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꾸바 음악은 라틴 음악과 왜 다른가?

20010201014508-cuba사진 설명: EMI 산하 월드뮤직 레이블 Hemisphere에서 2000년에 발매된 쿠바음악 모음집 [The Story of Cuba] 앨범 표지

연휴 첫날 저녁에 TV를 보니 김희선이 오랜만에 나왔다. 뜻밖에도 그녀의 무대는 노래로 시작되었는데, 그녀가 부른 곡은 살세로(salsero) 마르끄 안쏘니가 부른 “Di Melo”였다(그녀의 ‘연기’가 연기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나로서는 그녀의 ‘노래’ 역시 노래인지 아닌지 헷갈렸지만). 방송자막에 의하면 이 노래의 장르는 ‘차차차’다.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가 진짜 차차차가 아니듯이, 이 곡도 차차차라기보다는 그냥 ‘라틴 팝’으로 불러야 할 곡이다. 차차차의 고향은 꾸바이지만 이 히트곡에게 고향을 묻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5년 전쯤 신승훈과 클론이 유행시켰던 맘보(mambo)도 마찬가지고. 2년 전 임현정의 히트곡 “첫사랑”의 리듬은 룸바(rumba)라고 알려져 있다. 맘보, 룸바, 차차차 모두 ‘꾸바’라는 이름과 불가분한 음악이다. 그 뿐인가 작년 ‘B양’이 불렀던 히트곡 제목에 명시된 라틴 팝의 주류인 살사(salsa)도 꾸바와 무관하지 않다(물론 그 노래 역시 살사 리듬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음악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은 ‘다르게’ 들린다. 달라도 많이 다르다. 하긴 신중현의 음악과 클론의 음악을 똑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의 장르는 ‘꾸바 음악(cuban music)’이라고 불린다. ‘꾸바 음악’이란 무엇인가. 그건 그냥 라틴 음악의 한 가지 아닌가. 꾸바 음악이란 ‘꾸바에서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보통명사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를 수반하는가.

‘꾸바 음악’이라는 용어는 미국 등지에서 1940-50년대까지 사용되는 용어였다. 그때는 ‘볼룸 댄스 음악’인 라틴 음악의 하나였고,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던 음악이었다. 당시의 아바나는 ‘카리브해의 라스 베가스’로서 국제적 향락문화의 본산이었고 그래서 아바나에서 유행하는 음악들은 미국으로 쉽게 수출되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 현재 라틴 음악의 주류로 자리잡은 살사(salsa)를 들어봐도 1940-50년대 유행했던 꾸바 음악의 영향은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 입문서들에는 ‘살사의 기원은 꾸바 음악’이라는 내력이 따라다닌다. 이는 꾸바 출신의 살사 음악인들이 강조하는 점이기도 한데, 예를 들어 꾸바계인 ‘살사의 여왕’ 셀리아 크루즈(Celia Cruz)에 의하면 살사라는 용어는 “꾸바의 손(el Son)을 미국 시장에서 마케팅하기 위한 상업적 조어”라고 잘라 말한다. 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금시초문인 단어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멀쩡한 명칭을 놓아두고 개명을 한 것일까? 여기에는 상업적 마케팅이라는 이유 외에도 꾸바가 1959년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미국의 적성국(敵性國)이 되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한다. 이때부터 ‘꾸바 음악’이라는 명칭은 1960-70년대 남한에서 ‘북한 음악’이라는 단어가 주었던 무시무시한 느낌이나 비슷했던 모양이다.

또한 ‘살사의 탄생지가 꾸바’라는 사실은 ‘재즈의 고향은 뉴올리언스’라는 말이나 비슷하게 되었다. 음악이 한번 유통되기 시작하면 특정 집단에 배타적으로 고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살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오늘날 살사는 꾸바라기보다는 뿌에르토 리꼬(정확히 말하면 미국에 거주하는 뿌에르또 리꼬계 미국인)의 정체성과 보다 긴밀하게 연관되는 씬을 이루고 있다. 나아가 뿌에르또 리꼬 뿐만 아니라 까리브해의 섬나라들과 중앙 아메리카 지역 전체의 정체성으로도 확대되기도 한다. 현재 살사의 베테랑들 중에서 셀리아 크루즈(Celia Cruz)는 꾸바계, 띠또 뿌엔떼(Tito Puente)는 뿌에르또 리꼬계, 루벤 블라데스(Ruben Blades는 빠나마계다.주)

주) 살사의 지역성(locality)과 정체성(identity)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꾸바와 뿌에르또 리꼬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얄궂은’ 운명을 가진 케이스다. 스페인계 식민지배자와 노예 출신의 흑인의 비중이 비슷하고 인종들 사이의 혼혈화가 진전되어 제도적 인종차별이 없다는 문화적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은 정치적으로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뿌에르또 리꼬가 커먼웰스(commonwealth)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실질적 식민지인 반면(뿌에르또 리꼬 주민들에게는 미국 시민권이 부여된다), 꾸바는 사회주의 독립국이자 적성국으로 ‘무역제재 대상국’이었다. 함께 히스패닉계로 분류되면서도 미국 내에서 꾸바계와 뿌에르또 리꼬계 사이의 관계도 그리 매끄럽지 않다. 참고로 꾸바계의 커뮤니티는 마이애미에서, 뿌에리또 리꼬계의 커뮤니티는 뉴욕에서 가장 발전되어 있다.

그래서 ‘꾸바 음악’이란 이미 팝 음악의 시스템에 정착한 살사와는 상이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살사가 ‘라틴 음악’이라는 범주에 속한다면 꾸바 음악은 ‘월드 뮤직’에 속한다. 그게 무슨 말일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라틴 음악이든, 월드 뮤직이든 음악 장르의 용어는 마케팅을 위한 범주다. 한국에는 아직도 미분화된 대량 마케팅(mass marketing) 밖에는 별다른 마케팅 전략이 없지만, 영미의 ‘현대화된’ 음악산업 시스템은 전문화된 수요층을 겨냥하는 틈새 마케팅(niche marketing)을 발전시켜 왔다. 라틴 음악도, 월드 뮤직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라틴 음악의 수요층과 월드 뮤직의 수요층은 ‘다르다’. 라틴 음악이 미국 내의 히스패닉계 ‘서민’들을 겨냥한 ‘대중’ 음악이라면, 월드 뮤직은 소수의 호사가들을 위한 음악이다. 당연히 공연장의 규모나 분위기도 상이하다. 마르끄 안쏘니의 공연이 록 콘서트와 비슷하다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은 재즈 콘서트(혹은 클래식 콘서트)와 비슷하다.

물론 라틴 음악의 청중과 (월드 뮤직으로서) 꾸바 음악의 청중 사이에 중복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또한 꾸바 출신의 젊은 음악인들이 라틴 음악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전망도 내려볼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고립되고 폐쇄되어 왔던 꾸바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미지수지만 대체적으로 개방의 방향으로 나간다면 음악산업의 시스템에도 변화가 동반될 것이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특징으로 인해 꾸바 사회의 개방은 문화적 교류를 급진전시킬 것이다. 이는 마이애미처럼(어느 정도는 뉴욕도) 꾸바계 주민들이 많은 곳에서는 이미 진행 중인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월드 뮤직의 하위장르로서 꾸바 음악’에는 특정한 이미지가 동반된다. 음악인들은 오랫동안 음악과 함께 살아온 나이든 인물들, 말하자면 ‘1959년 이전의’ 분위기를 간직한 사람들이다. 40년 가까이 폐쇄된 사회에서 음악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알 도리 없는 사람으로서는 이상하지 않은 반응이다. 이들의 음악은 당시에는 천대받는 음악에 속했을지 모르지만(어쨌든 ‘사교 댄스 클럽’에서 연주되던 음악이므로) 지금은 고귀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앞으로도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 언제 아스라히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음악이다. 고약한 발상이지만 연주인들이 사회주의 혁명 이후 이런저런 고초를 겪은 사연이 첨가되면 음악이 주는 감동이 배가될 것이다.

2000년 한국에서의 월드 뮤직 붐의 선봉장 역시도 꾸바의 할아버지(그리고 할머니)들이었다. 다름 아니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말이다. 작년 연말 지상파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장르별 연말 결산을 하는 특집 방송에서도 이 점이 특히 강조되었다. 이를 두고 ?년 한국에서 월드 뮤직 붐은 거품이다, 1990년대 초반의 ‘재즈’, 1990년대 중반의 ‘록’, 1990년대 후반의 ‘인디’처럼”이라는 말로 끝내버리면 너무 맥이 빠진다. [서편제]의 이상 열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면서 ‘민족성’, ‘냄비근성’을 들먹이면 더욱더. 실제로 꾸바 음악은 ‘북한 음악 붐의 전주곡’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는 게 생산적일 것이다.

20010201020131-dancingwiththeenemy사진 설명: 워너뮤직 산하 월드뮤직 레이블 루아카 밥에서 1988년에 발매한 쿠바음악 모음집 [Cuba Classics Vol 2: Dancing with the Enemy] 앨범 표지

(너무 자주 언급하는 느낌이 있지만) 데이비드 바이언(David Byrne)은 1991년에 발매된 꾸바 음악의 컴필레이션 음반의 제목을 “Dancing with the Enemy”라고 붙였다. 그는 라이너 노트에서 “정치는 우리의 적인가? 정부는 우리의 적인가? 공산주의자들도 좋은 시간을 보냈을까?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음악은 공산주의적인가? 음악은 자본주의적인 것일 수 있는가? 당신은 어떤 경우에 음악을 더 잘 즐기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대답은 “이 음악들은 쿠바인들이 지난 30년간 춤춰왔던 음악이다. 이제 당신의 차례다”라는 것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장을 보러가는 한국인들은 어떤 대답을 보일까.

그렇지만 바보스럽게도 나의 대답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꾸바에서 이제까지 어떤 음악이 유행해 왔는가를 추적해 보는 것이다. ‘사회주의 나라의 음악’으로서의 꾸바 음악이 아니라, 반드시 꾸바에서 여기까지 전해져 온 음악뿐만 아니라 이미 국제적 댄스음악이 된 룸바, 맘보, 차차차는 물론 단존(danzon), 볼레로(bolero), 라틴 재즈(혹은 아프로-꾸반 재즈), 손(son), 누에바 트로바(nueva trova), 팀바(timba), 송고(songo)에 이르는 복잡하고도 풍부한 음악적 자산을 탐사해 보는 작업이다. 꾸바인을 그릴 때 빠지지 않는 담배 한 대 피운 다음에. 20010131 | 신현준 [email protected]

관련 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사회주의 나라에서 온 음악 – vol.1/no.5 [1999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