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401072120-0307arabstrapArab Strap – The Red Thread – Chemikal Underground, 2001

 

 

골방을 나와 또 다른 골방을 향해…

밀폐, 혼탁, 분열증적 침잠만큼 아랍 스트랩(Arab Strap)과 어울리는 말도 없다. 귀에 달게 감기는 멜로디, 소절간의 다채로운 변화로 이루어진 응집된 노래 구조는 이들의 본업이 아니다. 비교적 단일하게 반복되는 로파이적인 패턴 속에서 낙오자의 분망한 됨됨이를 드러내는 것이 이들의 본업이다.

아이든 모팻(Aidan Moffat)과 말콤 미들톤(Malcolm Middleton)의 2인조로 활동을 시작한 아랍 스트랩은 1996년 첫 앨범 [The Weekend Never Starts Around Here]부터 ‘건조하고 단조로운 기타, 침체되지 않을 때는 대개 히스테릭하게 웅얼거리는 것으로 일관하는 보컬, 유난히 묵직하게 터져 나오는 드럼 펀치, 화사하거나 단아하기보다는 차라리 진혼적인 현악으로 갈무리될 암흑의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부딪히는 연인 관계는 배반과 환멸밖엔 가져다 줄 것이 없다고 신랄하고 내상적(內傷的)인 유머로 일상을 스케치하는 모팻의 가사 또한 이들만의 독자성을 부각시키는 주요한 요소가 되었다. 자주 노래 구조를 따라가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 엉망진창으로 웅얼거리는 스포큰 워드(spoken word)와 함께…

[Philophobia]와 [Elephant Shoe]에서 보다 다채롭게 음역의 폭을 넓힌 아랍 스트랩은 1년만의 신보 [The Red Thread]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새로운 음악 영역을 넓히며 그들의 여정을 계속해 나간다. 일렉트릭/어쿠스틱 기타, 첼로, 드럼, 베이스라는 비교적 간소한 체제 위로 적막하고 밀폐된 정서들을 드러냈던 예전과 달리, 보다 적극적으로 일렉트로니카, 포스트록, 오케스트럴 팝까지 아우르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아랍 스트랩 특유의 어둡게 난타하는 드럼 비트와 함께 적막하게 이어지는 굴절된 키보드 음이 슈게이징의 색채로 깊어지는 “Last Orders”는 첫 번째로 감지되는 변화의 결이다. 물론 축 처져 젖어있는 모팻의 가사는 이들의 자폐증이 하나도 치유되지 못했다는 것을 여전히 시사하지만. “우리는 사실 섹스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다만 긴장을 풀기 위한 거라 말하며 그 짓거리를 해 댔지”라는 가사를 보라.

슈게이징한 터치는 “Long Sea”에 이르면 아방가르드한 노이즈의 바다로 깊어진다. 깊어진다기보다는 분열증적으로 확장된다. 뒤따르는 “Love Detective”는 아랍 스트랩의 음악 노선에서는 매우 그루브하고 역동적인 힙합 일렉트로니카 트랙으로, 예의 무기력하고 숨가쁜 넋두리가 질주하는 스포큰 워드 파노라마다. 일상의 소소한 망가짐에 무심한 척 무너지는 이들의 세계에서 소통의 방법은 ‘여전히’ 없다.

내가 이들의 싱글까지 죄다 듣지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조금 당황스러웠던 트랙이 “Haunt Me”다. 희화화를 위해 쓰인 듯한 몽환적인 현악 오케스트레이션과, 서프(surf)적 나른함이 물씬 풍기는 기타 사운드위로, 약 먹은 듯 질질 끌려 다니는 모팻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 곡은 ‘노예 아니면 주인’ 외에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은 사랑의 착취적 구도에 대한 위악적인 패배 선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첫 번째 앨범에서 보여준 무성화된(좌절한) 마초주의를 좋아했다. 마리화나의 풀 비린내가 물씬 풍기고 너저분하게 어질러진 금녀(禁女)의 골방에서나 울려 퍼질 듯한 사운드와 노래들. 단아하고 꽉 짜인 오케스트럴 팝 사운드와 ‘범생이’처럼 반듯하고 여린 보컬이 떠다니거나, 치밀한 디지털 테크놀러지에서 뽑아내는 정교하게 분열하는 노이즈의 카오스가 주된 음악들 사이에서, 그들의 폐쇄적 가난함은 유난히 오만하고 아름다웠다. 그 폐쇄주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폭을 조금씩 넓혔다. 그리고 가장 넓어진 [The Red Thread]는 그들의 미궁을 벗어나되 돌아 들어가는 길도 잊지 않도록 드리운 생존의 ‘실끈(thread)’처럼 들린다. 내겐 그들이 어디를 가든 그 실끈을 놓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사운드의 실험적 업데이트보다 더 중요하다. 지치면 간혹 완전히 돌아가 버려도 좋으리라. 20010328 | 최세희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Amor Veneris
2. Last Orders
3. Scenery
4. The Devil-Tips
5. The Long Sea
6. Love Detective
7. Infrared
8. Screaming In The Trees
9. Haunt Me
10. Turbulence

관련사이트
Arab Strap 공식 사이트
http://www.arabstrap.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