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 Son, Son Here it comes!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지겨운 느낌마저 있지만 아무래도 이들의 작품이 가장 구하기 쉬운 텍스트가 되어 버렸으니 이어서 해보자. 영화도 드디어 오늘(3월 1일) 개봉하니까. 무엇보다도 이들의 음반 부클릿에는 한국의 대중가요 음반들처럼 개별 곡들의 장르(혹은 스타일)가 친절하게 적혀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의 음반에는 ‘외국’ 음악의 장르가 적혀 있지만 이 음반에는 ‘자국’의 음악 장르명이 적혀 있다.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손(son), 단손(danzon), 과히라(guajira), 볼레로(bolero), 아메리까나 인플루엔차(americana influenza) 등이다. 아메리까나 인플루엔차는 재즈, 블루스, 가스펠 등 미국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은 스타일이고, 과히라와 볼레로는 지난 호에서 오마라 뽀르뚜온도(Omara Portuondo)의 음반을 평하면서 대략 언급했다. 단손은 일단 맘보나 차차차의 기원을 이루는 스타일이라고 이해해 두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손이고, 실제로 손은 1990년대 후반 꾸바 음악의 르네상스의 주역이었다. 이전에도 몇 차례 언급했지만 손은 현재 라틴 팝의 주류의 하나가 된 살사(salsa)의 기원이 되는 음악이고,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의 음반에서 “Chan Chan”, “Da Camino a La Vereda”, “El Cuarto de Tula”, “Candela”가 모두 손에 속한다.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의 손과 마르끄 안소니의 살사의 관계는 머디 워터스의 블루스와 에릭 클랩튼의 블루스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다. 형식과 스타일 면에서는 분명히 관련이 있으면서도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뜻이다. 게다가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의 음반에서 듣는 손과 본래의 손도 느낌이 다르다. 레코딩 테크놀로지의 변화로 인한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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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20세기 초 꾸바 동부의 오리엔떼(Oriente) 주의 산악지대에서 탄생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곳 지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만자닐로(Manzanilo), 관따나모(Guantanamo), 산띠아고 드 꾸바(Santiago de Cuba) 등의 도시가 손의 고향이라는 정보가 유익할 것이다. 꾸바의 수도인 아바나가 서북부에 위치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 곳은 상대적으로 외지고 못사는 동네고 흑인 거주민이 많다. 이렇듯 처음 태어났을 때의 손은 지역으로는 지방, 계급으로는 하층, 인종으로는 흑인의 음악으로 출발했다. 그 점에서 손은 최초의 ‘아프로 꾸바의(afro-cuban)’ 대중음악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 전에도 대중음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거나 흑인 음악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음악 어법으로 전국적 음악이 된 음악으로서는 최초라는 뜻이다.

20010401031110-maracas20010401031110-clave사진설명 : 위 – 마카라스 아래 – 끌라베
손은 제 1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인 1920년대에는 수도인 아바나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대중화되었다. 손을 연주하던 그룹은 7인조(septet)였다. 기타, 베이스(콘트라베이스), 뜨레스(기타와 비슷한 9현 악기), 트럼펫에다가 봉고, 마라카스, 끌라베의 퍼커션이 추가된 편성이다. 봉고는 손바닥으로 두들겨서 통통거리는 소리가 나게 하는 조그만 북이고, 마라까스는 나무로 만든 케이스에 식물의 씨앗을 집어넣어 손으로 흔드는 악기다. 옛날 가요를 아는 사람이라면 유복성 악단의 봉고 연주와 새샘 트리오의 “나성에 가면”에서 마라까스 연주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손에서 가장 특이한 퍼커션은 끌라베(clave)다. 막대기 두 개로 두드리는 타악기인 끌라베는 이른바 타임 키퍼(time keeper) 역할을 수행한다.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의 “El Cuarto de Tula”를 주의깊게 들어보면 끌라베의 역할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끌라베는 4/4박자 두 마디를 하나의 패턴으로 하는데, 통상 첫 번째 마디에서는 세 번, 두 번째 마디에서는 두 번을 친다.

Buena Vista Social Club, “El Cuarto de Tula”

아메리카 지역의 대부분의 음악 형식이 그렇듯 손 역시도 ‘순수한’ 아프리카 음악은 아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아프리카의 리듬과 퍼커션이 스페인의 멜로디와 화성 패턴과 결합한 것이 손의 특징을 이룬다. 이는 뒤에 어느 정도 정형화된 형식을 만들어내었는데, 소네로(sonero)라고 부르는 리드 보컬이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면 소네오(soneo)라고 부르는 합창이 나오면서 ‘주고 받기(call and response)’ 형식이 이어진다. 도식적으로 분해한다면 소네로의 노래가 ‘스페인 멜로디의 영향’이라면, 주고 받기는 ‘아프리카 음악의 영향’인 셈이다.

손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변모했다. 1930년대가 되면 손은 꾸바의 상류 계급까지 확산되었고 꾸바 국내에 머물지 않고 미국 등지로 수출되어 댄스 광란(dance craze)을 야기했다. 꾸바 외부에서 룸바라고 알려진 음악 스타일 중에는 손이 많았다. 이렇게 전국적, 국제적으로 확산되면서 손은 다소 매끄럽고 온순하게 변해갔다. 그렇지만 1940년대에 다시 한번 변화가 찾아왔다.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 그리고 손 몬뚜노(son montuno)

영화를 본 사람은 중반부에서 루벤 곤잘레스가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자막에는 ‘알세뇨’로 표기됨)라는 인물에 대해 언급한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사진도 한 장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아르세니오에 대한 루벤의 기억은 각별해 보였다. 넙적한 얼굴과 큰 머리로 보아 중앙 아프리카 출신으로 보이는 흑인의 빛바랜 흑백 사진이었다(이상하게도 그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맹인이었다). 1970년에 고인이 되었지만 로드리게스야말로 넓게 보면 꾸바 음악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할 인물일 것이다.

사진설명 : 2000년에 발매된 편집 음반 Arsenio Rodriguez, [Arsenio Rodriguez con Su Conjunto Y Chano Pozo Machito & His Orchestra]의 표지.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는 콩고로부터 노예로 꾸바에 건너온 선조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1911년 꾸바 서부 마딴사스(Matanzas)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말발굽에 차이는 사고를 당한 뒤에는 평생을 맹인으로 지내야 했다(영화에서는 이와 관계된 재미있는 일화도 들을 수 있다). ‘놀라운 맹인(El CIego Maraviloso)’이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기는 했지만. 1937년 호세 인떼라인(Jose Interain)이라는 인물이 이끄는 셉떼또 벨라마르(Septeto Bellamar)의 멤버로 연주와 레코딩 경력을 시작한 그는 ‘많은 곡을 작곡하고, 여러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의 리더’라는 전통적 음악인의 전형이자 1940년대 꾸바를 풍미한 꼰준또(conjunto)의 선구자다. 꼰준또란 음악 장르가 아니라 ‘그룹’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 그룹에는 전형이 있다. 앞서 언급한 7인조 편성에 트럼펫, 피아노, 그리고 콩가가 추가된 것이 특징이다. 트럼펫은 파워를. 피아노는 섬세함을, 콩가는 묵직한 톤을 각각 확보해주었다. 특히 콩가는 아프리카로부터 직접 기원을 두고 있다는 이유로 그때까지도 터부시되던 악기였고, 따라서 콩가를 도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손의 ‘아프리카화(혹은 아프로꾸바화)’를 유도한 것이었다. 또한 콩가와 더불어 팀발레와 카우벨 등 여러 퍼커션들을 실험적으로 도입했다.

단지 악기편성만이 아니라 형식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는 끌라베의 연주 패턴을 반대로 하거나, 리듬을 더욱 정교하게 구사하거나, 연주 도중에서 즉흥 연주 부분을 삽입하는 실험들을 계속했다. 손 몬뚜노(son montuno)라는 용어는 처음에는 이 즉흥연주 부분을 지칭하다가 나중에는 로드리게스가 만든 새로운 스타일을 지칭하게 되었다. 소네로의 리드 보컬이 후렴을 반복하고 소네오의 합창과 주고 받기를 하면서 트럼펫, 피아노, 뜨레스의 솔로 즉흥연주가 삽입되는 손 몬뚜노의 형식은 이전에도 맹아적으로 존재했지만 로드리게스에 이르러 ‘자유로운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또한 보컬과 퍼커션으로 연주하는 아프로꾸바인의 전통적 음악인 과광꼬(guguanco)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손 몬뚜노는 ‘자유분방함’, ‘자연발생성’ 등의 단어로 표현되는 아프리카 음악(특히 콩고 음악)의 특징을 부활시키면서 손을 새롭게 정의하였고 “A Belen le Toca Ahora”, “La Yuca de Catalina”, “Juventud Amaliana” 등의 손의 고전을 남겼다. 물론 시력을 되찾으려는 수술에 실패한 뒤 지은 “La Vida es un Sueno(인생은 하루밤의 꿈)”라는 구슬픈 볼레로도 이 시기의 작품이다.

Arsenio Rodriguez, “A Belen le Toca Ahora”

그렇지만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1953년에 그는 후배인 트럼펫 주자 섀뽀띤(Chappotin)에게 그룹(꼰준또)을 물려주고 혈혈단신 뉴욕으로 이주했다. 여기서도 그는 꼰준또 편성에 플룻과 팀발레를 추가하고 손에 다른 음악적 요소들을 도입하는 음악적 실험을 계속했다. 1960년대 초 발매한 [Quindembo/Afromagic]라는 앨범 타이틀은 말년의 그의 지향점을 상징한다. 뀐뎀보란 콩고어로 ‘여러 가지를 뒤섞기’를 뜻하는데, 이 앨범에 실린 음악은 손과 재즈, 그리고 빨로 꽁고(Palo Congo)라고 부르는 아프로꾸바인의 종교적 의식을 뒤섞은 것이었다.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스는 1968년 발표한 [Arsenio Dice]를 마지막으로 1970년 12월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미국으로 이주한 뒤 그의 활동은 꾸바에서만큼 많은 추종자를 낳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영향은 1960-70년대 형성된 ‘뉴욕 살사’의 전위들에게 뚜렷이 남아 있다. 그의 고전들이 살사 클럽에 다양하게 변주되어 연주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Arsenio Rodriguez y Su Conjunto, “Dame Un Porquito para Oler”
Orq. Sensacion de Rolando Valdes, “Dame Un Porquito para Oler”

단손, 볼레로, 과히라, 과광꼬 그리고 또….

손 이전에 단손이 있었다.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의 음반으로 돌아와 보자. 앨범과 같은 이름의 트랙인 “Buena Vista Social Club”과 “Pueblo Nuevo”는 단손이라는 장르 이름을 달고 있다(두 번째 곡은 vol.2/no.18에 수록된 앨범 리뷰에서 리얼 오디오를 들을 수 있다). 음반에는 피아노 중심의 재즈 스타일로 편곡되어 있지만 본래의 단손 역시도 ‘라운지 스타일’의 댄스 음악이다. 단손은 아프리카 리듬의 영향도 없지는 않지만 유럽의 영향이 더 강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럽의 대무(對舞)인 꼰뜨라단자(contradanza)가 꾸바에 건너와 변형된 스타일이 단손이다.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자면 1804년 아이티 혁명으로 인해 꾸바로 쫓겨온 프랑스계 난민들이 전파한 아바네라(habanera)가 19세기 말 경 대중화된 것이 단손이다.

Irazu Big Band Cuba, “Almendra” in [The Story of Cuba](Hemisphere/EMI, 2000)

단손은 처음에는 띠삐까스(tipicas)라는 브라스 밴드에 의해 연주되다가 점차 샤랑가(charanga)라는 악단에 의해 연주되었다. 샤랑가란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클라리넷, 플롯, 베이스, 드럼(더블 드럼)과 귀로와 팀발레 등의 퍼커션이 추가된 일종의 오케스트라다. 단손은 손이 대중화되면서 쇠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1930년대에 피아노와 합창이 어우러진 스타일로 다시 한번 인기를 끌었다. 손과 비교해 볼 때 피아노와 멜로디의 역할이 크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는) 우아하고, 템포가 느려서 천천히 춤추기 좋은 음악 스타일이었다. 맘보와 차차차는 모두 ‘샤랑가가 연주하는 단손’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말하자면 단손은 꾸바 음악 중에서 서양의 음악 전통에 가장 가까운 음악이었고, 맘보와 차차차 등이 꾸바 외부의 연주자들에 의해 쉽게 수용되었던 것도 이 점과 무관하지 않다.

단손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볼레로에 대한 이야기를 생략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19세기 말 꾸바의 산띠아고에서 발생한 느린 템포의 낭만적 발라드다. 영화에서 이브라힘 페레르와 오마라 뽀르뚜온도가 함께 불렀던 “Silencio”(이브라힘 페레르의 독집에 수록되어 있다)처럼 느린 템포 위에서 가수의 절창이 폐부를 찌르는 노래다. 마리아 떼레자 베라(Maria Teresa Vera)라는 전설적 볼레로의 디바가 작곡한 “Veinte Anos”는 시대를 초월한 명곡에 속할 만하다(음반에는 ‘꾸바의 에디뜨 삐아프’라고 불리는 오마라 뽀르뚜온도의 목소리로 재해석되고 있다). 1940-50년대 볼레로는 꾸바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베니 모레(Beny More) 등에 의해 라틴 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특징으로 인해 볼레로는 오늘날까지도 계승되고 있다. 올드 팝송의 팬이면 누구나 들었을 멕시코의 트리오 로스 빤초스(Trio Los Panchos)로부터 라틴 팝의 슈퍼스타인 멕시코의 루이스 미구엘(Luis Miguel)과 콜롬비아의 찰리 자(Charlie Zaa)에 이르기까지.

한편 “Guantanamera”라는 곡으로 유명한 과히라(guajira)라는 장르도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이 되기 이전의 꾸바의 음악의 정서를 전달해준다. 앨범에 수록된 “El Carretero” 에서 엘리아즈 오쇼아(Elias Ochoa)는 ‘농촌 블루스(rural blues)’를 듣는 듯한 노래와 기타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본래 촌부(村婦)를 뜻한다는 장르 이름이나 소박한 리듬에서 느낄 수 있듯 과히라는 농촌 지역의 삶을 노래하는 장르다. 그 외에도 앞에서 언급한 과광꼬(el guaguanco), 6/8박자 리듬을 가진 스타일을 지칭하는 아프로(afro), 또 하나의 퍼커션인 마림바(marimba)를 앞세운 샹구이(el changui), 아프리카 리듬이 보다 강한 꽁가(la conga) 등이 1950년대 이전의 꾸바 대중음악의 다양한 스타일을 이루고 있다.


사진설명 : 30년 동안 꾸바 팝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Los Van Van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의 음악은 이런 오래된 스타일,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스타일을 망라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꾸바 음악의 ‘전모’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꾸바 음악의 영향을 받았지만 별도의 스토리가 된 살사 뿐만 아니라, 이라께레(Irakere) 등의 라틴 재즈(Latin Jazz), 로스 반 반(Los Van Van)로 대표되는 송고(songo), NG 라 반다(NG La Banda)가 이끌었던 띰바(timba) 등에 대해서는 다시 기회를 미루어야 할 듯하다. 라이 쿠더의 말처럼 “음악이 강물처럼 흐르는” 꾸바 음악과 함께 흘러가려면 담배 한 갑을 다 피워도 모자랄 듯하다. 20010228 | 신현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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