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2만 명이 어우러진 ‘글래스톤베리’의 꽃은 아무래도 음악 공연일 것이다. 공연 리뷰는 길게 언급할 생각이 없어서(지금도 글이 충분히 길다는 거 알고 있다^^) 간단하게만 언급하려 한다. 앞서 말했듯 여타 사이트 외에 주요 6개의 무대에서만 총 230여 밴드/뮤지션이 공연을 가졌다. 주최측에선 올해 오아시스나 라디오헤드 등 초거물들을 헤드라이너로 초청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피라미드 스테이지(Pyramid Stage)는 메인 무대로 1994년 불타 버린 이후 올해 피라미드 형식의 지붕을 얹어 새로 만들어졌는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지만 무대에서 멀어질수록 경사가 높아지게끔 구획 정리 되어서 두 개의 멀티 스크린과 함께 청중의 시야에 도움을 주었다. 케미컬 브라더스, 트래비스, 데이빗 보위가 3일 간의 헤드라이너로 섰고, 이외에도 펫 샵 보이스, 임브레이스, 마시 그레이, 오션 컬러 씬, 싸이프레스 힐,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 라이브 등이 공연을 펼쳤다. 세컨드 스테이지인 아더 스테이지(Other Stage)는 멀티 스크린이 없지만 피라미드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규모를 자랑했다. 나인 인치 네일스, 레프트필드, 베이스먼트 잭스가 각각 헤드라이너였고, 모비, 데스 인 베이거스, 일래스티카, 베타 밴드, 콜드플레이 등이 연주를 했다.

댄스 텐트(Dance Tent), 뉴 텐트(New Tent)는 돔 형식의 천막을 씌운(그러나 하단까지 씌우진 않아서 개방형인) 중소 규모의 공연장으로, 구조상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언제나 밤늦도록 쿵쿵거리며 밤을 지새우는 댄스 텐트에는 데이브 클락, 팻보이 슬림, 미키 핀/아프로디테/MC 피어리스가 3일간의 헤드라이너였고, 벤틀리 리듬 에이스, DJ 크러시, 조시 윙크, 방코 데 가이아 등이 광란의 댄스 파티의 주재자로 활약했다. 완전히 신인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어서 의아함을 주었던 뉴 텐트에는 헤드라이너 엘리엇 스미스, 플레이밍 립스, 도브스 외에 블랙박스 레코더, 휘트, 욜 라 텡고 등이 무대를 달구었다. 재즈/월드(Jazz/World)에는 레프라젠트, 모치바, 호러스 앤디 외에 페미 꾸띠, 몰로코, 더 웨일러스 등이 무대를 꾸며주었고, 어쿠스틱 스테이지(Acoustic Stage)에는 마이크 스콧, 핫하우스 플라워스, 수잔 베가 외에 G-러브 & 스페셜 소스, 폴 브래디, 수잔 맥커운 등이 연주를 했다.

내가 본 공연은 금요일 싸이프레스 힐, 엘리엇 스미스, 케미컬 브라더스(그리고 잠깐의 모비), 토요일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 브랜드 뉴 헤비스, 오션 컬러 씬, 펫 샵 보이스, 트래비스(그리고 잠깐의 셧 업 앤 댄스)이다. 보고 싶은 공연이 많았지만, 시간대가 겹쳐서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일요일 공연은 일정상 보지 못했다. 싸이프레스 힐 공연 때는 공연장이 거대한 마리화나 흡연장이 되었는데 B-Real과 함께 ‘피우면서 합창하던’ “Insain In The Brain”은 그 절정이었다.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과 브랜드 뉴 헤비스는 다른 메인 밴드와는 다른 느낌의 음악으로 흥겨움을 주었는데, 특히 정글과 덥과 아시아 전통 음악을 뒤섞은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은 특유의 랩과 댄스로 무대를 누비면서도 정치적 선동 또한 잊지 않았다. 엘리엇 스미스의 무대는 차분하고 사색적인 어우러짐을 꾸며주었다.

영국 페스티벌인만큼 영국 밴드(특히 브릿팝 계열)에 비중이 있었던 것은 당연했다. 금요일 아더 스테이지에 헤드라이너로 오른 나인 인치 네일스는 불행하게도 같은 시각 피라미드 스테이지에 케미컬 브라더스가 서는 바람에 적은 청중들과 함께 해야 했다. 트래비스가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인 토요일 헤드라이너로 선 것도 그렇고, 페스티벌을 마무리하는 일요일 헤드라이너로 데이빗 보위가 선 것도 그렇다. 올해의 히어로 트래비스의 경우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곳에서의 인기를 보니 그네들이 트래비스에 거는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트래비스의 무대는 거대한 싱얼롱과 여름밤의 낭만이 교차하던 시간이었다. 암튼, 공연 시간표를 보고 ‘완전 영국 만세군!’하고 이죽거리다가도 미국과의 격차가 현저한 요즘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나마 그렇게 꾸릴 수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마음이 좀 심난하긴 했다.

영국 내 레이브 열기가 대단하다는 글은 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일렉트로니카의 인기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정 정도에 모든 공연이 마무리되지만 청중들은 밤새도록 맥주를 마시며 흔들어댔고, 댄스 텐트도 자정이면 공식 공연이 끝나지만 어찌된 셈인지 쿵쿵거리는 리듬은 밤늦도록 그치질 않았다. 첫 날 가장 많은 청중을 동원하며 피라미드의 헤드라이너로 선 케미컬 브라더스는 “Hey Boy Hey Girl”로 시작 “Block Rockin’ Beats”, “Setting Sun”을 거쳐 “The Private Psychedelic Reel”로 끝마쳤는데, 이들의 무대는 청각적 매력 못지 않게 시각적 즐거움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무대 양옆 멀티 스크린 외에 5개, 3개, 1개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변화하는 스크린이 흥미로운 영상을 보여주었고, 조명과 라이트 쇼가 아주 현란하게 펼쳐졌다. 케미컬 브라더스의 공연 한 시간 전에 아더 스테이지에서 공연한 모비의 경우도 헤드라이너도 아니고 세컨드 스테이지였지만 아더 스테이지를 청중들로 꽉 메우며 인기를 과시했다. 토요일 아더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였던 레프트필드도 피라미드의 트래비스에 비해 전혀 꿀리지 않는 청중 무리와 전자 환각에 빠져들었으며, 같은 시각 댄스 텐트는 마지막 라인업으로 선 팻보이 슬림을 보러 온 청중들로 도저히 춤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이제까지 ‘글래스톤베리’ 역사상 2000년이 최고의 해가 아닐까’란 말이 헤드라인으로 뽑힌 소식지 일요일판을 읽으며 런던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으면서, 영국에서 페스티벌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았다. 여름은 그들에게 완전히 페스티벌의 계절이었으며, 이때만 되면 전역에서 거의 주말마다 쟁쟁한 출연진을 대동한 굵직한 페스티벌들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었다. 페스티벌이란 축제는 교외의 한적한 공간에 일시적으로 건설되는 일종의 ‘Music Nation’이었고, 그곳에서의 며칠은 도시의 생활과 분리된 새로운 경험을 각인시키는 듯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다른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몸을 내맡긴 채(심지어 마약도 거리낌없이 가까이 하며) 즐기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페스티벌은 특별한 시공간을 제공하는 장이지만, 그것은 상기했다시피 이미 30여 년 가까이 내려온 그리고 매년 여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참여할 수 있는 장이다.

요컨대 페스티벌은 (일과 여가가 비교적 잘 분리된 그네들의) 정례화된 여가 활동의 한 방편이다. 지난 역사에서 카니발이 그랬듯이 말이다. 따라서 페스티벌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인 동시에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한 정례화된 행사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일상이다. (도시의) 생활이 팍팍하기란 경제 수준을 떠나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그러나 지금의 생활을 완전히 정리할 수도 없는, 불안하지만 마땅한 출구도 없는 상태에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 청년들에게 페스티벌은 매력적인 여행임에 틀림없다. 이 시대 다른 많은 나라의 페스티벌도 그런 청년들로 붐비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영국에서 페스티벌은 일반적인 공연과는 다른 대중 음악 산업의 특이한 상업적 행사, ‘summer weekend mass event’이다(현재 관광 수입 면에서 또한 카니발이 그렇듯이). 적게는 수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이 모이는 페스티벌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이미지 및 홍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행사이다. 릴레이식으로 출연하는 많은 밴드/뮤지션, 수많은 청중, 고액의 입장료, 대도시(실생활)로부터 며칠간의 분리 등은 청중이나 뮤지션이나 음악 산업 모두에게 ‘특별한 어떤 것’이다.

6월 26일 월요일, 영국을 떠나며 사든 신문 [The Independent]에는 ‘글래스톤베리’의 취재 기사가 실려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은 그 기사는 ‘페스티벌 북 샵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은 [Lonely Planet Guide to India]였다고 전하면서 원시적인 깊이, 의지할 수 없는 황홀, 그리고 이국적 문화에 대한 일부 젊은이들의 욕구는 지칠 줄 모르는 듯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 책의 내용을 떠나, 그 기자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편으론 올 여름 한국에서의 페스티벌 러시를 기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글래스톤베리에서 어떤 영국 여인네가 뜬금없이 다가와 맥주 캔을 건네준 일을 미담(!) 삼아 얘기할까 말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나 ‘글래스톤베리’에 대한 느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결국 기대를 모았던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과 ‘속초 대한민국 록 페스티벌’이 각각 엽기적인 예매자수와 주최사간의 이해 관계로 무산되고 말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말았다. 올해 ‘글래스톤베리’가 매우 늦게 매진된 편이어서 ‘매진 안되면 어쩌나’ 걱정했다는 이비스 아저씨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배부른 소리 어쩌구 했던 기억조차 민망하게. 20000928 | 이용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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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공식 사이트 (현재는 공사중)
http://www.glastonburyfestival.co.uk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관한 모든 것이 실려 있다

닷뮤직컴 사이트
http://www.dotmusic.com/specials/glasto2000/default.asp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리뷰 및 사진을 볼 수 있으며 이외 여러 영국 페스티벌에 관한 정보와 리뷰를 볼 수 있다.