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신공항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이번주 금요일인 5월 4일 국회 소회의실에서 ‘음반유통 개혁’을 주제로 공청회가 개최된다. 지난 3월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에 관한 공청회에 이은 연속 기획이고 주체 측은 ‘문화개혁 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라는 시민단체 혹은 NGO다. 이 말을 왜 했냐하면 그 공청회에서 하나의 발제를 맡은 사람이 본인이기 때문이다. ‘고사’하였으나 ‘떠맡겨진’ 것에 가까운데 거기에는 ‘일본 관광(?)’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 쓰러져 가는 한옥에 세 들어 사는 문화연대에 무슨 돈이 있다고 일본관광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맞는 이야기다. 경비를 부담한 측은 (주)한국음반네트워크(KRCnet)라는 곳이다. 신문 보도로 들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음반유통의 현대화와 정보화를 기하기 위해 정부 지원을 받아 설립된 조직체(이자 기업체)다. 일본에 산업시찰을 간 이유는 KRCnet이 ‘벤치마킹’한 대상이 바로 NRCnet(Nippon Record Center Network)이라는 일본의 음반공동물류업체이기 때문이다(일본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메이지 유신을 벤치마킹하여 10월 유신을, 자민당을 벤치마킹하여 민자당을 만든 한국인의 유구한 전통이 다시 한번 발휘되는 대목이었다). 관광의 목적은 일단 이곳을 찾아가 견학하고 경영진들은 양사간의 업무 제휴를 타진하는 것이었다.

KRCnet을 주도하는 분들은 한국 음반유통업계의 실력자들인 ‘도매상 사장님’들이고, 몇몇 음반사(제작사) 사장님들도 가입해 있다. 그렇지만 한국 음반업계의 공룡 같은 존재인 신나라나 도레미 그리고 SM 엔터테인먼트 등 신흥세력은 가입하지 않은 상태고 이해관계의 조정이 쉽지는 않은 상태라고 한다. 따라서 KRCnet에서는 문화연대의 공청회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입장이고, 문화연대의 대표로 산업시찰에 나선 나는 ‘로비’의 대상이 된 셈이다. 나 외에도 일간신문 기자 두 명이 같은 입장에서 산업시찰단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 음반유통업계의 거물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고역이었다. 그분들이 나에 대해 나쁜 감정으로 대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분들의 삶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소문만으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단지 바닥부터 시작해서 자수성가한 사람들 특유의 ‘강인함’은 몹시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대부분은 양복 정장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넘긴 모습이었다. 분위기가 ‘기업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었고, 광명시 시장님도 시찰단에 포함되어 이런 분위기는 더욱 강했다(광명시는 물류단지가 건립되고 있는 지역이다). ‘그렇게 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건만 계속 ‘신 교수’라고 불러서 민망하기도 했다. 비교적 정서가 맞는 기자 두 명 – 둘 모두 ‘서태지 비판가’로 찍힌 사람들이다 – 과 어울려 보려고 했지만 겉보기와 달리 수줍은 성격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독감을 느껴야 했다.

아끼하바라(秋葉)를 거쳐 신주꾸(新宿)로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였고 버스를 타고 도쿄에 도착하니 4시 가까이 되었다. 일행은 “이제 인천 신공항 보다가 나리타 공항 보니까 도떼기 시장같네”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요즘 한국인들의 일본인에 대한 묘한 ‘우월감’이 느껴졌다. 하긴 [뉴스위크(Newsweek)]에서조차 최근 일본에 불어닥친 한국 문화 붐을 취재하면서 “일본은 한국이라는 조그만 배 앞에서 침몰하는 거대한 선박 같다”고 말했다고 하니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얼마나 갈까…”라는 물음은 지울 수 없었다.

첫 코스는 아끼하바라였고 1시간 30분 정도 자유롭게 시찰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다들 알겠지만 아끼하바라는 ‘용산 전자상가’같은 곳이다. 용산에 자주 들르는 나로서는 그다지 색다를 것은 없었다. 단지 용산이 왠지 ‘짝퉁들의 천국’ 같은 느낌을 준다면 아끼하바라는 ‘정품’의 인상이 강했다. 무언가 강렬한 욕망 – ‘컴퓨터 주변기기를 사서 집에 가서 장착해야지’라는 욕망 – 에 가득 차서 발길을 서두르는 용산의 한국인들과 달리 일본인 구매자들은 매우 차분해 보였다. 물론 ‘똥꼬 치마’의 제복을 입고 떠들어대는 내레이터 모델 언니들의 시끄러운 호객행위도 없었다. 그게 10년 가량 지속되는 경기침체 탓인지 아니면 일본인들이 본래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이드는 면세점에서 디지털 카메라 등을 구입할 것을 권하기도 했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던 나는 딸내미 줄 팬시 상품이나 찾아 다녔다. 그런데 딸내미가 좋아할 만한 ‘아니메’를 보고 찾아 들어가면 영락없이 야한 게임과 비디오, DVD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일본어도 못하는 주제에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없어서 아이 쇼핑마저도 포기할까 하다가 모퉁이에 있는 음반점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아끼하바라의 ‘소후트(software)’ 시장에서도 음반은 한물간 것처럼 보였다. 2층으로 된 그리 크지 않은 음반점이었고 음악 애호가들이 찾을 만한 곳은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일본 뮤지션들의 음반의 비중이 절반을 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영미) 팝/록 음반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고 2층에 재즈와 ‘월드 뮤직’ 코너가 꽤 컸다. ‘일본 가서 CD 사면 폐가망신 한다’는 충고를 들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가급적 자제했지만 그래도 까에따누 벨로주(Caetano Veloso)와 로스 반 반(Los Van Van)의 정규 앨범 대부분이 꽂혀있는 것을 보고는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워낙 비싼 가격이었고 특별히 구매욕을 자극하는 무언가는 부족했기 때문에 이번 [weiv] 원고 때문에 필요한(-_-) 음반 두 장만을 사고 매장을 나섰다.

이후 도쿄 최대 환락가인 신주꾸에서 식사를 마친 뒤 호텔로 향했다. 신주꾸는 빠찡고, 각종 ‘라이브 쇼’, ‘가라오께’, ‘텔레꾸라’, ‘한국형 마사지’ 등의 업소가 늘어선 곳이고, 몇 년 전부터 한국 젊은 여성들의 ‘활약’도 눈부신 곳이다. 하지만 내가 신주꾸에서 본 가장 신기한 장면은 대형 영화관 – 잘 모르지만 개봉관으로 짐작된다 – 에서 비틀스의 영화 “A Hard Day’s Night”을 상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본인의 비틀스에 대한 애정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저렇게 케케묵은 영화까지 상영한다는 사실이 놀라왔다. 아마도 오노 요꼬가 만든 존 레논 기념관 개관의 여파인지는 몰라도(그런데 리처드 레스터(Richard Lester) 감독의 영화는 ‘뮤직 필름’으로서는 기념비적 영화다. 시간이 없어서 못 본 것이 한스러웠을 뿐)….

시부야(涉谷)에서의 세 시간

여기까지는 별로 재미없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일행과 함께 있다는 부담은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내 세상이 시작된 것은 호텔에 여장을 푼 뒤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탈출하면서부터다. 그런데 막상 호텔문을 나섰지만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무작정 상경한 촌놈처럼 어디를 가야할지 몰랐다. ‘인터넷이라도 뒤져볼까’라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도쿄에 피씨방이 그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

무턱대고 전철역에 들어가 서울보다 더 복잡한 전철지도를 보고 시부야라는 곳을 찾았더니 다행히도 시전철로 다섯 정거장밖에 안 되었다. 요금이 190엔(약 2,000원)으로 서울보다 훨씬 비쌌지만. 그래서 무인판매대에서 표를 끊고 전철을 타니 비로소 ‘자유’라는 감정이 찾아왔다. 퇴근 시간이라서 전철은 북적거렸고 전철의 광고판은 한국과 너무도 비슷해서 낯선 감정도 적었다. 순 짝퉁이지만 일본어와 한자는 좀 알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한자를 모르는 요즘 젊은애들은 고생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설명 : 도쿄 수도권 지하철 노선도

20010501115907-subwaymap채 20분도 걸리지 않아 시부야에 도착했다. 그런데 시부야가 홍대앞 같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은 착각이었다. 그곳은 고층빌딩이 늘어서고 대형 전광판이 번쩍거리는 곳이었고 전철역도 홍대앞역이 아니라 서울역 같았다. 시간대가 시간대이니만큼 인파는 엄청났다. 촌놈처럼 출입구 구멍을 잘못 찾아 나와 빙 돌아서 횡단보도를 건너려 하니 퇴근하려는 사람들이 ‘개떼같이’ 내가 있는 쪽을 향해 밀려왔다. 순간적으로 겁이 나는 순간이었다. 신기한 것은 한국 같으면 어깨를 열번 이상 부딪힐 만한 인파였는데도 큰 마찰 없이 횡단보도를 통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주위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일본인들의 특징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저렇게 살려면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동시 들었다.

이제부터는 처음 시부야를 들른 사람이 음반 쇼핑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어설픈 가이드가 될 것 같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자주 다닌 사람이면 다 아는 이야기지만 처음 가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때가 많아서 하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지도를 보고 오른쪽 위에 가다까나(외래어를 표기하는 일본어) タワ-レコド가 Tower Records라는 것을 알아 둔다. 여기부터 들르는 게 좋은데 이유는 어느 곳을 갈 때나 가장 먼 데부터 갔다가 돌아오는 편이 다리가 덜 아프기 때문이다.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사람은 상관없겠지만. 또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볼 때는 괜히 잘 되지도 않는 본토발음 흉내내지 말고 ‘따와 레꼬도(와도꼬데스까)’라고 발음해야 잘 알아들으니 유의할 필요도 있다. 거기를 들러서 거슬러 올라오면 지도 중앙에 보이는 西武 ロフト라는 곳 6층 WAVE 와 그 아래에 있는 HMV 라는 곳을 들르면 된다. 전자는 세이부 백화점과 연관된 곳인 것 같고 HMV는 한국에는 들어와 있지 않지만 타워와 더불어 다국적 음반 메가스토어로 이름 있는 곳이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지도에서 HMV 아래에 있는 QFRONTS라는 곳도 꽤 큰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진설명 : 시부야 지도

20010501115907-sibuyamap음반 메가스토어는 각 층마다 음악의 (메타)장르를 분류해 놓았다. 타워 레코드의 경우 총 6층인데(HMV는 5층) 위부터 클래식, 재즈/월드 뮤직, 사운드트랙, 힙합/레게, 록, J-pop 순이다. 위부터 ‘고상한’ 순으로 되어 있고 위층은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로 갈 수 있다. 한 층이 한국의 타워 레코드 지점 전체 크기만하니 어마어마한 규모이고 음반매장 자체가 하나의 백화점인 셈이다. 분류에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지만 왠지 구매 충동을 일으키는 디스플레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외지에서 말은 많은데 국내에서는 좀처럼 구하기 힘든 음반이 척척 놓여있으니 나 같은 촌놈에게는 패러다이스에 온 기분이었다. 물론 돈이 있어야겠지만.

아무래도 요즘의 관심사로 인해 내가 찾은 곳은 월드 뮤직 코너였다. 각 지역과 나라별로 분류된 매장의 각 코너에는 도처에 헤드폰으로 신보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한국에도 물론 있는 것이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한 예를 들어 라틴 음악의 경우 ‘살사’, ‘꾸반’, ‘록 앙 에스빠뇰’ 등의 코너로 세분되어 있었다. 브라질 음악은 라틴 음악으로부터 아예 분리되어 있었고 ‘브라질 팝’과 ‘보싸 노바’가 구분되어 있었다. 일본인들이 브라질 음악에 환장한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타워 레코드 5층에서는 ‘한국’ 코너도 발견했다. 거기에는 웬만한 한국의 소매점보다 많은 CD가 나열되어 있었다. 서태지, 자우림, 주주 클럽, Y2K, 차태현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이들 모두의 음악이 ‘월드 뮤직’의 범주에 들어가 있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어 보였다. HMV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상은의 신보가 안티발라스(antibalas)라는 뉴욕의 아프로비트 그룹의 신보와 더불어 헤드폰 감상용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앞서 언급한 [뉴스위크]의 보도가 정말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일본의 음반수요자들의 독특한 취향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골목 안에 들어가 볼 용기가 있는 사람이면 도처에서 중고 음반과 새 음반을 같이 취급하는 소규모 음반점들을 찾을 수 있다. 아마 [weiv]에 들르는 사람이면 이런 곳에서 의외의 횡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찾은 곳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중고음반 전문점은 시부야가 아니라 하라주꾸(原宿)에 위치한 Book-off(http://www.bookoff.co.jp)라는 곳이었다. 전국에 지점을 가진 체인점인 듯한데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음반보다는 책이 주종을 이루지만 음반도 꽤 많았다. 중고음반 가격은 1,000엔(약 10,000원)과 350엔(3,500원)으로 차등화 되어 있었고, 일본 음악 싱글은 다섯 장에 1,000엔이었다. 아이템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꽤 많았다. 김현식의 [김현식 베스트 16]과 조용필의 [미워 미워 미워/남과 여]도 있었으니… 아무튼 발매된 지 몇 년 지난 음반을 모아서 CD 보유량을 자랑할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곳이다.

이렇게 촌놈 서울 구경하듯 시부야의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거리의 악사들’도 보았다. 화요일이라서 남들 다 봤다는 하라주꾸의 광경은 못 보았지만 그래도 음악을 연주하려는 젊은애들은 매일 거리에 나오는 모양이었다. 한 그룹은 통기타 두 대와 봉고(퍼커션)로 연주하고 있었는데, 끝나고 물어보니 ‘비틀스와 스피츠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옆에서 준비하고 있던 또 하나의 그룹은 CD도 팔고 클럽 공연 찌라시도 나눠주었다. 관객(이라기보다는 구경꾼)은 1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설령 아무도 안 보더라도 내가 좋은 걸 하겠다’라는 원칙에 충실한 이들로 보였다. 아직도 ‘거리’에 나서기에는 뭔가 찝찝해서 지하실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져서 허겁지겁 막차를 타러 전철역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대 전철역은 묘한 기운이 감도는 분위기였다. 서둘러 귀가하려는 사람들과 날밤을 새우기로 작정한 젊은이들로 양분되는 사이에 장기 체류자로 보이는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다.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백인이나 흑인이었다. 아직 뉴욕이나 런던 수준은 아니지만 도쿄도 ‘글로벌 시티’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한 가지 이상했던 점은 레코드 숍에서 보았던 고분고분한 일본의 젊은이들과 거리에서 보는 일본 젊은이들이 무척 달라 보였다는 점이다. 한 상점에서는 손님이 돈을 지불하고 나갈 때 카운터에서 “아리가또”를 외치면 곳곳에 있는 종업원들이 일제히 “아리가또”를 제창할 정도였으니까. 어쩌면 그런 양면성이 일본인의 삶의 조건을 이루는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보았다. 그건 최첨단적이면서 초보수적인 일본 사회의 양면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가까스로 막차를 타고 택시비로 4,000엔(40,000원)을 날려버릴 뻔한 상황을 모면하고 돌아와 보니 일행들은 선술집에서 술을 한 잔 걸치고 이미 돌아와 있었다. 나는 잠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여기까지 와서 왜 할까’라고 생각하다가 그냥 침대에 뻗어 버렸다. 하긴 한국에 살면서 이렇게 걸어 다닌 일은 10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게다가 서울같이 공기 나쁜 곳에서는 이렇게 장시간 돌아다니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 다음 호에는 NRCnet 방문기가 이어집니다.

추기

1. 일본에서 서울로 국제전화를 걸 때 공중전화를 사용하기가 의외로 불편하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전화카드의 경우 일본에 온 후진국 애들이 카드 뒤에 붙인 마그네틱 테이프를 다시 붙이는 등 조작을 가해서 국제전화를 많이 걸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전화국은 전화기와 카드를 교체하는 등 난리를 피웠다고 한다. 카드가 되지 않는 공중전화기는 동전을 사용해야 하는데 국제전화를 걸 수 있는 공중전화가 의외로 많지 않다. 공중전화는 한국보다 훨씬 많다. 그걸 두고 “얘들은 아직 핸드폰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구나”라고 생각하든가 말든가는 각자의 자유고.

2. 현재 일본 국내에 한국의 500원짜리 동전이 80만개 있다고 한다. 헉! 자그마치 4억원이다. 이유는 자동판매기에 그걸 집어넣으면 일본의 500엔짜리 동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노동이 필요한데 테두리의 오톨도톨한 부분을 바위같은데 밀어서 납작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한국 동전 500원 집어넣고 취소하면 일본 동전 500엔이 나오는데 그러면 앉은 자리에서 4,500원 버는 셈이다. 그래서 일본중앙은행은 동전을 교환하고 난리를 피웠다. 자동판매기 앞에 “500엔 새 동전은 사용할 수 있지만 구 동전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3. 신주꾸의 밤거리에 서 있으면 일본인 ‘삐끼’가 한국말로 호객할 때가 있다. 일본인들은 삐끼마저도 비교적 공손한 편이다. 각자의 자유지만 혹하는 마음에 따라 나섰다간 지갑이 텅텅 빌 수 있으니 조심하라. 삐끼가 나누어 줘서 받아든 휴지에는 ‘KOREAN エステ サロン(한국형 마사지 업소)’의 광고가 있으니 가격을 참고하라. 일본인다운 꼼꼼함으로 “40分 5,980円”이라고 적혀 있다. 물론 그 뒤에는 “다른 코스는 별도”(-_-)라고 적혀 있다.

4. 일본의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은 아직 시꺼먼 색깔의 교복을 입는다. 여학생은 특유의 긴 흰 양말을 신는다. 특이한 것은 아침부터 거리를 쏘다니는 양아치들이 많다는 점이다. 아침 10시나 11시인데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는 애들이 많고 특히나 여자애들이 많다. 하긴 한국도 요즘은 땡땡이 치는 중고딩들이 많다고 하던데 일본도 ‘교실붕괴’ 현상은 비슷한 모양이다. 도쿄는 하도 주거비가 비싸서 주부들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일본의 포르노 비디오 플롯 중에 ‘방과 후에 여고생 어쩌구…’ 하는 게 많은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이런 유형의 비디오는 앞서 언급한 Book-off에 수두룩하게 꽂혀 있었다).

5. ‘일본 여자들은 못 생겼다. 일본 남자들도 인정한다’는 통설과는 달리 내 눈에는 일본 여자들이 한국 여자들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인위적으로 예뻐 보이려고 기를 쓰는 듯한 한국의 젊은 여자들과는 달리 개방적이고 자연스러운 얼굴과 의상을 하고 있었다. 성형의술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사실과 모순되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똑같이 생긴’ 한국 여자애들보다 각자의 개성이 강한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영화 [Before Sunrise] 비스무레한 일도 일어날 수는 없고, 그럴 열정도 사라진 지 오래지만. 20010430 | 신현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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