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 가끔 메일을 보내는 (극소수의) 독자들 중에, 특히 턴테이블리즘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최근에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역시 DJ Shadow의 근황에 관한 것이다. 이제 국내에서는 턴테이블리즘의 대명사로까지 불릴 정도의 위치에 이른 그가 거의 2년여 가까이 공식적인 앨범 발표를 하지 않고 있으니, 많은 이들이 그의 최근 활동이나 신작 앨범 소식에 바짝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년 봄, Blackalicious의 공연에서 겨우 그의 얼굴만 먼발치에서 잠시 봤던 게 고작인, 아시아에서 온 가난한 일개 유학생이 그가 요즘 뭐하고 지내는지 뭐 먹고사는지 어떻게 구체적으로 알아낼 수 있겠는가?)

사실 DJ Shadow는 싱글과 미발표곡 모음집인 [Preemptive Strike](1998)와, James Lavelle, Kudo와의 프로젝트, U.N.K.L.E.의 [Psyence Fiction](1998)을 발매한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공식 앨범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팬들로서는, 컴필 앨범인 [Solesides Greatest Bumps](‘Entropy’ 시리즈를 포함해 세 곡을 감상할 수 있다)를 비롯한 Quannum 패거리의 앨범들이나 Handsome Boy Modelling School같은 동료 지기들의 앨범에서 그의 여전한 천재적 솜씨를 짬짬이 맛보기로 접하긴 했지만, 뭔가 허전하고 아쉬웠다(참, Michael Mann의 영화, [The Insider]에 삽입되려다 막판에 제외되었다는 또다른 그의 근사한 곡, “Giving Up The Ghost”도 냅스터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그 기간동안 미국이나 유럽의 팬들은 Cut Chemist, Radiohead와의 투어를 통해 그의 신들린 솜씨를 직접 감상할 기회가 있었겠지만, 이는 한국의 팬들에겐 불만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Music from the Film, [Dark Days]

이 와중에 한가지 반가운 소식은, 작년 연말에 [Dark Days]라는 그의 싱글 앨범이 발매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국에서 상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동명의 영화 [Dark Days]에 대한 소문을 이미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DJ Shadow의 싱글 앨범은 바로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이기도 하다.

20010201124614-darkdays잠시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흐르는 것 같긴 한지만, 2000년 Sundance 영화제를 뒤집어 놓았던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필자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한 것처럼 오가는 뉴욕시, 전철 터널 안의 지하 깊숙한 곳에 홈리스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이자 제작자인 Marc Singer는 그들을 발견해 냈고, 그 속에 들어가 장기간 그들과 생활하며 함께 이 영화를 만들었다. 낮에는 뉴욕 거리로 올라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찾아 헤매고 밤에는 다시 지하로 침잠하는 이 공동체의 사람들 중에는, 25년간 그 곳에서 생활해온 이들도 있고 가족들의 학대를 피해 플로리다에서 도망쳐 결국 여기에까지 이른 10대 소년도 있다. 흑백의 화면에 담긴 이들의 솔직하고 생생한 이야기는, 번지르르한 메트로폴리스 배후에 존재하는 미국 사회구조의 첨예한 모순들을 자연스럽게 까발린다.

영화광 DJ Shadow는 Marc Singer의 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근사한 ‘씨네마틱 오케스트라’를 선사한다. 덕분에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이라도, 이 싱글앨범 속의 2곡(영화 주제곡과 ‘Spoken’ mix)을 통해 [언더그라운드]의 아메리칸 버전, 혹은 포스트모던 버전의 내용을 어렴풋이나마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Cut Chemist vs. DJ Shadow: [Brainfreeze]

20010201124614-brainfreeze[Brainfreeze]는 진정한 DJ Shadow, 혹은 턴테이블리즘의 팬이라면, 혹은 설사 음악은 잘 모르더라도 남들이 귀하다고 하는 음반들은 목숨걸고 찾아내는 수집가들이라면, 누구나 구하고자 하는(했던) 가장 선망이 대상이 되어온 음반 중 하나이다. 지금이야 냅스터에도 올라 있고, 진짜와 거의 구별이 안 되는 불법복제 CD들도 시중에 어느 정도 나돌고 있지만,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이 앨범 속에 들어있는 음악들은 들어보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덕분에 이들 두 거물 디제이의 지명도와 맞물려, [Brainfreeze]는 거의 전설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 앨범에 대한 이야기는 먼저 Mark Herily가 주도했던 그 유명한 ‘Futureprimitive Soundsession’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Futureprimitive Soundsession’은 원래 Justice League를 비롯한 샌프란시스코의 클럽에서 시리즈로 진행되었던 이 지역의 괴물 스크래치 디제이들의 ‘배틀 라이브(battle live)’이다. 이 공연에 참가했던 이들의 면면을 여기서 모두 밝히는 것은 어려울 것 같고, 어쨌든 우리는 이미 선별적으로 발매된, 이 라이브 대결을 담은 2장의 실황 음반들을 통해 어떤 이들이 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Cut Chemist와 Shortkut의 대결, 그리고 DJ Z-Trip과 Radar의 대결(Cut Chemist와 Shortkut의 [Live at the Futureprimitive Soundsession](1998)에 대해서는 베이 에리어 추천앨범 20선’을 참조).

재작년 하반기부터 작년 초에 이르는 이른바 ‘Brainfreeze’ 투어를 통해 DJ Shadow와 Cut Chemist의 콤비네이션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긴 했지만, 사실 이 두 사람이 처음으로 조인트 공연을 했던 것은 바로 ‘Futureprimitive Soundsession’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이 공연의 리허설에서 두 사람은 각기 25분 여에 이르는 2개의 트랙을 녹음을 하게 되는데, 이 것이 바로 지금 다들 난리를 치고 있는 [Brainfreeze] 앨범이 되었다. 물론 이 앨범은 공식적인 형태로 레코드 가게에서 팔린 적은 없다. Cut Chemist가 LA에 있는 자기 집 근처의 한 레코드 가게에 적당량의 이 앨범을 갖다 놓고 팔았다는 얘기가 있긴 하지만, 주로 이들 두 사람의 조인트 투어에서 소량으로 판매되었다(전자의 경우이든, 후자의 경우이든 어쨌든 모두 지극히 ‘인디적인’ 판매방식이다). 한정량의 LP와 CD 형태로 만들어졌던 이 앨범은 ‘Brainfreeze’ 투어에 찾아온 극소수의 미국과 유럽의 팬들만이 구매를 할 수 있었고, 입소문으로 퍼져나가면서 뒤늦게 이 앨범을 구하려고 덤벼들기 시작한 팬들과 수집가들은 최근까지도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유럽과 미국의 몇몇 인터넷 음반수입상들을 통해 한두 장씩 팔리던 것도 언젠가부터 바닥이 났고, 작년 가을부터 인터넷 경매 싸이트인 EBay에 올려진 몇 장의 [Brainfreeze]는 급기야 중고가 무려 200불에 이르는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하였다.

20010201124614-brainfreeze-cd필자 역시 지난 여름부터 어떻게든 이 앨범을 구해보고자 했으나 그 막대한 가격에 차마 엄두를 못 내던 중, 지난 가을에 친구의 친구로부터 우연히 원본 CD를 빌릴 수가 있었다. (덕분에 불법복제 CD를 만들었는데, 워낙 비슷하게 만들어서인지 몇몇 친구들이 진짜인 줄 알고 20불, 30불에 자기한테 팔라고 조르는 바람에 마음이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난주에 드디어 EBay에서 ‘밝힐 수 없는 거금(?)’을 주고 원본 엘피(LP)를 구입하였다(사실 [Brainfreeze]의 복제 CD가 진짜라는 명목으로 EBay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한 상태이고 피해자들도 속출하면서, 복제품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LP 쪽으로 구매자들이 몰리는 편이다. 따라서 CD 가격은 현재 평균 45불 안팎 정도로 낙찰 가격이 크게 내려간 상태인데, 그래도 무대뽀로 달라붙어서 가짠지 진짠지 확인도 못 한 채 눈 딱 감고 CD를 구입하는 이들이 EBay에 여전히 우글거린다).

하지만 [Brainfreeze]를 실제로 들어본 이들 중에는 그 사운드 자체에 대해서는 실망을 하고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두 사람의 무지막지한 테크닉과 고도의 음악적 감각의 조화가 극대화된 요즘 스타일의 ‘턴테이블리스트 힙합’ 사운드를 특히 기대했다면 말이다. (하기야 그렇게 제대로 만든 음악이었다면 진즉에 정식 앨범으로 발매를 했겠지만…) 사실 Cut Chemist와 DJ Shadow는 알다시피 45회전 7인치 수집광, 혹은 중독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미국과 영국에서 발매된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60년대, 70년대 훵크와 소울 7인치 음반들을 유럽과 미국의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면서 구하는 것이 음악을 직접적으로 만들고 연주하는 작업 못지 않게 중요하다. 덕분에 10여년 이상 축적되어온 이들의 거대한 콜렉션은 지금까지 진행되어왔던 각자의 빛나는 프로젝트들을 위한 너무도 소중한 자산이자 일종의 필살기가 되었다.

그리고 [Brainfreeze] 앨범과 동명의 조인트 투어는 이들 듀오의 콜렉션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는 훵크와 소울의 명인들과 그들의 음악에 대한 직접적인 헌정에 다름 아니다. 일단, [Brainfreeze] 앨범의 제목 없는 두 트랙은 모두, 각기 25분여 길이의, 일종의 논스톱 훵크, 소울 고전 리믹스이다. 몇몇 ‘루틴(routine)’에서 사용된 12인치 몇 장을 빼면, 이들 트랙은 대부분 미국, 영국의 오래된 소울, 혹은 훵크 45회전 음반에서 추출한 음악들의 ‘컷앤믹스’, 혹은 ‘컷앤페이스트’이다(그 중에는 Jurassic 5나 DJ Shadow의 앨범들에서 접했던 익숙한 음원들도 포함되어 있다). 혹자는 지금은 이름이 잊혀진 수많은 소울 보컬리스트들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사용되었고, 따라서 믹스 역시 두 사람의 기량이 제대로 발휘가 되지 못했다고 이 앨범을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필자와 같은 팬들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의 음악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괴물 디제이가 함께 작업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앨범을 듣는 게 즐거울 뿐이다.

이 앨범과 마찬가지로 ‘훵크-소울 고전 리믹스 쇼’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동명의 ‘Brainfreeze’ 투어 역시 그 당시 많은 화제를 낳았었다. 특히 Cut Chemist가 투어 중간인 필라델피아 공연에 앞서 공항에서 자신의 45회전 앨범들을 몽땅 잃어버렸던 사건에 대해서는 ‘Who Might Be Giants?’에서도 잠시 얘기했던 적이 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나중에 다시 찾긴 했지만, 사건 직후 더 이상 ‘Brainfreeze’를 재현할 수 없다는 위기감과 절박감에 사로잡힌 Cut Chemist와 DJ Shadow의 열성 팬들이 [Brainfreeze] 앨범의 트랙들에 사용되었던 45회전 음반들의 리스트를 배포하고 미 전역과 유럽에서 똑같은, 혹은 같은 종류의 앨범들을 찾아 헤매느라 난리를 쳤던 것은 아직도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아직 [Brainfreeze]를 구하지 못 한 팬들에게는 일단 냅스터에서 구해서 들어보기를 권한다. 더불어 인터넷상에서 거래 품목으로 ‘오리지널’로 나돌고 있는 대부분은 가짜이니 절대 무리해서 구입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 게다가 ‘Futureprimitive’ 레이블에서 시리즈 3탄으로 [Brainfreeze]를 조만간 공식 발매할지 모른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으니 말이다. 끝으로, DJ Shadow와 Cut Chemist의 팬일 뿐 아니라, 진정한 훵크와 소울의 팬, 아니 힙합의 팬이라면, 과연 어떤 오리지널 훵크와 소울 고전들이 이 앨범에서 사용되었는지를 직접 찾아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숙제가 아닌가 싶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힙합의 몇 가지 소중한 뿌리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DJ Shadow나 혹은 그와 같은 부류의 턴테이블리스트들이 정당한 힙합 뮤지션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준거틀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0010122 | 양재영 [email protected]

관련 글
베이 에리어 힙합 추천앨범 (2) – 턴테이블리즘을 중심으로 2 [vol.2/no.19]

관련 사이트
영화 [Dark Days]의 공식 사이트
http://www.darkdays.com

DJ Shadow를 비롯한 Solesides(혹은 Quannum) 패거리의 공식 사이트
http://www.quannum.com

DJ Shadow News
http://www.endtroducing.com/djs_new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