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215044719-migalaMigala – Arde – Aquarela, 2001

 

 

재해의 시대를 사는 스페인의 낙오자들

올해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의 레이블들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세계 진출을 시작한 미갈라(Migala)는 스페인 소재 레이블인 아꾸아렐라(Aquarelela)를 통해 첫 정규 앨범인 [Diciembre, 3 a.m.](1997)을 발표한 후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모던 록’ 밴드다.

미갈라의 신보를 접한 후에 두 번째 정규 앨범인 [asi duele un verano](1999)와 큐어(Cure) 트리뷰트 앨범인 [Tribute to Cure](2000)에 제공한 “Plainsong”을 거슬러 들어보았다. 한 인터뷰에서 이들은 ‘기괴한 분위기의 고전적 음악 만들기(to create classic songs with an uncanny atmosphere)’를 자신들의 음악 지표라고 밝힌 바 있는데 고개가 끄덕여지게 만드는 사운드를 처음부터 들려주고 있었다. 중기의 레너드 코엔이나 초기의 탐 웨이츠를 연상하게 하는 묵직하고 사변적인 포크 사운드의 지반 위로 황량하고 음울한 노이즈 이펙트의 공기층을 형성하는 사운드랄까. 그런데 노이즈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기존의 디지털 샘플링, 기타 드론(drone), 피드백보다 훨씬 ‘원시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이 ‘튄다'(‘원시적인’이란 말을 ‘미개한’으로 오해하지 말기를). 이들이 선호하는 음향 효과는 파도 소리나 바람에 문이 여닫힐 때 녹슨 경첩에서 들리는 금속음, 급브레이크에 걸려 미끄러지는 자동차 바퀴 소리,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와 같은 일상 음들이다. 어쩌면 이들의 주된 음향 재료가 라디오 방송국의 드라마 음향 효과 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뉴에이지 스타일 중 하나인 ‘네이처(Nature)’가 생각났던 것도 그 때문이다. 심신의 이완과 명상을 위한 음악의 하나로 간주되었던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생음(生音)들’은 미갈라의 여과기를 거치자마자 무기력하고 쓸쓸한 도시인들을 둘러싼 소음계(騷音界)로 바뀐다. 네이처 스타일의 묵시록 버전? 아마도…

좀더 공감각 적인 센스를 끌어 들여서 미갈라를 듣는 것은 ‘조용한 재해(disaster)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이들의 ‘음악 영화’는 상실감과 무기력한 위기의식으로 가라앉아 있지만 동시에 ‘무채색의 에로티시즘’으로 아름답게 부유한다. 소박하고 이원적인 이들의 사운드가 가진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서프(surf)적 분위기가 한가로운 첫 곡 “Primera Parada”가 끝나면 탱고의 리듬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기타와 아코디온이 삐걱이는 키보드 샘플링과 멋지게 어울리는 “El Caballo del malo”가 흘러나온다. 고주파의 높낮이 조절로 만들어내는 노이즈 이펙트는 진공청소기를 튼 것같기도 하다. 중장년급의 연륜(?)이 느껴지는 아벨 에르난데스의 ‘스펭글리쉬(Spanglish?)’ 억양이 미묘한 “Fortunes Show of Our Last”는 록발라드로 나가다가 아코디언과 관현악, 여성 코러스가 합세하고 마침내 백파이프 같은 기타 드론으로 분해되는 점진적 아름다움을 들려준다. 무반주 첼로 협주곡이 자동차 바퀴의 마찰음, 사이렌, 스페인어로 떠드는 무전기 속 남녀의 대화, 그 밖의 분주한 도시의 소음 앞에서 장중하게 펼쳐지는 “Our Times of Disaster”는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재킷 사진과 함께 이 앨범의 주조적 정서를 느낄 수 있게 한다(스페인어로 arder(불타다, 썩다)의 3인칭 표현이 ‘arde’라는 짐작이 맞다면). 묵시록적 절망으로 가득 찬 “La noche”, 탱고 멜로디가 주전자속 물 끓는 소리로 불안하게 치닫는 “Suburbian Empty Movie Theatre”, 플라멩코(flamenco)의 숙명적 처연함이 깃든 “Cuatro Estaciones”와 함께…

미갈라의 가사 역시 사운드의 ‘해묵은 상실감’을 증폭시킨다. 주인공들은 모두 ‘재해의 시대'(“Our Times of Disaster”)에 변방으로 밀려나 사는 낙오자들이다. 이들은 분노조차 잊은 듯 무기력에 잠겨 있다. 시대가 어려우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중얼거리는 식이다(이른바 1990년대 모던 록의 무관심주의?). 그럼에도 이들은 ‘바라보기를’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서 이들의 개인적인 내상(內傷)은 유지되고 이는 세계에 대한 색다른 혜안으로 확장된다. 그러고 나니 이들이 ‘음악인보다는 투사(militant)’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한 것이 이해가 간다. 이들의 투사란 ‘매일 매일이 하나의 재해(The Guilt)’인 삶에서 말없이, 그러나 잠들지 않고 견뎌내는 익명인일 것이다. 종종 이들의 음악을 향해 혼잣말을 건네고 싶어질 것 같다. 20010212 | 최세희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Primera Parada
2. El Caballo del malo
3. Fortune’s Show of Our Last
4. Times of Disaster
5. Primer tren de la manana
6. La noche
7. La Espera
8. Suburbian Empty Movie Theatre
9. Principios de agosto
10. The Guilt
11. Cuatro Estaciones
12. High of Defenses
13. Last Fool Around
14. Arde

관련 사이트
아꾸아렐라 레이블의 미갈라 페이지
http://www.acuareladiscos.com/migala/index.htm
미갈라의 바이오, 디스코그래피, 비디오, mp3, 사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