) 등의 ‘살세로(salsero)’가 살사의 얼굴과 목소리를 제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종종 파니아 올스타스(Fania All-stars)라는 슈퍼그룹을 결성하여 조그만 댄스 클럽부터 양키 스타디움에 이르는 다양한 공연장에서 ‘단합대회’를 가졌다.

20010516103231-cuba02-faniaallstars그림설명: 파니아 레이블의 드림팀, 파니아 올스타스

1970년대는 파니아 레이블의 사세(社勢)가 확대된 시기이자 살사가 ‘뿌에르또 리꼬 노동계급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사운드로 정착한 시기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살사 음악인들이 뿌에르또 리꼬계라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도미니까(조니 빠체꼬), 꾸바계(쎌리아 끄루즈), 빠나마(루벤 블라데스) 등 살사 음악인들은 다양한 출신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뿌에르또 리꼬는 독립국이 아니라 미국령 커먼웰스(commonwealth)라는 지위로 인해 뉴욕의 뿌에르또 리꼬인 커뮤니티는 흑인(아프리칸-아메리칸) 커뮤니티와 함께 사회적으로 민감한 곳이었다. 1960년대 소울이 흑인 커뮤니티에서 수행한 것과 유사한 역할을 1970년대의 살사가 뿌에르또 리꼬계 커뮤니티에서 수행한 것이다.

단지 뿌에르또 리꼬인들 뿐만 아니라 미국 동부 지역의 히스패닉계 커뮤니티에서 살사는 ‘헤게모니’를 가지는 음악이었다. 뿌에르또 리꼬의 봄바(bomba), 도미니카의 바차타(bachata), 아이띠의 꼼빠스(compas) 등 다양한 아프로캐러비언들의 민속음악들이 살사에 흡수통합되었다. 문제는 살사가 이렇게 ‘범라틴적 현대성(pan-Latin modernity)’의 표상이 되면서 아프리카적 색채는 점차 탈색되는 양상을 보였다.

197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살사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뻬떼르 마누엘(Peter Manuel) 같은 평론가는 살사의 ‘울혈(stasis)’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본래의 살사를 살사 칼리엔테(salsa caliente) 혹은 살사 고르다(salsa gorda)라고 부른 반면, 1980년대 등장한 살사의 변종들은 ‘살사 라이트(salsa lite)’, ‘살사 로만띠까(salsa romantica)’, ‘케첩’ 등으로 불렀다. 호르헤 마누엘 로페스(Jorge Manuel Lopez) 같은 논자들도 “살사는 팀발레와 봉고가 전부였지만, 이제는 달콤하고 우아한 단어들이 전부다. 계집애들은 예전의 마초 살사(macho salsa)보다 이런 걸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살사가 “많은 젊은 라티노들과 무관하게 되었다”는 문화적 진단으로 이어진다. 또한 그 원인으로는 클럽에서 라이브 밴드로 연주되던 살사가 레코딩 테크놀로지의 영향으로 신서사이저 등 전자악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살사 특유의 자발성과 즉흥성을 상실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런 판단은 하드 록이나 헤비 메탈의 변천과도 유사하다. 1970년대까지 백인 남성 청년의 정체성의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하드 록/헤비 메탈이 1980년대 10대 소녀 취향의 ‘라이트 메탈(혹은 팝 메탈)’로 변질되었다는 식의 견해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일면적으로 보인다. ‘록 음악’이나 ‘헤비 메탈’과 마찬가지로 살사 역시도 ‘청중의 재구성’이라는 현실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1970년대까지의 살사는 이제 ‘올드 스쿨 살사’가 되었고, 이제 ‘본래의’ 형식을 추구하는 일은 무의미해 보인다. 살사 역시도 다른 장르와 뒤섞여서 ‘진품의(authentic)’ 형태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몇 개의 하위장르를 거느린 메타장르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니거스는 1990년대 후반 시점에서 살사를 몇 가지 특징적 스타일(혹은 하위장르)로 구분하고 있다. 그의 분류를 요약해서 정리해 보자.

1. ‘올드 스쿨’ 형식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편곡을 추가하는 밴드들. 엘 그란 콤보(El Gran Combo), 파니아 올스타스(Fania All Stars), 뽄쎄나(Poncena) 등의 베테랑 살세로들은 지금도 정력적으로 레코딩을 계속 하고 있다.
2. 힐베르또 싼따 로사(Gilberto Santa Rosa), 헤리 리베라(Jerry Rivera) 등은 198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던 살사 로만띠까를 대표하고 있다.
3. 빅토르 마누엘(Victor Manuel)같이 미국의 R&B에 보다 많이 영향받은 스타일은 ‘소울풀 살사(soulful salsa)’라고 불린다.
4. 라 인디아(La India)와 마르끄 안쏘니(Marc Anthony)처럼 댄스 클럽 DJ의 기법에서 영향받은 스타일은 ‘댄스 클럽 살사’라고 불린다. 여기에 DLG(Dark Latin Groove)같이 힙합과 테크노를 접목하는 새로운 그룹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5. 살사, 힙합, 재즈, 록 등이 ‘가볍게’ 결합된 경우(예를 들어 RMM 레이블)는 ‘살사 패스티쉬(salsa pastish)’ 혹은 여러 장르들이 상호작용한다는 뜻에서 ‘살사 신쎄시스(salsa synthesis)’라고 부를 수 있다.

도미니까 공화국의 ‘국민음악’인 메렝게(merengue)도 넓은 의미의 살사에 포함된다. 2박자의 메렝게는 씽커페이션이 많은 살사보다 리듬이 단순해서 1980년대 이후 살사 로맨티카와 더불어 대중화되었다. 후앙 루이스 게르라(Juan Luis Guerra), 엘비스 끄레스뽀(Elvis Crespo), 올가 따뇽(Olga Tanon) 등은 메렝게의 슈퍼스타들이다. 메렝게의 인기가 높아지다보니 ‘살사/메렝게’라는 범주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또한 리끼 마르띤의 “Maria”에 나오는 리듬인 꼴롬비아산(産) 꿈비아(cumbia)도 만만찮은 팬층을 가지고 있다. 네거스는 이런 현상을 지칭하기 위해 ‘살사 매트릭스(salsa matrix)’라는 개념을 동원하고 있다. 결국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살사에서도 장르의 ‘진정성’을 둘러싼 게임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음악 수용자들 사이에서 진짜와 가짜(나아가 사이비) 등을 판별하고 그들 사이의 차이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게임 말이다.

꾸바 음악의 미래

이상의 논의를 전제한다면 NG 라 반다나 로스 반 반 등이 ‘살사 음악의 프로그레시브 뱅거드’라고 불리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비유에 그치는 것이지만 1990년대 후반 살사 음악계에서 띰바는 1990년대 초반 록 음악계에서 그런지(grunge)가 차지했던 것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말하자면 아바나는 ‘살사의 시애틀’인 셈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꾸바 음악인들이 생계에 허덕이고 있다는 점이다. 로스 반 반이나 NG 라 반다처럼 이미 정상에 오른 경우는 사정이 다르지만(로스 반 반의 멤버들은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고 다닌다), 그렇지 못한 밴드들은 살사 로만띠까라도 연주하여 생계를 위한 돈을 벌어야 할 상태다. 반면 꾸바의 ‘로컬’ 팬들은 꾸바 음악이 계속 복잡한 리듬과 열정적 분위기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이런 딜레마는 꾸바 음악이 월드 뮤직을 ‘벗어나’ 라틴 음악으로 통합되고자 할 때 어떻게든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현재로서는 어떤 장담도 할 수 없다. 꾸바 음악은 라틴 음악산업에 의해 점차 통합되면서도 음악적 탁월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꾸바 음악은 주류 살사가 걸었던 것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인가. 후자의 징후는 벌써 드러나고 있다. 대중음악 평론가 성기완은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의 사운드트랙 음반을 “싱싱하다”고 표현한 뒤, 이 음반의 성공을 업고 뒤이어 나오는 솔로 음반들에 대해서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그 이유는 “까딱하면 국제 대중음반 산업의 컨베이어 벨트에 비늘이며 아가미며 다 뜯긴 채 나중엔 통조림이 되어버리기 때문”(<씨네 21>, 291호, 2001. 2. 27: http://www.cine21.co.kr/kisa/sec-002700704/2001/03/010313144638021.html)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꾸바 음악은 통조림을 양산하더라도 물이 마르지 않는 대양에 사는 수많은 물고기 같이 보인다. 현대의 꾸바 음악에는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 같은 오래된 음악만 있는 것도 아니고, NG 라 반다 같은 새로운 음악만 있는 게 아니다. 록 음악에 룸바를 접목시킨 신떼시스(Sintesis), 신떼시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X-알폰소(X Alfonso), ‘모던 쏜(modern son)’이라고 부를 만한 꾸바니스모(Cubanismo), 젊은 디바 오스달지아(Osdalgia) 등 고립된 환경에서도 재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제 3세대’ 음악인들이 속속 출현하기 때문이다.

20010516103231-cuba03-juancarlosformell그림설명: 후앙 까를로스 포르멜

로스 반 반의 리더 후앙 포르멜의 장남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후앙 까를로스 포르멜(Juan Carlos Formell)의 데뷔 음반 [Songs From A Little Blue House](RCA, 1999)는 다시 한번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뜨로바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쏜의 퍼커션 리듬이 결합되고 재즈의 향취가 더해진 음악은 꾸바가 단지 ‘리듬의 강국’이 아니라 ‘작곡의 강국’임도 증명해주고 있다. 아, 그래서 꾸바 음악 시리즈를 마치고 담배를 끊으려고 했었지만, 시리즈도 못 끝내고 담배끊기도 글렀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돌아와야 할 판이다. 20010510 | 신현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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