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131042900-bradBrad Mehldau – Places – Warner Bros, 2000

 

 

거장의 가능성 앞에서 잠시 쉬어가기

재즈의 역사에서 피아니스트의 위치란 록음악의 역사에서 기타리스트의 위치와도 같지 않을까. 실질적인 장르의 시작을 열었기 때문이거나, 차지하는 그 비중 때문이거나 말이다.

재즈의 역사에는 수많은 피아니스트의 이름이 있다.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등 수많은 피아니스트의 이름이 있지만, 피아니스트라는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가장 좋은 예는 빌 에반스(Bill Evans)이다(물론 이견이 있겠지만, 독자적인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확립으로 본다면). 그후로 시작된 피아노 스타일리스트로서의 계보를 잇는다면 키스 자렛(Keith Jarrett)이 가장 유력할 것이고 그 뒤를 잇는 이름이 오늘 소개할 브래드 멜도우(Brad Mehldau)이다. 하지만 빌 에반스와 키스 자렛이라는 후광이 그에게 꼭 좋은 영향만 주었던 것은 아니다. 1996년 [Introducing Brad Mehldau]로 자신의 앨범을 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스타일이 비교되면서 그 음악적 정체성을 의심 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피아노를 중심으로 드럼과 베이스간의 인터플레이에 집중하는 트리오형태의 스타일은 실제 무척이나 흡사한 것이 사실이며, 키스 쟈렛이 게리 피콕(Gary Peacock), 잭 디조넷(Jack DaJohnette), 빌 에반스는 스캇 라파로(Scott LaFaro), 폴 모션(Paul Motion)이라는 파트너를 각각 가졌던 것처럼 그도 데뷔 때부터 드럼주자 조지 로씨(Jorge Rossy)와 베이스 연주자 래리 그레나더(Larry Grenadier)라는 파트너를 가지고 있었으니 비교가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키스 쟈렛이나 빌 에반스와 다를 뿐 아니라 어떤 피아니스트와도 차별될 자신만의 세계를 이미 구축하고 있다. 그런 그가 2000년 말 새롭게 낸 7집 [Places]는 쉽지 않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아주 빠른 길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의 스타일을 가장 잘 설명하는 빌 에반스 이후 피아노 트리오의 ‘인터플레이’라는 형식(피아노가 먼저 치고 나가고 그 뒤를 베이스와 드럼이 따라가주는 고전적인 방식이 아니라, 피아노와 베이스가 서로 멜로디를 주고받으면 드럼도 리듬을 섬세하게 나누며 멜로딕한 진행을 이어가는)을 가장 쉽게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신작은 [Places]라는 앨범명과 지역을 나타내는 곡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행이라는 사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각 공간이 주었던 느낌을 트리오로 때로는 솔로 형식으로 풀어내는 지극히 인상주의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그래서인지 “Madrid”나 “Paris” 같은 곡에서 들려주는(보여지는) 음들은 각 지명(공간)에 대한 청자의 느낌에 따라 새롭게 들려지는 경험을 제공하며, 비슷한 비율로 섞여있는 솔로와 트리오의 형식은 각 곡마다의 특성을 드러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전의 앨범에서 느낄 수 있었던 팽팽한 긴장감을 발견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나마 앨범에서 가장 귀에 들어오는 느낌은 미국의 작은 도시 “West Hartford”에서 들려주는 소박하게 흥겨운 그의 타건이나, “Los Angeles II”의 여전히 유연한 피아노 솔로 정도이지만, 이 또한 예전의 음악적 성취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이번 앨범에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무엇보다 [Elegiac Cycle]에서 보여주던 혁신도, [The Art Of The Trio Vol.3]에서 느껴지던 치열하게 완숙한 인터플레이도 발견할 수 없다. 그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가장 친절한 음악일 수 있겠지만, 그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들어왔던 사람이라면 늘 한걸음씩 나아갔던 모습이 아니라 ‘매너리즘’에 갇힌 듯 보인다. 매곡마다 넘쳐나는 감수성의 ‘과잉’이 감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 또한 지적할 만하다. 이는 최근에 세션으로 참가했던 조슈아 레드맨(Joshua Redman), 찰스 로이드(Charles Lloyd)의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절제’된 감성이 넘치던 명연주들과 비교를 하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수없이 쏟아지는 질낮은 재즈앨범들에 비교하면 비교우위에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아직 자신의 스타일만으로 [The Koln Concert] 같은 명반을 만들어내던 키스 자렛의 위치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거기다 앨범마다 즐거움을 주던 보너스(Vol.1에서는 비틀스의 “Blackbird”를, Vol.3에서는 라디오헤드의 “Exit Music”을 새롭게 해석하던)마저 없으니 섭섭한 마음이 클 수밖에 없다. 아무튼 이 앨범이 그에게 잠시 쉬어가는 앨범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 그에게는 먼 길이 남아있고 거장의 위치에 이르는 ‘가능성’을 놓아버리기에는 그간의 성과가 너무 눈부시기 때문이다. 20010127 | 박정용 [email protected]

5/10

수록곡
1. Los Angeles
2. 29 Palms
3. Madrid
4. Amsterdam
5. Los Angeles II
6. West Hartford
7. Airport Sadness
8. Perugia
9. A Walk in the Park
10. Paris
11. Schloss Elmau
12. Am Zauberberg
13. Los Angeles(Reprise)

* 이제 한 달마다 하나씩 업데이트될 재즈앨범 리뷰에서 속칭 ‘명반’도 아닌, 낯설기만 한 뮤지션의 앨범(그나마 최고작도 아닌)을 소개하는 이유는, 기념의 대상으로의 재즈가 아닌 동시대 대중 음악의 살아있는 장르로 다가서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덧붙여 정규앨범 리스트와 추천앨범을 소개한다.

정규 앨범 (*는 추천 앨범)
Introducing Brad Mehldau(1995)
Art Of The Trio Vol.1(1997)
Art Of The Trio Vol.2: Live At The Village Vanguard(1998)
Art Of The Trio Vol.3: Songs(1998) *
Elegiac Cycle(1999) *
Art Of The Trio Vol.4: Back At The Vanguard Live(1999)
Places(2000)

참여 앨범 중 일부
Joshua Redman Quartet [Moodswing] – 조슈아 레드먼의 뜨거움을 식혀주는 절제미
Charles Lloyd [The Water Is Wide] – 지난해 ECM에서 나온 가장 낭만적인 앨범
O.S.T. [Million Dollar Hotel] – 그의 흔적은 짧지만, 워낙 좋은 앨범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