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표지에 나온 사람은 ‘가수’가 아니다

초등학생에게 “요즘 제일 잘 나가는 가수가 누구게?”라고 물었더니 대답은 조성모도, g.o.d도, H.O.T도 아니고 “이미연”이라고 말한단다. 농담이 아니다. 하긴 음반을 진열해 놓은 곳에서 이미연의 [연가]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그것도 여러 장이 진열되어 있다.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모습은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체현한 듯한 이미지로 다가오고 수록곡들도 ‘주옥같은’ 사랑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500만장이 팔렸다”는 뉴스까지 있는 걸 보니 많이 팔리긴 많이 팔렸나 보다. 모두 네 장의 CD에 70곡 가량(정확히 세어보니 68곡이다)을 꾹꾹 눌러 담아 놓았고, 가격도 2만원을 넘지 않고 잘만 하면 1만 5천원 이하로도 살 수 있다고 한다.

루머에 의하면 이 음반을 기획한 제작자는 기동성까지 발휘했다고 한다. 선곡한 리스트를 공장에 건네주고 음반을 제조하는 도중 모 영화에 삽입된 “이등병의 편지”가 히트하자, 공장에 전화를 걸어 가동을 중단시킨 뒤 곡의 판권을 사서 추가했다는 것이다. ‘뮤직 비디오 전략’을 통해 단숨에 조성모를 ‘국민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그의 사업 수완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조성모의 뮤직 비디오에는 조성모가 주연으로 나오지 않았고, ‘이미연의 앨범’에는 이미연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untitled4그래서 이건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데 이 글을 쓰려는 찰나에 또 하나의 뉴스를 접했다. 이영애를 앞세운 [애수]라는 또 하나의 세트가 나온 것이다. 무슨 에로 비디오 시리즈도 아닌데 아류작이 나온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 역시 업계 용어로 ‘대박’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총 여섯 장으로 기획된 [애수]는 출시된 지 사흘만에 주문량이 120만장(그러니까 20만 세트)를 기록하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주문량이 곧 판매량이 아니라는 것은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초기 반응으로는 [연가]를 뛰어넘는다’라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이 종합선물세트에는 무려 100곡 가량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고, ‘최신 히트 팝송 리믹스’와 ‘댄스 리믹스’도 각각 한 장의 CD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가격은 1만 짜리 지폐 1장에 천원짜리 몇 장만 보태면 된다고 하니 잘 팔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랑의 깊은 맛을 아는 듯한 이미연의 이미지와 달리 이영애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여인의 이미지로 다가선다”는 한 기사의 설명은 이 음반의 마케팅 포인트를 잘 설명해주는 듯하다.

이렇게 잘 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비판하는 것은 ‘질투’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음반들로 인해 “가수(나 그룹)의 정규 음반들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런 컴필레이션 음반이 침체된 음반시장을 회복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이제 여자 탤런트를 앞세운(남자라고 못할 것도 없지만) 종합선물세트 음반만이 잘 팔리는 시장구조로 정착되는 것일까. 이런 게 기우라고 한다면 뭐가 문제일까. 두 가지만 짚어보자. 하나는 ‘가수나 작곡가 등 저작권을 가진 인물들이 이런 종류의 음반에 기꺼이 판권을 양도(혹은 이용허가)했는가’라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왜 한국인들은 자기 취향을 개발하기보다는 남이 들려주는 음악을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가’라는 점이다. 두 번째 문제는 조금 골치아픈 것이므로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앞의 문제만 다뤄보자.

저작권

untitled5조용필의 노래를 듣고 싶어져서 음반점에 들렀다고 하자. 그렇지만 S음반사나 W음반사에서 나온 베스트 음반을 사면 당황할 수도 있다. 곡 제목은 맞는데 노래나 연주가 그때 그 느낌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곡의 아우라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사람 입에서는 ‘이건 왠지 아닌데…’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창밖의 여자”와 “고추잠자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와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Q”를 원곡 그대로 듣고 싶으면 J 레코드에서 발매된 정규 음반을 각각 구입해야 한다. 그게 음반시장의 규칙이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라는 마음으로 인터넷으로 다운로드받으면 되지만, 그럴 경우 음반산업협회라는 곳에서 ‘저작권 침해’라면서 “사용자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겠다”라고 으름짱을 놓고 있으니 몸조심할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조용필의 베스트 음반은 원래의 레코딩을 그대로 수록하지 않고 다시 녹음한 것이다(자기가 자기 노래를 다시 녹음하는 것은 ‘remake’가 아니라 ‘rerecording’이다). 왜 그랬을까? 본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므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음악인 본인이 오래된 레코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예전의 레코딩을 그대로 수록하면 최신 감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게 중요한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역시 추측이지만 조용필 본인이 자신의 레코딩(한국어로 ‘취입물’ 혹은 ‘음원’)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아리송해진다.

어쨌든 현재의 음악산업계의 관행은 계약 기간 동안 제작된 음반의 판권은 소속사에게 있다. 물론 이건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점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저작권 제도가 허술하던 시기인 1980년대 중반까지 판권은 물론 저작권도 음반사의 소유다. 아마 계약서에도 ‘모호하게’ 그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음악인에게 저작권이 있다면 음반이 ‘실연(performance)’될 때만 그렇다. 쉽게 말해서 그 노래를 담은 음반이 TV나 라디오에서 재생될 때만 ‘곡의 사용료’로 작곡가와 가수에게 저작권료가 지급된다.

그러니까 자기 목소리를 레코딩한 음원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그걸 복제하여 판매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방법은 있다. 판권을 사오면 된다. 그렇지만 “계약서는 헌법 위에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음반사 사장들이 판권을 쉽게 양도해 줄 리가 없다. 비용 한 푼 안 들이고 돈이 굴러 들어오는데 굳이 양도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음악인이 과거의 히트곡을 음반으로 발매하여 추가적 수입을 올리려면 다시 녹음하는 수밖에는 없다.

조용필과는 정반대의 사례지만 원리는 똑같은 사건이 있었다. 이 경우는 법정까지 가서 시비를 가려야 했다. 1994년 정태춘과 박은옥은 J 음반사를 상대로 자신들의 히트곡을 재편집하여 제작한 ‘정태춘, 박은옥 히트곡 모음’의 레코드, 카세트 테이프, 콤팩트 디스크의 판매를 금지할 것과 이와 관련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전속계약에 터잡아 그 전속기간 중에 원고들이 취입하여 제작한 음반의 복제권은 회사에 귀속되고, 그 가창의 원형을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수록하여 별도의 히트곡 모음집으로 재편집·제작하는 행위도 회사의 이용권의 범위에 포함되며, 전속계약의 내용 및 작곡·작사의 사용승인약정에 비추어 볼 때 음반 및 테이프 취입 뿐 아니라 비디오 녹화·촬영·제작 기타 일체를 포함하여 회사에 전속되도록 되어 있으므로 최초 고정된 음을 CD라는 새로운 형식의 매체에 수록하여 제작하는 행위도 회사의 이용권의 범위에 포함된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원고측은 항소했지만 서울고등법원 역시 항소를 기각했다. 법률 용어를 계속 읽어나갔다가는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으므로 간략히 요약한다면 “전속기간 중 제작한 음반의 권리는 대부분 음반사가 갖는다”라는 것이다. 그걸 ‘포괄적 이용허락’이라고 부르는데, 그러니까 계약이 끝난 뒤에도 음반사는 예전 음반을 편집해서 재발매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럴 수는 있다. 문제는 ‘돈 문제’인데 음반의 주인공인 가수와 작곡가에게는 추가적 소득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이 ‘한국형 전속계약’의 특징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한국에서는 음반의 판매량에 비례해서 로열티(혹은 인세)가 지급되지 않는다. 전문 용어를 사용한다면 저작권료의 두 종류 가운데 실연료(performance royalty)는 음원의 실연 횟수에 비례하여 지급되지만, 복제료(mechanical royalty)는 음반 복제본의 판매량에 비례하여 지급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한 푼도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한 곡당 일정한 액수를 지급하는데 이런 정액제를 업계에서는 ‘곡비’라고 부른다. 조금 더 세분하면 작곡가에게는 작곡료, 작사가에게는 작사료, 가수에게는 가창료가 지급된다. 곡비를 지급받으면 곡에 대한 권리 모두가 음반사에게 ‘포괄적으로 이용허락되는’ 셈이다. 따라서 음반이 많이 팔리든 적게 팔리든 본래의 저작권자의 수입은 동일하고 추가적 수입은 거의 없다. 마치 삼성전자의 근로자들이 임금을 지급받으면 자신들이 만든 삼성 텔레비전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는 것처럼, 곡비를 지급받으면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가 소멸하는 셈이다.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음반이 많이 팔리는 경우 저작권자에게 ‘보너스’를 지급한다’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이런 방법은 어쨌든 ‘변칙’인 셈이다. 특히 무명 음악인의 경우 지명도가 높지 않아 투자의 회수가 불분명하므로 “작곡료, 작사료, 가창료를 일체 받지 않는 대신 제작 및 홍보 비용일체를 회사가 부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직접 작사·작곡을 하는 가수나 그룹의 경우에는 인세제가 도입되고는 있어도 아직까지는 ‘곡비’ 관행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작곡가나 가수들이 인세제보다는 정액제를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는 말도 들린다. 왜 그럴까? 다름 아니라 한국에서 음반 판매량 집계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인세제로 계약했는데 음반 판매량이 불투명하면 작곡가는 황당한 처지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미 일정한 지위에 올라선 작곡가의 경우 오히려 선금으로 일정한 곡비를 받는 것이 ‘안전빵’이다. 역설적이지만 ‘불확실성’의 상황에서 이게 오히려 ‘합리적’이다.

편집음반, 헌정음반, 리메이크 음반

서두의 논제로 돌아와 보자. 한국의 음악인들이 편집 음반이 제작될 때 판권을 기꺼이 ‘이용허락’하고 있을까? 앞서 논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건 자연스럽다. 해당곡이 수록된 음반은 더 팔리더라도 작곡가와 가수에게는 추가적 수입이 없다. 그렇다면 원곡이든, 리메이크든 새로운 음반에 수록된다면 곡비와 가창료가 새로 지급되니까 반대할 이유가 거의 없다. 판권을 보유한 음반사측은? 한국에서 오래된 음반은 거의 안 팔리는 것이 상례고, 과거의 기라성 같았던 음반사들은 요즘 형편이 그리 좋지 않으므로 역시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20010416103124-0308View3Remake그래서 각종 편집 음반들이 붐이다. 원곡을 다시 편집해서 모아놓은 ‘컴필레이션 음반’, 특정 가수를 기린다는 이유로 제작한 ‘헌정 음반’, 한 가수(혹은 그룹)가 예전 노래들을 다시 불러서 앨범을 채운 ‘리메이크 음반’에 이르기까지. ‘명반’도, ‘신보’도 별로 인기가 없고 편집음반만 시장의 반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 컴필레이션 음반이란 앞에서 언급한 이미연의 [연가]나 이영애의 [애수] 같은 경우고, 헌정 음반은 김광석과 들국화에 대한 헌정음반이 나왔고, 리메이크 음반은 조성모의 [클래식]나 최근에 나온 핑클의 [Memories & Melodies] 같은 경우이다. 컴필레이션과 리메이크를 결합한 음반도 나왔는데 조성모, 유승준, 김현정 13 명의 현역가수가 선배들의 노래를 다시 녹음하여 [Remake op.01]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이런 현상은 무슨 의미일까. 침체에 빠진 산업의 출구를 마련하려는 기획력의 승리인가 아니면 말로를 향해 치닫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창작력의 고갈인가. 한번 팔아먹은 것을 다시 파는 장사는 음악 비즈니스가 가장 쏠쏠하다는 새삼스러운 진리의 확인인가. 황색 언론들에서는 ‘복고 열풍’이라고 떠들어대지만 이건 진정한 복고도 노스탤지어도 아니다. 옛 것을 옛 것 그대로 좋아하는 소비자도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리메이크 음반은 ‘요즘의 신선한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이유로 집어들고, 컴필레이션 음반은 이미연과 이영애의 이미지에 혹해서 혹은 ‘싼 맛에’ 집어든다. ‘천박한 취향’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대중의 취향’이라고 그러면 머쓱해진다.

그렇지만 이런 음반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이른바 ‘짝퉁’ 음반들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의적으로 편집하여 복제된 음반들 말이다. 미사리나 일산 등지에 밀집해 있는 전원 까페들 대부분은 이런 음반들을 틀어준다. CD 1장에 3천원 정도 하는 이런 음반들을 찾기 위해 굳이 ‘구루마’니 ‘리어카’를 찾을 필요도 없다. 다국적 초대형 유통업체인 월마트나 까르푸에 가도 [흘러간 팝송], [무드 카페 음악], [추억의 리퀘스트], [러브 포에버] 등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음반들이 수두룩하게 진열되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음반들에 수록된 노래와 연주는 오리지널이 아니다. 음반 표지를 유심히 보면 표지 어딘가에 “The songs in this record are not played by original artists”라는 문구가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철자법이나 대소문자가 틀린 경우도 허다하다. 모르겠다. 음악만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 전체가 ‘짝퉁’인지도…

이런 음반을 들어야 할 때 나 같은 ‘귀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은 정말 고역이다. 추억이든 노스탤지어든 원래의 아우라가 있어야 살아날텐데 이건 과거로 추억여행을 떠나가다가도 개운치 않은 느낌만을 전해줄 뿐이다. 뭐랄까 나 자신이 모조품이 된 듯한 기분이다. 지금의 합법적 편집음반들이 이런 불법 복제품이랑 다른 게 뭘까. 워낙 눈에 익은 탓인지 나로서는 그게 그걸로 보인다. 당신 취향이 얼마나 고상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할 말 없지만 ‘이건 아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합법 음반이 불법 음반을 ‘벤치마킹’하는 비즈니스를 사랑하라고 강요하지는 말라는 이야기다. 누가 사랑하라고 그랬냐고? 언젠가 한번 ‘가요 사랑 나라 사랑’이라는 해괴한 홍보문구를 보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20010415 | 신현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