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58삐삐밴드 – 문화혁명(文化革命) – 송스튜디오/DMR, 1995

 

 

삐삐 프로젝트의 펑크 기획 1탄

강기영(베이스)과 박현준(기타)을 중심으로 한 삐삐 프로젝트(삐삐밴드 및 삐삐롱스타킹)는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의 사고뭉치였다. 1995년 펑크를 표방한 [문화혁명] 발매로 시작해 1997년 ‘방송사고’를 계기로 마침표를 찍기까지 늘 논란을 몰고 왔다. 이들은 동시대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대중음악계를 좌우할 정도의 존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야기한 파장은 록, 펑크, 언더그라운드/인디 등에 걸쳐 있었고,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양상에 효모가 되었다.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 DJ DOC의 “머피의 법칙”, REF의 “이별공식”, 이승환의 “천일동안”이 TV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장악하던 1995년 여름. 삐삐 프로젝트의 데뷔 음반이자 논란의 시작인 [문화혁명]이 발매되었다. 타이틀곡 “안녕하세요”는 유치한 노랫말을 담고 있었다. 단순한 인사말들로 일관하는 이 곡의 노랫말에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반응과 ‘참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이 두 번째로 들고 나온 “딸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윤정(보컬)은 딸기가 좋다고 그야말로 악을 써댈 뿐이었고, 사람들의 반응도 찬반이 뚜렷했다. 또 이들이 펑크를 표방한 데 대해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이처럼 이 음반의 논란은 유치함과 펑크,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삐삐 프로젝트가 의도한 것이고 음반의 컨셉트이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의 대표적인 메탈 뮤지션으로서 1990년대 초반 H2O에서 함께 활동한 바 있던 강기영과 박현준은 펑크 프로젝트를 만들기로 하고 1995년 신인 이윤정을 영입하여 삐삐밴드를 결성하였다. 그 첫 결과물인 [문화혁명]은 이듬해 ‘드럭’에서 나온 크라잉 너트와 옐로 키친의 스플릿 음반 [Our Nation 1]과 함께 한국 최초의 펑크 음반으로 기록되고 있다. 삐삐밴드가 크라잉 너트와 달랐던 점은 펑크를 장르로서가 아니라 기획이자 전략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했던 펑크를 거의 처음으로 들고 나왔던 삐삐밴드는 음악 매니아 사이에 알려져 있던 펑크의 의미와 이미지(섹스 피스톨즈로 대표되는 ‘거칠고 단순한 사운드’)를 재고하게 했다.

[문화혁명]은 기성 체제와 문화를 거부하고 록을 탈신비화하려 했던 1970년대 후반 고전적 펑크와 맥을 같이 한다. 고전적 펑크가 단일한 음악 스타일이나 장르가 아니었던 것처럼 [문화혁명]에 담긴 음악 또한 단일한 스타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이 음반은 단순하고 유려한 선율이 돋보이는 자유분방한 록큰롤이다. 그 안에는 펑크 록, 레게, 뉴 에이지, 재즈, 메탈, 클래식 등 여러 요소가 녹아들어 있다. 형식적으로, 단순한 것에서부터 실험적인 것까지 다양하지만, 자유분방하고 단순한 쪽이 지배적이다.

“안녕하세요”의 가사는 표면적으로 유치하지만 그 이면에는 삐삐밴드의 의도가 숨어 있다. 이들은 시대별 인사말을 일별하면서 신세대에게 낡은 문화와 결별하고 새로운 문화 질서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권유하고 있다(부클릿을 보면 노래에서 생략된 구절들이 괄호 안에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유 분방함을 지향하면서 이른바 신세대의 사고 방식에 접근하려는 이들의 의도는 다른 곡들의 가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애인과의 첫 만남을 그리는 “슈퍼마켓”에서, 플라스틱 컵, 무스통, 샴푸, 비누, 통조림, 비닐봉지 등 현대의 상품들을 등장시키고 제목도 ‘슈퍼마켓’으로 한 점은 그 예이다. 또 이들은 “요즘 애들 10계명”에서 세태 비판을 빌려 신세대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말도 안되는 가사라는 반응을 얻기도 한 “딸기”의 가사는 바로 그 말도 안되는 (것처럼 보이는) 가사와 악다구니 창법 때문에 신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삐삐밴드는 의도적인 가벼움을 추구했다. 밴드 이름부터가 ‘말괄량이 삐삐’에서 따온 것 아니던가. 또 음반 부클릿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들은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이나 낡은 중고 의상의 촌스러움, 해와 달과 별이 그려진 동화적인 세트로 치장했다. 빨간색으로 머릴 염색하고 아이처럼 쫑알거리거나 악쓰는 이윤정의 캐릭터도 마찬가지였다. 전형적인 록 밴드 편성의 음악을 선보였지만 록의 무거움 혹은 진지함(이나 일부에서 주장하는 저항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연주 실력이 출중한 강기영과 박현준은 그렇게 연주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연주했다.

그래서 발칙한 음반 제목 ‘문화혁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혁명’이란 말조차 농담하듯 툭 던지는 삐삐밴드와 이들의 음악은 이른바 신세대로 통칭되던 세대들에게 적잖은 호응을 얻게 되었다. 특히 이윤정의 캐릭터는 10대와 20대 여성의 준거 모델 중 하나가 되는 한편, 록의 ‘남성 반항’ 이미지를 무기력하게 했다. 또 이 음반은 진지한 탐구의 대상이 되어버린 록,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 록을 패러디하고 희화화하면서, 록도 재미있을 수 있고 펑크도 천편일률적인 사운드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진정한’ 록과 ‘진짜’ 펑크를 자임하는 양쪽에서 모두 반감을 얻는 아이러니를 드러내면서.

삐삐밴드는 [문화혁명]으로 댄스가요와 발라드 일색이었던 1990년대 가요계에 일종의 틈새를 만들었다. 이후 여성 보컬을 앞세운 자우림, 주주클럽, 더더, 도그 등 이른바 ‘모던 록’ 밴드들이 연이어 등장해 히트한 일이나 공주 패션, 뽑기 등 촌스러움의 트렌드화가 뒤따른 일은 삐삐밴드의 앞서가는 감성을 사후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이 음반의 의도적인 가벼움, 촌스러움, 단순함 등은 재미와 함께 역으로 키치, 아마추어리즘, 펑크, 록, 모던 등의 ‘진지한’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듬해 2집 [불가능한 작전]으로 이어졌다. 20001127 | 이용우 [email protected]

10/10

수록곡
1. 안녕하세요
2. 슈퍼마켓
3. 딸기
4. 요즘 애들 10계명
5. 빠삐용
6. 낮잠
7. Star
8. 도레미파솔라시도
9. 때로는 그대가
10. 어울리기
11. 사랑
12. 1995년 7월 9일 1:10′:15” AM

관련 사이트
이윤정 홈페이지
http://blue.netpark.co.kr/~cyren
이윤정 및 삐삐 프로젝트의 뉴스, 오디오, 비디오, 사진 자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