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38배리어스 아티스트 – 희노애락 = Hero 愛 Rock – O2 Music/Universal, 2001

 

 

록 컴필레이션의 가벼운 희노애락

듣는 이에 따라 참신한 조어(造語)로 들릴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는 말장난처럼 읽힐지도 모를 편집앨범 [희노애락 = Hero 愛 Rock]은 “영웅은 Rock을 사랑한다”는 전제 아래 인간적인 록을 연출하겠다는 출사표를 올리지만, “만화속 주인공들은 여전히 영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일 수밖에 없는 이 아이러니컬함 속에 영웅도 인간의 희노애락을 공유하고 Rock의 근원 또한 희노애락과 관계 있으니, 영웅은 곧 Rock을 사랑하리라”는 설명은 마뜩찮게만 들려, 견강부회에 아전인수격이라고 일축하련다.

처음부터 이러하니 그 선입견으로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지 걱정인지라, 팬시 상품도 아닌데 무슨 이유로 록 음악에 영웅을 거들먹거리는 걸까. 그러고 보니 앨범에는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등 서양 만화 주인공들 일색이며 각각의 가사 옆에 쓰여진 원태연 식 글들은 또 뭐람. 부클릿을 보면, 가령 남희석을 테마로 했다는 노바소닉의 “희석찬가” 왼편에는 “나만의 영웅은 슈퍼맨도, 스파이더맨도, 그 어느 누구도 아니었습니다. 어디서나 날 웃을 수 있게 해주는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레이지 본의 “Light Rain”에는 “너무나 아파서, 너무나 괴로워서, 그리고 너무나 힘들어서, 항상 웃고만 사는 미치광이가 되었습니다”라고 써있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빈정거림이 모두에게 당위성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의 지나친 피해의식 탓은 아닐까. 팬 서비스 차원에서 보면 디자인 참신하겠다, 재질 미끈한데다 충분히 감상적인 ‘시구(詩句)’ 덕택에 음악을 들으며 음미할 수도 있겠는데 말이다. 게다가 기존의 컴필레이션 음반과는 다르게 ‘부활 – 노바소닉 – 델리 스파이스 – 파스텔’ 등으로 이어지는 신구(新舊) 뮤지션들의 화려한 새 노래 퍼레이드를 두고 웬 짜증. 이에 하릴없는 이의 트집이라고 할까봐, 보도자료 일부를 그대로 인용해본다.

“본 앨범 [희노애락(Hero 愛 Rock)]은 세계 최초로 주류 가수들의 신곡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새롭게 제작해 온라인을 통해 발표하고 있는 O2 뮤직이 그동안 발표해 네티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Rock 음악을 엄선한 것이다. 즉 기존에 시중에서 판매된 각 가수들의 앨범에 수록된 곡을 뽑아 편집한 기존 앨범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완전히 새로운 앨범이다. 특히 이번 앨범 출시 이전 온라인 상에 먼저 음악을 발표해, 대중으로부터 철저한 검증을 거친 음악을 수록했다는 점이 일반적인 편집앨범과 가장 큰 차별점이다.”

겉으로 본다면 정말 참신한 시도이다. 록 음악을 엄선하여, 대중으로부터 철저한 검증을 거친 후 음반으로 발매했다니. 그런데 대중으로부터 철저한 검증을 거쳤다는 의미는 무얼까. 이를 두고 이 음반 또한 상업적 판매를 위하여 대중에게 필요한 것(need)보다는 원하는 것(want)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라고 해석해도 될런가. 그렇다면 도대체 기존 컴필레이션 음반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네티즌’이 선택한 것은 무언가 다르다고 하기엔, 이미 오래 전에 동네 코흘리개 아이들이 피씨방을 점령해 버렸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 할 터이다.

이쯤에서 수록곡들에게 묻나니, 곡 선정에 있어 뮤지션들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었나. 그리고 그들은 이 음악들을 싱글로 (혹은 메인 타이틀로) 주저 없이 내세울 수 있을까. 첫 곡부터 “사랑할수록”의 환영(幻影)을 잊지 못하는 부활의 “너에게”가 흐르더니 노바소닉의 “희석찬가”는 남희석만큼이나 가벼운 말장난, 음악 장난에 불과하다. 크라잉 넛은 어느덧 ‘조선펑크’에서 멀어져 있었고 3인조로 참여한 델리 스파이스는 들국화 트리뷰트 음반에서와 마찬가지로 소품에 그치고 만다. 그나마 블랙 신드롬이 “Fly Away”가 진중한 사운드를 구사하는가 하면 처음 듣는 이에겐 늘 귀가 솔깃할 닥터코어 911과 힙 포켓의 음악이 리듬을 탈 뿐, 대다수 음악은 고루하고 록의 탈을 쓴 ‘가요’로서, 이러한 음악을 가지고 ‘영웅은 어쩌고저쩌고…’ 하기엔 애처롭기 그지없다.

이를테면 컴필레이션 음반은 참여 뮤지션들의 동고동락을 각오해야 한다(동반자살의 확률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곡 하나로 음반의 가치가 높아지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미진한 곡들 탓에 평가 절하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음반의 경우 어떤 운명에 처할는지는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독집 음반에 비해 부담감이 적어 평소 이미지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실험성을 적용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런 자율성을 찾기에는 일상과 보편에 함몰된 페이지와 같은 느낌이다. 반대로 기존 음반으로 이끌 가교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음반까지 연결되기 어려웠던(혹은 관심조차 없었던) 불독 맨션이나 파스텔, 마이 앤트 메리로 가는 입문서 역할 정도는 하겠지. 만약 부활이나 노바소닉에 이끌렸다가 그처럼 된다면, 어찌 박수를 보내지 아니하리요. 20010313 | 신주희 [email protected]

3/10

수록곡
1. 너에게 – 부활
2. 희석 찬가 – 노바소닉
3. 양귀비 – 크라잉 넛
4. 갈대와 잠자리 – YADA
5. 8080 – 닥터코어 911
6. Set Up – 힙 포켓
7. Fly Away – 블랙 신드롬
8. 한길 – 델리 스파이스
9. 사과 – 불독 맨션
10. Sweet Dream – 파티
11. 너를 만날 아침 – 마루
12. 제발… – 마이 앤트 메리
13. Light Rain – 레이지 본
14. Gloomy Jane – 파스텔
15. 잊어버려 – 신대철 (with 시나위)

관련 사이트
O2 Music 사이트
http://www.o2mus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