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나는 브라질에서 태어났으면 해요. 적어도 그곳에서는 예술로 먹고 살 수 있거든요. 내겐 사정이 좀 다르지요.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좋아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아요. 난 금전지향적 인간은 아니지만 돈이 도움이 될 때가 있지요.” (쎄자리아 에보라)

20010116055028-caetano2사진설명:브라질 팝의 전설 까에따누 벨로주
‘브라질에서 태어났으면 한다’고 말할 사람은 세계 인구 중 얼마나 될까. GDP가 세계 10위권에 속하지만 인구의 5%가 부(富)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에 태어나는 일은 확률상 ‘모험’이다. 하지만 쎄자리아 에보라처럼 포르투갈어 문화권에서 고통스러운 인생을 보낸 음악인이 ‘브라질에서 태어났으면 한다’는 소망을 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브라질이 (아마도) 미국 못지 않게 대중음악이 풍성하게 발전한 나라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래서 당분간 쉬었던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은 브라질의 디바들이다.

‘브라질 음악의 전모’에 대해 파헤치는 일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그건 브라질이라는 대륙을 탐험하는 것처럼 흥미로운 일이지만 섣불리 시도했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바(samba), 보사 노바(bossa nova), 코루(choro), 포루(forro), 뜨로삐깔리즈무(tropicalismo), 람바다(lambada), 살바도르 사운드(salvador sound)를 들어보았다고 해도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마존의 울창한 삼림을 여행하듯 ‘천천히’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잘못 발을 들여놨다가는 늪에 빠져버릴지도 모르니까. 단지 삼바와 보사 노바가 브라질 음악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만 확인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MPB(Musica Populaire Brasileira)라는 단어가 ‘브라질 대중음악’이라는 보통명사일 뿐만 아니라 브라질 고유의 음악 어법을 가진 ‘브라질다운’ 대중음악을 지칭한다는 사실 정도를 확인하면 더욱 좋겠다. ‘브라질 고유의 음악 어법’은 물론 포르투갈계 백인, 아프리카계 흑인, 토착 인디오들 사이의 문화적 혼성교배의 산물이다.

주제를 좁혀서 ‘브라질의 디바’라고 해도 막연하기는 마찬가지다. ‘국제적으로 명성을 확립한’이라는 단서를 붙여도 1940-50년대 헐리우드 스타로 활약하면서 브라질 디바의 스테레오타입을 확립시킨 카르멘 미란다(Carmen Miranda), 주앙 질베르뚜와 함께 보사 노바를 세계에 알린 아스뜨루드 질베르뚜(Astrud Gilberto), 뜨로삐깔리즈무 운동의 선구자였던 갈 꼬스따(Gal Costa), 1970년대 MPB의 최고 스타로 군림했던 엘리스 레지나(Elis Regina), 최고의 여성 삼비스타 끌라라 누네스(Clara Nunes) 등의 이름이 우선 떠오르지만 그러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일단 ‘1990년대 이후’로 시야를 좁히기로 하자.

첫 번째 텍스트는 아무래도 앞에서 언급한 [Red Hot + Rio] 음반이 적절할 것 같다. 열세 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Waters of March”라는 곡의 멜로디가 왠지 익숙하다면 원 제목이 “Aguas de Marco”라는 사실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다른 많은 곡들처럼 안또니우 까를루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고전 작품이다. 혼성 듀엣인 노래에서 남자 목소리는 ‘브라질 가수와의 듀엣 전문(?)’인 데이빗 바이언(David Byrne)이다. 뉴 웨이브이자 ‘월드 퓨전’ 밴드인 토킹 헤즈(Talking Heads) 출신이자 지금은 워너 브라더스 산하의 월드뮤직 레이블 루아카 밥(Luaka Bop)의 ‘사장님’이기도 한 그 인물 말이다. 여자 목소리는 보사 노바 디바들 특유의 목소리, 가령 목에 희뿌연 안개가 낀 듯한 목소리로 전혀 힘들이지 않고 부르는 목소리다.

마지막 트랙 “Preciso Dizer Que Te Amo”를 들으면 이런 목소리는 더욱 ‘원조’에 가까워진다.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질베르뚜(Gilberto)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주앙 질베르뚜의 딸’ 베벨 질베르뚜다. 함께 노래부르는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는 까주자(Cazuza)라는 이름을 하고 있다. 혹시나 ‘브라질 록’에까지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바라우 베르멜류(Barao Vermelho)라는 ‘브라질 최초의 록 밴드’ 출신이라는 정보도 들었을 것이다. 이 두 명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의 절반을 메워 보자.

베벨 질베르뚜: 태생적인 국제적 디바

브라질 국민이 아니라면 그리고 ‘월드 뮤직의 호사가’가 아니라면 보사 노바 이후의 브라질 음악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게 자연스럽다. 브라질 민중들이 ‘영화 [흑인 올훼]에 나온 것처럼’ 산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뒤지고 들어가면 1960년대 이후의 브라질 음악은 흥미진진하다. 특히 1960년대 후반의 뜨로삐깔리즈무와 그 뒤의 MPB는 영미의 팝과 록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브라질다운’ 무언가를 남기고 있다. 그쪽 음악인들이 줄기차게 커버하는 곡 중의 하나인 “Aqarelo do Brasil”의 가사처럼 “나의 브라질다운 브라질(meu Brasil brasileiro)”의 느낌 말이다. 이건 아무리 ‘빠다 냄새’나게(‘모던’하게?) 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꼬임브라 파두’처럼 학술적 목적으로 보존된 것도 아니다.

보사 노바에 대해 길게 언급하기에는 적절한 자리가 아니고 또 ‘적임자’도 아니다. 그렇지만 워낙 유명한 음악이다보니 최근에 활동하는 뮤지션의 레코딩에서 보사 노바의 향기를 맡으면 일단 익숙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아는 한도 내에서’ 하는 말이지만, 보사 노바를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계승하는 인물들은 대개 여성 음악인들이다. 1960-70년대 뜨로삐깔리즈무의 시대에도 까에따누 벨로주나 질베르뚜 질, 톰 제 등 남자 뮤지션들이 보사 노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면서도 (영미) 록 음악의 시끄러운 기타 사운드와 스튜디오 프로듀싱에 전념한 반면, 갈 꼬쓰따나 리따 리(Rita Lee) 같은 여가수들은 상대적으로 보사 노바의 원류에 가까운 나긋나긋하고 ‘재지’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1990년대 이후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브라질 역시 사내아이들은 (백인의 경우) 록이나 (흑인의 경우) 힙합 같은 국제적 조류에 민감한 반면 여가수들은 노래 형식에 충실한 ‘팝’에 가까운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보사 노바/MPB와 국제적 팝을 결합시키면서도 신선하고 독창적인 음악을 선보인 음반으로는 지난해 발표된 베벨 질베르뚜의 [Tanto Tempo]가 가장 귀를 끈다. 이름만 봐도 느낌이 오듯 그녀는 주앙 질베르뚜의 딸이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주앙 질베르뚜가 맞지만 어머니는 아스뜨루드 질베르뚜가 아니다. 주앙이 아스뜨루드와 이혼한 뒤 재혼한 뮤차(Miucha)가 그녀의 어머니인데, 그녀 역시도 가수이자 작곡가이자 소설가인 치꼬 부아르꿰(Chico Buarque)의 여동생이다.

베벨 질베르뚜는 9살 때부터 무대에 섰다. 그것도 동네의 교회가 아니라 카네기 홀에서 아버지 주앙과 스탠 게츠(Stan Getz)와 함께. 많은 이들에게 베벨은 “이파네마로부터 온 소녀” 그 자체로 다가왔다. 이런 상황은 아티스트로서의 경력을 쌓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그래서 그녀는 25살 되던 해인 1991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이유는 스스로의 표현에 의하면 “주앙 질베르뚜의 딸이 아니라 또 한 명의 브라질 가수가 될 수 있는 곳”이 뉴욕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곳은 그녀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파리와 런던에 잠시 체류했던 것을 제외하면 계속 뉴욕에서 살고 있는 그녀는 그동안 다른 아티스트의 레코딩에 목소리를 빌려주는 활동을 했다. 여기에는 까에따누 벨로주, 아르뚜 린지(Arto Lindsay) 같은 브라질 혹은 브라질계 미국인의 레코딩뿐만 아니라 또와 떼이(Towa Tei), 씨버리 코퍼레이션(Thievery Corporation), 스모크 씨티(Smoke City) 등 테크노 음악인들의 레코딩도 포함된다(각각 일본, 미국, 영국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국제적 인물들이다).

그녀는 여기저기서 레코딩 제의를 받아왔지만 정작 자신의 앨범은 제작하지 않았다. 상황이 바뀐 것은 1998년,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프로듀서 수바(Suba)가 카네기 홀에서 주앙과 베벨이 노래부르는 것을 본 다음이다. 수바는 브라질에서 테크노와 댄스음악의 프로듀서로 활동한 인물인데, 베벨을 설득하여 사웅 파울루의 스튜디오에서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불행히도 수바는 앨범이 발표된 직후 스튜디오의 화재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제목처럼 “너무 오랫동안(tanto tempo)” 기다려온 작품이자 최악의 액땜까지도 거친 앨범인 셈이다. 그렇지만 기다려온 보람이 있다. 절반 정도는 삼바와 보사 노바의 고전의 리메이크를, 절반 정도는 신곡으로 채운 이 음반은, 프로듀서인 수바의 전체적 프로듀싱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씨버리 코퍼레이션, 스모크 씨티 등의 부분적 참여를 통해 ‘보사 노바를 재탄생시킨’ 작품이 되었다. 앨범에 대해서는 리뷰에서 상세히 평하겠지만 댄스 클럽의 무드와 텍스처를 거쳐 재탄생된 보사 노바는 본래의 보사 노바와 다르다. 그렇지만 정열을 강하게 품고 있으면서도 그걸 드러내는 방식이 매우 ‘쿨’했던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마리자 몽찌: 국내의 슈퍼스타 그리고 국제적 컬트

20010116055028-marisa사진설명 : 1990년대 브라질을 대표하는 국제적 디바, 마리자 몽찌
베벨 질베르뚜처럼 음악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국제적이지는 않지만, 보사 노바의 또 한 명의 딸은 마리자 몽찌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먼저 브라질 여가수가 국내의 인기와 국제적 ‘컬트’를 동시에 누릴 수 있음을 보여준 인물이다. 마리자 몽찌는 보사 노바와 뜨로삐깔리즈무의 고향인 바이아가 아니라 리우 데자이네루 태생이다. 그렇지만 국제적 팝과 록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것에 휘말리기보다는 그를 통해 브라질의 풍부한 음악적 자산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보사 노바/뜨로삐깔리즈무의 후예가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세대가 다 그렇듯, 1970-80년대의 마리자 몽찌는 엘리스 레지나의 노래를 듣고 자라면서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 소녀였다. 그렇지만 마리자의 목소리는 브라질의 재니스 조플린이라고 부를 만한 레지나의 성량 풍부하고 성마른 느낌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오히려 몽찌의 목소리는 갈 꼬스따(혹은 마리아 베타니아)에 가깝게 들린다. 콧소리가 나면서도 느끼한 맛보다는 감칠맛 나는 목소리 말이다. 1980년대 후반 로마에서 클래식 성악을 공부하고 돌아온 몽찌는 이때 얻은 지식을 결합하여 본격적으로 직업적인 음악인의 길에 들어선다.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앨범이자 출세작인 [Mais(더욱)](1992)는 1994년 EMI에서 의해 세계적으로 배급되면서(한국에서는 1997년 수입된 적이 있다) 플래티넘 레코드가 되었다.

그렇지만 몽찌는 (베벨과 비교한다면) ‘자국에서의 인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유형이었다. 한 웹사이트의 표현에 의하면 몽찌는 “마돈나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꾸준히 발표된 [Rose and Charcoal](1994), [Barulhinho Bom](1996), 라이브 앨범인 [A Great Noise](1997), 그리고 최근작인 [Memories, Chronicles and Declarations of Love](2000)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음악은 절충적이면서도 나열적이지 않은 묘한 매력을 지속적으로 발산하고 있다. 1995년 이후 몽찌는 전미 투어를 하는 보기 드문 스타가 됨과 동시에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도 연주하는 등 국제적 슈퍼스타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지만 ‘현명한 절충’을 택하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몇 가지 의식적인 전략이 구사되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자국(및 라틴 문화권)에 발매하는 음반에는 포르투갈어 제목을, 영미권을 비롯한 다른 문화권에 발매하는 음반에는 영어 제목을 달아 배급하는 것은 사소한 것 같아도 중요한 전략이다. 이는 커버곡과 신곡을 적절히 안배하는 점에서도 반영된다. [Mais]에서는 까에따누 벨로주의 “De Noite Na Cama”를, [Memories, Chronicles and Declarations of Love]에서는 MPB의 또 한명의 대가인 조르헤 벤(Jorge Ben)의 “Cinco Munutos”를, [Barulhinho Bom]에는 질베르뚜 질의 “Cerebro eletronico”을 각각 수록했다(이 점은 자국의 선배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요인이다). 이와는 반대로 국제적 팝과 록의 고전들이 원곡 그대로 혹은 ‘번안곡’으로 수록되기도 한다. [Rose and Charcoal]에 삽입된 루 리드/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 그리고 [Barulinho Bom]과 라이브 앨범 [A Great Noise]에 수록된 조지 해리슨의 “Give Me Love (Give Peace on Earth)” 같은 곡들이 그것이다(불만스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이 점은 ‘제 3세계’에서 제작된 음반의 국제적 ‘신뢰도’를 주는 요인 중의 하나다).

마리자 몽찌는 주류 음악계에서의 성공적 경력을 이어나가면서도 자국의 음악적 자산을 존중하는 존재, 그리고 국제적 명성을 얻으면서도 자국에서의 인기를 소중히 생각하는 존재라는 평을 받는다. 즉, 그녀의 음악은 월드 뮤직이라는 ‘게토’에 처박히지 않는 ‘팝 음악’이지만, 그러면서도 영미 팝으로부터 파생된(derivative) 것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는다. 한 예로 그녀는 월드 뮤직의 스타들이 벌떼처럼 모여드는(국제적 인정을 위해서?) 뉴욕의 써머 스테이지 같은 무대에 서지 않고 독자적으로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몇 백 명의 ‘외국인’ 청중 앞에서 (그들에게는 외국어인) 포르투갈어로 노래부르는 공연이 지속적으로 성사되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브라질 국내에서 몽찌 같은 존재는 흔치 않다. 아드리아나 깔까뇨뚜(Adriana Calcanhoto) 같은 후발자(혹은 동반자)가 있기는 하지만, 국제적으로 존중받는 성공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미진해 보인다. 그렇다면 정작 브라질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악은? 한 인터뷰에서 베벨 질베르뚜는 “브라질에서 팔리는 음악은 상업적이고 온순하게 길들여진 삼바, 그리고 북동부에서 나오는 음악이다. 후자는 마치 컨트리 음악처럼 저급한 취향의 음악이다”라고 말했다. 조금 이상하다. 북동부라면 바이아 지방이 아닌가. 이곳은 주앙 질베르뚜, 까에따누 벨로주, 질베르뚜 질이 태어난 곳이고 그렇다면 보사 노바와 뜨로삐깔리즈무의 탄생지 아닌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다니엘라 메르꾸리: 국내의 슈퍼스타

20010116055028-mercury사진설명 : 아셰의 여왕 다니엘라의 공연 장면
1990년대 이후 브라질의 대중음악을 직접 들어보려면 http://www.sombrasil.com에 들어가면 된다. 지금은 개편되었지만 이전에는 브라질 음악의 장르를 ‘Bossa Nova / MPB / Brasil Rock / Brasil Axe’의 네 가지로 분류했었다. 보사 노바는 이제 ‘나이든’ 이들을 위한 음악이고, MPB는 브라질 국민이라면 ‘남녀노소 지위고하 가리지 않고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이고, 록은 1970년대 이래 사웅 파울루를 중심으로 형성된 ‘로컬’ 록 음악이다. 마지막 하나 아셰란 무엇일까?

거칠게 말하면 아셰란 ‘댄스 음악’이다. 영국과 유럽의 테크노/일렉트로니카보다는 동아시아의 ‘땐쓰 가요’ 가깝다. 드럼 머신과 신서사이저가 시종일관 몰아붙이면서 신나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브라질’이기 때문에 ‘쿵-쿵-쿵-쿵’거리는 정박의 패턴은 아니지만 삼바나 보사 노바의 씽커페이션 걸린 미묘한 리듬과도 조금 다르다. 물론 가수의 노래가 있고, 그 중에는 여가수, 특히 백인 여가수(이른바 Baiana)가 많다. 최근에 가장 인기를 누린 아셰는 여성 가수 한 명을 포함한 5인조 그룹 반다 에바(Banda Eva)였다. 그렇지만 반다 에바 이전에 아셰를 ‘정의’한 사람은 ‘아셰의 여왕’인 다니엘라 메르꾸리다.

바이아의 살바도르 출신(1965년 생) 시골 처녀였던 다니엘라 메르꾸리는 1994년에는 “브라질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소니 레코드의 연례 음악 파티에 초대된 인물”이 되었다. 자메이카의 킹스턴이나 영국의 브리스톨과 유사한 사운드 시스템인 뜨리우스 엘렉뜨리꾸스(Trios Electricos)에서 경력을 시작하여, 1980년대 후반 록 밴드의 멤버로 두 장의 음반을 발표한 그녀는 1991년 셀프 타이틀의 솔로 데뷔 앨범에서 “Swing da Cor”를 전국적으로 히트시키면서 일약 새로운 디바로 등극했다. 1993년에는 뉴욕의 리츠(the Ritz)에서 공연을 갖는 등 국제적 스타로 부상했는데, 소니 산하의 CBS 레이블로 옮겨 발표한 [O Canto da Cidade(도시의 노래)]가 플래티넘 레코드를 기록하면서 브라질 아셰의 여왕이라는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그런데 아셰란 도대체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Swing da Cor”를 들으면 실마리가 풀린다. 이 곡의 리듬은 ‘쿵 짝 쿵 짝’거리며 절름거리는 레게 리듬과 ‘쿵쿵 짝 쿠쿠쿠쿵 짝짝’거리는 삼바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살바로드 사운드’ 혹은 ‘삼바-레게’라고 불리는 이 리듬은 1980년대 바이아 지방의 아프리카계 브라질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로컬 음악으로 정착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삼바와 레게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의 주주 등 아프리카의 ‘현대적’ 리듬과도 결합하였다. 폴 사이먼의 [Rhythm of the Saints](1991)에 수록된 “The Obvious Child” 같은 곡에서 선보인 그 리듬이고, 마리자 몽찌의 경우도 몇몇 곡에서 이 리듬을 선보였다(정보: 얼마 전까지 대형매장의 ‘월드 뮤직’ 코너에 EMI의 산하 레이블인 헤미스피어(Hemisphere)에서 발매된 [Yele Brazil]이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이 진열되어 있었다. 마리자 몽찌의 한 곡을 포함하여 반다 레플룩시스(Banda Reflux’s), 아라 께뚜(Ara Ketu) 등이 연주하는 ‘본래의’ 살바도르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과정은 복잡하겠지만 아셰는 살바도르 사운드 혹은 삼바-레게가 상업적으로 변형된 산물로 보인다. 퀴카(cuica)를 포함하여 퍼커션이 만들어내는 ‘거부할 수 없는(irresistible)’ 리듬과 ‘아프리카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는 신서사이저와 드럼 머신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을 잊고 신나게 춤추기 좋은 사운드’로 바뀌었다. 삼바 레게의 열대의 느낌을 담은 무거운 리듬은 계속 남아있지만 음색이나 프로듀싱은 매우 미끈하고 ‘팝’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라 메르꾸리를 다른 ‘보통의’ 아셰 뮤지션과 같은 급으로 취급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녀는 대부분의 곡을 직접 쓰는 싱어 송라이터이며, 분위기 있는 발라드에도 능하다. 또한 ‘메시지’ 있는 가사와 카리스마 가득한 이미지가 있다. 반바지와 ‘나시’를 입고 화려한 춤을 추면서 열창하는 그녀의 공연은 ‘미와 카리스마의 심볼’이라는 평가에 무색하지 않다.

그렇다고는 해도 다니엘라 메르꾸리 이후 등장한 아셰 음악은 ‘월드 뮤직’의 청중에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아셰 그룹은 “백인 바이아나를 앞세우고 무거운 타악기를 선보이는 또 하나의 신서사이저 밴드”라는 식의 반응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작년 [Sol da Liberdade]를 발표한 다니엘라 메르꾸리의 인기도 자국에서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국제적 관심은 다소 감퇴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아셰 음악이 ‘후지다’는 일방적 평가가 아니라 자국의 취향과 국제적 취향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월드 뮤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비르지니아 로드리게스: 쎄자리아 에보라를 능가하는(?) 월드 디바

아프로-브라질리언의 새로운 목소리 비르지니아 로드리게스
1998년 반다 에바의 드럼 소리가 브라질 전역에서 울려퍼질 무렵 이런 세속적인 사운드와는 한참 다른 신성한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신성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비르지니아 로드리게스(Virginia Rodrigues)였다. 쎄자리이 에보라를 ‘능가한다’는 표현은 현재의 에보라의 지위를 고려할 때 경거망동에 해당하지만, 적어도 체중과 부피 면에서는 이 처녀가 에보라를 능가하는 듯하다. 목소리와 노래는? 이걸 가지고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지만 로드리게스의 목소리는 에보라와도 또 다르다. 에보라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아 저런 목소리도 있었구나”라는 느낌이 다시 한번 밀려드는 목소리다. 앨범의 제목은 [Sol Negro(흑인의 영혼)]이었다. [The New York Times]는 “브라질 음악의 새로운 목소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월드 뮤직 전문 레이블들은 라이센스 계약을 맺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현재 30대 중반인 비르지니아는 바이아의 가난한 흑인 노동계급 출신으로 가정부와 미장원 직원으로 일하면서 교회에서 노래부르는 것이 음악 경력의 전부인 처녀였다. 1994년 올로둠 극단(Olodum Theater Group)의 일원으로 공연 중 노래를 부른 것을 들은 까에따누 벨로주에 의해 전격적으로 발탁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계속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벨로주는 로드리게스를 위해 질베르뚜 질, 밀뚠 나씨멘뚜, 자반 등 MPB의 슈퍼스타들을 초대하여 음반을 레코딩하였고, 1997년 말에 음반이 발표되었다.

음반의 편곡은 ‘대중음악’이라기에는 매우 소박하다. 콘트라베이스와 하프와 기타를 중심으로 이끌어나가는 악기음은 매우 성긴 텍스처를 만들어내고, 베림바우, 땀부라, 보틀, 차임 등 ‘다채로운’ 타악기 소리가 등장하지만 부드럽고 섬세하다. 어떤 곡에서는 반주 없이 아 카펠라로 노래부르는 경우마저 있다. 아주 오래된 듯한 그렇지만 영원할 듯한 곡조가 세상의 때가 하나도 묻지 않은 듯한 목소리를 통해 울려퍼지면 풍성한 공명이 된다. 실내악 스타일의 현악기가 등장하는 “Noite de Temporal”은 마치 오페라의 아리아를 듣는 기분까지 준다. 본인은 “내 음악을 다른 음악 위에 두려는 시도를 우려합니다”라고 말하지만.

가사의 메시지는 음반의 제목처럼 아프리카인의 긍지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 언어 장벽으로 인해 그걸 알아내기는 힘들지만 어떤 메시지를 말하는가와는 무관하게 ‘어떻게’ 전달하고자 하는지는 명확하다. 깐돔블레(candomble)라는 아프리카계 브라질인들의 종교적 의식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도 마찬가지다. 로드리게스의 음악은 삼바 레게보다도 더욱 오래된 아프리카의 뿌리를 찾아가는 성스러운 여행처럼 들린다. “나는 흑인들을 일으켜 세워서 그들 스스로를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는 로드리게스 본인의 말 때문만은 아니다. “브욕(Bjork)의 달콤한 아마존 드림”이라는 한 웹진의 평이 무슨 말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함부로 쓰면 촌스럽지만 ‘영혼의 목소리’라는 표현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쓸까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까에따누 벨로주가 제작에 보다 깊숙이 관여한 [Nos](2000)에서도 영혼의 울림은 떨어지지 않는다. 앨범 리뷰는 다른 난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단지 이 음반에서 ‘최악의’ 트랙이 까에따누 벨로주와 함께 듀엣으로 노래한 트랙이라는 농담으로 나의 불경스러운 평은 마치고자 한다(물론 이 트랙도 다른 컨텍스트에 위치하면 더없이 훌륭한 곡이지만).

나가며

또 하나의 수박 겉핥기식의 소개를 마치면서 드는 의문들이 있다. 브라질 음악은 왜 저렇게 쉽게 ‘국제화’되는 것인가라는 의문 말이다. 영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영어사용권도 아니고 멕시코나 푸에르토 리코처럼 미국의 코앞에 위치한 나라와도 또 다른데 말이다.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별로 멀지 않은 나라’라는 이유만으로는 불충분해 보인다.

하나의 실마리는 본문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보사 노바 이후에도 뜨로비깔리즈무/MPB의 주역들과 뉴욕의 브라질광들인 데이빗 바이언 사이에서 아르뚜 린지라는 인물이 중개자 역할을 해왔다. 브라질계 미국인인 린지는 자신의 음악활동을 전개하면서도 브라질의 베테랑 음악인들과 국제적 공동작업을 수행해 왔고 아울러 미국 시장(나아가 세계시장)을 겨냥한 신인급의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스를 도맡다시피 해왔다. 브라질 음악이 국제화되는 시스템은 자연발생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의식적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가까워 보인다. 따라서 브라질의 젊은 음악인들은 자국에서의 인기와 국제적 평판 사이의 여러 가지 조합들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음악인들에게는 행복한 환경이고, 이 글의 독자 중에 한국 음악의 국제화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대목이다.

또 하나의 의문이 있다. 브라질은 커녕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과도 아무런 ‘상호교류’의 시스템이 없는 한국인이 ‘후진국’의 음악까지 찾아듣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한국인도 이제 ‘선진국형 음악 취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일까. 언젠가 월드 뮤직 붐에 대한 ‘불만’을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건 월드 뮤직을 ‘산업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사운드’로 오해하는 취향을 말한 것이었다(실제 그곳 음악산업의 시스템의 전형적 산물인 음악을 저렇게 오해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그렇지만 이런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월드 뮤직이 ‘영미 팝’의 대체물로 존재하는 것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월드 뮤직이라는 범주를 송두리째 부정하기보다는 월드 뮤직에 대한 대안적 시각을 갖추는 것이 나아 보인다. 즉, 어떤 나라의 음악이든 영미 팝의 ‘글로벌’한 매개 속에서 ‘로컬’하게 형성되며, 따라서 그곳의 음악 역시도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똑같은 ‘변방국’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쌈빡한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영미 팝보다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다. 즉, 영미 팝보다 더욱 멀리 있는 초월적 음악을 찾아나서는 호사가로서가 아니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풍부해질 수 있는 동시대인의 태도가 보다 건설적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비르지니아 로드리게스의 ‘오래된’ 느낌의 음악도 다니엘라 메르꾸리의 세련된 음악만큼이나 브라질의 ‘현대인’의 삶의 단면으로 들린다. ‘로컬 음악’이란 ‘글로벌화되지 않은 음악’이 아니라 글로벌화의 복잡한 산물의 하나라는 ‘어려운’ 말로 글을 마친다. 브라질은 꼭 ‘그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10113 | 신현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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