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꾸반 재즈

20010416111121-HavanaJam2사진설명:: [Havana Jam](1979)의 커버
1978년 이라께레(Irakere)라는 꾸바의 재즈 밴드가 컬럼비아 레코드(현 소니 뮤직)와 계약을 맺었다. 지난번 언급했듯이 민주당 카터 행정부 하에서 해빙 무드가 조성되고, 몇몇 꾸바 그룹이 미국 공연을 시작한 시점이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꾸바의 음악인 중에서 ‘자본주의’ 미국의 메이저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은 것은 이번이 최초였다. 레코딩 계약을 체결한 동기는 다소 복잡하다. 컬럼비아 레코드는 아바나에서 미국과 꾸바 양국의 재즈 음악인들의 합동 콘서트를 주관했는데, 직접 콘서트를 본 컬럼비아측 인사가 이라께레의 연주에 감탄했던 것이다. 그 결과 [Havana Jam]이라는 이름으로 두 종의 앨범이 발표되었고, 이 음반은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재즈 팬들의 흥미를 유발시켰다. “사회주의 나라에도 재즈가 남아 있다니…”라는 놀라움이 덧붙여진 것이지만.

이제까지 소개했던 꾸바의 여러 음악 스타일들에서 재즈의 영향을 감지하기는 어렵지 않다. 쏜(son)은 재즈로부터 직접 영향받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재즈와 유사한 악기편성과 악곡형식을 가졌고, 맘보는 단손(danzon)이 미국에 건너가 빅 밴드 재즈와 만나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오래된 음악들 외에도 (지난 회에 본) 누에바 뜨로바의 고품격 팝에서도 재즈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고, (다음 회에 볼) 쏭고(songo)와 띰바(timba)에서도 재즈의 영향이 강하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것은 단지 ‘재즈로부터 영향받은’ 음악 스타일이 아니라 ‘재즈 음악계에서 재즈라고 인정하는’ 음악을 말한다. 이 경우에도 꾸바 음악의 영향과 꾸바 출신 음악인의 업적을 추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른바 아프로꾸반 재즈(Afro-cuban jazz) 혹은 라틴 재즈(Latin Jazz)라고 불리는 음악 스타일은 미국에서 재즈의 한 갈래로 이미 성립한 상태였다.

20010416111208-MarioBauza사진설명:아프로꾸반 재즈의 배후 실력자, 마리오 바우사(Mario Bauza)
아프로꾸반 재즈란 말 그대로 재즈의 음악 어법과 꾸바 음악의 퓨전으로 발생했는데, 통상 1947년을 전후해서 탄생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드러머이자 가수이자 작곡가이자 댄서였던 차노 포소(Chano Pozo)가 뉴욕에서 트럼펫 연주자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와 공동 작업을 한 사건이 아프로꾸반 재즈의 효시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클라리넷 주자인 마리오 바우사(Mario Bauza)가 재즈의 즉흥연주와 꾸바 리듬의 혼합을 실험해 왔다. 꾸바 출신으로 1930년대에 뉴욕으로 이주한 바우사는 차노 포소를 디지 길레스피에게 소개한 인물이자, 자신의 사촌인 마치토(Machito)의 밴드 아프로꾸바노스(Afrocubanos)의 음악 감독으로, 아프로꾸반 재즈의 숨은 실력자로 활동했다.

1950년대 뉴욕에서 아프로꾸반 재즈는 뿌에르또 리꼬계인 맘보 밴드의 리더 띠또 뿌엔떼스(Tito Puentes), ‘라틴 재즈의 비(非) 라틴인 리더’인 칼 티야더(Carl Tjader)의 인기와 더불어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아프로꾸반 재즈는 ‘가장 대중적인 스타일의 재즈’로 불렸는데, 이는 재즈가 ‘쿨’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도 ‘댄서블’한 감각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꾸바와의 문화적 교류가 단절된 이후에도 아프로꾸반 재즈는 밥(bop)의 뿌리를 넘어 다양한 형태의 퓨전을 계속해 나갔다.

한편 까스뜨로 정권 하의 꾸바에서도 아프로꾸반 재즈는 명맥을 유지했다. 꾸바의 국립 예술학교(Cuban National School of the Arts)에서는 재즈를 정규과목으로 채택하여 교육하였고, 이를 통해 많은 재즈 연주인들이 배출되었다. 특히 1970년대 초 오르께스트라 꾸바나 드 무지까 모데르나(Orquesta Cubana de Musica Moderna)를 모태로 1973년에 결성된 이라께레는 꾸바를 대표하는 재즈 밴드로 성장했다. 이라께레는 정규 밴드라기 보다는 ‘슈퍼그룹’에 가까웠다. 198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트럼펫 연주자 아르뚜로 산도발(Arturo Sandoval), 색소폰 주자 빠뀌또 드리베라(Paquito D’Rivera)가 모두 이라께레를 거쳐갔고, 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Chucho Valdes)는 오랜 기간 동안 그룹을 이끌어 왔다. 이라께레는 라틴 재즈, 비밥, 꾸바 민속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전염성 강한(infectuous)’ 리듬과 결합시켜서 즉흥연주를 발전시켜 왔다.

Irakere – Concierto para Metales

이라께레가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한 1970년대 말 이후였다. 또한 1980년대 중반 곤살로 루발까바(Gonzalo Rubalcaba)같은 신성의 출현으로 인해 꾸바 재즈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이른바 ‘신(新) 냉전’ 국면이 조성되면서 꾸바 음악인들의 국제무대에서의 활동은 당국의 이런저런 규제를 받았다. 몽뜨뢰 재즈 페스티벌같이 국제적 친선과 유대를 목표로 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일은 허락되었지만, ‘흥행’을 목표로 하는 공연은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라께레와 컬럼비아 사이의 레코딩 계약도 ‘로열티는 음악인에게 직접 송금하지 않고, 미국에 유보해 두었다가 꾸바 음악인이 미국 공연을 가지게 될 경우 그들에게 자금을 지원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고서야 성사될 수 있었다. 이라께레가 자유롭게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갖기 위해서는 1990년대 중반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와중에 아르뚜로 산도발이 1990년 유럽 순회공연 중 로마에서 미국 대사관을 찾아가 망명을 신청하는 사건도 있었다.

‘월드 뮤직’으로서 룸바

20010416111208-LosMunequitos사진설명:가장 대중적인 룸바 밴드 로스 무네뀌또스 드 마탄사스(Los Munequitos de Matanzas)
1992년 로스 무네뀌또스 드 마딴사스(Los Munequitos de Matanzas)라는 꾸바 그룹의 전미 순회공연이 전회 매진을 기록하면서 성황리에 치러졌다. 그 뒤에는 점차 빈도가 잦아져 1996년, 1998년, 1999년 계속 공연을 가졌고 음반 판매고도 호조를 보였다. 따지고 보면 이들은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의 밀리언 셀링 음반의 초석을 닦은 셈이다.

사전 정보 없이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꾸바 음악이라기보다는 아프리카 음악으로 들릴 것이다. 아프리카 각지의 음악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꽁고 음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도 수꾸스(soukous)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꽁고의 ‘현대 대중음악’이 아니라 ‘전통 토속음악’으로 들린다(실제로 이들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1994년 앨범의 제목은 [Congo Yambumba]이고, 같은 이름의 곡도 있다).

Los Munequitos de Matanzas – Congo Yambumba (live in New York)

“총감독이자 댄서이자 구아구아(guagua) 연주자인 디오스다도 라모스 크루스(Diosdado Ramos Cruz)와 음악감독이자 뀐또(quinto), 까혼(Cajon), 리야 바따(lya Bata)와 퍼커션을 연주하는 헤수스 알폰소 미로(Jesus Alfonso Miro)가 이끄는 그룹”(All Music Guide)이라는 소개는 ‘저 악기들이 민속 악기구나’라는 생각만 들게 할 뿐이다. 하지만 이들이 ‘반세기 동안 가장 인기있는 룸바 밴드였다’라는 정보는 매우 유익하다.

이런 음악이 ‘진짜 룸바’다. 여기서 룸바, 쏜, 살사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룸바가 아프리카계 꾸바인들의 길거리 댄스음악(street dance music)이고 ‘민속음악’이라면, 쏜은 룸바의 영향을 받아 직업적 음악인들이 다듬어낸 ‘대중음악’이고, 살사는 쏜이 뉴욕 등 미국에서 국제적 영향을 흡수하여 형성된 음악이다. 아프로꾸바인(=꾸바 흑인)의 음악을 아프로아메리칸(=미국 흑인)의 음악과 비교한다면, 룸바는 블루스, 쏜(정확히 말하면 ‘쏜 몬뚜노’)은 재즈, 살사는 로큰롤에 각각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비유는 비유로 그쳐야 한다).

이런 연유로 룸바는 ‘언제나 존재했다(ever-present)’고 언급된다. 우리가 혼동하는 것은 1930년대 꾸바 밖에서 룸바라고 알려진 것(그 대부분은 쏜이었다고 세 번째 시리즈에서 언급한 바 있다)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혹자는 룸바란 “쏜에 대한 잘못된 명명(misnomer)”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꾸바 외부에서의 룸바를 ‘rhumba’라고 철자법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룸바는 마탄사스 등 꾸바 서부 지역에서 특히 융성하기는 하지만 아프로꾸바인이 거주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룸바의 변종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로스 무네뀌또스 드 마탄사스라는 그룹이 결성된 것도 술집(bar)에서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접시와 술병으로 리듬을 맞추던 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룸바는 마치 한국의 뽕짝이나 ‘도롯도’와 비슷하다.

‘진짜’ 룸바는 꾸바에 대한 미국의 빗장이 벗겨지기 시작하는 1980년대 후반 이래 다시 한번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때는 마침 ‘월드 뮤직’, ‘월드 비트’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이 바람의 핵심은 퍼커션 연주였다. 그런데 꾸바에는 ‘길거리’에도 고난도의 연주력을 가진 퍼커션 연주자들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꾸바를 찾아간 월드 뮤직 애호가들은 도처에 널려있는 꾸바 음악인들에게 매료되었고, 이들 중 몇몇은 “문화적이고 교육적 목적”으로 간주되어 비자를 발급받아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꾸바 음악인들에 대한 비자 발급은 월드 뮤직 네트워크와 아프로꾸바 음악 사이의 관계를 공고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로스 무네뀌또스 드 마딴사스를 비롯하여 아프로꾸바 드 마탄사스(Afro Cuba de Mantanzas), 이부 오꾼(Ibu Okun)같은 룸바 그룹들이 월드 뮤직이 연주되는 워크숍이나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미국 청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꾸바에 퍼커션 연주자가 특별히 많이 남아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점은 까스뜨로 정권의 공헌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까스뜨로는 “우리는 양키들에게 말해야 한다. 꾸바는 라틴 아메리카 나라일 뿐만 아니라 아프로 라틴 나라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라고 호기롭게 말한 바 있다. 말로 그친 게 아니라 까스뜨로 정권은 실제로 꾸바 사회의 아프리카적 기원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꾸바 학자들은 아프리카를 찾아가 아프리카계 꾸바인의 기원들을 연구하였고, 1979년에는 음악, 춤, 미술, 학술 심포지움이 어우러진 ‘까리페스따(Carifesta)’라는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 결과 꾸바에는 아직까지도 다른 카리브해 나라들에 비해 아프리카 각 지역의 흔적들이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다. 싼떼리아(Santeria)라는 아프리카에 기원을 둔 토속 종교도 형성되어 있다. 음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흑인 노동계급의 댄스 음악으로 ‘천박하고 원시적’이라고 멸시받던 룸바도 ‘국민 댄스음악’으로 승격되었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직업적 룸바 그룹도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는 여타의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의 민속음악과 달랐던 점이다. 간략히 말해서 룸바 음반의 표지에는 ‘흑인’이 등장하는 반면, 다른 나라의 민속음반은 ‘백인(스페인계)’이 등장한다.

그런데 미국 행정부가 룸바 등 ‘아프로꾸바 월드뮤직 음악인’에게 비자를 우선적으로 발급해 주었던 것도 일종의 ‘역차별’ 아닐까. 이는 몇 차례 언급했던 ‘월드 뮤직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다. 달리 말해서 ‘상업적’이라고 간주되는 꾸바의 인기 밴드들은 1997년까지 미국에서 공연을 가질 수 없었고, 음반회사와 계약을 체결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들이 미국시장에 진출한 데에는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외화 벌이’가 필요했던 꾸바 정권 측의 필요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재즈 뿐만 아니라 월드 뮤직같이 ‘비정치적’이라고 간주되는 음악에도 ‘정치’는 어김없이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걸 가지고 “순수해야 할 음악에 지저분한 정치가 작용하다니”라면서 우울해 할 것까지야 없겠지만. 20010412 | 신현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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